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7월 3일 방송 (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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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_죽음이야기

2012. 1. 15.

  출처: 유나방송

그러다가 이 사람이 이제 내가 일 개월밖에 안 남았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러다가 바로 어린이들 공원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주부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며칠 만에 이 사람은 다시 구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만사 제쳐놓고 이 공원을 만드는 일에 투신하게 됩니다. 자기보다 하급 관료들한테도 굽실거리면서, 좌우간 한 일에 성취를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한 달이 지나서 공원이 완성이 되고. 이 주인공은 공원에 만들어 놓은 그네에 앉아서 밤에 아주 흐뭇한 얼굴을 하고 그네를 타고 그다음 날 죽는 것으로 영화가. 사실은 거기서 영화가 끝이 나는 건 아닙니다. 그다음에 장례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옵니다만 어떻든 거기서 영화가 끝이 나게 됩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그런 거죠. 우리가 아무리 30년 동안 성실하게 살았어도 결국에는 중요한 것은 사랑, 자비이고. 이 주인공은 죽음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가장 심오하지만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만일 이 사람이 위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런 아무것도 아니지만 엄청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죽게 됐을 겁니다. 제가 말씀을 드렸죠. 죽음이라는 것은 마지막 성장의 기회. 성장도 그냥 성장이 아니고 점프죠. 도약입니다. 몇 단계 그대로 도약해버리는 그런 기회입니다. 바로 그런 기회로 죽음을 이용해야 된다. 그럴까요? 그렇게 말씀을 하겠습니다. 그런 죽음에. 성장의 기회를 거의 생각지 않고 있는 우리들은 대단히 불행한 거겠다. 그러니까 말이죠.

 

50년을 아무 생각 없이 사느니, 암 판정을 받아서 일 년을 받았다고 치시죠. 그 일 년을 지금처럼, 아까 이끼루 일본영화의 주인공처럼 확실하게 인생을 깊게 깨우치고 간다면 과연 어떤 인생이 더 보람된 인생이겠냐? 이 말씀입니다. . 그건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영화 얘기는 그 정도하고요. 제가 또 이런 영화나 문학작품 이런 얘기 있으면 중간중간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드디어 우리 주제에 도달했습니다. 죽음 이후에 관해서. 죽음 이후는 과연 존재하는가? 사후생은 존재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찬반 이론들이 아직도 많이 있어왔죠. 찬성하는 쪽의 이론은 역시 종교가 많겠죠? 종교 가운데에서는 죽음 뒤의 삶에 대해서 부인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 그러면 불교도 우리가 죽은 다음에 중음계에 가게 되죠. 중음. 그러니까 이생과 저생, 내생이죠. 그 사이에 있는 중간이라 그래서 중이라 그러고, 음이라는 것은 육체는 양으로 생각한다면 영체, , 음으로 생각해서 중음신, 혹은 그 세계를 중음계. 이렇게 애기를 하죠. 힌두교도 비슷합니다. 윤회전생.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윤회전생, 삼생인과. 당연히 내세가 존재해야 되겠죠.

 

그다음에 이집트에 나오는 사자의 서, 티베트에도 사자의 서가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이집트에도 사자의 서가 있고, 그다음에 피라미드에 보면 거기 오시리스 신이 제일 유명하죠. 그 죽은 다음에 죄의 심판관으로서 그 사람의 선한 악행이 있는 것들을 저울에 재는 그런 모습이 나오죠. 그런 모습들. 그다음에 고대 무덤에서 보면 순장제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게 죽음 뒤에도 이 무덤 안에서 계속 생활할 거다. 이런 생각 때문에 만들어진 장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기독교는 당연히 천당과 지옥이 있겠고, 이슬람도 비슷한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은 아주 낙천적인 또 쾌락이 넘치는 그런 천당을 묘사한 것으로써 이름이 높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 제가 무슨 말씀 드리는가 하면 말이죠. 이슬람에 보면 자살테러라는 게 있죠? 자기 몸에 폭탄을 칭칭 둘러매고 자살하는 겁니다. 이런 게 가능한 게 왜 그런고 하니 말이죠. 이슬람이 이런 교리가 있습니다. 지하드, 성전, 쎄이크리드 워즈, 이런 개념도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자기 목숨을 바쳐서 죽게 되면, 이슬람교를 위해서 죽게 되면 죽어서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쾌락이 넘치는, 남성에게는 미인의 여성들이 즐비하다든가. 뭐 음식, 이런 것들이 모든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천당이 있다고 설하기 때문에 그런 자살 테러가 가능하다고 우리들은 얘기를 합니다. ~ 어떻든 이렇게 과학이 발전하기 전까지의 우리 인류들은 사후생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죠. 수만 년도 되겠습니다.

