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첫방송 (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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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_죽음이야기

2011. 12. 18.

  출처: 유나방송

만일에 죽어서 다 꽝이고 없다면 살아야 될 필요가 없죠. 남을 평생 등쳐먹고 살다가 죽어버리면 끝인 거예요. 그리고 죽어서 어차피 없을 거 지금 죽어버리지 뭐 하러 힘들게 삽니까? 정말 궁극적인 의미하고 관계됩니다. 그래서 이 그 칸트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살아서 이 윤리가 성립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된다. 요청된다. 이렇게 했습니다. 퍼스트레이트란 영어로는 그렇게 얘기하는데. 요청된다. 뭔고 하니. 기독교적인 얘기입니다. 이거는. 사후의 그 심판자로서 신이 존재해야 되고, 두 번째는 사후생이 있어야 된다. 우리가 죽어서 거기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된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인도 종교는 불교를 포함해서 가능하죠. 심판자는 없지만 자기 업보 여기에 대해서 스스로 심판하고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건데. 이렇게 죽음 뒤에 관해서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하고 또 인생 속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고 그럽니다. 결혼해서 자식들 낳고 말이죠. 그런데 만일 죽음 뒤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굳이 찾으려 한다면 역시 인간은 그런 의미를 찾는 그런 동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꼭 생각해야 될 것은요. 한 가닥 이유는, 우리가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 그런데 잘 살아놓고 죽을 때 잘못 죽으면 세상에 허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그 어려운 생, 잘 살아놓고. 죽을 때 황망하게, 병이 들어서, 혹은 암에 걸려서, 불치의 병에 걸려서, 사고로 아무 준비 못 하고 이렇게 죽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교수님이 있습니다. 이 분이 70대에 돌아가셨는데. 평생 참 잘 사신 분이에요. 연구도 열심히 하시고. 인격도 훌륭하시고. 이 분이 마지막에 그 중환자실에서 몇 개월 있다 돌아가십니다.

 

중환자실이 어떤 곳입니까? 식구들하고 단 하루에 한 시간밖에 면회가 안 되는 곳입니다. 나머지 23시간은 옆에 거의 식물인간이 된 그런 분들하고 같이 있게 되는 거예요. 도대체. 그러다 그분 가셨어요. 이게 뭐냔 말이죠. 이게. 그렇게 열심히 힘들게 사신 분들이 마지막에 왜 그렇게 끝내야 되느냐? 우리는 우리 인간은 존엄하게 살아야 될 권리도 있습니다마는 당연히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 혹은 의무, 또 준비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단 말이죠.

 

또 불경이나 부처님 말씀에도 많이 나오죠? 죽을 때 어떻게 죽느냐가 다음 생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 문제. 뭐 여담입니다만 부처님 ?시에 부처님 거의 부처님 경지에 있던 사람들하고 서로 토론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어떤 토론이었는고 하니. 어떤 한 사람이 죽었어요. 이 사람이 어디에, 어떤 데 다시 태어날까를 예측을 했는데, 다른 사람은 틀리고 부처님은 맞았다.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왜 그런고 하니 다른 성자들은 죽은 사람이 죽었을 때, 바로 그 임종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가? 이거를 염두에 안 둔 거에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것까지 아시고 고거까기 염두에 두시고 그다음에 어디 태어날 거다. 예측을 한 거거든요. 이렇게 죽을 때 고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게 됩니다. 뭐 제가 그 어떻게 죽느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하려고 제가 예를 든 겁니다만. 그 외에도 우리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학교를 잘 다니지 않습니까? 졸업 안 하고 대충하면 되겠습니까졸업식도 하고 잘 유종의 미를 거둬야죠.

 

지금 우선 문제는 우리 한국인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죽음 준비를 안 하고 살다가 나중에 큰 낭패를 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부정과 혐오하고, 외면하고, 본인은 안 죽을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게 개인에게는 대단한 손실입니다. 제가 그다음 시간에 또 말씀드릴 텐데. 죽음을 맞이해서 엄청난 교육, 레슨을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엄청난 기회를 우리 한국인들은 많은 경우에 그냥 약에 취해서, 혼절해서 이런 식으로 그냥 얼떨결에 끝내버리고 맙니다.

 

불치병, , 말기 암, 간암 3기다. 이런 분들 말이죠. 보통 어떻게 합니까? 많은 경우에 말이죠. 우리 한국인들, 다른 나라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이 조금 더 한 거 같애요. 그런 경향이. 끝까지 삶에 집착을 합니다. ~ 간암 3기다. 거의 안 됩니다. 그런데 사실 간암3기다 그러면 그때부터 죽음 준비. 호스피스 교육받으면서, 호스피스사의 도움받으면서 죽음 준비에 들어가고. 또 가족들과 이별 준비하고, 또 자기 생을 정리를 해야 되는데. 이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끝까지 항암 치료에 매달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멀쩡하던 정신이 약이 워낙 강하니까 혼절해 버려요. 그래가지고 2~3개월을 혼절한 상태에서 지내다 그냥 속절없이 황망하게 가 버립니다.

