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12회 생활속의 위빠시나 (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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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1. 13.

  방송 보기: 불교TV

예를 들면 여러분이 걸어가면 걸어가는 그 동작. 그거를 그대로 알아차리는 거죠. 그리고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는 거를 알고, 누웠을 땐 누운 거를 알고. 또 보통 우리가 잠이 들때도 아무 생각 없이 자지만, 부처님께서는 잠을 잘 때는 부처님열반상 보셨죠? 옆으로 누워 자는 거, 양발을 포개서 옆으로 누워 자는, 사자의 잠이라고 그러죠? 그렇게 자고, 잠이 들기 전에 내가 깨어날 시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자라 그랬어요. 내가 몇 시에 일어나겠다. 이렇게 해서 그렇게 잠이 들면, 마음이 딱 놔 진 상태로 잠을 자는게 아니라, 항상 깨어있는 상태로 잠을 잘 수가 있고요.

 

그리고 또 우리가 걸어서 나아갈 때는 나아가는걸 알고, 내가 고개를 돌리면 돌리는 것도 알고, 몸을 구부리면 구부리는 걸 알고, 펴면 펴는 것도 알고, 제가 이렇게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세라든가, 동작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계속 주의, 관심을 기울이는 거예요. 내가 뭘 한다는 거. 내가 무의식적으로 뭘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가 하고 있는 그 행위를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림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또 일할 때는 자기가 일하는 거에 알아차림을 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침을 놓는다 그러면, 침놓는 그 행위 하나에 계속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잘못하면 실수를 하잖아요. 그런 것도 일종에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알아차림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또 수술하는 사람들이, 만약 수술할 때 거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알아차림이 없다면, 수술을 잘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도 상당한 알아차림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데, 이거를 보통 우리나라 선어록이나 이런 데서는 그냥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잠잘 땐 잠만 자고, 일할 땐 일만 해라 이거죠. 내가 그 일하는 거기, 그 상태만 알아차리면 되지, 거기에 대해서 이 일을 하면서, 이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되나?’ ‘힘들어 죽겠다.’ 또는 왜 이러냐?’ ‘언제 이게 끝나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면 그 자체가 우리를 괴롭히고, 그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못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하고 있는 거기에 모든 것이 되게 하는 거죠.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그 자체를 알아차리고. 걸어가는 그거에 대해서 모든 것이 내 마음이 가게하고. 그게 아까 여기서 말한 과거미래로 가지 않고, 현재를 알아차리라는 얘기하고 같습니다. 그리고 일을 할 때는 일하는 거기에 몰두를 하고요, 그러다가 예를 들어서 내가 하다가 그런 분노가 일어나거나 이러면 분노를 알아차리고. 성이 날 때는 지난시간에 이야기한 화를 놓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잖아요. 그죠? 이건 실체가 없다. 지나가 버릴 거다. 내버려 두면 사라집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그런 지혜를 가지고 내가 이렇게 현재를 알아차림 하려고 할 때, 다른 번뇌가 일어나거나 생각이 움직일 땐, 그거를 알아차리고 놓으면서, 계속 바른 자세로 가다보면 나중에는 그냥 일할 땐 일만하고,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다는 거죠. 그 이전에는 그런게 일어나면, 그런 번뇌, 다섯 장애 요소가 일어나면 자꾸 놓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냥 의미 없이 행동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항상 자각을 하면서, 내가 뭘 하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 자각이 필요하다는 거죠. 몸에 대해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무슨 행위를 하든 간에 그 행위에 대한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이거는 마음이 대상을 알잖아요. 아는 거에 대한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계속 아는 거죠. 그런데 내가 예를 들어서, 시계라는 것을 알았어요. 있는 그대로. 또는 손이 움직이는걸 알았어요. 그런데 이 아는 것과 더불어서 뭐가 일어납니까? 마음이 또 움직일 수가 있잖아요. ‘, 난 왜 이렇게 몸에서 왜 이런게 일어나는가? 싫다. 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움직일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과 더불어서 우리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이 또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이 또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래서 몸이 움직이는 건 조금 쉬워요. 왜냐하면 몸이라는 것은 마음보다는 좀 거칩니다. 쉽게 몸의 움직임. 이렇게 손이 움직이는 거라든가, 걸어가는 거, 이런 거는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이 마음은 아주 섬세하고 미세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알아지는 건데, 이 마음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면 마음이 변하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가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마음을 변화 시킬 거예요. 그죠?

