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9회 바로알고 내려놓기(21:36)

댓글 0

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0. 30.

  방송 보기: 불교TV
 

지금까지 고성제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공부를 했구요, 고성제는 오온이라 그랬죠. 오온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공부를 했고, 지난시간에 오온이 왜 일어나는가? 그 원인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그게 집성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성제와 집성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에 대해서 어떤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가? 어떤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는가? 이런 거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구요. 오늘 부터는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이 집성제잖아요. 그죠? 집성제. 다시 말하면 고통의 원인인 이 집성제를 뭐라고 그랬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고통의 원인이 뭐라 그랬어요? 보통 경전에서 이야기하기로는 갈애라고 그러죠. 갈애.

 

갈애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갈애의 근본원인이 무명이잖아요. 보통 무명과 갈애. 또 뭐 일반적으로는 번뇌라고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표현을 쓸 수가 있는데요. 갈애라고 하는 것은 제가 전에 설명 드린 5장애요소라고 있었죠. 그 장애 요소의 대표적인 거라고 보시면 되고. 무명과 갈애가 어떤 고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무명과 갈애 또는 무명과 다섯 가지 장애요소. 이것을 내려놓는, 놓아버리는 과정이 바로 고의 원인을 소멸하는, 이 과정이 바로 도성제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를 본래 공부하려고 했던 이 팔정도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면 이 전에 그렇게 팔정도를 바로 이야기하지 않고 앞에서 고성제 집성제 이런 걸 이야기했냐하면 상류따니까야라는 경전에 보면요, 선법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출발점이 있다 그랬습니다. 어떤 불교에서 말하는 유익한 법을 일으키는 데는 출발점이 있는데 그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뭐냐 하면 청정한 계율입니다. 계율. 여러분들께서 이런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 첫 번째고요, 그리고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정견이라 그래요. 정견. 첫 번째는 청정한 계율, 두 번째는 정견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청정한 계율은 팔정도에서 뭐라고 되 있느냐하면 정어, 정업, 정명, 이 세 가지로 이야기 돼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계율은 세속에서 지키는 건 다섯 가지 계율이죠. 오계. 그런데 청정도율에서는 이걸 좀 풀어서 바른 말을 해야 된다. 바른 말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거짓말 하지 않고, 거친 말, 그리고 남을 속이는, 그리고 남을 이간질 시키는 말. 쓸데없는 말. 요런 네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을 바른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른 행위는 바른 행동이죠. 그죠? 이것은 살생 도둑질 그리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을 바른 행위라 그러고. 생계는 세속에서 살라 그러면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잖아요. 이것을 할 때 생계를 유지하는 건 좋은데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하지 말란 이야기입니다 .

 

그러니까 해를 끼치는 대표적인 게 도박, 술을 판다거나, 마약을 판다거나, 또는 무기. 남을 취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인신매매. 이런 등등의 직업으로서 자기 삶을 유지하는 것은 금했다 이거죠. 이 세 가지, 바른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를 잘 지키면서 첫 번째 시작이 뭐냐 하면 정견이라는 거에요. 정견. 그래서 경전에서 이 정견이라는 것을 뭐라고 표현해 놨느냐하면 사성제에 대한 이해라고 돼 있습니다. 뭐가 정견이냐? 여러분들이 정견이라는 것이 뭐냐? 라고 했을 때 사성제에 대한 이해. 또는 연기법에 대한 이해. 또는 무상고무아 에 대한 이해. 이런 것들을 정견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정견을 좀 갖추는데 도움이 될 말을 미리 말씀을 드린거죠. 고성제 집성제를 이해를 하고, 고성제와 집성제를 이해하면 나머지는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집성제를 버리는게 도성게고요. 이 집성제가 완전히 버려진 상태가 멸성제입니다. 그래서 고성제와 집성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사성제를 잘 이해하는 거고, 집성제를 이해하는 게 또 고성제와 집성제를 잘 이해하면 연기를 이해하는 꼴이 되구요. 그리고 고성제와 집성제를 잘 관찰하다 보면 나중에 오온이라든가, 또는 오온의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뭐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하기 때문에 이것은 본질적으로 괴로움이고, 그리고 괴로움이 본질적인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기본 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정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부처님께서 지금까지 너희들이 바라보는 이런 틀 말고, 사성제 틀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봐라, 하고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하나? 요즘 말로하면 패러다임이죠? 그죠?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른 형태의 법을 가르쳐 주는게 비로 사성제. 그게 바로 정견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정견이 없이 수행을 하는 것은 일종의 나침반이 없고, 그리고 지도가 없이 아직 가보지도 않은 길을 가보는 거나 똑같거든요. 그러면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없이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는 없겠죠. 그죠?

