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53회 노숙자에게 주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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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1)

201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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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행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다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에요. 내 문제지. 내가 줄 때 사실은 그거 천원, 안 그러면 인도 같으면 아주 적은 돈을 줘놓고, 상대가 감사하기를 바라고, 고거 받아놓고는 다시는 안 받기를 바라고. 자기만족이죠. 그 아이가 한 백만 원 줘 버렸으면 두 번 다시 달라는 소리를 안 할 거에요. 백만 원 아니라 십만 원만 줘도, 십만 원 아니라 만 원만 줘도. 두 번 달라고 안 그럴 거다. 이 말이오. ??말하면 10원짜리나 50원짜리를 주기 때문에 그 아이가 십 원 받고 오십 원 받고 살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구걸을 많이 해보면 주는 사람이 주지 안주는 사람이 주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주는 사람 주위에 자꾸 따라다니게 되고, 또 자기들끼리 누가 줬다 하면 금방 연락을 해가지고 저 사람 주더라, 저 사람 주는 사람이다. 해서 금방 몰려옵니다. 그래서 주면 여행이 곤란해요. 자꾸 몰려오기 때문에. 그런 원리거든요. 그게. 그러니까 다만 줄 뿐이라야 됩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그냥 주는 거요. 그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안 되고 그거는 그들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불편하면 주고, 내가 불편 안 하면 안 줘도 되고.

 

내가 안 준다고 그 사람이 나한테 욕 안 하고 내가 준다고 해서 그 사람 특별히 고마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게 그 사람들 문제인양 생각하니까 내 문제거든요. 하루 한 끼 선행해야 되는데, 오늘 ?도 좀 써주고 짐도 좀 들어주고 하는데, 뭐 이것도 일어서줄 사람도 없고 짐 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마침 구걸이라도 하니까, 내 문제가 오늘 해결이 됐잖아. 그러니까 내 문제 해결됐다고 기뻐서 아이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냥 천원 주고 말면 되는 거지. 그걸 가지고 뭐 그 사람이 어쩌뚱 저쩌뚱. 그 사람 말이 맞지.

 

그걸 갖고 어떻게 사느냐? 25만 원 받고 어떻게 살겠어요? 그러니까 구걸을 해서라도 보태야 살 거 아니겠어요. 저도 이 구걸하는 거 참 안 좋게 생각하는데, 그 둥게스리 우리 학교에 장애자, 장애자출신이 있어요. 학교 다닐 때는 휠체어도 사주고 뭐도 사주고 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장애자니까 노동을 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장애자를 위한 무슨 직업 훈련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장애자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면 장애자가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구걸 아닙니까? 그죠?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요. 이렇게 있으면 얼마 버느냐? 이랬더니 인도 돈으로 1달라가 한 50루피 되는데, 어떤 날은 30루피도 벌고, 어떤 날은 50루피도 벌고, 또 마음씨 좋은 사람이 지나가면 100루피짜리 하나 주면 그날은 횡재하게 되는 거고. 이 사람에게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하루에 팔아서 매상이 얼마 올랐느냐 같은 거와 같이 그게 하나의 삶의 방식이에요. 그런데 구걸하지 말라는 것은 그 사람의 직업을 뺏는 거나 다름이 없는 거죠. 그 사람에게는 그게 직업이에요. ? 그 외에 달리 직업을 가질 수가 없으니까.

 

그럴 때 우리가 그가 이 직업을 안 갖고도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직업을 갖도록 권유하고, 구걸을 못하도록 교육하는 게 옳지마는 현재 상태에서 그는 그 외에는 어떤 수입 수단이 없고,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할 때 그 사람 편에서 보면 그것은 그냥 하나의 생계수단이다. 그래서 그럴 때는 그게 안 주는 게 꼭 좋은 거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 관점에서는 주는 사람은 뭐다? 고마운 사람이고, 안 주는 사람은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거사님께서 그 돈을 갖고 그가 어떻게 쓰는 문제는 그들의 인생이고. 그냥 내가 안 됐다 싶으면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으면 주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안주면 되는 거고. 선행을 천원 주는 거로 하지 말고 딴 걸로 하면 되지. 그게 좀 주는 게 안 좋다 싶으면, 선행을 딴 걸로 하면 되고. 그다음에 또 노인이나 장애인이나 와서 주는 게 필요하다 싶으면 주면 되는 거고. 저도 처음에 인도여행에서 이런 문제에 많이 부딪쳤어요.

