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1회 <감각적 욕망>에 대해 (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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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2. 11.

  방송 보기: 불교TV

그런데 이 선정상태를 자세히 관찰해 보니까 그 부처님께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그 선정의 상태는 감각적 욕망처럼 마음이 불안하거나 이런 것도 없고, 그렇다고 고행처럼 마음이 들뜨고 몸으로부터 오는 그런 큰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 선정으로 인한 즐거움. 이것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오는 즐거움이다. 이거죠. 감각적 욕망을 버림으로써 이 선정의 즐거움이 오기 때문에. 이 선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이용해서 수행을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된 겁니다. 그때 당시에는 수행이라고 하면 무조건 고행을 해야 그게 수행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행복을 누리는 것은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행복을 누리는 것은 저열한 것이고 이건 수행자가 해야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신 거죠.

 

그래서 처음에 이런 선정으로 인한 기쁨이 일어났을 때 망설였습니다. ~ 이것도 또 오히려 내가 또 이런 집착이나 욕심이 일어나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까? 를 생각을 했는데. 그거를 자세히 관찰해보니까 이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감각적 욕망을 버림으로써 오는 기쁨이다. 이거를 파악하고 나셔서는 아~ 그래. 이거는 더 이상 내가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이거로부터 피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이 선정에 즐거움을 이용해서 이 선정의 즐거움을 활용을 해서 선정의 안정되고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활용해서 수행하는 쪽으로 전환을 합니다. 그래서 이때 고행을 버리게 되죠.

 

그래서 초기에 출가하면서 감각적 욕망을 버립니다. 그리고 출가해서는 고행을 6년간 하시다가 고행이라는 것이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 수행에. 그걸 아시고 고행을 버리면서 그때 취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색계초선의 경험, 호흡법을 통한 선정의 상태를 통해서 수행을 하는 쪽으로 전환을 하고요. 그리고 나서 보리수 아래 적당히 고행을 마치고 나서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수닷타한테 우유 죽을 한 그릇 먹고, 기력을 회복합니다. 그동안 오랜 고행을 통해서 몸이 너무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몸이 그런 약한 상태에서는 올바른 선정에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기력을 회복하고 몸을 추스른 다음에 당신이 깨달음을 얻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다가 보리수 아래에 가죠.

 

보리수 아래에 가서 아까 말했던 이런 서원을 세웁니다. 내 피와 살이 다 말라 버려도 좋다. 내 몸에 살만 남고 뼈만 남고, 힘줄만 남더라도 내가 이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지 않으면 절대 일어서지 않으리라. 이렇게 큰 서원을 하고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습니다. 그리고 이때 아까 말씀드린 호흡법. 이걸 초기경전에는 아나빠나사띠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나빠나라는 말은 들숨날숨이란 말이고요. 사띠라는 말은 알아차림. 마음 챙김.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이 들숨과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이런 뜻이죠. 그래서 숨을 관찰하면서 그때부터 어린 시절에 들었던 색계초선정을 들어가고요.

 

이 초선에서 다시 2선정, 이 선정에 대해서는 제가 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음에 이 선정을 이야기할 때 한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색계초선정에 들어가서 나서 그다음에 다시 2선정에 들어가고. 2선정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 3선정, 그리고 4선정. 색계4선정이 수행으로써는 최고 색계선정 중에서는 최고의 경지입니다. 그래서 선정에 들어가고 나서 이 선정에 들어간 마음은 우리가 경전에 보면 어떻게 말씀이 돼 있냐하면요. 아까 우리가 고행이나 이런 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랬잖아요. 그죠? 그런데 이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이 감각적 욕망과 소위 말해서 다섯 가지 장애요소라는 게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과 성냄. 그리고 법에 대한 의심. 그리고 해태 혼침이라고 하는 게으름. 그리고 들뜸과 후회라고 하는 이런 다섯 가지 요소를 완전히 버려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게 선정입니다. 선정에 들어가게 되면 그 마음이 아주 순수해져요. 깨끗해진단 말이죠. 깨끗해지고 또 여러분들 마음에 心光明심광명이라는 얘기 들어보셨죠. 수행을 하면 마음이 아주 밝아집니다. 실제로 아주 밝은 어떤 그런 광명을 느껴요. 그리고 또 아까 말한 그런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없어지기 때문에 마음에 오염된 게 없어집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주 부드러워집니다. 부드러워지고, 어떤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어떤 상태가 돼요.

