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영화 [명량] 1부 전쟁의 신,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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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설민석_영화로보는 한국사

2018. 9. 14.

 

 

우리 역사를 사랑하시는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입니다.

 

, 이번엔 <명량>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되었는데요, 이 명량해전은 배경이 임진왜란 아닙니까? 일단 임진왜란 보고, 영화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년에 왜인들이 난을 벌였다. 그래서 임진왜란인데요, , 지도 한번 보실게요.

중국이 있고, 우리나라가 있고, 이렇게 일본이 펼쳐집니다.

여기 있는 일본을 주목하셔야 되는데요, 100년 동안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했어요. 이걸 전국시대라고 부릅니다.

 

(1590년 일본 전국을 통일)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조총으로 통일을 합니다. 통일을 했는데, 문제는 너무 불안정한 통일이었어요. 내부적인 결속이 필요했습니다.

, 또 하나는 뭐냐? 무사들은 어떻게 할 거에요? 무사라는 건 전쟁 통에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인데, 이 평화의 시기는 그들한테 하는 일 없이 백수로 죽으라는 얘기 아닙니까?

 

안되겠다. 이들의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분출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드디어 우리나라를 침공을 한 겁니다. 부산포로 쳐들어 온 거죠. 그들의 생각은 뭐냐?

조선에서 힘 빼겠다?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속도전으로 재빠르게 한양까지 치고 올라가서, 선조 임금을 인질로 잡는 겁니다. 그래서 그를 볼모로 삼아서 군사들을 모아, 그리고 군량미를 모아, 그래서 총알받이로 조선인들을 앞장세우고, 중국으로 쳐들어가려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세상에 우리 선조가 상상도 하지 못한 업적(?)을 남기시죠.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을 갑니다. 한양에 딱 와봤더니 임금이 없는 거예요. 일본인들은 여기서 멘탈의 붕괴가 옵니다. 왜 그럴까요?

 

일본의 무사들은요, 아무리 작은 성의 성주라고 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일이 없습니다. 배 가르고 죽거나, 아니면 딱 항복을 해요! 그런데 세상에 성주도 아니고 나라의 임금이라는 사람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을 가니까 일본인들은

 

? 이거 어떡하지? 우리 어떻게 해야 돼?”

그러면서 서울에서 주춤주춤, 평양에서 주춤주춤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거죠.

이 시간이 이순신한테는 골든타임이었습니다. 재전열을 하고 일본을 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겁니다.

 

그리고 이제 일본의 2차 목표는 뭐였냐하면, 육군은 1차로 치고 올라가죠. 그리고 2차 부대는 여기 있는 남해안을 돌아서 이렇게 서해안으로 상륙을 합니다.

 

일본의 1차 부대에게 무기와 식량을 공급하겠다. 이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는데, 이를 우리 이순신 장군께서 족족 끊어버립니다. 해전에서 아예 씨를 말려버립니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은 배고프잖아요. 무기가 없잖아요.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2년 만에 군대를 철수하게 되니, 이것이 임진왜란이 됩니다.

 

, 그리고 3년 동안 휴전에 들어가죠. 그리고 휴전이 결렬되고 나서 1597년에 정유년에 재차 왜인들이 난을 벌이거든요. 요게 2년 동안 벌어진 정유재란이 되구요.

 

우리의 영화 <명량>

정유재란 초반에 일어난

이순신의 전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님의 전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김한민 감독은 포커스를 <명량>에 맞춘 것일까요?

그것은 그 전에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전투 스타일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 여길 보시죠! 전쟁 초반에 이순신의 연전연승 기록이 되겠습니다.

옥포해전, 합포, 적진포,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한산도, 안골포 그리고 부산포까지...

연전연승을 하는데요!

 

이순신 장군의 전투스타일은 무엇이냐?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

방심하고 있는 소수의 적을 기습하는 형태가

이순신 장군의 전투 스타일이었습니다.

이길 수 있는 전투를 했다라는 얘기죠.

 

손자병법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승리하는 병사는 선승이후 구전이다!’ 일단 이겨놓고 싸운다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순신은 명장이다. 전쟁의 신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 그런데 명량은 달랐습니다. 12척밖에 되지 않는 배로 330여 척의 적선을 맞이해서 싸운 전투였거든요.

이건 불가능한 전투 아닙니까? 그런데 실제 이 전투에서 이겼다는 거 아니네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제가 볼 때는 세계 7대 불가사의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럼 이순신 장군이 왜 이렇게 불리한 전투를 나가 싸울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리고 그 수많은 조선의 판옥선, 거북선 다 어디 간 겁니까?

원균 장군께서 다 해 드셨습니다. 그 얘기를 잠깐 해보도록 할게요.

 

많은 분들이 이순신 장군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백의종군 한 얘기는 많이 알겁니다. 왜 그렇게 되었어요? 선조가 시기심이 많아서? 붕당정치의 폐해 때문에? 글쎄 조금 더 디테일하게 살펴보자고요.