 

왜 그런 고하니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네안데르탈인도 죽음 의례를 갖고 있었고 말이죠. 나름대로 죽음관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사후생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대부분 종교를 통해서입니다. ,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각 종교의 사후생을 긍정을 했고, 또 나름대로 사후생에 대한, 영계에 대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각종교가 갖고 있는 죽음과는 대단히 도그마적이다 말이죠.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각 종교에 치우친 이런 도그마가 많이 나왔다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천당보다는 지옥에 대한 묘사가 많죠.

 

예를 들어서 기독교. 그러면 여러분 다 아시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죽어서 유황불이 부글부글 거리는 그런 지옥에 빠져서 있다가 최후의 심판에 다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다시 한 번 심사를 해가지고 영원히 지옥에 있게 하겠다. 이런 교리 같은 거요. 굉장히 도그마적인 이야기죠. 그런데 이게 참 문제는 서양기독교는 이런 교리를 많이 탈피를 한 거 같애요. 그런데 아직도 한국 기독교는 그런 것 같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기독교는. 종교문제는 다시 말씀을 드리든가 할 텐데. 그다음에 가톨릭은 연옥이란 개념이 또 있죠. 천당과 지옥으로 갈라지기 전에 중간역이에요. 거기서 잠깐 쉬었다 가는 그런 이야기.

 

그런데 말이죠. 이번 주제와 꼭 직결되는 문제는 아닌데요, 기독교나 유대교에서 갖고 있었던 또 이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개념이라든가 천당개념, 또 천사. 유일신, 또 최후의 심판. 이런 것들이 원래 기독교에는 없습니다. 이건 제가 얘기하는 게 아니고, 신학자들이나 종교학자들이 다 연구된 바로 연구된 바에 의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어디서 이런 개념들이 왔을까요? . 쥬라스타교입니다. 쥬라스타교는 지금 현재 전 세계에는 배화교라고도 하죠. 배화교. 불을 숭배한다. 조금 문제가 있는 용어입니다마는 전 세계에 얼마 많지를 않습니다. 신도가. 그런데도 중요한 것은 바로 이슬람교, 기독교, 그다음에 유태교의 근간을 이루는 교리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아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이 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 그럼 불교는 어떨까요? 불교의 내세관. 참 재미있죠. 염라대왕. 여러분 다 아시는 것처럼 심판관이죠. 야마. 인도말로 야마라고 그러고, 그게 중국으로 들어왔고 염라라고 의역이 됐죠. 그다음에 명부전 같은 곳에 시황, 열 사람의 왕 가운데서 하나, 역할을 차지하게 됩니다. 물론 불교의 시황전, 열 사람의 왕은 그건 도교적인 교리입니다. 불교엔 그런 게 없었죠. 원래는. 그러나 중국 도교와 섞이면서 그런 것들이 나타납니다. 그다음에 명부전에 보면 거기에 벽에 지옥 그림들이 많이 있죠. 대표적인 게 통도사에 있는 명부전에 있는 그림이라 그래요. 제가 직접 눈으로는 확인을 못 해봤고. 책을 통해서만 봤습니다.

 

거기 보면 한빙지옥, 굉장히 추운 곳인데 홑겹 옷만 입고 덜덜 떠는 그런 지옥이라든가, 칼산지옥. 산에 칼이 있어가지고 말이에요. 뾰족뾰족 계속 찔려서 피나오고. 그렇게 하다가 죽지는 않습니다. 그렇죠? 아니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또 그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무간지옥이 가장 깊은 지옥이죠. 그다음에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지옥은요. 말을 함부로 했던 사람들, 또 남의 욕을 많이 한 사람들. 험담을 많이 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죽어서 혓바닥을 죽~ 뽑아 가지고 거기에 못을 박기도 하고, 소가 쟁기를 갈기도 하고, 뭐 그런 재미난 그림이 있습니다.

 

어떻든 이런 식의 구체적인 묘사가 있는데. 다 이것들은 하나의 은유. 비유라 그럴까요? 실제적인 정말로 저승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이런 모습은 아닙니다. ~ 그다음에 제가 하나 빠뜨렸군요. 유교. 유교는 내세관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죠. 유교의 내세관은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이거는 한국인의 죽음관을 이야기할 때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마는 유교는 죽으면 꽝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 ~ 어떻든 이런 종교들의 그 죽음관은 각 종교의 교리에 의해서 윤색이 돼 있었기 때문에 실제의 영혼세계를 아는 데는 좀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러다가 이제 어떻든, 인류는 서양의 과학이나 계몽주의가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이런 사생관, 혹은 영계. 죽음관을 갖고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제 서양에서 계몽주의와 과학이 발전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 고 문제는 다음 주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시간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