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17. 좋은 아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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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2018. 6. 27.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수닷타 장자의 며느리, 옥야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경을 따로 독립해서 옥야경이다.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인데,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을 찾아오셨어요.

 

그러고는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서는

부처님, 제가 큰 고민이 있습니다. 며느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며느리를 봤는데 아주 부잣집 딸, 아주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그런 며느리를 봤다는 거요.

 

그런데 이 며느리가 콧대가 너무너무 높아서 자기 아름다운 자태와 자기 집안의 부유함에 대한 그런 자긍심으로 인해서, 시집을 와서 남편이나 시아버지에 대해서 공손하지가 못하고 불손하다. 이거야.

 

야단을 치려니까 자기 힘으로 교화를 시키기가 어렵고, 내버려 두자니 점점점점 인격이 나빠질 것 같고, 그래서 고민고민 하다가 도저히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겠다. 부처님께 여쭈어봐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제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내 며느리를 이곳에 데려와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도록 하면 되겠는데, 이 아이가 아무리 가자해도 안 간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 인도를 해서 설법을 들으면 해결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안 오니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며느리 옥야는 왜 설법을 들으러 안 가느냐? 그게 이유가 있는 거요. 부처님이 여자의 아름다운 육신이라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 설법하는 중에 보면 그 여자의 아름다운 육신을 항아리를 잘 채색해서 그 안에 똥 담아 놨다. 뭐 이런 비유를 하지 않습니까. 그죠?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냐?

 

그 용모 같은 이런 거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으로 즉, 비난한다. 이렇게 들었어요. 자기는 용모가 잘난 거에 대해서 좀 늘 뻐기고 사는데, 부처님은 그런 거에 대해서 아주 비난한다. 이런 선입관을 갖고 있으니까 부처님한테 가서 칭찬받기는커녕 도로 비판을 받거나 망신 살까? 이런 게 마음속에 말 못한 게 있으니까, 부처님한테 잘 안 오려고 하는 거요.

 

그러니 부처님시여, 저희 집에 오셔서 저희 아이를 좀 교화를 해주십시오.” 이랬어. 그래서 부처님께서 승낙을 하셨어요. 그래서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해놓고, 공양을 초대한 거요.

 

그러니 부처님이 수닷타 장자 집에 오니까, 다 가족들이 나와서 부처님을 환영했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 며느리만큼은 안 나타나는 거요. 자기가 마음에 찔리는 게 있으니까 부처님을 만났을 때 이 마음이 쾌활하지가 못한 거요. 그러니까 어떻게 핑계대고 빠졌어.

 

그래서 부처님이 신통력으로 해서 집 전체 벽을 다 유리처럼 투명하게 만들어버렸어. 그러니까 어디를 가서 숨어도 환희 다 보이는 거요. 그러니까 숨을래야 숨을 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옥야가 법회에 참석을 했다. 이런 말은 참선 안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다가 더 이상 핑계거리가 없어서 억지로 참석을 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그때 부처님께서 그 옥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용모가 단정하다고, 그걸 내세워서 남편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단정함이라고 하는 것은 간사한 태도를 버리고 여러 허물을 버리고 그 뜻을 고요~~~히 하는 게 단정한 거지, 화장을 해서 안색을 좋게 한다든지, 또는 머리를 예쁘게 꾸민다든지, 비단옷으로 갈아입는다든지, 이런 게 용모가 단정한 게 아니다.

 

여자가 여자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마는

여자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남자의 노리갯감이 되기에 적당할 뿐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여자의 몸에는 10가지 나쁜 일이 있다.

1. 태어날 때, 부모가 기뻐하지 않는다는 거요.

요즘은 기뻐하죠. 옛날 얘깁니다. 옛날에 딸 낳았다 그러면 부모가 기뻐 안하죠. 노인들은 다 고개를 끄덕끄덕하지 않습니까.

 

2. 부모가 여자애를 키우면서는 재미를 못 느낀다는 거요.

키워봤자 남의 집에 갈 사람이니까.

3. 여자 몸을 받으면 늘 사람을 두려워해야 된다는 거요.

짐승이 사람을 보면 두려워하듯이 여자는 남자를 보면 긴장으로 두려워하고 살아야 된다는 거요. 이건 아직도 좀 그렇죠.

 

4. 여자는 시집을 간다 하는 것이 살아서 이별을 한다는 거요. 부모와.

5. 시집을 가도 남편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거요. 이것도 옛날에 시집살이는 늘 긴장 속에서 살잖아.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나쁜 일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건 그 시대의 얘깁니다. 그 시대의 여자 몸을 받았을 때 이런 나쁜 일이 있는데, 그러니까 네가 여자가 좀 잘났다고 뻐기고 하는데, 그게 하나도 잘난 게 아니다. 너한테는 사실은 이런 고통과 불행이 있다. 이런 얘기를 한 거요.

 

그런데 이 경전을 요즘 잘못 읽으면 부처님이 여성을 비하한 것처럼 들으시면 안 됩니다. 이 당사자의 병이 뭔지를 알아야 되요. 이 당사자의 병은 여자가 얼굴 예쁘다는 거로 교만한 게 지금 문제 아니오.

