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영화 [안시성] 해설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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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설민석_영화로보는 한국사

2018. 11. 5.



우리 역사를 사랑하시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설민석입니다.

이번에는 안시성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안시성은 645년 수십만의 당의 군대를 맞서서 고구려를 지켜낸 안시성 주민들의 기적적인 승리를 담은 작품인데요, 그 당시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데,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안시성의 무대가 되는 시대는 7세기입니다. 한반도가 삼국으로 갈라져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는데요, 이 고구려의 상황이 어땠는지 살펴보겠어요.

당시 고구려는 예전의 위용을 과시하던 그 고구려가 아니었습니다.

남쪽으로는 신라에게 한강을 빼앗기고 서쪽으로는 당나라에게 압박을 받아서 몸살을 앓고 있었어요.

 

그리고 안으로는 왕권이 약화되어서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연개소문이라는 막강한 권력자가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내우외환의 시기였습니다.

그 이후에 연개소문은 행정과 군사권을 총괄하는 대막리지라는 관직을 만들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면 당시 당나라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당나라 태종 이세민도 쿠데타를 통해서 형제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안으로는 내부적 단결을 꾀하기 위해서 밖의 주변 국가들을 공격해서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와중에 반드시 중국 입장에서 꺾어야 할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고구려였습니다.

이 고구려는 혼란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동북아 최고의 강자입니다.

여기 있는 당나라로써는 반드시 넘어야 될 산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전쟁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하는 겁니까?

명분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나라는 그 전쟁의 명분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이런 소식이 들려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왕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죽인 고구려의 영류왕은 신중국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거든요.

옳거니, 때는 이때다! 고구려를 용서치 않으리라!” 하며 이세민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가게 됩니다.

 

당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당나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갑니다.

요동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그리고 박암성까지 모두 한방에 격파하며 결국 안시성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자 여기서 우리 영화의 배경이 된 안시성이 어떤 곳이었는지 한 번 보고 가겠습니다.

보시면 앞에는 요하강이 흐릅니다. 그래서 적을 방어하기 편리하구요, 강 유역의 곡창지대를 통해 군량을 수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로는 천산산맥을 등지고 있어서 말 그대로 자연이 만든 천해의 요새였습니다.

그리고 안시성이 더더욱 굳건했던 것은 성주민들을 단결시키고, 굳건히 성을 지켰던 성주, 양만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안시성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양만춘은 고구려 최고 권력자 연개소문하고 갈등을 빚고 있었어요.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그때 양만춘은 협력은커녕 연개소문에게 저항을 했고, 화가 난 연개소문은 안시성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공격을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 주민들과 함께 잘 막아냈어요.

그래서 그 이후 둘의 관계는 서로 상당히 껄끄러운 상태였죠.

한마디로 상황이 이러하니까, 안시성은 외부에서의 도움과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였던 겁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당시 당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수십만 대군과 작은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이 대격돌을 하게 됩니다.

 

이 당군이요,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수나라의 패배를 교훈삼아서 잘 훈련된 최정예 부대를 대동했고, 그리고 성벽을 허물 수 있는 최신 공성무기들을 등장시키게 됩니다.

 

, 이게 당나라 대군하고 안시성의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건 누가 봐도 당에게 유리해야 되는 상황이잖습니까?

그런데, 뚜껑을 열어봤더니 초반부터 당나라 군대는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안시성 주민들이 저항을 하는데요, 이게 이전에 격파했던 성들의 저항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어요.

 

그럼 안시성 주민들이 당군에 맞서 잘 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내부적 단결이었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연개소문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승리의 자신감이 있었고, 그리고 그 전투과정에서 성주민들이 아주 훌륭한 병사로 성장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양만춘 장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당의 공세를 무려 88일간 막아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88일은 당나라 태종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초반에는 걱정을 안했어요.

여기 있는 고구려의 성들을 한방에 무너뜨린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 안시성이 눈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 진퇴양난의 설상가상이 된 겁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당나라 태종은 눈앞에 있는 안시성을 반드시 넘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황당한 작전을 세우게 되는데요,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산을 쌓자는 겁니다.

 

, 그런데 이 운명의 여신은 당나라를 버린 것일까요?

그 공들여 쌓던 토산이 ~” 하며 무너지면서

안시성 성벽 쪽으로 푹하고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번개처럼 안시성 정예부대가 토산의 정상을 순식간에 점령을 해버립니다. 무너진 토산마저 허무하게 빼앗긴 당태종은 마침내 좌절하게 됩니다.

 

이미 요동반도는 겨울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88일에 걸친 긴 시간 동안 군량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아직 함락시키지 못한 고구려의 신성이 있고, 건안성이 있고, 이게 다 부담이거든요.

 

안시성 앞에서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당태종은 요동반도의 추위에 쫒기듯, 찢기듯, 떠나게 됩니다.

당태종이 패배가 얼마나 쓰라렸는지, 결국 전쟁에서 얻은 병으로 본국에 가서 죽게 되는데요, 그때 남긴 유언이

다시는 고구려와 전쟁하지 말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역사 속에서는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몇 차례의 결정적인 전투가 있었습니다.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략을 물리친 이순신의 명량해전

1400년 전에는 중국의 한반도 침략을 막은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나요?

당나라는 자신들에게 치욕적인 안시성 전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역시 안시성 성주가 싸웠다는 정도만 기록하고 양만춘의 이름은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천년의 시간이 흘러요.

때는 조선시대, 당시 병자호란으로 백성들이 수치스러워하고 있던 그 시절에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이 우리 역사 속에 최초로 기록됩니다.

작은 성으로 동아시아 최강국을 격퇴한 승리의 이야기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중국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주게 되었죠.

 

그리고 2018,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워졌던, 그리고 우리가 잊었던 그 날의 그 순간이 스크린을 통해 다시 한 번 부활하려 합니다.

위대한 승리의 역사와 영웅 양만춘의 무용담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영화 <안시성>을 통해서 그들이 준 큰 울림을 함께 느껴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