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6월 12일 방송 (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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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_죽음이야기

2011. 12. 25.

  출처: 유나방송

두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입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살 수가 없죠. 어떤 인간도 아무리 부처님도 수행하실 때 다섯 명의 동료도 같이 있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길만 혼자가신 거죠.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이런 사랑하는 사람. 특히 이때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족들이겠죠? 이 사람들과의 이별. 자기 혼자되는 겁니다. 사무친 고독을 느끼게 되고 거기에 대한 공포감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거예요. 알 수가 없죠. 사지로 죽는 땅으로 떠나는 거니까.

 

우리가 식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그래서 공항에서 이별을 한다. 그때도 아주 슬픕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연락할 수가 있고 또 만날 수가 있죠. 그러니까 슬픔은 아주 클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죽음은 기약이 없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 슬픔에, 이 슬픔도 굉장히 크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서 이제 내가 혼자된다는 생각, 이것은 굉장히 큰 공포로 다가오게 됩니다. 사실은 꼭 이렇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죽음 뒤의 생, 사후생 말씀드릴 때 이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이거죠. 죽은 다음의 세계에 대한 무지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지한 대상,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요. 항상 공포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유령이라든가, 귀신, 이런 그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 큰 공포를 갖게 되는 게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은 외계를 파악하고 있고, 분석하고 있고, 나름대로 체계로 정리하고 있어야 불안하지 않지. 전혀 모르는 존재,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이 말이죠. 그것도 그래요. 외계인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까 영화에서 묘사할 때 어떻게 합니까? 전부 아주 추악한 그런 동물처럼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 UFO 외계인이 있다면요. 외계에서, 먼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 어떻게 그렇게 추악할 수 있겠습니까? 동물처럼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인간들이 무지의 대상을 그렇게 공포스럽게, 무섭게 그리는 외부투사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어떻든 제가 한번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가 아프리카든, 밀림, 오지에 좌우간 우리가 비행기를 탔어요.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요. , , , . 다 가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딱 떨어뜨려 놓고 다 사라졌습니다. 아프리카 오지 같아요. 아무것도 몰라요. 이 주변에 대해서. 이럴 때 느끼는 공포감. 바로 이런 게 내가 죽는데 도대체 내가 죽어서 또 존재하는 건지. 마는 건지. 전혀 지식이 없습니다. 이럴 때 인간들은 큰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이 죽음에 관해서 불교 얘기가 많죠. 이런 공포감을 느끼고 이럴 때에 인간은 어떤 굉장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저는 이것과 관계해서 경허스님 얘기를 많이 합니다. 여러분 다 아실 거로 생각이 드는데. 경허스님이 금강경인가요? 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시는 분이었죠. 항상 경을 갖고 다니고. 그러다가 그 동학사 근처라고 그랬던가요? 그 어디 마을에 들어갔는데 역병,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간 거에요. 마을에 사람의 자취가 없고, 죽음만 그 죽음의 유령만 배회하는 이런 마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경허가 죽음을 직면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죽음을 극복하는 거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에 이 경허스님이 책을 다 버리고 참선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바로 이런 역할을 합니다. 죽음이라는 게. 이게 굉장히 예민했던, 감수성이 강한 이런 분이니까 가능했던 거 같애요. 그다음에 전 일본의 도겐스님 예를 듭니다. 도겐스님은 일본의 원효라고 하는 그런 분이에요. 일본의 조동종, 일본에서 가장 실력이 있다. 그럴까? 유명한 종파이기도 하죠. 소토젠. 조동선이라고 하죠.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지금 현재 세계적인 불교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 그런 스님입니다.

 

이 분이요. 7살 때 자기 부모들의 그 화장하는, 화장을 했는데. 부모들이 타게를 해서. 그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고 출가를 했다는 거예요. 전 이분 얘기를 할 때, 혹은 들을 때마다 저 정도는 돼야 우리가 종교적으로 좀 예민한 그런 감수성이 강한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예민하지를 않죠? 아주 무딥니다. 공동묘지를 봐도, 장례식장을 지나가도, 그냥 죽음에 대해서 그게 그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좀 우리가 감수성이 예민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요. 죽음 자체에 대해서 한 번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죽음이라는 거는요. 인간의 죽음. 어느 순간에 죽는 이런 게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삶의 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순간이 아니고 죽음이라는 것은 과정이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제가 전 시간에 말씀드렸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이 분의 책이 On Death And Dying. 우리말로 번역하면 죽음과 죽어감. 이렇게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죽어감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dying. 죽어가는 과정. 그리고 이거는 죽음이라는 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말이죠.