 

내가 지금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파악도 안 되는 상태에서, 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절에 수천 년을 다녀봐야 국자가 맨날 국속을 드나드는 것처럼, 국자가 맨날 국속에 드나들면서도 국맛은 모르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여러분들이 법의 맛을 보기는 어려워요. 불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 마음의 정화가 돼야 됩니다. 수행을 해 나가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과거보다는 내가 그래도 욕심이 적어졌다. 또는 성냄이 적어졌다. 분노가 적어졌다. 이건 자기가 자꾸 봄으로서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을 보게 되면 아~ 내가 또 분노가 일으키는구나. 이건 참 위험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놓을 수가 있잖아요. 그죠?

 

그런데 스스로가 분노가 일어나는 걸 모르면 일은 다 저질러졌어요. 벌써. 그러고 나서 그걸 뒷감당 하려고 그러면 그거는 벌써 몇 배의 노력이 더 들어갑니다. 일어나기 전에 하면은 간단하게 할 수도 있는 거를. 일단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예를 들어서 화가 나서 누굴 패버리거나, 뭐 상해를 입히거나, 이렇게 하고 나서는 뒷감당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어요. 그죠? 그래서 자기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해야 되는데. 특히 우리 마음이 이렇게 뭔가 알아차림, 현재 일어나는걸 알아차림을 하다가 아까 말했듯이 뭔가 욕심이나 탐욕이나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거나 또 성냄이 일어나거나 또는 뭐죠? 의심. 뭔가 이거 법에 대한 의심이라든가.

 

또는 게을러지는 것, 해태 혼침에 빠지거나, 또 마음이 들뜨거나, 뭐 또 내가 과거에 왜 이랬지? 후회가 자꾸 일어나거나, 이런 마음이 일어나면 이것은 장애다, 라는 걸 여러분 스스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이런 마음들은 우리의 행복을 장애하는 요소라는 거죠. 행복을 방해하고 장애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고, 이런 것들이 여러분 마음에 침투하지 않도록 단속을 잘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 일어나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감각적 욕망을 버리는 방법, 성냄을 내려놓는 그런 지혜를 총동원해서 이거를 놔야 되요.

 

