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1회 <감각적 욕망>에 대해 (20:28)

댓글 0

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2. 11.

  방송 보기: 불교TV

 

오늘부터 제가 초기불교의 수행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초기경전, 빨리경전에 나와 있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에 대해서 좀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요, 그중에 요점만 제가 추려서 초기불교의 수행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하고 있고요. 우선 오늘은 부처님께서 어떤 식으로 수행을 하셨고, 출가 후에 어린 시절, 그리고 출가한 다음에, 출가 후에 어떻게 성도 하셨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이 무엇인지, 여기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 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거라는 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되고 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내용을 조금 더 세밀하게 부연설명을 해서 공부를 하는 방향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오늘하고 다음번에서는요, 부처님께서 최초에 깨달음을 얻으시고 나서 하신 법문이 있습니다. 그게 初轉法輪초전법륜이라고 하는데요, 그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부처님께서 어떤 식의 수행을 하셨는지를 좀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삶에서 어떤 전화기가 몇 번 있습니다. 그 전환기에서 부처님께서 어떤 거를 생각하시고 어떤 방향의 전환을 해서 이런 더 이상 비할 바 없는 깨달음을 이루셨는가? 그것을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식의 관점에서 어떤 거에 초점을 맞추어서 불교를 공부해야 되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일단 부처님께서 탄생을 하시고 나서 유년시절을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내죠. 그죠? 왕자로서. 16살 때 야소다라와의 결혼을 하고 그때부터 온갖 종류의 감각적 욕망을 다 누립니다. 그래서 기록에 의하면 여름에 사는 궁전이 따로 있고,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남방지역은 계절이 세 개의 계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여름이구요, 또 하나의 계절은 겨울이고, 또 하나는 우기고, 이렇게 세 개의 계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름에 지내는 궁전이 따로 있고, 또 겨울에 지내는 궁전이 따로 있고, 우기때 지내는 경전도 따로 있고. 다 이게 따로 되어 있는데요. 그리고 또 거기 싯다르타 태자를 시봉하는 궁녀만 4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백제 의자왕이 몇 명이었죠? 3천 명보다 13배나 더 많습니다. 4만 명이나 되는 궁녀들이 시봉을 했고.

 

어떻게 보면 부처님께서 유년시절에 보통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그런 감각적 욕망을 최고의 수준에서 누리고 사셨다고 할 수 있죠. 그죠? 이렇게 아주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내다가 아주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농경제 행사라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농경제라는 것은 그때가 농업사회니까 왕도 나와서 쟁기질을 하는 행사를 하는 그런 건데요. 왕도 직접 황금으로 만든 쟁기를 골을 한번 파고 신하들은 은으로 된 쟁기로 파고. 그렇게 해서 한해의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이런 행사인데요. 그 농경제 행사 때 이 싯다르타 태자가 무슨 나무 밑에 가서 농경제 행사를 구경을 하다가 혼자 좀 있고 싶어서 나무가 있는 사과 장미라고 그러는데 옛날 나무라서 제가 어떤 걸 이야기하는지 정확힌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여튼 그 나무 그늘아래 가서 조용히 앉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싯다르타 태자가 과거 전생에 오랜 세월, 보살행을 하면서 닦았던 수행의 결과로써 그 순간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소위 말해서 호흡법이라고 있습니다. 아나빠나사티(Anapanasati- 호흡명상)라는 호흡법이 있는데요. 그 호흡법을 통해서 소위 말해서 선정을 경험합니다. 삼매 상태를. 어린 시절에 아직 수행을 배운 것도 아닌데, 전생에 바라밀공덕 때문에 그 짧은 순간에 선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경험한 선정이 나중에 수행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때 선정을 경험하고 앉아 있는데요.

 

이거는 조금 신비적인 이야기지만, 기록에 의해면 주석서 기록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좌선을 하고 있으면 해가 변할 거 아니에요. 동에서 서로 변하는데. 그들이 계속 나무가 변하면서 싯달르타 태자가 앉아 있는 거기를 항상 그늘을 비추어줬다고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때 경험한 色界初禪定색계초선정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거를. 색계선정을 경험을 했는데. 호흡법을 통한 색계선정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냥 또다시 아까 말씀드린 그런 감각적 욕망에 충분히 젖어서 살다가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하면 사문유관을 하죠. 그죠? 그때 처음으로 본 사람이 늙은 사람입니다. 노인, 노인을 봤어요.

 

얼굴이 쭈글쭈글해지고, 허리도 굽어지고, 머리도 희어지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런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부처님은 전생에 그런 수행바라밀 때문에 그 노인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생각한 게 뭐냐 하면 나도 저렇게 되느냐?”였습니다. 저 노인이 늙어가듯이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늙어갈 수밖에 없느냐? 그러니까 그때 마부가 하는 이야기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태어난 사람은 늙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 그때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요. 그런데 돌아와서는 또 온갖 감각적 욕망을 누리다보니까 그때 경험했던 그런 마음이 또 약간 누그러졌겠죠. 그러다가 또 4개월쯤 지나서 다시 밖을 나갔는데 그때는 누구를 봤냐하면 병든 사람을 봤습니다.