 

우리가 화가 나면 마음이 어때요? 대개 뻣뻣해지죠. 누가 무슨 말 해도 그게 잘 안 들리고 그러죠. 그런데 우리가 선정에서 들었다 나온 마음은 마음이 너무나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그리고 오염도 되지 않고 아주 부드럽고 적합한 그런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이런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렇게 돌리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거를 다 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색계4선정에 들어갔다. 나와서 부처님께서 이때가 언제냐 하면 성도 하시는 날, 초경이 되기 전에 4선정에 들어가서, 초경이 될 때 알까 말씀드렸듯이 선정에 이런 아주 맑고 깨끗하고 적합한 마음상태를 어디로 돌리느냐 하면 부처님의 전생이 어떠냐? 전생을 보는 쪽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그런 게 있죠. 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일도하사불성이다. 그런데 이 선정에 들어간 마음상태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습니다. 선정은 그만큼 선정의 상태라는 것은 번뇌도 없고, 아주 깨끗한 그런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 마음을 전생을 보는 쪽을 돌리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과거 전생을 하나도 남김 없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때 발견한 지혜가 뭐냐 하면, 그 수많은 윤회의 그 과정에서 모든 내가 태어났던 존재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물질과 정신에 불과했다는 거에요. 물질과 정신이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이런 거에 불과하다.

 

그래서 윤회에서 일어났던 그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은 물질과 정신. 이거는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면 오온이라고 하는, 우리가 반야심경 할 때 맨날 이야기하는 그 오온.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런 오온이 어떤 조건에서 일어났다 사라진 거라는 걸 발견한 겁니다. 실체가 있다는 게 아니고. 그리고 그다음에 이게 초경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중경, 그러니까 언제죠?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때 색계4선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 색계4선정의 마음을 어디로 돌리느냐 하면, 사람들이 죽어서 어떤 존재들이 죽어서 어디에 태어나는지, 이거를 관찰하는 거에요. 죽는 순간에 이 사람이 업에 의해서 어디로 태어나는지를,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업과 업의 과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관찰합니다. 그래서 그걸 우리가 뭐라고 하냐 하면 천안통이라고 그럽니다. 천안통. 초경에 얻은 거는 숙명통이고요, 전생을 보는 신통이죠. 그리고 천안통을 통해서 이 세상에 중생이 어떤 업을 지었을 때 어디에 태어나고, 악업을 지었을 때 저런 지옥이나 태어나는 거, 또 선업을 지었을 때 인간이나 천상계에 태어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관찰을 하게 되죠. 그러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업에 의해서 그런 윤회가 일어나고 그 조건에 의해서 어떤 게 일어나는, 그러니까 삶이 일어나는 그 원인에 대해서 고찰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통찰이 이루어지고 나서, 그다음 단계에서 그러니까 두 번째 단계는 일종에 조건에 대한 파악입니다. 불교에서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잖아요. 인과에 대한 지혜가 생긴 거구요. 세 번째 삼경에 부처님께서 새벽별 뜨는 거 보고 깨쳤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경전에 말씀하는 거는 새벽별이 뜨는 그 시간에 깨친 겁니다. 그러니까 새벽 2시에서 새벽 6시 사이. 그 시간에 아까 말씀드린 색계 4선정에 들었다가 나와서 그 선정의 힘을 어디로 돌렸냐하면 번뇌를 버리는 쪽으로 돌립니다. 그 이전에는 인과를 발견하는 쪽으로 했잖아요. 전생을 보고.

