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6월 12일 방송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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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_죽음이야기

2011. 12. 25.

  출처: 유나방송

안녕하십니까? 최준식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죽음, 왜 죽음인가? 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요. 말씀드린 데로 죽음과 종교 간의 문제라든가, 또 죽음의 공포, 슬픔, 또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또 한 번 말씀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 죽음이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라고 할 때요. 왜 그렇게 얘기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 인간이 서게 되면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

 

그러니까 우리가 죽음 앞에 섰을 때만이 평생 해 왔던 일들이 좀 세속적인 일이겠죠? 이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는가를 알게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전까지는 그 세속에서 하던 일, 가령 주식투자를 하고, 회사를 다니고, 부동산 투자를 하고, 또 회사에서도 승진하려 발버둥치고 말이죠, 또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뭐 이런 여러 가지 일들. 이런 것들이 그런 일을 할 때는 그 일만이 있는 거 같은 거에요. 우리가 사실 그 얼마나 목숨을 걸고 돈을 법니까? 그리고 얼마나 돈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합니까? 그때는 그런 일에 함몰돼서, 골프만 가지고 골프가 인생 전부처럼 생각을 하고 이렇게 보통 땐 삽니다.

 

그러니까 이런 세속적인 일에 함몰돼 있으니까. 그 인생의 의미라든가? 나는 누구인가? 신은 누구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선 별로 생각을 하지 않죠? 그런데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내가 얼마 뒤는 죽는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예. 무슨 불치의 병이다. 이런 선고를 의사로부터 받았을 때, 이때가 되면은 정말 내가 평생 해 왔던 회사에서 돈을 벌고, 주식 투자하고. 온갖 우리 인생의 일이라는 게 돈 버는 일 하고 관계되는 거거든요. 이것들이 사실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은 그런 일을 하러 온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죠? 이 죽음을 맞이해서 우리가 인생을 잘 정리해서 당하는 죽음이 아니고 맞이하는 죽음을 맞이해야 된다. 그때 가서야 인간 생, 인생에서 과연 어떤 것이 중요한가를 절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란 것은 마지막 성장의 기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말하는 마지막 성장도 보통 성장이 아니에요. 사춘기에 뭐 이렇게 성장하는 게 아니고. 정말 엄청나게 도약할 수 있는, 정말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거죠. 이렇게 좋은 기회를 약에 취해서, 아니면 더 현세에 집착하느라고 그렇게 그냥 소비, 낭비를 하는 게 이게 아주 안타깝다는 거죠.

 

우리 인생은 학습의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그런데 죽음을 맞이해서는 정말 좋은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때 와서야 우리 사람들은 아~ 인생이라는 것은, 우리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또 명예를 얻고 이것이 아니고. 남들을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남을 어떻게 하면 정말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지혜를 어떡하면 닦을 수 있을까? 지혜와 자비. 불교의 두 기둥이죠. 이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참 아쉽습니다. 이게 좀 미리 알았으면은 훨씬 좋았을 텐데. 죽음을 맞이해서 알게 되니 아쉽기는 합니다마는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우리가 죽기 전에 생을 마치기 전에 이게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가를 알게 되는 것은 그 당사자들에게는 굉장한 플러스가 될 겁니다. 여기서 제가 뭐 좋은 책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하는데요. 가톨릭 쪽에서 나온 책인데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그런 그림책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림이고 글은 별로 없습니다. 이게 무슨 주제인고 하니, 어떤 애벌레가 나무를 올라가는 거, 그 나무에는 온갖 애벌레들이 저 위로 올라가려고 막 올라가고 있습니다. 나무 끝에는 잘 보이지를 않아요. 구름 같은 게 있어가지고. 전부 다 위로 향하고 올라가고 있는 거에요. 그래 이제 주인공도 한 번 올락 봐야 되겠다. 올라가는 데 가관이죠. 자기가 먼저 올라가려고 밑에 있는 벌레를 발로 차고 죽이고 이런 식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눈치채셨죠? 바로 우리 사람들의 세속적인 삶을 얘기합니다. 무한정한 서로 경쟁하는 거,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그런데 무조건 위로 올라가는데 위에는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주인공은 거기까지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발견했던 건 뭐겠습니까추측을 하시겠죠? 아무것도 없습니다. 공이에요. . 이런 식으로 무한경쟁을 하면서 남들 괴롭히고 또 자기 자신이 괴롭고 이런 세속 삶이 끝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죠. 부처님도 그런 말씀하시잖아요. 당신이 세속에서 했던 모든 삶들 이런 쾌락이나 지식이나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죠.