 

병든 사람을 보고 또 흠칫 놀랬죠. 자기는 건강하고 항상 그런 사람을 왕궁에선 눈에 보이지 않게 했던 거에요. 왕자가 사는 왕궁에는 항상 젊은 궁녀들이고, 아주 젊고 건강한 사람들만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병든 사람을 보고 또 뭐라고 이야기했죠? “나도 똑같이 저렇게 병드느냐?”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저와 같이 병드느냐?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병으로부터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요. 그다음에는 죽은 사람을 봤죠. 죽은 사람을 보고 또 나도 똑같이 저렇게 죽을 수밖에 없느냐?”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죠.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마지막에 한번 나갔는데 누굴 보느냐하면 출가사문을 봅니다. 출가해서.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이 성도 하시기전에는 승가가 형성된 건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에도 집을 떠나서 수행하고 살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사문이라고 하잖아요. 그죠? 그걸 보니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 내갈 갈 길은 저것이다.” 이렇게 그때 생각을 하게 되고, 언젠가는 출가를 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문유관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통찰하신 거는 야~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노병사를 보고나면 그 현상에 두려워하거나 이렇게 하는데. 부처님은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태어남 때문이다. 이거를 발견하게 됐고요.

 

그래서 이 생로병사라는 이 네 가지 문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근원적으로 겪어야 될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을 해야 될지.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그런 마음상태가 된 거죠. 그래서 그때 아까 말씀드린 출가자를 보고, ~ 내가 저 길을 가서 반드시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되겠다. 그런 결심을 하고 출가를 생각하는데요. 부처님께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어느 날 궁녀들하고 밤에 술을 마시고 실컷 놀다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 일어나서 보니까, 그 궁녀들이 술에 취해 잠자는데 침을 흘리고 자고 있고. 이렇게 퍼져서 널브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 우리가 깨끗하게 단장을 했을 때 그렇게 아름답던 여인들이 술을 먹고 자는 모습을 보니까 역겨움이 일어난 거에요. ~ 이거는 깨끗한 게 아니구나.

 

그래서 이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이 감각적 욕망이 위험하고 그거의 본질을 그때 깨달으신 거죠. 그래서 비유를 한 게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의 본질이 뭐라고 비유로써 설명을 했느냐 하면 뼈다귀와 같다 그랬어요. 여러분들 개뼈다귀 보셨어요. 뼈다귀가 있으면 그걸 개가 이 뼈다귀를 먹으려 하면 먹어보면 먹을 건 없잖아요. 그런데 이 개가 뼈다귀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 때문에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게 마치 우리가 뭔가 계속 헐떡거리면서 찾아다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우리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하고, 그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이 감각적 욕망의 본질이라고 보신 거고.

 

또 이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달콤하긴 하지만 마치 뭐와 같냐 했냐하면 칼날과 같다 했어요. 칼날 위에 꿀이 발라져 있으면 그거는 먹을 때 달콤한 것도 있지만, 우리 몸이 베이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이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는 달콤하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우리 삶에 많은 고통을 유발하는 그런 것이다. 경전에도 보면 감각적 욕망이라고 한는 것은 짧게 즐겁고 오래 괴롭다 그랬습니다. 아주 순간적으로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이것이 오랜 세월, 그 감각적 욕망이 또 겪는 고통. 이런 많은 고통들이 있다는 것을 설명을 했죠.

 

그래서 뭔가 새로운 걸 찾아서 출가를 하게 되죠. 그래서 이때에 하신 유명한 말씀이 뭐냐 하면 삼계가 화택이다. 우리가 사는 삼계가 감각적 욕망으로써 계속 불타고 있는 집과 같다. 감각적 욕망은 아주 작 불씨만 있어도 그게 점점점점 커져서 우리 집을 다 태울 수도 있잖아요. 그죠? 그래서 불타는 집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를 하는데요. 처음에 출가를 결심을 하고 처음에 찾아가는 곳이 어디냐 하면 외도의 스승을 일단 찾아갑니다. 외도의 스승을 찾아가는데. 그때 당시에 외도의 스승 중에 제일 유명한 분이 누구냐 하면 알라라하고 우다카라는 분이었습니다.

 

알라라깔라마 우다카라마부따라는 사람이었는데, 이 알라라는 선정 중에서 색계에 네 가지 선정이 있고, 무색계에 네 가지 선정이 있는데, 그 중에서 무색계의 삼선정인 無所有處무소유처입니다. 무색계 초선이 空無邊處공무변처고, 무색계 이선정이 識無邊處식무변처고, 無所有處무소유처, 非想非非想處비상비비상처. 이렇게 네 가지로 있는데. 그중에서 그러니까 여덟 단계 중에 일곱 번째 수준을 증득하신 분이 알라라였고, 그다음 여덟 번째 마지막 선정의 단계를 하신 분이 우다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한테 가서 3일 만에 이걸 다 배웁니다. 오래 걸리지도 않아요. 가서 3일 만에 가서 다 배우고 이분들이 얻은 것을 다 하는데, 부처님께서 선정에 들어가고 나서 그걸 다 얻고 나서 보니까. 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이것이 궁극적인 거냐? 라고 물어보니까 이게 다라는 거에요. 당신들 가르침에.

