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영화 [명량] 2부 기적의 승리,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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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설민석_영화로보는 한국사

2018. 9. 19.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입니다. 1부는 잘 보셨습니까?

오늘은 1부에서 못 다한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이순신, 그리고 숙적 구루시마. 그리고 명량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원래 문과를 준비하던 선비였어요.

문인의 집안에서 태어나서부터 스무살이 되던 해까지 과거를 준비하는 그냥 일반 선비였어요.

 

그러다 21살에 결혼을 하고 무과 시험으로 전항을 하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장인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장인이 방진이라는 사람인데, 무인 출신이거든요.

그렇게 추정을 해 봅니다.

 

무과에 급제하고 나서 워낙 원칙 주위자고 올곧은 성격 때문에 상관의 미움을 많이 샀다는 거 아니에요.

이순신 장군이 수군이에요? 육군출신입니다!!!

이분이 여기 있는 함경도 지역으로 가서 여진족을 때려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여진족이 어떤 민족입니까? 북방의 기마민족입니다. 김한민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최종병기 활>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민족인데, 당시 여진족의 장수를 그 누구도 사로잡거나 죽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이순신장군이 적장 우울기내를 사로잡았다는 거 아니에요.

대단한 거죠!

 

, 또 영화를 보면 굉장히 임팩트있게 나오는 인물이 누굽니까?

더티섹시! 구루시마 미치후사입니다. 구루시마의 고향은 여기 일본 시코쿠 지역이 되겠습니다.

여기는 에히메현인데요, 에히메현하고 여기 있는 본토 사이에 있는 해협을 쿠루시마 해협이라고 부르는데요, ~청나게 물살이 셉니다.

 

그러니까 얘들은 뭐에요? 대대로 해적, 노략질 하던 해적집안 출신이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자신의 형제를 이순신한테 잃습니다. 임진왜란 도중에.

그래서 거기에 대한 복수로 칼을 갈곤 하는데,

 

혹자는 구루시마가 이순신한테 패한 이유가

명량의 빠른 물살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얘기를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명량은 구루시마한테는

어렸을 때 뛰놀던 동네 앞바다 수준밖에는 안 되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글공부하던 이순신과 해적질하던 구리시마가 붙었습니다.

10여척을 가지고 나갔고, 300여척을 가지고 나왔어요. 둘이 붙었는데 어떻게 이순신장군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뭐냐면 작지만 강한 수군, 조선 수군의 그 원인이 있다라는 겁니다.

일단 하드웨어가 뛰어났습니다.

조선의 배는 훨씬 더 크고 단단했으며, 360도로 포를 쏠 수 있는 한마디로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성이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요.

 

그러면 왜 조선수군이 강했는가?

그 기원은 삼국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가 기록에 보면 왜한테 조선술을 가르쳐줬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우리가 원래 배를 잘 만들었어요.

 

그리고 조선 수군을 키운 것은 뭐냐면 어이없게도 일본 왜구들이었습니다.

고려 말부터 자꾸 일본의 왜구, 일본 해적들이 해안가를 노략질 하니까 그것을 때려잡는 과정에서 조선수군이 급성장 할 수 있었다 라는 것이죠.

 

일본배의 특징은 뭐냐면 작고 빠릅니다. 어차피 왜구의 목적은 상대방 배에 실려 있는 물건을 빼앗으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배를 상하게 하면 안 되니까, 함포공격을 거의 하지 않아요.

빠르게 달려들어서 갈고리를 걸어 당깁니다.

그리고 사다리 놓고 올라타요. 그리고 일본인들의 자랑(?)인 육박전을 통해서 상대를 제압하고 물건을 가져가는 이게 그들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라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고려 말부터 어떻게 배가 만들어져야 되요?

다가오지 못하게 화포공격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배에 실린 화포가 발달할 수밖에 없고, 올라타지 못하게 하려면 높이 쌓아야겠죠?

 

그래서 우리나라 주력함선 판옥선을 보시면 굉장히 2층 구조의 높은 배임을 알 수가 있구요. 아예 거북선은 등껍질을 붙여요. 거기다가 쇠꼬챙이를 꽂아놔 가지고 아예 올라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앞에 있는 용머리에선 유황연기와 포가 쏟아져 나와 가지고 일본인들을 제압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강한 하드웨어가 승리의 요인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아무리 배가 강하다 한들 소프트웨어, 그것을 진두지휘하는 장군과 장수들이 따라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겠죠?

그 증거가 어디서 나와요? 원균장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우리나라 배 끌고 나갔다가 다 잃지 않습니까?

 

두 번째 이유, 뛰어난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지난 5년간 이순신과 사선을 넘었던 잘 훈련된 정예 병사들이었던 것이죠. 이것이 주요했고,

또 하나는 뭐냐면 기가 막힌 이순신의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넓은 바다에서는요, 10여척으로 300여척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순신장군은 계산에 넣었던 거죠. 좁은 해협으로 그들을 유인하자라는 것이죠.

 

여기 있는 지도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남해안 지도인데요, 저 곳이 바로 진도가 되겠습니다. 육지와 진도, 그 사이에 있는 그 바다를 명량, 울 명자를 써서 명량이라고 부르는데, 워낙 물살이 빠르고, 거기 있는 암초에 물살이 부딪쳐서 우는소리, 돌이 우는 소리를 낸다고 그래서 울돌목이라고 불러요.