 

그래서 번뇌를 소멸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니까, 그때 뭐를 발견했냐하면 이것이 고다. 우리 삶에서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다. 삶의 괴로움을 발견하고요. 이것이 고의 원인이다. 그리고 이것이 고의 원인의 소멸이고, 또 이것은 고의 원인에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해서 사성제를 통찰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것이 번뇌고, 이것이 번뇌의 원인이고, 번뇌의 소멸이고,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는 두 가지를 통찰하고, 마침내 3경에 부처님께서 모든 사성제를 통찰하고 고의 원인을 완전히 소멸해서 번뇌를 완전히 소멸한 깨달음을 얻고 성불을 하시게 되죠. 그게 바로 3경입니다. 그걸 누진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누라고 하는 말은요. 빨리어에서는 아사와라고 하는 게 번뇌라는 뜻입니다. 번뇌를 중국에서 번역을 할 때 누 자로 변역을 했습니다. (흐를 누). 이게 왜 누라고 하냐 하면 모든 우리 존재계를 다 흘러들어간다고 해서 누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진이라는 것은 번뇌가 다한 신통이다. 그래서 누진통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누진통이라는 것은 번뇌가 다했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말한 숙면통이나 천안통, 이런 것들은 세간의 신통이라고 그래요. 세간의. 그것은 번뇌를 소멸하는 거라기보다는 어떤 좀 보통사람이 가지지 못한 신비한 능력인데, 이 누진통은 번뇌를 소멸하는 신통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행을 해서 얻어야 될 가장 중요한 신통이 바로 뭐에요? 누진통입니다.

 

이 누진통을 통해서 우리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되고 아라한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때 깨달음을 얻고 나서 부처님께서 녹야원이라고 깨달음을 얻으시고 나서 당신이 그 깨달은 바를 누구에게 전해줄까 말까 하다가 처음에는 망설이죠. 그러다가 결국은 법을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게 알라라. 최초의 만났던 스승 있잖아요? 두 분. 알라라하고 우다카라고하는 그 두 분을 생각했는데. 그 두 분은 벌써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제도를 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분은 안 되고, 결국은 어디로 갔냐 하면은 부처님이 고행할 때 옆에서 도와주던 다섯 명의 비구가 있었습니다. 그 비구한테 가서 부처님이 하신 법문을 하고 그때 하신 법문이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중도법문입니다. 중도.

 

지금까지 제가 부처님의 과정, 그러니까 수행의 과정을 말씀드리면서 대부분 기본적인 이야기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당시에 수행자들이 취하는 두 가지 극단이 있었는데 하나는 뭐였어요? 보통 일반적으로 범부들이 취하는 태도는 감각적 욕망입니다. 보통 여러분들도 감각적 욕망에 많이 젖어 있죠? 그죠? 맨날 TV보고 드라마 보고 울고, 이런 게 다 감각적 욕망에 해당합니다. 음식을 쫓아다니고, 식욕, 그리고 또 수면욕, 잠자고 싶어 하는, 이런 오용락이 다 감각적 욕망에 들어갑니다. 이런 것들은 부처님께서 마지마니까야라는 경전에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은 이것은 저열한 것이라 그랬어요. 저열하고 촌스럽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성스럽지 못하다. 우리 삶에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에 큰 이익이 없다. 실제로 아까 말씀드렸듯이 감각적 욕망의 본질은 만족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하늘에서 황금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는다는 거죠. 황금비가 내리고 나면 다이아몬드비가 내리길 바라겠죠. 그게 우리 중생들의 마음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감각적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는 거, 그리고 집착이 본질입니다. 그리고 고행은. 우리 삶은 일단 고통스럽게 하잖아요. 그죠? 미래에 어떤 행복이 올지 모르지만, 현재가 너무 고통스럽죠? 그리고 그 성스럽지도 못하고. 부처님께서 경험해보니까 이건 실제로 우리 삶의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감각적 욕망도 버리고, 고행도 버리고, 아까 말했듯이 구태여 우리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내가 고행이라는 것은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의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행복을 추구하는 건데. 부처님께서는 이런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할 필요도 없어요. 선정에 들어가는 것은 현재 이 순간도 엄청난 행복을 느낍니다.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도 행복할뿐더러 그 선정의 힘을 번뇌 없애는 데 쓰면은 나중에 여러분이 깨달음도 얻게 되고, 아라한이 돼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완전한 행복을 또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 우리가 구태여 이런 현세 살아가는 삶을 고통스럽게 고행을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감각적 욕망처럼 거기에 대해 집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로부터 멀어진 선정을 잘 이용한다면 선정의 그런 마음을 잘 이용한다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하고 중간도 행복하고 끝도 행복한 이런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런 가르침은 어떤 우리 삶이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를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도 행복하고 미래도 행복한 그런 길을 찾으신 거죠. 그거를 우리가 중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중도 법문을 하심으로써 부처님께서 그 오비구가 그때는 고행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 고행이라는 것이 실제로 이익이 없다. 우리가 중도를 통해서 수행을 함으로써 당신이 스스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스스로 말씀을 하시고. 그리고 그때 중도가 뭐냐?

