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399회]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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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8)

2018. 6. 15.



성철스님 문도와 인연이 되어서 절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제가 3년 기도를 입재하고 2년 동안 기도를 하고 있는데도 108 참회문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거기는 여든아홉 분의 부처님 용어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성철스님이 대단하고 하니까 믿음이 있어서 믿고 했는데,

도대체 이 부처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해도 참회가 되겠나?

 

그런 의문이 가장 컸고, 나중 들어서는 이 부처님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내가 지극히 귀의하고 결국에는 부처님이지만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말은 내가 부처님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께 귀의해서 참회하면 되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하고 있는데

 

그런데 제가 확실치가 않습니다. 제가 뭐 믿으라고만 하고 있으니까//

 

 

 

그러면 어떤 분이 내가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 병이 다 낫고 내가 원하는데 다 이루어진다. 그래서 제가 열심히 지금 하느님께 기도를 하는데, 하다가도

이런다고 되나? 이렇게 자꾸 의심이 든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한테 물을 수도 있겠죠. 그죠?

 

그러니까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토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대화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 묻는다면

당신이 믿으면 그렇게 하고,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된다.” 스님 말은 이렇게 얘기 할 거요.

 

왜냐하면 여기에 우리의 대화는 특정한 종교의 대화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108배 참회하면, 또는 부처님께 참회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으시면 그렇게 하시면 되고, 안 믿어지면 안 하면 되요.

 

믿음이라는 건

원래 무조건 믿는 게 믿음이오.

 

믿어지면 하고 안 믿어지면 안하면 되지,

이걸 어이 믿어야 되나?” 이런 건 맞지가 않습니다.

 

권유해보고 사람이 누구나 다 나는 권유할 권리가 있고, 상대는 거절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거절하면 거절하는 구나.” 이렇게 하면 되지,

 

왜 내가 얘기하면

상대가 왜 내 말을 믿고 따라야 됩니까?

 

예를 들면 하느님께 내가 기도를 하는데, 하느님을 믿고 기도하면 된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을 기도하는데, 아무리 해도 무조건 이렇게 믿는다고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면 그걸 법륜스님한테 물어야 될까? 목사님한테 물어야 될까? 그것을 그렇게 하면 된다는 사람한테 물어야 될 거 아니오.

 

그러니까 자기가 그건 그분께, 자기 그렇게 하며 좋다고 하는 누군가 가르쳐주신 분이 계실 거 아니오. 그분한테 가서 물어야지.

아니 아니, 그 얘기하지 말고, 거기 가서 물으면 되거든요.

 

내가 스님은 이렇게 얘기해요. 믿어지면 믿고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된다. 그리고 해보니 좋으면 자기가 하면 되고, 안 좋으면 그만두면 된다. 또 거기에 대해서 의문이 있으면 그것을 그렇게 하면 좋다고 말해준 사람한테 물어야 된다는 거요.

 

어떤 무당이 우리 아이를 보더니 단명 합니다.’ 라고 얘기하는데, 스님 진짜 단명합니까?”

이렇게 물으면 내가 뭐라고 해야 된다? 그분한테 가서 물어봐라.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오. 하느님이 있나 없나 나한테 물으면, 내가 있다 없다 말할 수가 없어. ?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믿음의 문제는 주관이거든요. 주관을 객관화 시키는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요.

 

윤회하느냐? 안 하느냐? 이렇게 묻는 것은 믿음의 문제거든요. 그런데 윤회하느냐 안하느냐를 객관적으로 증명을 하려고 그래. 그런 관점 자체가 잘못된 거요.

 

하나님이 있나? 없나? 윤회를 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은 무슨 문제다? 믿음의 문제고,

믿음은 주관이에요? 객관이에요? 주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기가 믿으면 그렇게 하면 되고 안 믿으면 안하면 되지,

그게 그렇다, 안 그렇다고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러면 천수경을 읽으면 이런 말이 있어. ‘죄무자성종심기죄라고 하는 것은 본래 죄라고 할 것이 없다. 이게 죄무자성이야. 종심기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 일어난 거다. 이렇게 되어 있어.

