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8월 7일 방송 (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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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_죽음이야기

2012. 2. 12.

  출처: 유나방송

따라서 거의 돈을 못 받겠죠. 그런 곳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본인은 그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행복감에 삽니다. 여러분들 어떤 삶으로 사실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종교적인 어떤 사람이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이 체험을 하게 되면 기존 종교에 대해서는 반감을 많이 갖게 됩니다. 다니던 교회나, 저는 절 쪽은 얘기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도그마 성을 깨닫고 안 다니게 된다거나, 책에서 읽은 바로는 목사의 부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근사체험을 하고 자기는 더 이상 자기 남편이 설교하는 교회에 못 가겠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 그래요. 이제 안 거죠.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비본질적인 것만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설교나 법문 시간에 말이에요. 자기는 본질적인 것을 깨닫고 왔는데. 그런 경우. 그러니까 덜 종교적이 되지만 사실은 영적으론 더 심화되는 이런 경우를 겪게 됩니다. 아폴로 우주인 가운데서 에드가 미첼(Edgar Dean Mitchell) 인가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 말고 또 있습니다만, 아폴로가 달에 까지 갔다 온 우주인 가운데에서는 종교체험을 하게 돼서 비행사를 그만둔 다음에, 아예 종교인이 되는, 굉장히 전문적인 종교인이 되는, 혹은 종교 관계 재단을 세우는 이런 일을 한 우주인들도 몇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영성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지식에 대한 탐구. 전혀 무슨 학문과 관계없던 사람이 무슨 기계공이었어요. 이 사람이 근사체험을 하고 그다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결국 나중에 물리학으로 박사를 합니다. 이런 과학이라든가 철학, 종교학. 이와 같은 순수학문에 대한 지식에 대한 갈망이 생깁니다. 이게 바로 자아나 자연, 우주에 대한 갈망이겠죠. 갈구. 이게 나는 누구인가? 우주는 어떤 것인가? 뭐 신은 누구인가? 깨달음은 어떤 것인가? 이런 데 대한 추구, 그러니까 불교용어로 하면 지혜의 탐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사람이 죽어서 가져가는 것은 배움, 지혜죠. 그리고 사랑, 자비죠. 이 두 가지뿐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거에 대한 공부를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에서 어떤 목적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천편일률적인 반응은 우리 삶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왔다. 뭐 주로 학습입니다마는, 바로 이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따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주로 미국사람을 조사한 겁니다만,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윤회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고 그래요.

 

제가 지난번에 말씀 안 드린 거 같은데. 윤회에 관한 문제는. 윤회는 우리가 평상의식상태로는 알 수 없는 그런 영역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체험을 한 사람들은 아~ 인류가 윤회를 해서 계속 자아발전을 계속해서 깨달음까지 가는 긴 여정을 가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의 과정, 혹은 목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윤회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그러니까 그 사후생에 대한 확신감이 있어서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죽어갈 때에 생기는 고통, 여기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갖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나 이슬람, 유신론적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생기게 됩니다.

 

그다음에 조금 격외적인 의외적인 겁니다만,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은 재미있게도 초능력이 생긴다고 그래요. 예를 들어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제가 직접 만나보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아는 사람의 같이 일하던 어떤 여직원이었는데. 이 여직원은 결혼을 못했다는 거에요. 왜 그런고 하니, 선을 보고 연애를 해도 남자와 만나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이 여직원이 근사체험을 한 거에요. 그 뒤에 남자를 만나면 그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다 알고 있는 거에요. 남자들이 섬뜩 섬뜩해서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자꾸 깨졌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거, 이것은 수도를 조금 해도 어느 정도는 이게 가능하겠죠?

 

그다음 미래 일을 먼 미래는 아닐지 몰라도 예언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고 그러고 말이죠. 병도 고친다. 그래요. 이 사람들은 오라, 아우라(aura)라 그러죠? 사람 몸 주위에 있는 전자장. 그것을 보고 색깔을 보고 그 색깔의 변화 여부에 따라서 사람의 아픈 부분을 지적을 해내고, 그다음에 지압을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그 나쁜 부분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까지 얻게 된다고 합니다. 참 믿을 수 없는 얘기죠? 그다음에 더 재미난 거는 이런 체험을 한 사람들이 기계 옆에 가면 기계가 고장이 난다는 거에요. 컴퓨터 옆에 가면은 컴퓨터가 고장이 나고 시계를 차고 다니면 얼마 안 있으면 시계가 자꾸 서서, 시계를 더 이상 찰 수 없게 되고 말이에요. 또 재미난 거는 길을 가다가 밤에 길을 가다가 가로등이죠. 가로등을 지나면 그때 지나면서 불이 꺼졌다가 한참 지나면 다시 켜지고. 이런 일도 생긴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은 이것이 사실이라면 굳이 설명을 해보면 그 사람 몸에서 나오는 전자장, 아우라죠. 오라. 이런 것들이 커졌거나 혹은 어떤 강해졌거나 혹은 범위가 넓어졌거나. 이런 것 때문에 이렇게 얘기치 않은 변화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더 재미난 변화는요, 무생물까지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서 가다가 이런 책상이 탁 부딪치면 아~ 책상 미안해 미안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다고 그래요. 참 재미있습니다. 모든 우주 만물이 우주 안에 모든 만물이 살아있는 것으로 느껴지게 되는 거에요. 재밌죠?