 

죽어가는 과정을 이런 것은 칠판에 좀 도표를 그리면서 설명해 드리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텐데 방송이라서 좀 안타깝습니다. 죽어가는 과정은 어디서부터 보는가 하니 평상시 삶은 여기에 일단은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다 불치의 병, 큰 노환이 걸렸을 때. 이것을 우리가 의학적인 용어로는 비가역적인 순간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다시는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지난번 말씀처럼 간암 3기다. 이렇게 얘기할 때 더 이상 못 돌아가는 거죠. 거기서부터 죽 죽음 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죽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죠.

 

그런데 이 비가역적 순간부터 죽음까지도 우리가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게 있습니다. 뭔고 하니 의식이 있을 때와 의식이 없을 때. . 다릅니다. 이거는 또. 의식이 없게 되면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 준비에 대해서 문제가 생기게 되죠.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죽음 이후의 문제가 또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문제. 뭐 개인적으로는 뭐 사후생의 문제. 또 가족들에게는 장례제례문제가 있죠. 제사문제. 이런 것들. 또 죽은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그 상실, 자기 배우자, 혹은 부모님 떠나 보내고 말이죠.

 

상실에 문제. 어떻게 상실을 극복을 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사실 이렇게 제가 간단하게 얘기합니다마는 굉장히 그 광범위한 주제입니다. 죽음 성격도 말이죠. 죽음 원인이 다 다릅니다. 크게 나눌 때는요. 자연사 노환으로 죽는 겁니다. 병사가 있겠죠? 질병사. 자살. 크게는 이렇게 3으로 나눕니다. 그런가 하면 또 누가 죽느냐? 이게 또 다르죠. 부모님이 죽었을 때 자기 배우자가 죽었을 때, 그다음에 자녀가 죽었을 때. 또 다릅니다. 이런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상실, 또 이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 이런 것들이 다 달라지게 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은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린 거고. 고 전에 다시 건강을 찾지 못하는 그런 과정이 있었죠? 그건 바로 의료진과 관계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정리하는 그런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는 당사자는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이며,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낼 때 또 어떤 식으로 서로 간의 관계를 가질 것인가?, 이런 문제. . 그다음에 의료진의 문제가 있겠죠.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어떤 식으로 돌봐야 될 것이며.

 

예를 들어서 그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 알려줄 것인가? 이런 문제. 사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연구가 되고, 또 지침이 만들어지고 그러면 좋겠는데 아직 한국에는 그런게 돼 있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의료진뿐만이 아니고 호스피스 사들도 있습니다. 간호사들이 주로 합니다마는 호스피스사는 어떤 식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볼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 사회에서 보험이라든가 또 장례. 제례를, 특히 장례겠죠. 장례를 하는 상조회사 이런 게 많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중요하게 됩니다. 죽어가는 것을 준비하기 때문에요.

 

우리가 비가역적인 순간을 맞이했을 때 다시는 건강을 되찾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의사들은 조심스럽게 내립니다. 그래서 이게 또 확실히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만 대체로 70~ 80%는 정확하게 내린다고 그래요. 이런 판정이 났을 때 우리 그 당사자와 가족들은 호스피스 도움을 받고, 치료를 중단하고 말이죠. 그다음에 삶의 정리 기간을 가질 것인가? 그러나 이때도 진통제는 계속 맞게 됩니다. 아니면 치료에 끝까지 매달릴 건가? 이런 거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준비를 택해야 되겠죠.

 

그리고 의식이 있을 때는 내가 의식이 없어진 다음에 그 연명, 연명기구, 그러니까 인공호흡장치라든가, 인공영양제주사, 영양공급장치. 이런 것도 쓸 건지 말건지. 이런 것들도 결정해야 됩니다. 이런 것들이 통제적으로 인간이 죽어가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다. 여기에는 말이죠. 본인부터 해서 가족적인 문제. 의료의 문제, 또 보험 같은 사회적인 문제. 장상례. 장례적인 문제. 굉장히 범위가 넓은 그런 문제입니다. 죽음문제라는 게. . 우리가 죽음문제를 간단하게 보지 말고, 이렇게 넒게 보고 천천히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 이렇게 해서 두 번째 강의를 마치게 되겠습니다. ~ 다음 강의에서는 죽음이 현대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데 현대인들은 죽음을 어떤 상황에서 맞이하는가? 또 현대인들의 죽음관은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런 거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