이거를 억지로 쥐려고 해선 안 되고, 이 번뇌가 우리 마음에 개입되지 않도록 자꾸 놔야 되겠죠. 그래서 장애요소가 우리마음에 개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수행에 있어서는 되게 중요한데, 그게 출발점은 나한테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수천 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습니다. 나이만 먹는다고 알아지는게 아니에요. 이게. 여러분 자기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먹고, 또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도 알아지는게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죠? 그런 건 자기에 대한 자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일어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가지고 그 번뇌가 일어나는 순간에 놓게 되면 놓아진 상태를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번뇌가 일어나면 그 번뇌가 일어나는 걸 알고, 그걸 놓고 나면 또 놓았을 때의 그 상태도 알 수 있잖아요. 그죠? 그렇게 하다보면 번뇌가 일어났을 때, 이런 장애가 일어났을 때의 괴로움, 또는 위험성, 이런 걸 알고 우리가 놓아졌을 때 이 놓다보면 놓는 거에 대한 즐거움이 일어나거든요. 그러면 그런 것들이 우리 삶에서 이런 것들을 쥐고 있는 것은 큰 고통이구나. 이런 것을 계속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여러분 몸으로 체험을 하게 되겠죠. 그러면서 이걸 놓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러면서 지혜가 작용하는 거라든가, 알아차림이 있는 거, 또는 자비심. 우리가 마음에서 남에게 자비심이나 자애심 같은 자애나 연민심이 일어나는 것을 또 그런 것은 계발을 해야 되겠죠. 그죠? 생활 속에서 항상 자기 마음을 잘 알아차리면서 그 마음이 만약에 그런 오염원이나 장애 요소로 가게 되면 그것을 즉시 내려놓는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처음에 여러분들이 알아차림을 할 때는 일어나는 현상에 너무 개입을 하면은 수행이 진행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할 때는 그냥 수동적인 관점에서 뭐가 오든지간에 나는 알아차리기만 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것을 조용히 관찰하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제가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가 번뇌가 일어나는 걸 버리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버리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성냄에 해당해요. 싫어하거든요. 싫어하는 이거는 내면의 또 다른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억지로 버리려고 한다기 보다, 이것이 내버려 두면 사라진다는 거에 대한 이해.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를 이해를 통해서 내려놔야지, 그거를 억지로 내려놓으려고 하면, 이게 문제가 오히려 커질 수가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들이 나중에 마음이 되게 화가 났는데, 이건 화를 내면 안 좋을 거 같아 억지로 참아요. 이렇게 하면 그 분노가 가라앉은 상태는 아니잖아요. 그냥 일시적으로 참은 상태지. 이건 오히려 병을 일으킬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분노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 분노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나 이런 것을 해서 나에게 이익 됨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를 하는 사람은 억지로 참는 사람이 아니라 식어버린 상태가 되잖아요. 그죠?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하는게 좋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할 때는 마치 이런 거와 같은 거에요. 여러분이 방안에 있는데 누가 와서 여기 왔다 가든간게 내 관여치 않겠다. 단지 내가 뭐가 일어나는지 관찰만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마치 앞에 유리를 하나 쳐놓고 사람이 누구든지 왔다가라 이거죠. 좋은 사람이 오든, 나쁜 사람이 오든, 누구든지 왔다가는데, 내가 여기서 누가 오는지는 관찰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초기에 알아차림 수행을 할 때는 내가 일어나는 현상에 자꾸 개입하는 거보다는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게 좋습니다. 그냥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냥 알아차리는 거죠. 좋은 생각이 오면 좋은 생각이 오는 데로, 나쁜 생각이 오면 나쁜 생각이 오는 데로 관찰을 하다보면, 그렇게 하다보면 뭐가 서서히 생기느냐 하면요, 여러분들이 이걸 자꾸 관찰하다보면 옛날에는 우리의 어떤 편견에 의해서 내 나름대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보는게 대부분이었잖아요. 그죠? 그런데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그 상황을 그냥 그 대상 그대로를 자꾸 보는 연습을 하다보면, 이제는 왜곡된 정보가 아니라 굉장히 바른 정보를 많이 얻게 되겠죠. 그죠?

 

~ 이것은 이런 것이고, 마음의 특징은 이런 것이고, 번뇌는 어떤 것이고, 이런 법에 대한 이해가 서서히 되기 시작을 해요. 이거는 지식적인 측면하고는 또 다른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관찰을 한 것은. 그러면 그런 마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이해가 서서히 되기 시작을 하겠죠. 내 마음이 이럴 때는 어떻게 움직이고, 이럴 때 어떻게 반응을 하고, 또 서로서로 마음의 연관관계는 어떻게 되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서서히 지혜가 생깁니다. 우리 마음에서. 그런 알아차림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가 많아지면 그거에 대한 서로의 연관관계, 관계성을 이해하게 되면 그게 여러분들이 아~ 이런 문제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탐욕이라는 거의 특징은 이런 거구나. 탐욕이 일어날 때 내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더라.

 

또 성냄이 일어날 때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더라. 이런 거에 대한 이해가 되면서 우리가 몸과 마음 자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됩니다. 서서히. ~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구나. 내가 과거에 몰랐는데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구나.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하구요, 그러면서 그렇게 하다보면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계속 알아차림을 하는데도 번뇌가 계속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그죠? 화가 났어요. 화가 심하게 났는데 화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아차리고도 또 화가 일어나고, 알아차리고도 또 화가 일어나고, 계속 반복되고 이럴 수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이 화가 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한번 살펴보는 거죠.

 