 

제가 JTS를 설립한 것도 이런 고민 때문에 설립한 건데. 결국은 처음에는 안주는 나를 보고, 그래서 두 번째는 나를 바꿔서 주고, 그 주는 것이 게들에게 거지가 되는 것을 보고, 다시 또 안 주는 거를 선택을 했고. 안 주는 것을 선택했을 때 그들의 생계가 막막한 걸 보고 결국,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고뇌하다가 찾아낸 게 안 줄려고 하는 거는 내가 반성이 되는 거고. 준다, 주면 내 문제만 해결이 되지 그 사람의 문제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문제이니까. 이것이 나쁘지 않게 좋게 줄 수 있는 방법이 뭐겠느냐?

 

그게 병원을 지어서 치유하게 하거나, 학교를 만들어서 아이들 학교를 다니게 하거나. 이런 어떤 그것이 일종의 거지를 만드는 쪽으로 사용되는 게 아니고, 뭔가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거름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결국 찾게 돼서 시작한 게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구호활동이다. 우리가 하루에 천원 내는 거 자체는 그 천원 갖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마는. 우리가 만약에 만 명이 하루에 천 원 씩을 낸다면 하루에 얼마씩 생기는 거요? 천만 원씩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그죠? 그렇다면 그것은 큰일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거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찾으니까 구걸하는 사람한테 주는 거 빼고 다른 길이 없지마는 우리가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함께 힘을 합하게 되면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첫째 최소한 나를 위해 천 원 이상 보시를 하라 했던 거고. 여기서 하루 한 가지 좋은 일을 하라고 했던 거는, 보시는 이미 하루에 천 원씩 내기 때문에 보시를 포함하지마는 보시를 뜻하는 거는 아니고 봉사를 뜻하는 거요. 봉사를.

 

그러니까 짐을 들어주든 자리를 비켜주든, 화가 나는 걸 한번 참아주던, 어쨌든 상대를 배려해서 상대에게 이익이 되도록 내가 뭔가 하는 것, 이것을 여기서 하루 한가지 이렇게 말하거든요. 하루 한가지란 꼭 그런 작은 것 한가지란 개념보다는 봉사를 해라. 하루 한 가지를 배려 못하면 일주일에 하루 정해서 조금 몇 시간을 어때요? 봉사를 한다든지 이런 정신을 말해요.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하루 한가지 이상은 자기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한번 해 봐라. 사람이 살다 보면 늘 자기만 생각하고 살게 되거든요.

 

부부지간에도 온통 자기만 생각하잖아요. 늦게 온 남편이 얼마나 오는데 힘들었는지를 고려하는 게 아니고, 내가 기다리는데 니 안 왔다. 이것만 생각을 하게 되는 거고. 집에 있는 아내가 저녁밥 상을 차려놓고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전혀 고려 안 하고. 들어와서 그냥 밥 먹었다. 필요 없다. 안 먹을 거다. 간단하게, 내가 먹었으면 안 먹을 거다. 내가 안 먹었으면 12시 되도 밥 내놔라. 오직 자기 욕구밖에 생각을 안 하는 게 우리 인생이란 말이오. 부부지간에도.

 

하물며 이 세상이 어떻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조금씩 내 봐라. 그러면 고게 바늘구멍 같지만은 그것이 점점 커지게 되면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래서 하루 한 가지 이상 봉사해라. 좋은 일 해라. 이런 수행의 지침이 주어진 거요. 이것은 남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러므로 해서 누가 보람이 있어진다? 내 삶이 보람이 있어진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 이런 뜻이에요. ~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