 

이런 것들이 전혀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런 고하니 이 양반은 다른 인간들이 해 볼 수 없는 세속의 일들은 쾌락이라든가 누구보다도 많이 해본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다 해보니까 그거 별거 아니더라. 이게 가능한 거죠. 집착이 안 생기는 거에요. 우리는 뭡니까? 그렇게 못하죠? 뭐 그런 면에서는 부처님이 참 운이 좋은 분이다. 농담 삼아 말씀을 드려 봤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제가 지난 시간에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주위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뭐 인고 하니 죽음에 대해서 보다 더 본질적으로, 더 강하게 생각을 안 해봤단 얘기죠. 그 뭐 죽음 뭐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다가 죽을 때가 됐을 때 죽으면 되지 않느냐? 뭐 이런 얘기에요. 말은 맞죠. 그럴듯합니다. 죽기 전까지 죽음에 대해 생각 안하다가 죽을 때 확~ 죽어버리면 된다. 이런 거에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치 않은게요

 

제가 지인한테 들었습니다마는 제가 아는 분이 그 혼불을 썼던 최명희씨. 다 아실 겁니다. 이 분의 개인적인 영향이라는 거는 대단한 거겠죠. 대작을 쓰신 분이니까. 이 분이 책을 쓴 다음에 너무 힘들어서 큼 병을 얻으신 거죠. 그 병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에 지인의 손을 붙잡고 이러시는 거에요. ‘내가 하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좋으니까, 일용잡부 같은 직업을 가져도 좋으니까 하루도 더 살고 싶다. 지금 죽기 싫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래요. 바로 이게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장사 없습니다. 죽음은 너무나 두렵고 어려운 주제입니다. 이거를 우리가 미리 받아들이는 게 나을 거라 생각 돼요. 왜냐하면, 여러 가지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잘 증명 못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TV나 영화 같은 데서 너무 죽음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가령 말기암 환자의 침상을 보면 너무나 얼굴이나 이런 게 아름다워요. 아직도.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게. 중환자실 가 보면은 거의 시신과 다름없는 그런 얼굴도 제가 직접 가서 봤습니다만. 그런 경우도 있고.

 

또 뭐 가령 여담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용의 눈물이라는 그런 드라마가 있었죠? 거기 정도전이 마지막 최후를 맞이하는데. 거기 드라마는 어떻게 끝나는고 하니 이방원이 가서 정도전과 맞닥드려서 서로 왕권과 신권에 대해서 논쟁을 벌인 다음에 그다음에 이방원이 칼로 정도전을 죽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닙니다. 정도전이 자기를 죽이러 왔다는 소리를 듣고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 잡혀가지고 죽게 됩니다. 인간이 그런 거죠. 어떻게 자기를 죽이러 온 사람과 논쟁을 벌입니까? 명성황후도 그렇습니다. TV를 제가 잠깐 보니까 명성황후는 자리에 앉아서 일본 자객을 꾸짖고 이러면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게 묘사했더라고요. 그게 역사적 사실이 아니죠?