 

근처 사는 사람들은 돌이 우는 우웅~ 하는 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린다고 하는 그 곳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유인을 한 겁니다.

 

그럼 이 지역이 왜 물살이 빠를 수밖에 없는가 볼게요.

우리나라 조수 간만의 차가 크잖아요. 밀물이 밀고 들어옵니다. 폭이 되게 좁아요. 좁은 곳은 300m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수심이 낮은 곳은 거의 2m 정도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밀려들어 오는 밀물이 병목현상이 벌어지죠. 수심이 높아지죠. 물살이 세 질 수밖에 없는 거죠. ‘~’하고 빠져나가는 겁니다.

거기다가 암초가 많으니까 바닷물이 부딪히면서 불규칙하게 회오리가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쪽으로 유인을 한 겁니다.

 

그래서 300여척이 밀고 들어오는데요, 실제 명량, 울돌목 좁은 쪽을 통과한 배는 100여척이 되지 않나 추정을 하는데요, 거기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 조선수군이 불을 뿜으면서 그들과 싸우기로 계산에 넣었던 거예요. 이순신장군이~

그런데 실제 명량해전이 벌어졌는데, 이순신장군의 예측이 어긋납니다.

 

뭐냐? “돌격~” 그러고 앞으로 나갔어요. 장군은.

그전에 정신훈련 제대로 시켰잖아요.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오...’ 그러면서 나갔는데, 아무도 겁을 집어먹고 나오는 배들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약 100여척에 맞서서 이순신장군이 혼자 싸웁니다.

 

그들에게 포위돼서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는 밝혀 낸 사람이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이건 미스테리이고 기적입니다. 초인적인 이순신의 힘이 혼자서 100여척을 맞아 싸울 수 있었던 거죠.

이것은 우리 조선 수군한테는 감동이었구요, 해협 건너편에서 바라보던 일본 수군에게는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뒤늦게 안위 장군의 배와 김응함 장군의 배가 따라 들어옵니다. 기적적으로 싸운 겁니다.

그래서 맨 앞에 있는 놈들 위주로 해서 31척을 거기서 깨버립니다. 완파죠!

그리고 반파 된 배는 거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때 일본 수군은 완전히 사기가 떨어지게 되고, 마침 그대 물살이 반대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썰물이 되면서 반대쪽으로 물살이 흐르게 된 거죠.

그러니까 완파되고 반파된 배들이 좁은 명량에서 얽혀있죠.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던 일본 수군은 정말 트라우마와 공보를 넘어서 거의 존경심을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전의를 상실해 버리고 물살 따라서 후퇴를 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기적적인 <명량>입니다.

 

,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일본군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이순신 장군도 빠르게 후퇴 하십니다. 이분 또 후퇴 하나는 바람처럼 하십니다.

 

하루에 80km를 후퇴를 하십니다. 그래서 당사도, 어의도, 칠산, 법성포, 그리고 홍농, 부안의 위도까지. 오늘날로 따지면 고군산열도라 해서 새만금 간척지 지역이거든요. 여기까지 후퇴를 화끈하게 해주십니다.

 

전략적 후퇴 이유

1. 전열의 재정비

2. 조선수군의 건재함을 알리는

백성들을 의병에 가담케 하기 위한 의도로 추정됨

 

그럼 후퇴를 한 이유가 뭘까요? 일단은 10여척 밖에 안 되니까 전열을 가다듬어야겠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다도해지역이다 보니까 많은 섬들이 있잖아요. 우리 백성들이 모여 있었거든요.

 

조선수군 건재하다. 우리 아직 살아있어. 개선장군이야. 우리가. 승리한다. 하지 않았느냐.” 이런 걸 보여줌으로서 백성들의 사기를 올리고 그들을 해상의병으로 끌어들이는 이런 계산이 들어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일본은 후퇴한 다음에 가서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는 거예요. 그때 일본이 밀고 들어왔으면 우리가 졌죠. 12척에 실을 수 있는 무기하고 식수가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뒤늦게 그 얘들이 화가 나가지고 이순신 잡는다고 전라도 쪽으로 밀고 들어왔는데 없는 거예요. 이순신 장군이...

 

아무리 찾아도 없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이었던 거죠.

여러분들 명량이요,

1597년 음력 915일이에요. 음력 916이면 양력이면 10~11월 넘어가는 그 때거든요. 이순신장군은 후퇴를 하면서 계산을 했어요.

 

이제 곧 겨울이 찾아온다.

겨울이 찾아오면 추워지고 바람이 세서, 일본 수군의 활동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여기 있는 와본 적이 없는 전라도를 버리고 자신들의 왜성, 본진이 있는 부산 쪽으로 경상도 쪽으로 후퇴를 할 것이라고 계산을 하고 그 계산이 정확히 맞아 떨어집니다.

 

그래서 10월 넘어가서 11월 돼서 일본 수군 다 도망갑니다. 차가운 바람이, 동장군이 이순신장군이 아니라 동장군이 그들을 내몰았던 것이죠.

 

기적의 승리 <명량>을 살펴봤습니다.

나라는 이순신을 버렸지만, 그는 나라를 구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후손 입장에서

이순신장군, 그분을 다시 한 번 기념해 보는 것 자체가 애국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장군은 <명량해전> 이외에도 전설적인 <한산대첩>이랄지, 죽음을 맞이하신 <노량해전> 같은 수많은 전투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 공부해 보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상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 선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