 

그런데 이 궁극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부처님께서 이것을 관찰해보니까 이거는 이 수행을 통해서는 우리가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 그것에 대한 뭐가 일어나야 되냐 하면 혐오의 지혜가 일어나야 합니다. 싫어하는. 싫어한다기보다는 이것이 결코 집착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이런 지혜가 일어나야 되는데. 이 선정을 통해서는 이런 혐오의 지혜가 일어날 수가 없어요. 혐오의 지혜가 일어나지 못하면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선정은 만약에 무소유처를 닦았다고 하면 이 무소유처선정을 닦은 사람은 다음 생에 윤회를 할 때 죽으면 무소유처라고 하는 무색계의 세 번째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 무색계 세 번째 세상의 수명이 육백대겁입니다.

 

일 겁이 어느 정도 시간인지 아시죠? 그죠? 육백대겁의 시간동안 수명이 있지만, 이것도 여전히 뭐에요? 윤회의 과정 속에 있다. 이거에요. 부처님은 이건 그냥 단지 이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사람들은 이것을 궁극적인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것을 얻는 것이 이분들의 수행의 전부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보시기에는 이것을 내가 설사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이런 경지에 대한 미묘한 집착도 있고, 그걸 얻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태어나서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나면은 팔만사천대겁입니다. 그 오랜 시간을 지낸다 하더라도 다시 인간이나 축생으로 다시 윤회할 수 있다는 걸 보신 거죠.

 

그래서 이것은 이분들이 하는 거는 궁극적 깨달음이 아니다. 단순히 어떤 선정상태, 선정상태라고 하는 거는 여타 다른 생각이 없이 아주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인데 그러한 상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인 단계는 아니라는 걸 부처님께서 이해를 하시고. 그래서 이곳을 떠나서 당신 스스로 그때부터 아~ 이 수행 갖고는 안 되겠다. 당신 스스로 고행을 시작을 합니다. 고행을 시작하시는데, 그때 보통 이 고행이라는 거는 네 가지 형태로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는 자기 살갗과 뼈와 힘줄만 남게 하고 살과 피가 말라붙게 하는 그런 것을 그런 정도의 각오. 자기 살갗만 남고 안에 있는 살이나 피는 다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수행을 하는 거를 이야기하는 거죠. 살과 뼈 힘줄만 남고.

 

그렇게 해서 이때부터 고행을 하시는데 대표적인 고행이 뭐냐 하면 일단은 숨을 참는 거에요. 숨을 질식한다. 그러죠. 숨을 참아서 숨을 최대한 참음으로써 오는 그 고통을 참는 거, 두 번째는 음식을 줄이는 겁니다. 음식을 처음에는 하루에 한 번 만약에 콩 한 조각을 먹었다면, 일주일에 한번 먹고, 이런 식으로 최대한 음식을 줄여서 두 가지 형태의, 이게 인간이 제일 참기 힘든 부분이거든요. 숨은 보통 우리가 3분 이상 참기 힘들잖아요. 음식도 먹는 거를 못는 게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줄이는 거 하고, 숨을 참는 고통을 수행을 하는데, 이거로 인해서 엄청난 고행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고행상 보셨죠. 부처님 몸 보면 딱 말라붙어 뼈만 남아 있는 상태.

 

그런 상태가 될 때까지 수행을 하시는데, 그런데 그렇게 해도 깨달음이 안 일어나더라는 거에요. 궁극적 깨달음이. 그거는 그냥 우리 몸만 괴롭히고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고 들뜨게 할 뿐이지 궁극적인 깨달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고행을 하고 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6년간 고행을 하셨는데, 내가 나만큼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없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극한의 고행을 했다. 하지만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이 궁극적 깨달음이 해탈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부처님께서 고민을 합니다. 6년간 고행을 했어요. 그때 인도 당시에서는 수행자들이 하는 게 주로 고행이었습니다. 현생에 내 몸을 괴롭히고 고통을 받음으로써 우리가 다음에 아주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기본적인 이분들의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부처님도 거기에 전통에 따라서 그 수행을 하신 거죠. 그런데 다른 고행하는 사람은 비교도 안 될 만큼의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시고 여기서 깊은 사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 부처님의 머리에 떠오른 게 뭐냐 하면 아까 제가 초기에 말씀드린 어린 시절에 농경제 행사 때 나무 밑에서 들었던 선정을 기억해 냅니다. 그 호흡으로 인한 선정인데요. 그 선정을 기억해 내면서 그 선정상태에 들어 있을 때는 내 마음이 너무나 행복했었다는 거에요. 우리가 고행을 할 때는 얼마나 괴로워요. 그죠? 그 괴로움이 있었고. 감각적 욕망은 즐겁기는 하지만 이것은 아까 말했듯이 집착과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갈증만 생기고 이게 만족이 안 되는 그런 문제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