어떤 분이 화를 되게 많이 내는데요, 그 화를 내는 사람이 계시는데 자기가 왜 이런 화를 내는지를 알아보니까, 자기가 과거에 10년 전에 있었던 어떤 억울한 일을 한번 당한 거예요. 그래서 그 일이 원인이 되가지고, 그 다음에는 어떤 그런 비슷한 상황만 되면, 마음에서 화가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원인을 조사하게 되면 아~ 이런 것 때문에 내가 화가 일어난다는 걸 이해를 하면, 과거에 억울한 일을 행했던, 나를 아주 진짜 부당하게 나를 괴롭혔던 그런 거에 대해서 그것이 원인이 돼서 지금 현재 나한테 화를 일으키는구나. 이런 것을 알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이런 경우는 지금 현재 이거를 버리려고 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거든요. 내가 이 원인이 뭔가를 알고 이 원인에서 원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이 원인을 내려놔야 만이 번뇌가 제대로 버려진단 말이에요. 이렇게 가끔씩 내 현상에서 알아차리다 보면,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를 조사를 하면은 원래 있었던 이 일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찾게 됩니다. 그러면 그 원인을 내려 놓으므로써 쉽게 버릴 수가 있어요. 과거에 내가 미워했던 그 사람을 실제로 나쁜 사람이라고 실체화 한 부분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과거에 지나가 버린 것이고, 실제로 과거에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은 어리석은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하면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겠죠. 그죠?

 

그렇게 해서 그런 원인을 조사하다 보면 그거를 버릴 수가 있습니다. 결과를 버리려고 하는 것보다 원인을 버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죠? 그래서 모든 것이 이런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를 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화를 내는 것도 어떤 적당한 조건에서 화가 일어나는 거지, 화라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이해를 하면 여러분들에게 관찰되는 모든 현상들이 다 무상하고 변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을 관찰하다보면 마음이 한결같지가 않죠. 아침에 이 생각했다가 오후에 변하고, 금방금방 변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몸뚱이도 사실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포분열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죠? 그러면 한 시간, 만약에 1초 전에 하고 1초 후가 분명히 변하는 부분인데, 그 변하는 부분을 떼고 나라고 해야 될 거예요? 어디를 나라고 해야 될 거예요? 그죠? 계속 이렇게 변하다보면 한 7년만 지나도 여러분 몸이 지금 상태하고는 완전 다른 몸이 된단 말이에요. 그럼 어떤 걸 나라고 해야 될 거냔 말이죠. 이렇게 나한테 일어나는 그런 현상들을 처음에는 이렇게 관찰하다보면 이런 현상들이 계속 어떤 조건에 의해서 변하고 있다는 거를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 정말 이게 계속 변하는 것 이런 것에 어떻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런 전도된 생각을 버리게 되겠죠. 그죠? 정말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후보로 될 수 있는 게 우리 몸과 마음의 형태인데. 이 몸과 마음을 계속 관찰해 보니까,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거라는 거예요. 어디 하나 고정 돼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이런 것들을 여기서 언제 거를 나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거죠. 계속 변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되면, 나라고 생각하고 집착하고 있던 거를 놓을 수가 있게 되겠죠.

 

정말 이것을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 더 이상 붙들지 않고 놓을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수행의 한 과정입니다. 이게 제가 짧은 시간에 설명을 드리려고 하다보니까, 약간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수행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 정도를 이해하시고요. 다음에 제가 또 지혜에 의해서 어떻게 내려놓는지, 그거에 대해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을 거니까, 그때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리기로 하고요.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아까 말씀을 드렸지만, 불교수행에 아주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결과를 바라지 말고요, 조건을 성숙시키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깨달음을 얻으려면 깨달음을 얻고자 탐욕을 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결과에 의한 집착이잖아요. 그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탐진치를 버리면 그 집착을 놓으면, 사실은 깨달음이 일어나는 건데. 우리가 깨달으려고 하는 그 마음 자체는 오히려 수행을 방해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결과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뭔가 내가 어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행위를 계속 지속적으로 하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아까 말씀드렸듯이, 일상생활을 하시면서 여러분 마음에서 이런 번뇌가, 오염원이 개입되지 않도록 계속 내려놓는,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여러분 마음에 침투하지 않도록 잘 단속하고, 그런 것이 일어나면 즉시 내려놓는, 그 노력을 하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결과는 온다는 거죠. 구태여 결과를 바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공부는요, 절에 와서 30분하고 말고, 또 생각날 때 한 몇초 하다 말고, 이래가지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사실 살아가면서 내 삶에서 시간이 나고, 뭔가 이렇게 할 수 있을 때는 지속적으로 공부하는게 중요해요. 일주일 용맹정진하고, 나머지 일 년은 쉬고. 이렇게 하는 수행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금씩이라도 계속 지속적으로 자기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그 마음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면, 여러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한두 번 하다 말고 이러면 절대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절대 해탈할 수가 없어요.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거,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을 하십시오, 다음시간에 호흡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