 

그 교만을 얼굴 예쁘다, 그 교만을 꺾기 위해서 그 잘났다고 하는 게 결국은 남의 노리갯감이 적당하고, 여자가 잘났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이런 고통이 따르고. 단정하다 하지만 그런 건 단정하게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목표가 뭔지를 알으셔야 되요. 글자에 매이게 되면 잘못될 수가 있어요.

 

그때 오직 옥야는 자기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다는 것만 갖고 우쭐대다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는 크게 깨우치고 뉘우쳐서 그래서 부처니 앞에 나와서는

부처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하고 깊이 참회를 했어.

 

그러면서 부처님께 청했어.

좋은 아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스스로 청했어.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아내에게는 7가지가 있다.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선지식 같은 아내, 며느리 같은 아내, 종 같은 아내, 원수 같은 아내, 생명을 앗아가는 아내. 7종류의 아내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머니 같은 아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듯이 남편의 허물을 보지 않고,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엄마같이 돌보는 그런 마음을 내는 그런 아내가 있다.

 

누이 같은 아내라는 것은 남편을 오빠 생각하듯이 남동생 생각하듯이 형제지간에 느끼는 그런 사랑으로, 또 친구처럼 그렇게 뭐든지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가면서 그렇게 하는 아내가 있고,

 

선지식 같은 아내라는 것은 마치 스승이 제자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깨우쳐주듯이 남편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고, 늘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주는. 여기서 선지식이라는 말은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준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밑으로 잔소리해가면서 가르쳐준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그렇게 늘 인도해주는 그런 아내가 있다.

 

아마 여기 보살님들같이 이렇게 수행정진하시면 이런 선지식 같은 아내가 될 수 있겠죠. 이렇게 늘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그 다음에 며느리 같은 아내라는 것은 마치 며느리가 시부모를 잘 받들 듯이 남편을 잘 받드는 아내가 있고,

 

종 같은 아내라는 것은 마치 종이 주인을 섬기듯이 남편을 섬기는 그런 아내가 있다. 이 종 같은 아내라는 건, 남편이 아내에게 욕을 한다든지 못된 짓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갖고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잘 받든다. 이런 것까지 포함이 되어있겠죠.

 

그 다음에 원수 같은 아내는 마치 철천지원수가 만난 것처럼 보기만 해도 보기가 싫고, 늘 마음속에서 헤어지고 싶은 생각만 있고, 남편이 잘못됐다 그러면 속이 고소하고, 이렇게 늘 원수 같은 그런 마음이 작용되는 그런 아내가 있고.

 

그 다음에 살인자 같은 아내, 목숨을 앗아가는 아내라는 말은 늘 헤어질 생각을 하고, 어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죽여 버릴까,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아내가 있다는 거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러지만 요즘도 많이 있습니다. 많이라는 말은 좀 이상하고, 보험타려고 남편 죽이거나, 또 자기애인 시켜서 남편 죽이는 이런 경우 있어요? 없어요?

 

또 옛날에도 보면 왕후가 권력 잡으려고 자기 남편 독살시키고 지가 권력 잡는 경우가 있죠. 실제로 목숨을 앗아가는 아내가 많습니다.

 

꼭 그렇게 일부러 해치지 않더라도 심약한 남편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거나, 안 그러면 물어도 대답 안하고 외면해서 속터져 죽게 만들거나, 이렇게 해서 기가 넘어가서 명대로 못살고 죽는. 그런 경우도 있죠. 그러니까 이게 목숨을 앗아가는 아내다.

 

이런 7종류의 아내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말이오. 그걸 다 듣고 있던 옥야가 눈물을 흘리면서, 뉘우치면서 저는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남편을 해치는 그런 아내 역할을 지금까지 해왔다. 이거야.

 

그러니 부처님이시여, 저는 오늘 이후로 크게 뉘우치고 앞으로 저는 종 같은 아내가 되겠습니다. 이 종 같은 아내가 되겠다는 것은 그런 아내가 좋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너무 원수 같은 아내, 목숨을 앗아가는 아내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기를 정말 낮춰서 종 같은 아내를 하겠다. 이런 뜻이라고 봐야 되겠죠.

 

이렇게 참회를 하니까, 부처님께서 옥야를 위로했습니다. 이 부처님은 참회를 하면 참회 속에는 물론 깨우침도 있지만, 약간 심리가 위축될 수도 있죠. 반드시 뒤에 격려를 해주세요. 이게 저희들이 잘 안 본받아지는 경우에요.

 

야단을 치고 참회를 하면 그냥 가버리잖아. 그죠. 그런데 그 뒤에 반드시 심리를 약간 위로해주는 게 항상 있는 것 같아. 참회를 하니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래, 불자는 십계를 지켜야 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서도 안 되고

삿된 음행을 해서도 안 되고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고

욕설 하고 악담해서도 안 되고

이렇게 10가지 계율을 제시하는 거요.

 

그러니까 옥야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계율을 잘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하고,

그래서 부처님께서 다시 격려를 하시면서

수행자는 경과 계를 즉, 부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계율을 잘 지켜나가야 하느니라.” 이렇게 얘기하면 다시 부처님께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지키겠습니다.” 이런 모습들이었어요.

