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영화 [사도] 버림받은 왕자, 사도세자

댓글 0

시사 - 역사/설민석_영화로보는 한국사

2018. 10. 17.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입니다.

 

, 이번에는 사도라는 영화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250년 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왕이 세자를 죽인 사건입니다.

 

, 조선왕조 500년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통틀어보더라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대의 비극적 스캔들,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사도는 본명이 이선이고,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첫째 아들은 효장세자라고 했는데요, 10살 되는 해에 먼저 세상을 떠나고요,

영조가 41살에 늦둥이로 낳은 자식이 바로 이선사도가 되겠습니다.

 

늦둥이라 예쁜 것도 있지만,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가 좀 자라나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소질이 발달하게 되요.

덩치가 커지고, 힘이 엄청나게 세져서 무술에 심취하게 됩니다.

 

또 영조는 문치주의를 갈망하는 군주였기 때문에 여기서 부모와 반목이 많이 생기게 되고요, 결정적으로 아버지하고 틀어지게 된 것은 왕의 업무를 대신 맡아보는, 세자가 대신 맡아보는 대리청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리청정했던 14년 동안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사도가 실제로 영조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버지, 아버지,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화를 버럭 냈다는 것 아닙니까?

, 네가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무슨 세자야? 넌 자격 없어. 필요 없어.”

,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되는구나

아버지, 아버지, 오늘 이런 일을 했습니다.”

뭐야, 네가 왕이야!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보기 싫어 저리 가

 

아니 어쭈어봐도 뭐라고 그러고, 알아서 해도 뭐라 그러고, 이 사도 세자는 아버지가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꾸중만 하는 아버지였죠.

그래서 청심환을 먹지 않고선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고, 나중에는 정신병이 오게 되는데, 내가 의관을 정제하면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되니까, 내가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트라우마가 생겨요.

 

그래서 의대증이라는 병에 걸립니다.

옷을 입힐 때, 이 옷이 살갗에 닿기라도 하면 그냥 칼을 꺼내서 옷 입히는 궁녀를 해치고, 쳐다본다고 내관을 해치고,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사태가 이르게 되죠.

결국 임오화변이라고 하죠. 작은 뒤주에 갇혀서 아버지의 손에 죽게 됩니다.

 

 

, 여기서 잠깐만요, 아무리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정신병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을 죽일 수 있느냐? 이해가 안 되실 텐데요, 지금부터 영조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다시 재구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조를 볼게요.

일단 그 집안의 가계도를 보셔야 겠는데요, 영조의 아버지는 숙종이었습니다. 장희빈의 남편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장희빈이 후궁이었고, 또 다른 후궁이 있었으니, 이 여자가 천민입니다. 무술이 최씨에요. 이 천민의 자식이 바로 연잉군입니다. 훗날 영조가 됩니다.

, 어쨌든 여기 있는 배다른 형 이 있잖습니까. 장희빈 아들. 숙종이 승하하시고 이 왕이 됐으니 이 사람이 경종이에요.

 

그런데 경종은 후사도 없고, 몸도 항상 아프고, 항상 피곤해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소론들은 항상 이것을 걱정하는데 비집권 야당이었던 노론들은 ! 경종 끝났구나. 차기 대권주자로 연잉군 옆에 붙어야 겠다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그래서 연잉군하고 둘이 결탁을 합니다.

 

그래서 아뢰기를

후사가 없으시니 세자가 아닌 세제 책봉하시옵소서

그리고 몸이 아프시니까 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대리청정하시옵소서

이렇게 간언을 합니다.

 

그래서 대리청정을 하는데,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에요.

이때 경종하고 소론의 눈 밖에 나서 노론들이 죽임을 당하고 쫓겨나고 난리가 나거든요. 이때 연잉군도 얼마나 무서운 나날이었겠냐고요. 이러다가 경종 건강하시라고 올린 감하고 간장게장을 먹고 배탈이 나서 경종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왕이 된 사람이 바로 영조, 연잉군이 되는 것입니다.

 

, 영조는 왕이 되면서 3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천민의 자식이라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의 배다른 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이죠.

 

/경조대왕을 독살한 당신이 어찌 왕이란 말이오.

아직도 독살 타령이냐./

 

그런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영조 본인만 아는데, 당시 모든 사람들, 경종 측근들은 다 그렇게 믿고 있었어요.

왕 되고 나서도 영조는 미치겠는 것이죠. 그래서 영조 직위 31년 기사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 생감, 간장게장 내가 형님한테 올린 게 아니라고 이놈들아라고 글을 써요.