 

정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수행에 출발점이자 우리가 가야될 목표지점을 이야기 합니다. 처음 수행을 할 때 어떤 방향으로 해야 되고, 나중에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쭉 가서 완성되는 것이 뭔가? 결국 깨달음을 얻었지만 사성제를 완전히 꿰뚫어 알게 되거든요. 처음에 지금 여러분이 아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거잖아요, 그죠? 그런데 나중에 수행을 통해서 사성제를 아는 것은 사성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겁니다. 확실하게. 그런데서 좀 차이가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견이라고 하는 것은 수행의 시작, 출발점이자 방향성이자, 마지막 우리의 목표지점이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견은 매우 중요한 것을 말 하구요.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수행의 출발점이에요. 청정한 계율과 정견, 그러면 정견을 바탕으로 해서 또는 청정한 계율과 정견을 바탕으로 해서 그 다음에 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바른 노력이라는 거에요.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 노력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겁니다. 알아차림. 지난번에도 말씀 많이 드렸죠? 그죠? 상유따니까야라는 경전에 보면요, 그런 말이 많이 나옵니다.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수행을 많이 하면 정법이 쇠퇴하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알아차림 수행을 안하기 시작하면 정법이 쇠퇴한다, 그랬습니다. 법이 오래가는 결정적인게 바로 뭐냐 하면 알아차림 수행을 하느냐? 안하느냐?

 

그리고 여러분이 청정한 계율을 바탕으로 해서 이런 알아차림 수행을 지속한다면 여러분들에게 절대 퇴보란 없다 그랬어요. 퇴보는 없고 향상과 발전이 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여러분들이 이런 거에 대한 방향을 분명히 가지고 알아차림 수행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면 이 알아차림 이라고 하는 수행을 개요를 오늘은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요, 오늘 제가 몇 개의 개요를 설명 드린 다음에, 다음 시간부터 그 나의 부분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전에 나와 있는 알아차림 수행, 대념처경이라고 있습니다. 경전중에.

 

이 대념처경이나 일반적인 상유따니까야라는 경전이나, 여러 경전을 보면 알아차림 수행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나온게 있는데, 대부분 전체적으로 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멈문다. 그리고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고,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그래서 이게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하나의 방법, 실질적인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은 몸이 있지만 실제로 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 다기 보다는 몸의 껍데기를 관찰하고 있잖아요. 그죠? 그냥 내 이름, 생긴 모양, 이런 것들에 대해서만 보는데, 몸의 본질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요. 느낌도 마찬가지고, 그 다음 마음, .

 

이렇게 해서 이런 알아차림 수행에 제일핵심은 뭐냐 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아는 거에요.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데,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내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런 거에 현혹되지 않고, 그 사물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이런 걸 있는 그대로 알다보면 어떤 일이 발생 하냐 하면은 내가 관찰하는 것에 대한 뭐가 이루어집니까? 이해가 이루어지죠. 여기서 보면 네 가지 대상을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신수심법입니다. 네 가지가. 이런 말 들어보셨죠? 신은 몸이고요, 수는 느낌, 그리고 심은 마음이고, 법인데.