 

그렇게 끝나가 장자가 기뻤을 거 아니오. 그죠? 며느리가 법을 듣고 뉘우치고 법에 귀의하니까, 그 시아버지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그래서 준비했던 음식을 내서 대중들과 음식을 잘 드시고, 또 공양이 끝난 뒤에 대중들을 위해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그리고 기원정사로 돌아갔다.

 

이런데서 이 경만 보면 부처님은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해라.” 이렇게 잘못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근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방편이라고 그러잖아요. 방편이라는 것은 그 병에 맞는 가장 적절한 약이다. 이런 뜻이란 말이오.

 

인천사람이 서울로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물으면 동쪽으로 가시오.라고 말해줘야 되고

춘천 사람이 서울로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면 서쪽으로 가시오.라고 말해줘야 된단 말이오. 이럴 때,

 

부처님이 서울 가는 길을 물었는데, 이 사람은 동으로 가라 그러고, 저 사람 오니까 서로 가라 그러고, 헷갈린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 끝을 보는 것과 같다. 언어와 문자에 집착한다.

 

이 동과 서는 그 적절한 지침이다. 왜 이렇게 한 사람에게는 동이 되고, 한 사람에게는 서가 되느냐. 그것은 그 사람이 처해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옥야라고 하는 이 사람은 바로 자기 남편하고도 관계를 제대로 설정 못하고, 자기 부모하고도 제대로 관계를 설정 못하고, 자기 자식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기 밖에 모른다. 아시겠어요?

 

자기 밖에 모르지 가족도 잘 모르는 사람이오. 요즘 이런 사람 많이 있죠. 자기만 알고 가족을 몰라. 남자도 이런 사람이 많다. 이럴 때는 자기 버림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가 있어요? 가족을 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기를 버리고 부모를 위해서, 자기를 버리고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서, 자기를 내려놓고 자식을 위해서. 그런데 이걸 잘못 들으면

, 가족을 위하는 게 불교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 말이오.

그러면 내 가족만 잘 돌보면 그게 불법이 전부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 사람의 처지에서는 동쪽이 서울 가는 길인 것처럼 그것이 수행이라는. 자기에 사로 집힌 사람에게는 자기를 내려놓고, 가족이라고 하는 전체를 봄으로 해서 편견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는 거요.

 

다른 얘기를 하면 길어지니까, 오직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자기 남편 밖에 모르고, 이렇게 자기 가족밖에 모르고 이웃 아이는 학대하고, 이웃 사람은 손해를 끼치는. 이런 사람이 있다면 부처님이 뭐라고 가르치실까? 자기 가족을 내려놓고, 자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도록 이렇게 가르치겠죠.

 

그러면 우리가 고것만 보면

, 부처님이 가족은 돌보지 말고, 세상을 위해서 일하라 그랬구나.” 이렇게 또 받아들일 수가 있다.

 

승만부인 같은 경우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까지도 버리고 세상을 위해서, 중생을 위해서 희생과 봉사 보시를 하고 살았단 말이오. , 보살도를 닦았단 말이오. 이런 경우에는 부처님이 뭐라고 그럴까?

 

남을 돕는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 이렇게 가르친단 말이오.

네가 남을 돕는다라고 생각을 하면 그걸 돕는 게 아니다. 그건 숫제 안 돕는 거보다 못한다. 이렇게 말할 때 남 돕지 말라는 얘기에요. 아니지. 돕되 돕는다는 상까지도 버려라. 이게 적절한 방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일부에서는 이 옥야경을 중심으로 해서 여성교육을 시키는 거요. 그러니까 여자는 이래야 된다.” 이렇게 되면 요즘 현대 사회에서 볼 때는 여자는 집에서 그냥 종 같은 아내만 되고, 시부모한테만 잘하면 되는가.” 이런 개념은 아니에요.

 

여기에는 몸의 아름다움에 집착해서 교만을 떨었기 때문에 몸의 허망함을, 여자의 아름다움을 여자의 허망함을. 자신에게 집착하고 주위를 가족을 외면했기 때문에 가족에게 봉사하는 거를. 이렇게 가르쳤지, 이런 하나의 단어와 용어에 매인다면 불법을 잘못 이해하는 거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을 우리가 공부할 때는 시대상황, 자연조건, 그리고 질문자의 처한 위치, 이런 것이 고려되어서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그 문자를 그대로 절대화해서 받아들이면, 마치 인천 사람에게 동쪽으로 가라 하는 동을 춘천사람에게 적용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경을 그냥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당시의 인도사회, 이런 걸 다 공부해야 사실은 법을 법다이, 문자의 이면에 있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차릴 수가 있다.

 

어쨌든 이 가르침에서 얻는 교훈은

우리가 지식이 뛰어나거나, 얼굴이 예쁘거나, 지위가 높거나

이런 거에 집착을 해서 허세를 부리고 타인을 괴롭힐 경우가 있다.

그러니 그것이 허망한 줄을 알아야 된다.

그것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진실한 수행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을 교훈삼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