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46회] 다르다란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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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8)

2018. 11. 29.



사람들이 태어나면 아이를 봐도 그렇고 어른을 봐도 그렇고

사람만의 갖고 있는 그릇이 다 다른 거 같습니다

천성이라고 보이는 것들로 사람들한테 이야기가 되는 거 같은데요

사실 경험적으로 그릇이 늘어나는 사람도 있는 거 같지만

아무리 고난을 겪어도 그릇이 늘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서

그 천성이라고 불리는 그 그릇은 정말 타고나면

경험이든 아니면 고생을 했을 때 그게 늘어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인생 자체로 끝나는 건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그런 문제들이 궁금할 텐데, 이렇게 한번 얘기해 봐요.

사람의 키가 태어날 때 너 미터까지 자라라.’ 라고 정해져 있을까? 정해져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런 것은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안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

영양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 1미터 50이 될 수도 있고, 잘 하면 1미터 80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후천적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50이 될 수도 있고, 80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정해졌어요? 정해져 있지 않아요?

정해져 있지 않죠.

 

그런데 아무리 자란다고 3미터를 넘을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럼 이 사람 3미터 키가 아무리해도 3미터 키는 못 넘는다 하는 건 정해져 있어요? 안 정해져 있어요?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까 기준을 뭐로 하느냐에 따라서 정해졌다. 안 정해졌다. 이런 말을 쓰지,

존재 자체는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에요.

기준을 뭐로 하느냐?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좋다 나쁘다고 자기가 기준을 갖고 보니까 그렇죠.

그건 서로 다르지 뭐. 서로 다르다.

 

얼굴 생긴 게 서로 다른데

우리는 그것을 잘생겼다. 못 생겼다로 지금 다 말하잖아요.

그런데 객관적으로는 두 사람의 얼굴이 다른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잘 생기고, 저 사람이 못생겼다는 기준이 뭐냐? 이 얘기죠.

 

기준이란

본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객관적으로는 서로 다르다.

주관적으로는 잘생겼다. 못생겼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존재 자체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데,

인식을 할 때는 크다고 인식할 수도 있고, 작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

 

존재 자체는 잘생긴 것도 없고 못생긴 것도 없지만

우리가 인식을 할 때는

그 사람의 인식습관에 따라서 잘생겼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고, 못생겼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만약에 사람이 객관적으로 평가가 된다면 내가 같이 사귀다가

에이, 나쁜 인간이다.”하고 이혼해버리면, 그 인간은 모든 여자가 다 관심을 안 가져야 되잖아.

그런데 다 내가 버린 남자를 딴 여자가 주워 가요.

나도 또 딴 여자가 버린 남자를 주워 오고. 이러는 거요.

 

그러니까 여기는 지금 자기 남자 버리려는데, 바람을 핀다는 건 딴 여자는 또 주워간다는 거요? 안 주워 간다는 거요? 주워 간다는 거요.

이 남자가 계속 한 여자만 안 만나고 늘 바람을 피웠다. 이 말은 여자를 바꾼다는 거요? 고정되어 있다는 거요. 바꾼다는 거지.

 

바꾼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증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바람을 피웠나 안 피웠나, 그건 자기가 보면 자기 나름대로 문제인데, 스님이 볼 때는 , 저 남자는 심리적으로 불안하구나.” 이렇게 보는 거요.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한 사람한테 꾸준히 붙어 있을 수가 없는 거요.

 

그러니까 그 바람피워도 별로 걱정 할 거 없어요. ? 살림 차릴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봐야 돼. 나한테만 못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딴 여자한테 가서도 못 붙어있는 거요.

그러니까 불쌍해 보이는 거요. 어디 한 군데 붙어 있었으면 벌써 끝이 났을 텐데.

그러니까 돌고 있는 거죠.

 

그런 것처럼,

어떤 것도 그것이 잘했다. 잘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잘했다. 잘못했다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 이 말이오.

 

그러니까 사람의 키를 150을 기준으로 하면, 잘 먹이면 넘길 수 있다. 못 먹이면 못 넘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3미터를 기준으로 하면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3미터는 넘길 수가 없으니 한계가 있어요? 없어요? 그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는 거요.

 

노력한다고 된다, 노력한다고 안 된다가 아니고,

어느 게 맞는 게 아니고,

뭘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쓸 때도 있고,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을 쓸 수가 있는 거요.

 

법륜스님이 올림픽 경기를 보다가 어떤 선수가 100미터에 10초에 달리는 선수를 보고,

, 나도 한번 해봐야 되겠다.” 그래서 10초를 목표로 해서 3년을 연습해도 될까? 안 될까? 안 되겠지.

 

그럼 내가 지금 뛰어보는 거요. 뛰어 보니까 100미터에 25초야. 그러면 내가 3달 노력해서 24초를 목표로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없을까? 가능하겠죠? 안 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오.

 

그러면 스님은 25초밖에 못 뛴다고 정해졌냐? 아니에요. 24초까지 뛸 수도 있고, 더 연습하면 23초까지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내 소질에, 이 나이에 지금 10초는 안 되는 거요.

 

그럼 10초가 안 된다 하는 측면에서는 정해져 있고, 25~ 24초 된다는 측면에서는 안 정해져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요.

별로 이해가 안 되나봐.

 

, 제가 이 두 사람을 딱 보면서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이지. 그럼 옆에 개가 있을 때, 개 하고 이 두 사람을 비교할 때는 이 둘은 같은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같은 사람이지.

 

그러면 두 사람을 놔놓고

뭐를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둘은 다른 사람이고 말하고 어떤 때는 둘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잖아.

 

파란 콩하고 노란 콩을 놔놓고는 다른 콩이죠. 그런데 팥하고 비교할 때는 색깔이 파랗고 노랄 뿐이지 둘 다 뭐다? 같은 콩이에요.

콩하고 팥은 서로 다르지만 채소하고 비교할 때는 둘 다 같은 곡식이에요. 맞습니까?

채소하고 콩하고는 다르지만 돌멩이하고 비교하면 같은 음식이에요.

 

 

용어를 같다고 쓰기도 하고

다르다고 쓰기도 한다.

 

그러면 같은 거냐 다른 거냐?

진리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같다고 인식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될 때도 있다.

 

이해하시겠어요?

이 기준이 지금 이렇게 하니 괜찮고, 이렇게 하니 나쁘고, 그래서 지금 헷갈리는 거요.

 

스님도 스님이라는 사람으로서는 보면 괜찮은 스님인데, 스님이 만약에 결혼을 했는데, 집에도 안 들어오고, 매일 무료 강연이나 다니고, 그럼 부인이 볼 때는 좋은 남자요? 나쁜 남자요?

그래. 그러니까 스님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좋게 보기도 하고 나쁘게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기독교 기준에서 보면 불교는 귀신 믿는 것 같고, 불교 기준에서 보면 저거는 엉터리 같고, 이렇게 기준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면 이 기준이 없다고 하면

사물은 그냥

믿음이 다르다, 사상이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

이렇게만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