얼마나 그 30년간 가슴 속에 트라우마로 있었으면, 나중에 그런 글을 썼겠냐고요.

 

그리고 세 번째는 뭐냐하면 노론이 만든 임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되고 보니 노론이 자기를 허수아비 세우려고, 꼭두각시 세우려고 하니까, 사방 군데에 다 적인 셈이죠.

그래서 영조는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믿을 건 나밖에 없구나.’ 라며 항상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이러면서 성격이 예민해지고 까칠해지고, 깐깐해지게 된 겁니다.

 

이 삶이요,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습니다. 채식위주로 소식으로 꼭꼭 씹어 드시게 되고요, 손에서 책을 놓는 법이 없어요. 하루에 15시간 이상 되는 살인적인 정무를 딱딱한 바닥에서 허리 피고 앉아서 끝까지 보십니다.

 

, 이런 영조에게 꿈나무가 태어납니다. 마흔 한 살에 낳은 자식 사도세자 이선이었죠. 이 늦둥이가 너무 예쁘니까 태어나자마자 세자로 책봉을 하게 됩니다.

 

세자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장성한 다음에 자질이 있다 싶을 때 책봉을 하는데, 그냥 젖먹이 아이를 세자 책봉을 한 것이죠. 이게 비극의 시작이에요.

 

어린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품속에서 자라야 하는데, 이 세자가 책봉이 되니까 동궁으로 옮기게 되죠.

세자가 사는 동궁이 왕실의 동쪽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 동쪽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태양이다. 라 해서 동궁전에 머물거든요.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면 누간가 그를 살피는 보모가 있어야 되는데 엉뚱하게도 영조는 자기가 죽인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경종의 궁녀들을, 경종 모시던 사람들을 여기 있는 사도세자의 보모로 앉혀놓은 것이죠.

 

문제는 뭐냐하면 이 보모들이 아버지와 자식을 이간질 시키고, 또 무술을 가르치고 그래서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기록 한중록을 보면,

그것이, 동궁전에 보낸 것이, 세자를 일찍 책봉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고, 이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단절하는 시작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사도 오지 않아요. 보통 하루에 3번씩 찾아와야 되는데 어쩔 때는 6개월도 안 아고, 나중에는 1년 동안 찾아오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대화가 중단되고, 불통은 의심을 낳고 오해를 낳게 됩니다.

 

이런 소문도 들립니다.

미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궁궐 밖으로 놀러나가질 않나, 심지어는 내관을 죽이고, 궁녀를 죽였는데, 죽인 사람이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목을 자르고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자랑처럼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조가 바로 자식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불러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식과 진솔한 대화를 합니다.

, 왜 그러냐?”

울화증이 치밀어 그럽니다. 아버지가 날 사랑하지 않으셔서 짐승이나 사람이나 닥치는 대로 죽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영조는

내 그러지 않으리.”라며 자식을 감싸 안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4년 동안 또 대화 단절, 불통의 시기가 찾아오게 되고, 여기 있는 사도세자의 화증은 점점 더 깊어져서 나중엔 칼을 들고

내 우리 아버지를 어찌 어찌 해치우고 싶다라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내뱉게 됩니다.

 

이 사실을 영조가 누구한테 듣게 되는 줄 아세요?

자기 아내한테 듣습니다.

바로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이씨가 찾아와 울면서 얘기합니다.

 

세자의 어미인 제가 아뢰는 것은 오로지 전하의 목숨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영빈~ 내 편은 자네뿐이야.”

 

결심을 하고 아버지인 숙종의 사당에 가서 내 오늘 역적을 처단하겠습니다라 고하고, 그리고 칼을 차고 가서 사도세자를 부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기 손으로 못 해치니까 자결을 권합니다.

자결하라.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하지만, 네가 죽으면 300년 종사는 보존할 수 있다.”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까지, 그때가 양력으로 74일이었습니다. 얼마나 더웠겠습니까? 하루 종일 실랑이를 했지만, 거기서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이죠.

결국은 작은 뒤주에 가두고 사도는 8일 뒤에 주검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죠.

 

, 여기 있는 그림은 사도세자가 그린 의 모습입니다.

강아지들이 어미 품이 그리워서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고 있는데, 어미 개는 등을 돌리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이죠.

 

아마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도세자의 아픔이 담겨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더욱더 가슴이 아픕니다.

 

세자의 지위를 회복하고, 그 시호를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세자 하라.”

 

사도세자는

그의 아들 정도(22대왕)에 의해 추모되었으며,

훗날 1899년 왕(장조)으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