 

어리석은 마음을 탁 깨우쳐버리면

죄라는 것도 본래 없다 하는 걸 깨우쳐 버리니까

참회할 것도 없다. 이것을 진짜 참회라고 한다.

 

그래서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忘). 죄망심멸양구공(罪忘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이렇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제법이 공한 줄 알아버리면 이것이 진짜 참회다. 이런 얘기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꿈에 어떤 사람을 때렸어. 그래서 자기가 엄청나게 잘못을 해서 매일매일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이게 참회일까, 눈을 뜨니까 꿈이야. “에이, 꿈이네.” 이게 참회일까? 그래.

 

굳이 묻는다면 그렇게 얘기를 하겠어요. 저는. 꿈속에서 어떻게 참회하는 게 잘하는 거다. 그것은 각 종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얘기할 게 없고,

 

제가 얘기하는 즉문즉설은

꿈에서 깨라.

이 얘기 하는 거요. .

 

 

여러분들이 제가 스님이니까, 세상에서 보면 불교승려잖아. 그죠? 여기에서 불교가 어떻다. 불교를 믿으면 좋다.” 이런 얘기 하러왔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종료를 믿던 안 믿던, 어떤 종교를 믿던 저는 아무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남자든, 여자든 어떤 옷을 입고 왔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아무관계가 없듯이.

 

저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에요.

남자든, 여자든,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신체가 건강하든 병이 있든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한 사람이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피부가 검든 희든

사람으로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다. 동의합니까?

 

어떤 경험이 있든지 간에

이혼을 했든 지난달에 우리 아들이 죽었든

어제 파산을 해서 내가 거지가 됐든

결혼을 두 번 했는데 또 속았든

그 사람들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

 

그러니까 그것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나는 이래서 괴롭다고 하는데,

제가 여러분께 말해주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살아있으면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게 중요해요.

이게 우리의 사람의 권리입니다. 인권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 자기 권리를 놓쳐버리고

지금 괴로움에 빠져있다.

 

그래서 괴롭다 하는 걸 갖고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얘기를 여러분과 대화를 하려는 거요.

 

남편이 돌아가셨다. 괴롭다.” 그래,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 안 죽고 있었으면 나한테 얼마나 좋았겠노?” 나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죽어버렸어. 그러니까 괴롭다. 그것도 이해가 되요. ‘

 

그런데 나는 남편이 죽었더라도 당신이 괴로워할 이유는 별로 없다. 이 얘기에요. 아쉬운 건 이해가 되는데, 내가 볼 때는 남편이 자기가 죽인 것도 아니고, 내가 죽으라고 죽은 것도 아니고, 그건 뭐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면 날씨가 춥듯이 지가 알아서 죽은 거 아니오.

 

그럼 날씨가 춥다고 오늘 괴로워해야 되나? 옷 한 벌 더 껴입고 따뜻하게 지내면 되지. 남편이 죽은 건 죽은 거고, 나는 괴로워할 이유가 없는 거요. 내가 볼 때는 시집 한 번 더 갈 기회가 생겼다.’ 좋은 일이잖아. 그럼 가라. 이 말이 아니라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되고, 가고 싶으면 가도 되고.

 

그런데 결혼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한 번 더 하고 싶어도 선택의 자유가 없잖아. 이혼하면 애들이 또 반대할 거 아니야. 또 주위에서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거 아니야. 여긴 많은 문제가 따랐는데, 지가 알아서 죽어버렸으니까 그러면 혼자 살아도 되고, 결혼해도 되고, 문제가 없다는 거요.

 

다만 안 죽었으면 하는데 죽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 이건 나도 인정을 하는 거요. 그런데 죽어버렸는데 지금 어떻게 할 건데. 그러면 그 아쉽다고 계속 울고 살 거냐?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죽은 건 죽은 거고,

나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거지.

 

어릴 때 내가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랐다.’ 그래. 부모가 있었던 사람보다는 못한 건 맞아요. 그러나 그런 사람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잖아요. 왜 요즘 애들 부모 등살에 못 견디잖아. 그지? 난 부모가 없으니까 부모 등살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좋아요? 안 좋아요? 좋잖아. 그리고 결혼할 때 시어머니 때문 요즘 결혼 못하는데 ,시어머니가 없으니까 결혼하기도 쉽고.