 

왜 선조가 이순신을 잡아 가둘 수밖에 없었는가를 선조 입장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뭐냐면 엄청난 이순신의 세력이 선조를 압박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처음에 전라좌수사로 부임을 했는데요, 전공을 세우자 충청, 전라, 경상도를 아우르는 3도 수군통제사가 됩니다. 그리고 주변 내륙에 있는 70여개 고을의 행정권, 군사권을 모두 다 잡게 된 것이죠.

백성들은 이순신 근처에 가면 안전하다고 해서, 모든 백성들이 구름처럼 물려들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조는 어떻게 되요? 굉장히 예민하거든요. 의심 많고, 시기심도 많은 사람이에요. 본인은 의주로 도망가려 했던 비겁의 아이콘으로 백성들한테 낙인 찍혀 있는데, 이순신은 무슨 왕처럼, 해상왕국을 만들고 거기서 왕처럼 군림하는 것처럼 보인 거죠.

 

밖에는 왜가 적이라면 

안에는 이순신이라는 또 하나의 적이 서서히 크고 있다라고

선조는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죠.

 

또 하나! 선조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오만하고 방자한 장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조의 아들이 누구냐면, 영화로 나왔던 광해에요. 광해가 전장을 뛰어다니면서 의병을 진두지휘하는데, 이순신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무과를 실시할 테니까, 장군은 병사를 좀 뽑아 가지고 오세요.”

이순신이 뭐라고 하느냐. “지금 전시상황입니다. 제가 갈 수 없으니까 한산도에서 제가 무과를 치루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무과, 과거 시험은 임금님이 주관하는 시험이에요. 이것을 선조나 광해군의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위협으로 다가왔던 겁니다.

그래서 선조가 벼르고 있었습니다. 꼬투리 잡으려고 했죠! 그때 제대로 사건이 터집니다!

 

! 휴전이 결렬되고 정유재란이 시작된 것이에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수군이 부산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겁니다. 선조는 이순신 한테

함선을 이끌고 나가 맞아 싸우라고 했어요.

 

여기에 이순신이 거부를 합니다. 이유는 뭡니까?

적의 첩보를 믿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출정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정말 가토 기요마사가 치고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상륙을 해버립니다. 전세가 불리하게 된 것이죠.

 

선조는 불같이 노합니다. 이순신을 죽이라고 해요. 전시에 항명하는 군인은 사형이거든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끌려 올라서 고문을 당하시고, 감옥에 갇히시고, 백의종군을 당하신 겁니다.

 

, 그럼 새로이 3도 수군통제사로 온 게 누구냐? 원균이었습니다. 원균이 처음에 큰 소리 쳤어요.

내가 가면 부산포에 가서 왜놈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그리고 딱 왔는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왔더니 막상 와 봤더니 이순신 말이 맞는 거예요. 부산포는 너무나 위험한 지역이었어요. , 임금은 나가 싸우라고 하지, 나가면 죽을 것 같지. 그러니까 안 나가고 머뭇머뭇 한 거예요. 그러니까 임금의 명령을 받은 도원수 권율 장군이 와서

왜 안 나가는 거야? 이거 엎드려부하장군들 보는 앞에서 곤장을 때려버리는 것 아닙니까?

 

오늘날로 따지면요, 합참의장이 해군참모총장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몽둥이찜질한 것하고 똑같아요.

지금 전시 상황에 뭐에요? 그럼 우리나라 수군의 사기는 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원균 장군은 어쩔 수 없이 출정했다가 부산 칠천량 바다에서 대패한 것 아닙니까.

 

선조는 생각했습니다.

원균이 패했어? 우리 조선 수군이 강한 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지도력이 뛰어났던 것이구나! 안되겠다. 이순신을 다시 내보내야겠다.’

장군!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나라를 위해 싸워주시오라고 얘기합니다.

 

, 나라는 이순신을 버렸지만, 이순신은 나라를 버리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러면서 3군 수군통제사로 왔어요. 왔더니, 세상에, 12척 남은 게 다입니다.

 

선조가 조심스럽게 편지를 보내옵니다.

장군, 좀 승산이 없을 것 같으니, 육군하고 합쳐서 싸우면 어떻겠소?

권율 장군하고 힘을 합치시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이 불후의 명언을 남기시죠.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 승산이 없는 전투입니다. 이순신 장군님도 사람인데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영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리고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두려움에 맞서는 자, 역사를 바꿀 것이다.” 라고 말이죠.

 

저는 시나리오를 읽었는네요, 굉장히 감명 깊었습니다.

마치 제가 417년 전으로 돌아가서 진도 앞바다 산 위에서 백성들과 함께 실제 전투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습니다.

 

, 그날, 그 현장에서 과연 어떻게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2척의 조선 vs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