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6월 26일 방송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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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_죽음이야기

2012. 1. 8.

  출처: 유나방송

. 안녕하십니까? 최준식입니다. ~ 우리가 죽음에 대한 강의, 3강을 끝내고 4강째가 됐습니다. 이번 시간에는요, 인간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조금 좀 어려울 수 있는 주제이기는 합니다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 그런 고하니 인간만이 죽음을 아는 동물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죽음을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출발이 되고 이렇게 되는데요. 이상하게도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거 같아요. 이 주제에 대해서.

 

그러나 중요한 문제니까 오늘 한 번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여기서 먼저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에 대해서 한 번 얘기를 해 볼까요? 뭐가 다를까요? 흔히들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최영의 존재다. 가장 높은 영을 가졌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러냐? 보통 도덕심을 가졌다. 뭐 이렇게 얘기도 하죠. 특히 유교에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不忍之心불인지심이다. 시위지심이다. 사단의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죠. 그러면 그 다음 질문은 그럼 왜 인간만이 도덕심을 갖게 됐느냐? 도덕심만이 아니죠. 문화. 인간만이 문화를 갖고 있죠.

 

까치는요, 수백만 년을 집을 지어도 똑같이 밖에 못 짓습니다. 인간은 그렇지 않죠.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왜 문화가 가능할까? 이런 것들, 과연 어떤 인간의 조건이 이런 인간의 현상을 만들어 내느냐? 이런 질문입니다. ~ 이제 제가 인간만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은 바로 반론이 들어옵니다. 동물도 알고 있다. 어디서 아느냐? 그러면 도살장의 소가 끌려가기 싫어 가지고 바로 앞에서 그런 모습.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고. 자기 새끼가 죽었을 때 슬퍼하기도 하고. 그런 예를 듭니다.

 

저는 그런 반론으로, 그러면 소가 자신이 죽는 사실을 안다면 왜 평상시에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느냐? 왜 꼭 죽음이 임박했을 때만 죽음, 그런 앤티의 반응을 보이냐? 이거에요. 그러니까 결론으로 말씀드리면요. 동물들이 죽음을 그렇게 아는 건요, 아는 문제가 아니고 느끼는 거다 이거죠.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 인간들도 뭐 기계적인 반응할 때가 많습니다. 가령 우리가 운전을 할 때 빨간불이 들어 오면은 브레이크를 밟잖아요. 우리가 생각하고 밟는 게 아니잖아요. 느끼고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동물도 이런 수준이겠다. 이거죠.

 

만일에 동물들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런 경우 어떻게 설명합니까? 닭장 있죠. 닭 파는 집에서 닭을 하나 잡아서 손님한테 팔려고 닭을 하나 닭장 속에서 꺼냅니다. 그런데 다른 닭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만약 인간들이라면 아~ 오늘도 내 동료가 하나 잡혀가는구나. 나도 언제 저런 꼴을 당할지 모른다. 뭐 이런 것과 더불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여서 뭐 공황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소리를 지르고 말이죠. 그런 거 있죠. 예전에 안기부, 정보부에 붙잡혀 갔을 때요, 국정원에 붙잡혀 가서 고문을 당할 때, 어떤 고문은 고문할 필요도 없다는 거죠.

 

? 옆방에 있는 동료를 고문할 때 나는 소리만 들려줘도 엄청난 공포, 고문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 ~ 나도 저렇게 당하겠구나. 저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공포. 인간만이 이런 공포감,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이지. 아는 거죠. 동물은 그런 게 없겠다. 침팬지하고 우리가 무슨 DNA98%가 같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침팬지는 동물은 동물이에요. 아무리 같아도 마지막에 몇 개만 다르다 그러죠. DNA구조가. 침팬지는 모릅니다. 자기가 죽는다는 거를.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어디 죽는 집단적으로 죽는 장소에 가서 조용히 그냥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인간들은 어떻게 하느냐? 동물과 다릅니다. 이게 네안데르탈인 유적에서 발견이 됐는데요, 어떤 유적을 발굴해보니까. 가운데는 아이의 시신이 있었던 거 같고, 해골이 뼈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주변을 동그랗게 돌을 돌려서 쌓아놓고, 한쪽에는 꽃가루가 남아 있었다는 거에요. 이건 분명히 뭡니까? 장례의례를 한 겁니다. 바로 장례의례를 한 흔적을 보이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인간들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거, 다른 사람도 죽지만 나도 죽는다는 걸 아는 그런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 가운데서 아무리 침팬지가 고래가 똑똑한다고 한들 이런 식의 의례를 하는 게 있습니까? 저는 그런 사례를 접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조금 더 철학적으로 얘기를 하면, 인간만이 자아의식,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만이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 겁니다.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되는 거에요. 살고 있고 없고는 상대적인 개념이라 항상 같이 가는 겁니다. 하나만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영어로는 自己意識자기의식을 Self-conscioussess, 혹은 Reflective conscioussess.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인간만이 주체적 자기와 객체적 자기. 자아의식이 둘로 분열이 되는 겁니다. 생각하는 나와 생각되는 나.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요, 나는 내가 너무 싫어요, 이럴 때 말이죠. 나는 내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 나는 주체적 나고, 뒤에 나는 객체적 나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만이 자기를 미워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죠? 자기를 속일 수가 있고. 그게 바로 둘로 나눠지게 된다. 이런 얘기는 불교 유식론에서 다 하던 얘기입니다. 이거보다 더 정교한 얘기가 유식론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자살을 할 수 있습니다. ? 자기를 객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어떤 분들은 고래도 자살을 한다. 해변가에 나와서 떼죽음하는 게 바로 자살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거는 제가 보기에는 자살이 아니고 어떤 해류라던가 어떤 정보의 교란으로 인해서 잘못돼서 나왔다가 죽는 거죠. 고래가 인생이 비관을 느끼고 난 죽어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온 거는 아니다. 그런 말씀입니다.