 

명성황후도 궁녀 옷으로 갈아입고 궁녀 사이에 있다가 피해 보려고 했다가 결국 발각이 돼서 죽게 되는 그런 것들이 우리 인간들이 죽음에 대해 갖는 자연스러운 태도다. 이런 말씀입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십시오. 귀신같은 것도 말이죠. 대낮에 밝은데 생각하면 하나도 안 무섭지 않습니까? 그까짓 것 뭐가 무서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요, 어둡게 되면 공연히 무서워지죠. 또 공동묘지 같은데 가면. 괜히 무서워지고 말이죠. 그런 죽음이라든가 미지의 것에 대한 엄청난 공포가 인간 내면에는 있다.

 

전 그렇게 얘기합니다. 공포 가운데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제가 보기에 가장 최고 같애요. . 다른 공포, 내일 뭐 시험 봐야 되고, 뭐 기압을 받아야 되고 이런 공포는 죽음 앞에 가면 다 힘을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이 어떻겠느냐? 아까 저는 드라마에서 너무 미화한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굉장히 그 정나라하게 리얼하게 묘사하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 영화나 소설, 제가 그 대학 때 읽었던 소설 가운데 레마르크 개선문의 작가죠? 이 사람이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소설이 있습니다. 여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적나라하게 써놨는데요. 신병들 얘기입니다.

 

신병들은 전투에 투입되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밖에 나가기만 하면 죽는 거죠. 포탄총탄 막 날라 오지 않습니까? 어떤 정신병이 있는고 하니 이렇게 두려움에 떨던 신병들이 갑자기 밖으로 달려나간답니다. 너무 무서워서 참지 못하고. 그때 고참이 무슨 처치를 해 줘야 되죠. 이렇게 소설에 보면 이렇게 공황상태에 든 신병이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마침 포탄이 터져서 신병이 뼈살피가 바위에 주르룩 흘러내린다. 이런 아주 적나라한 표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또 영화로서는 제가 감명 깊게 봤던 죽음에 관해서 봤던 게 스필버그감독이었죠?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내용은 좀 웃깁니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조명을 받았는고하니요. 앞부분 30분 정도에 상륙작전을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했다. 지금까지 나온 전쟁영화 가운데에서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했다. 이런 평가를 받습니다. 보신 분은 아실 텐데. 모선에서 수륙양용차로 사병들이 건너 타죠. 그 안에서의 사병들의 이 반응을 보면 계속 성호를 긋는 사병도 있고, 어떤 사병은 토합니다. 불안해서 미치는 거에요. 어떤 사람은 심지어 그 자리에서 오줌을 쌉니다. 젖으면서 말이죠. 화면에 나타납니다. 바지가.

 

~ 그럴 수밖에 없겠죠. 이제 해변까지는 약 한 1분도 안 걸립니다. 1, 2분밖에 안 걸려요. 그리고 딱 거기서 수륙양용차를 벗어나면 그때부터 총탄세례가 밀려옵니다. 분명히 내가 죽을 확률이 큽니다. 이럴 때 절체절명의 공포감. 대단한 거죠. 여러분들 한 번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문제. 정말 구체적인, 확실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요 항우장사 없습니다. 방법이 없어요. 아무리 힘이 강하고 돈이 많고, 아무리 돈이 많은들 죽을 때 동전하나 토큰, 십원 자리 하나 가져갑니까? 부동산 재벌은 땅한 평 가져갑니까? 그냥 가는 겁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갑니다.

 

이렇게 죽음이 공포로 다가오는데 어떤 면에서 공포인지. 그 이유를 제가 나름대로 한 3가지 정도 정리해 봤습니다. ~ 첫 번째는 역시 가장 큰 공포라 생각이 드는데요,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저도 꿈속에서 한 번 이런 경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죽은 거에요. 그럴 때 어찌나 허무하고 슬프고 공포가 밀려오고, 이러는지 막 목 놓아 울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제가 관 속에서 죽어서 있더라고요. 사실 그 꿈은 다른 식으로 해석을 해야 되는데. 어떻든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엄청난 생각입니다. 엄청난 공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