 

이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신수심법할 때 신은 뭡니까? 우리 몸을 이야기하죠. 주로 물질을 이야기하잖아요. 그죠? 이것을 앞에서 배운 걸로 따지면 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오온 중에서. 그렇죠. 색온이죠. 색온. 그래서 신수심법할 때 신은 색온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는 뭐에 해당하겠어요? 오온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겠어요? 말 그대로 수잖아요. . 느낌. 그럼 뭐에 해당하겠어요? 오온이 뭐에요? 색수상행식이면, 수온이죠. 수온. 그죠? 느낌 수. 수온에 해당하고

 

그 다음에 심, 이건 어디에 해당하겠어요? 식온이라 그랬죠. 식온. 마음은 대상을 아는 건데, 그 아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식온이잖아요. 그리고 법은 나머지 상과 행을 법이라 그럽니다. 상온과 행온을. 그러니까 이거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뭐냐 하면 부처님께서 신수심법 이라고 하는 이 네 가지 대상을 말씀하신 것은 결국은 오온을 적당히 구분지은거란 이야기죠. 다시 말하면 신수심법에 대해서 관찰하다 보면 여러분들이 뭐를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 오온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자동으로.

 

그러니까 여러분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그리고 느낌.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좋다, 싫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 이런 느낌을 초점을 맞출 수도 있어요. 그냥 막연히 관찰하세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를 거란 말이에요, 그죠.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이 네 가지 영역을 이렇게 구분을 해 줌으로서, 몸에 대해서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느낌에 대해서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또 마음에 대해서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법에 대해서 초점을 맞출 수도 있는 거죠. 그죠? 그래서 네 가지에 대해서, 상황 상황에 따라서 현재의 어떤 대상이 일어나느냐에 따라서 초점을 맞추다 보면 이 네 가지, 신수심법이라고 하는 몸이나 느낌, 마음, 법에 대한 이해를 하다보면, 그것이 결국은 우리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집니다.

 

이 결국 세상의 오온이기 때문에. 오온이 신수심법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은 부처님께서 이런 네 가지 형태로 말씀하신 것은 우리 삶의 오온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구체적인 방법론이라는 거에요. 그냥 이론적인게 아니고. 실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 몸의 움직임, 내 마음의 움직임, 그리고 느낌,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법들. 법이라고 하는 것에는 예를 들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이런게 다 들어갑니다. 알아차림. 지혜, 자비. 이런 거 전부 법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차리고 이해를 하므로서 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서서히 하게 되겠죠. 그죠?

 

그러면 그걸 이해를 하게 되면 뭐가 이루어지겠어요? 아까 말했듯이 ~ 현재 일어나는 현상, 이런 느낌이 일어나는 거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원인이 있구나.’ 그죠? 원인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도 이해를 하게 되고. 그래서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고 또 원인에 의해서 사라지고. 이렇다는 것은 우리가 뭐를 또 이해할 수 있냐하면 무상고무아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수심법이라고 하는 이 네 가지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대상에 대해서 자꾸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는 이 자체가 뭐를 우리에게 계발시켜 준다는 거에요? 지혜를 계발하게 해 준다는 거죠. 그죠?

 

그래서 이 알아차림이라는 이 네 가지 대상의 알아차림을 통해서 첫 번째 길러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가 일단 길러지고.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처음에는 신수심법이라고 하는 이런 다양한 대상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을 관찰 하는데요, 나중에 이 관찰의 대상의 폭을 예를 들면 신이라고 하는 몸이 있잖아요? 몸 중에서도 특별히 호흡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도. 이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게 있잖아요? 이 호흡에다가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러면 이 호흡에다 초점을 맞추게 되면 생각이 처음에는 일어나는데로 관찰하기 때문에 마음에 대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다양함이 아니라 생각의 폭을 좁혀서, 호흡이라고 하는 대상을 하나로 모아버리면, 우리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지를 안하고 가만히 있는 상태가 된단 말이에요. 그런 상태로 가게 되면 여러분 마음이 아주 고요해집니다. 아주 고요해 지는데, 이렇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아주 집중된 상태, 그런 상태를 뭐라고 하냐하면 삼매상태라고 그래요. 그래서 그 네 가지 대상 중에 주로 몸의 대상을 가지고 우리가 선정에 많이 들어가는데요. 몸이라고 하는 여기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서 다른 대상으로 마음이 가지 않고 호흡이라고 하는 하나의 대상에만 가게 하면 사마디가 계발이 됩니다. 삼매가 계발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런 선정이란든가, 지혜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이 수행에 하나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실제로 수행을 하는 것은 신수심법이라는 이 네 가지 대상을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것이 일상생활 속에서는 대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때는, 그 대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그것을 그냥 그대로 알아차리면, 대상에 대한 많은 이해가 이루어지겠죠.