 

중도의 내용이 뭐냐 라고 이야기했을 때 중도의 내용이 바로 팔정도라는 거죠. 이 중도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중도는 팔정도다. 이 팔정도를 닦음으로써 지혜의 안목을 이끌어내고, 그리고 지혜를 이끌어 내고, 우리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깨달음을 이끌어주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중도다. 그래서 이 중도를 이렇게 여덟 가지로 설명을 하십니다.여덟 가지 요소가 있죠. 바른 견해. 바른 사유. 여덟 가지 요소를 설명하시면서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이 팔정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그랬어요.

 

열반경에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에 이 세상에서 불교깨달음으로서의 성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가르침에 팔정도가 있으면 그거는 성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거기 팔정도가 없는 것은 성자가 될 수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실 정도로 이 팔정도가 중요한 법문입니다. 마지막도 팔정도로 말씀하셨잖아요. 그리고 부처님께서 성도 하시고 나서 최초로 하신 법문이 바로 이 팔정도 법문입니다. 그래서 이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팔정도에 대한 이해를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불교수행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팔정도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팔정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교수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래서 이 팔정도라는 것은 제가 다음 시간에 설명해 드리기로 하고요. 그래서 그때 초전법륜하면서 다섯 비구에게 이 팔정도 법문을 하시면서 그때 최초로 첫째, 꼰단야라고 하는 비구가 수다원이 됩니다. 이 범문을 듣자마자. 그리고 나중에 이 다섯 명이서 부처님하고 여섯 명이 있잖아요. 그죠? 그러면 먹어야 되니까. 한 명은 남고 다른 분은 다 탁발을 해오면 부처님하고 이 두 분은 또 같이 먹고. 이렇게 해서 한명 남은 사람들이 다 수다원이 돼요. 남은 사람들이 법문을 들을 때마다. 그러고 나서 이 다섯 분이 수다원이 되고 나서 나중에 다섯 분을 모아놓고 무아경이라는 경을 설합니다.

 

그때 이 다섯 분이 전부 아라한이 되고요. 그래서 그때 다섯 비구가 아라한이 되면서 이 지구 상에 여섯 명의 아라한이 생깁니다. 부처님 한 분하고 이 다섯 비구. 그래서 팔정도 법문이 바로 이런 수행자를 부처로 만들어줍니다. 다시 말하면 아라한이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는 법문이 바로 팔정도 법문이고, 부처님께서 최초로 하신 법문도 팔정도. 그리고 마지막에 또 열반경에서도 이 불교수행이란 뭡니까? 라고 했을 때, 한마디로 하신 게 팔정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가 앞으로, 그러니까 한 몇 개월 동안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이 팔정도 내용입니다.

 

지금은 간략하게 말씀을 드렸는데 이 팔정도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하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법문은 여기서 마치고요, 저 다음 시간에 팔정도하고 사성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