 

그러니까 그게 나쁜 요소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요소도 많이 있다.

솜은 부드러워서 좋지마는 딱딱하지가 못하고

칼은 단단해서 좋지만 부드럽지가 못한 거요.

 

그런데 우리는 솜보고 딱딱하라고 그러고

칼보고 부드러워라. 이런 식이란 말이오.

그래서 늘 욕구불만 때문에 지금 괴로운 거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이 절에 다니든, 교회 다니든, 어느 절에 다니든 그건 당신들 알아서 하라는 거요.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내가 무슨 종교를 믿든

남자든 여자든, 내 상황이 어떻든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걸 불교식으로 굳이 말한다면 모

든 사람은 다 부처가 될 소질이 있다.

불성이 있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을 좀 가지셔야 되요. 대한민국 국민이면 주권자이기 때문에 주권자의 권리가 있듯이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걸 너무 팽개치지 마라. 버리고 괴롭다고 아우성치지 말고, 자기 권리를 좀 향유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러분보다 나이가 몇몇 빼고는 내가 더 나이가 많잖아요. 나는 젊은 사람보다 내가 더 행복해요. 여러분은 결혼해서 사는데 나는 혼자 살아도 내가 더 행복하다. 여러분들은 대학 나왔는데 나는 고등학교 다니다 관둬도 내가 더 행복하다.

 

내가 여러분보다 행복 안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나 같은 사람도 행복한데, 여러분들이 괴로울 이유가 뭐가 있어.

 

그러니까 교통사고 나서 다리가 부러지면 안 부러진 것보다는 못하죠. 다리 부러졌다고 계속 괴롭게 살아야 되요? 그런 사람도 행복하게 살아야 되요. 행복하게 살아야 되겠지. 걸어 다니다가 부러졌으면 지팡이 짚고 다니고, 지팡이 못 짚고 다닐 형편이면 휠체어 타면 되잖아요. 그래도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다행이잖아요.

 

이럴 바에야 죽지.”

그럼 죽으면 되니까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어느 절에 다니든, 어느 교회에 다니든 상관없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우리가 행복에 대해 대화를 좀 해보자.

 

이 마음가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수행이라고 그러고.

 

아까처럼 토끼를 잡아놨는데 쟤가 3마리 다 가져가 버리니 기분이 나빠요? 안 나빠요? 그런데 마음먹기 달렸다.” 너무 이렇게 되어도 안 맞잖아요.

 

그러니까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면 우리가 좀 더 행복할 수가 있다. 이것도 맞는 얘기에요. 남북한에 전쟁이 일어나는 게 행복하겠어요? 안 일어나는 게 행복하겠어요?

빈부차가 심한 게 낫겠어요? 덜 심한 게 낫겠어요?

거봐.

 

지금 애들 때문에 교육문제 어려운 사람들은 안 되는 거는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이라도 행복해야 되지만, 그러나 애 낳아도 키우는데 별 걱정 없으면 더 나아요? 안 나아요? 낫잖아. 그럼 우리 낸 세금 갖고 조절하면 되요.

 

4대강, 강파는 데 쓰는 돈을 여기다 쓰면 그렇게 되는데 뭐. 물 흘러가는 거 똑바르게 흐르게 하면 뭐하는데? 돈을 어떻게 쓸 거냐? 이것은 정치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거요.

 

그걸 여러분들이 감시감독을 하면 되는데, 내가 낸 세금인데, 우리가 감독을 안 하고 어떻게 쓰든 상관 안 해요. 그래서 주권자로의 국민의 권리를 좀 제대로 찾아먹자. 사람으로서 행복할 권리를 좀 찾아먹자.

 

우리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좀 자랑스럽고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산다는 게 자랑스러운

그런 행복한 사회를 한번 만들어보자.

이런 취지로 이 강연회가 이루어지니까 진주시민 여러분들, 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