 

의료진들 얘기 들어보면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사람이 죽기 전에 두세 달, 요 때 들어가는 의료비용이 전체 의료비용의 40% 이상을 차지한다는 거에요. 이게 뭡니까? 낭비죠. 이게. 다시 제 말씀드릴게요. 우리가 쓰는 전체 의료비용 가운데에서 죽기 전 2~3개월에 들어가는 그 의료비. 항암치료에 들어가죠. 심폐소생술은 위급상황이기는 합니다만 인공 투석, 인공호흡, 인공영양투여 이런 거, 이런 데서 굉장한 돈이 들어간다고 그럽니다. 보십시오. 본인도 정리 못 하고, 돈은 돈대로, 또 깨지고. 이런 얘기에요.

 

부모님 병 수발하다가 집팔아가지고 전세로 내려가고 말이죠. 본인은 그렇게 가죠.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고생하고. 또 경제적으로 사정도 나빠지고. 그런데 아무 소득은 없는 거에요. 이런 거. 또 한국사람들은 효에 대해서는 약하지 않습니까? 효는 대단히 훌륭한 겁니다만. 부모님들이 그런 상황에 있으면은 마지막 가지는 길인데, 내가 어떻게 자식 된 도리로서 그런 치료를 다 안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되니까 또 옆에 눈이 또 두려워요. 만일 치료를 안 하고 항암치료를 딱~ 끊어버리면 옆에서 또 수근수근 거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부모님한테 냉정, 매정할 수가 있는가? 뭐 이래저래 좌우간 이렇게 돼서 그냥 가족이나 본인이나 좋지 않은 그런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럼 어떻게 죽으면 좋으냐? 나중에 계속 말씀드리겠는데 인간으로서 끝까지 품위와 존엄을 지키고, 더 좋기로 하면 유머와 여유, 이것을 잃지 않고 죽는 것이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존엄사와 안락사 문제가 있습니다. 안락사는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네덜란드 정도. 미국도 한두 주 정도만 인정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안락사는 인간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당겨오는 거죠. 가령 무슨 주사를 놓는다거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라는 영화 보셨을 겁니다. 자기 제자가 식물인간이 되니까 주사를 놔서 죽이는데. 그게 바로 안락사입니다. 그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생명을 끊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게 아니고 존엄사라는 개념은요. 항암치료 같은 이런 것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기에 가면 대단히 고통스럽습니다. 따라서 이 고통완화제. 모르핀 같은 거죠. 이런 것들은 맞습니다. 그러나 항암제라든가 또 인공호흡기, 인공영양투여기 이런 것들은 거부합니다. 끝까지 인간의 정신을 갖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죽겠다. 그런 마음과 생각을 갖고 최후를 맞이하는 겁니다.

 

~ 이제 끝날 시간이 됐습니다. 불경에 나온 얘기를 한 말씀 드리고 그만 끝내볼까 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체절명에, 또 피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인가를 한번 부처님 당시에 아들 잃은 여인이 찾아오죠?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좋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살려주겠다. 무슨 부탁이냐 그랬더니, 동네 내려가서 집집마다 안 죽은 집이 있는 곳에서 뭘 하나 받아와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 여인은 거의 혼절된 상태, 정신없는 상태라서 무조건 따라서 내려갑니다. 집집마다 돌아봤는데 물론 안 죽은 집은 하나도 없겠죠. 다시 부처님께 돌아옵니다. 와서 아~ 그런 집이 없습니다. 그런 말 하는 순간 이 여인이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죽게 된다. 이걸 받아들여야겠구나.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떤 서양학자는 그런 얘기를 해요. 부처님이 좀 냉정한 거 아니야? 어머니는 정말 마음이 찢어져서 왔는데 그렇게 돌아다녀 보고 그런 이성적인 행동을 권고한 게 좀 그런 거 아니냐? 좀 위로를 했어야 됐던 거 아닌가? 이런 재미난 품평을 하는 적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뭐 좌우간 다 좋은 해석으로 생각이 듭니다.

 

~ 이렇게 해서 왜 우리가 죽음을 생각해야 되고, 왜 죽음을 준비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죽음 자체에 대해서. 인간의 그 가장 궁극적인 문제. 이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종교도 나오지 않았을. 그런 죽음의 문제, 또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