 

그다음에 더 재밌는 것은 중요한 관계에서의 변화. 뭔고 하니 아까 말씀드렸던 자기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이상 그런 돈 벌고 말이죠, 경쟁적인 그런 것에 대해서 산다는 것은 삶을 소모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지금 태어난 이유, 목적을 성취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 중 가장 재미난 게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많은 경우 이혼을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처음에 이 얘기를 듣고, 아니 사랑을 그렇게 경험했던 사람이 왜 이혼을 하느냐? 아주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까 이유가 일리가 있습니다.

 

~ 근사체험을 했던 사람은 어떤 남자가 했다고 그러죠. 그 사람이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럼 아내는 이 남자를 보기에 이 남자가 정말 사랑의 화신으로 변화가 된 거 같은데, 이전처럼 자기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왜 그럴까요? 큰 종교체험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그런 다소 편협한 사랑과는 관계가 없게 된 거에요. 그렇다고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또 남들도 사랑하는 거에요. 근사체험을 한 당사자는 괜찮은데 그 배우자, 아내는 그게 싫은 겁니다. 그리고 영~ 낯설어집니다. 더 이상 나의 남편이 아닌 것 같고, 완전히 공인이 된 것 같고, 이런 생각. 혹은 타인처럼 느껴진다. 그래요. 그게.

 

굉장히 멋있게 변했는데 이전의 남편이 아닌, 이전에 알던 내 남편이 아닌 타인으로 변한 것.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된다고 그럽니다. 이렇게 의식을 하게 된다고 그래요. ~ 이것 참 재미난 얘깁니다. 그런 얘기들이. 그다음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 별, 특히 어머니인 이 지구에 대한 관심. 이것은 당연한 겁니다. 사실 지금 지구환경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은 그건 직무유기입니다. 그리고 저차원적인 생활입니다. 우리가 의식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걱정하는 영역이 넓어지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그중에 하나가 우리 지구 환경문제입니다.

 

제가 지금 시간 때문에 지구환경문제는 자세하게 말씀은 안 하겠습니다만 지금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 있습니다. 특히 온난화 현상 때문이죠. 지금 몇 년 남지 않았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환경, 당연한 거죠. 우리가 우리 사는 환경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어디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아무리 명품을 많이 갖고 인들, 좋은 수입차를 갖고 있는 들, 지구가 망하는데 그까지 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지구는 심각해 있습니다. 어떻든 이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다음에 개인적인 삶에서 말이죠. 더 이상 남을 판단하지 않게 된다고 그래요. 예수님이 그런 얘기 하셨죠?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이가 그런 얘기 했다고 무슨 더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것도 왜 이렇게 하지 마라. 간단합니다. 여러분들도 누가 여러분을 판단하면 기분이 안 좋죠? 그렇죠? 대상으로 판단하면 기분이 안 좋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남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된다. 그런 얘깁니다. ~ 제가 지금 뭐 시간 때문에 많이 말씀은 못 드리고. ~ 한 가지 빠뜨린 게 있군요.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은 매일매일을 마치 마지막 날처럼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순간순간을 의식하면서 살게 되는 거에요. 이거를 우리는 영원한 현재라 그러죠.

 

종교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극락에 가고 천당에 가고 이런 거, 이건 절대로 종교의 핵심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 개인이 죽지 않는 것, 스러지지 않는 것, 멸하지 않는 것. 이것을 종교의 핵심으로 생각하죠. 불교에서도 그런 게 있습니다. 뭐 다 아시는 것처럼 죽어서 서방정토, 극락에 태어난다. 이거는 불교의 진리를 뜻깊은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교는 다행히도 서방정토로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서 또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경우는 좀 다르죠. 거기에 기독교 신자들은 천당에 가서 영원히 산다. 이게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틀렸다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만 미숙한 신앙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진짜 말씀하셨던 것은 그렇게 개인이 죽어서도 계속 영생하는 게 아니고, 바로 지금 현재 사는 것. 왜 그런고 하니요. 우리는 우리 개인은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습니다. 이게 뭐 선사들도 많이 얘기를 하셨죠. 그러니까 시작도 끝도 없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데 바다로 따지면 표피에서만 생멸이 일어나는 거죠. 파도가 일어났다가 꺼졌다 하면서. 그러나 밑에 있는 바다 전체는 한 번도 생겼다 없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저 언제나 그렇게 있었습니다.

 

따라서 죽어서도 계속 존재한다. 이런 게 종교에서 말하는 본질적인 구원이 아니고 사실은 지금 현재. 바로 지금 내가 있는 현재에 내 존재가 100%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구원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제가 많이 물어봅니다. 영원의 반대는 무엇이냐? 순간이라고 합니다. 찰나.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영원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겁니다. 영원의 반대는 시간입니다. 찰나나 순간은 오히려 영원과 동의어입니다. 같은 겁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유한성을 얘기를 합니다. 시간은 아무리 길게 늘여놔도 언젠가는 끝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은 지금 바로 이 자리가 영원한 자리입니다. 이 진리를 알면 이게 바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죠. 자기가 소멸되는 것이죠. ~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해서 종교는 바로 이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2차 탄생. 중생, 거듭남, 깨달음을 해야 바로 이것이 종교의 본령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고 다른 것은 모두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얘기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이번 시간에 여러분들이 종교에서 말하는 본질적인 요소에 대해서 근사체험들의 증언을 가지고 한번 공부를 해 봤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에 있느냐 하는 겁니다. ~ 이것으로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