 

그 이해를 통해서 점점점 깊어지다 보면 ~ 이런 대상들이 전부 우리가 관찰하는 것들이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구나그런 것을 보게 되면 ~ 무상한 것이고, 정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구나, 내 것이 아니구나. 이것을 나의 자아라고 할 수는 없구나하는 이런 식의 지혜가 계발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하나의 대상에 이렇게 고요히 머물게 되면 고요함, 마음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 상태의 어떤 삼매를 얻을 수도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어떻게 보면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한 프로세스로 가는데. 여기서 지혜가 드러날 때는 이 고요함은 좀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요함은 밑바탕에서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지혜를 도와주는 형태로 있고. 또 고요함이 드러날 때는 이 지혜가 도와주는 형태로 고요함이 드러나는 그런 상태라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알아차림의 과정 속에서 삼매와 지혜는 항상 같이 간다는 거에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세요? 그래서 이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수행을 통해서 정과 혜가 계발되어 간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겠구요. 그러면 이런 알아차림을 하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 대념처경이라고 하는 경전에 보면요, 어떻게 나오냐 하면, 이 알아차림 수행을 통해서, 네 가지 대상, 사념처라 그러죠.

 

네 가지. 념이라는 것은 알아차림이라는 뜻이구요, 처라는 것은 알아차림의 포커스가 맞춰지는 대상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네 가지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알아차림을 하다보면 첫 번째 뭐가 없어지냐 하면 근심과 탄식이 없어집니다. 근심과 탄식이 없어지고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사라지게 한다 그랬어요. 이거는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수행은 어떤 과정이라 그랬어요? 이 알아차림d을 통해서 뭐가 내려놔 진다 그랬어요? 감각적 탐욕이나 성냄, 이런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일어나지 않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랬죠. 그죠?

 

그러면 이런 알아차림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 다섯 가지 장애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 되잖아요. 그죠? 탐욕과 성냄이 일어나지 않고 이거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것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그랬어요. 하나는 일반적으로 감각적 쾌락을 통해서 일어나는 행복이 있고, 두 번째는 이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므로서 오는, 이걸 내려놓음으로서 오는 행복있다 그랬잖아요. 그죠? 그래서 이 알아차림은 이걸 내려놓는 과정입니다. 번뇌를 내려놓는 과정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여러분들이 이런 걸 하다 보면,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좀 힘들기도 하고, 이럴 수도 있어요. 안하던 거를 하려고 하면. 그런데 이런 수행을 지속하므로서 소위말해서 오염원이 내러놔지면 내려놔질수록 여러분들 마음에는 희열과 기쁨이 자꾸 커집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냥 단순히 내려놓음이라고 하는 것. 놓는다는 것은 이 놓음으로서 오는 행복이 반드시 동반이 됩니다. 희열과 행복이. 이걸 버리면 내가 무슨 재미로 하나? 이런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이걸 버리므로서 오는 행복은 우리가 이런 감각적 쾌락을 통해서 오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이건 오히려 우리를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더욱더 고요하고 행복한 어떤 마음상태, 평화로운 마음상태를 유지한다는 거에요. 이런 알아차림을 통해서 내려놓는, 번뇌를 내려놓는, 무명과 이런 다섯 가지 장애요소를 내려놓는 수행을 하다보면, 그로 인해서 우리마음에 희열과 행복이 점점점점 커져나가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 마음의 근심이나 탄식. 그리고 정신적인 불만족 이런 것들이 점점점점 사라진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