 

만일 개가 인간처럼 자아의식이 있으면요, 개를 야단치잖아요. 그러면은 막 구석으로 가가지고 말이죠. 햄릿처럼 살아야 될까? 말아야 될까? 이런 생각을 해야 되요. To be or not to be. 존재 할까? 말아야 될까? 그런 개는 하나도 없죠. 요새 뭐 애완견 키우는 게 유행입니다만 가끔 보면 개를 아들딸이라고 부르고, 이런 분들도 있어요. 그게 조금 좀 이상하더라고요. 개와 인간은 종이 다르고, 진화의 차원이 다른 건데, 그렇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재미있게 생각이 됩니다.

 

그다음에 인간만이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문화가 가능하다. 인간만이 예술행위를 할 수 있다. 미의 가치입니다. . 문화. 크게 나누어 크게 볼 땐 문화에 대한 얘기죠. 인간만이 미 감각을 가지고 있다. 동물한텐 이런 게 없죠. ~ 그러면 어떤 증거로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어떤 확실한 증거로 인간만이 자아의식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는가? 확실한 증거가 뭔지 추측하시겠죠? . 언어입니다. 언어. 인간만이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은 그 언어를 통해서 추상개념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 반론을 하는 사람들은 그럽니다. 동물도 언어가 있다. 그건 동물적인 언어입니다. 하나의 기호에 불과합니다. 기호입니다. 침팬지가 500여 개의 언어를 갖고 있다고 그러는데, 칼은 뭐고, 이런 식의 상응하는 거죠. 거기에서 무슨 추상적인 개념을 끌어내고 이런 건 전혀 없습니다. 우린 인간들은 어머니, 그러면은 어머니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추상적인 개념이 오죠. 감정이 오죠.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은 인간만이 가능한 거다.

 

이것과 관련해서 말씀드릴게, 자아의식은 반드시 인간사회에서만 커야 갖게 되는 겁니다. 동물 사이에 있으면 안 됩니다. 발전이 안 됩니다. 제가 조금 있다가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구요. 인간은 그 동물과는 종이 다른 건데, 그렇다고 인간만이 잘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는 인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죠. 그때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은요, 무슨 말씀인고 하니, 인간만이 자연을 거역하고, 또 시간개념을 갖고 있다. 이런 얘깁니다. 이건 무슨 얘기인고 하니 자연을 거역한다는 얘기는요, 본능을 거역할 수 있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인간만이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객체화시킬 수, 대상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본능까지도 거역을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이런 거죠. 사자들은 초원에 있을 때요,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지만 동물들은 배고프지 않으면 절대로 안 먹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같이 살게 된 개들, 이런 동물들은 그런 원래 감각을 잃어버리고 비만이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러나 야생에 있는 동물 가운데서 비만에 걸린 동물 보셨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사자, 그 옆의 사자의 먹이인 얼룩말들이 즐비하게 있지 않습니까?

 

사자는 자기가 배고프기 전에는 절대로 먹지를 않습니다. 2~ 3일 그냥 갑니다. 한 번 먹고 난 다음에. 그런데 만일 거기 인간이 있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있는 대로 말을 잡아서 그 고기를 냉장고에 저며 놓고 자기만 먹으려 그러고, 비싸게 팔려 그러고, 아마 이런 일을 했을 겁니다. 욕심이죠. 욕심이 바로 자아의식에서 생기는 겁니다. 인간은요, 목이 안 말라도 물을 마실 수가 있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성욕이 발동이 안 돼도 이성과의 관계를, 성적인 관계를 할 수가 있습니다. ?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고, 조작하기 때문에. 비만도 그런 겁니다. 분명히 위는 창자부터 위도 다 차고, 식도까지 다 찼는데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요. 아직 더 들어갈 공간이 있다. 뱃속에. 그래서 또 먹는 거에요. 그럼 또 들어갑니다. 그게. 이런 게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방증, 자료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가령 상상임신 같은 것도 그렇죠. 얼마나 인간의 의식이라는 게 교활하고 조작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가? 그래서 불교에서 바로 인간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고 조복하고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 이게 깨달음의 징표 중에 하나라고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