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인문학] 두가지 양심 (본체와 작용) _홍익학당.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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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윤홍식_3분인문학(2018)

2019. 4. 5.



여러분, 양심 그러면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로 따르기에는 약간 인간적이지 않나? 하는 거는

양심의 작용을 말하는 거고

 

제가 말하는 양심은 본체로써의 양심

, ‘하나님이 명령한 게 양심이라는 거는 누구도 부정 못할 겁니다.

 

그럼 그 명령한 양심을 보면,

양심만 따르자니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니까, 하나님이 더 귀한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이 양심이 아닌데. 왜 명령이 다 양심이죠?

하나님 자체가 양심이신 거예요.

 

아니 명령하신 걸 보면, 하나님 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있죠.

머리 달렸으면....

와서 사랑이라고 명령하는데,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건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은요? 사랑이죠.

사랑이 사랑하라고 명령했겠죠.

 

그래서 유교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그리는 거예요.

이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을까요? 유교 성리학자들 글에 다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 모습이. 이런식으로.

 

꼭 이렇게 도형은 안 그려져 있어두요, 이렇게 한자로 다 써놔요.

원 하나 그려 놓구요, 퇴계나 율곡 다 인간 본성그릴 때, 원 그려놓구요,

(), (), (), () 가운데 ()

 

그리고 이게 우리의 양심이니까

양심이라는 뜻으로 虛靈知覺(허령지각)

한문으로 신비한데 신령하게 알아차리는 게 우리 양심이에요. 그 신비한...

 

보세요. ‘허령지각에 어떤 도덕적이라는 말이 없죠.

근데 양심이에요. 이게.

텅 비어 신령한데 알아차리고 있는 자리가, 내가 존재한다는 I am(아이 엠) 자리구요,

이 자리 안에 명령이, 프로그램이

(), (), (), ()로 깔려 있더라는 거예요.

 

퇴계선생, 율곡선생 둘 다 이 그림 그려놓으신 거 있어요.

성학십도에도 요 그림 들어있어요.

 

보시면, '내 마음이 이렇게 생겼구나.'

내 영이, 이건 혼이 아니에요. 영이에요.

 

생각 감정 오감이 혼 작용이라면

영 안에 이게 들어있다는 거예요.

 

영이 어떻게 생겼다구요?

허령지각.

 

텅 비어서 어떤 생각 감정 오감도 없으니까, 텅 비었다는 거예요.

이게 불교적으로 공하다는 거예요.

이게 공인데, 신령하게 알아차리고 있다는 거예요.

지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지각은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이 알아차림의 의식은.

그러니까 내가 존재하는 의식, 이게 둘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명상하실 때, 오직 생각, 감정, 오감을 비우고

존재한다는 느낌만 갖자라고 집중하셔도 좋고

오직 알아차릴 뿐! 하고 들어가셔도 좋아요.

? 하나니까.

존재 = 알아차림이예요.

 

존재한다는 게 뭔데요?

내가 존재한다는 게 뭔데요?

알아차리고 있다는 거예요.

지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주를.

 

이 말이 여러분 안에서 하나로 딱 느껴지시길 바래요.

그럼 유교랑 기독교가 둘이다? 불교가 둘이다?

이런 말 하실 수가 없어요.

그런 말을 하신다는 건, 체험이 없으시다는 얘기밖에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