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사담 19화 - 우린 왜 ‘먹방’에 열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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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2019. 6. 18.


 

정책과 역사가 함께하는 시간

전우용의 사담입니다.

 

요즘은 가족과 같은 뜻으로 쓰는 말이 식구가 됐습니다만

원래 식구란, ‘한솥밥 먹는 사람들이란 뜻이었습니다.

 

따로 나가 사는 셋째 아들은 우리 식구가 아니고, 같이 한집에 사는 노비는 우리 식구가 되는 셈이죠.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가축조차도 식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요즘 시쳇말로 아싸, 왕따이런 말 쓰잖아요.

공동체와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고 남들 다 먹은 다음에 혼자 남아서 뒤늦은 식사를 할 때, 그 상황을 찬밥 신세가 됐다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제 함께 살아있는 사람과 식사하기보다는 TV속 인물과 식사하는 먹방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현상인 동시에 한국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BBCCNN등에서는 이런 방송프로그램을 한국발음 그대로 ‘Mukbang(먹방)’이라고 표현하고, 또 이것을 일종의 새로운 사회적 식사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왔던 인간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길목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먹방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보면서

먹방 시대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또 이것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음식학자 황교익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뵌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바쁘신데, 요즘 황교익TV 하시죠?

황교인 TV하고 있습니다. 지금 1년 채 안 되었는데, 6 7개월 되었나?

 

인과관계에 관한 딜레마-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필적하는 질문, 인간은 살기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질문에서 느낄 수 있듯, 인간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 ()’

음식에 관한 다양한 기술적 학문 조리학, 식품영양학, 식품공학

이걸 전체적으로 문화로 아우르는 음식학이라는 건 왜 없을까? 대학에?

 

<음식은 맛이 없다?>

음식을 통해서 인간 인류의 발달사

음식 인류학에 대한 학문이 학부에서는 힘들다 하더라도

대학원 과정에서 음식학 교육이 개설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의 학제로는 힘들지 않을까

 

스스로 음식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대중

삼시세끼 내가 먹은 음식은 내가 잘 안다는 착각을 가지게 돼

전문가의 글, 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내가 먹은 음식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음식에 관한 글을 듣고, 읽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사람들

대중들이 많이 즐기는 것은 전문가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생각

영화, 축구, 야구, 음식 역시 마찬가지

 

당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게요.

(브리야사마랭: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미식 평론가, 미식예찬에서 언급한 내용)

식생활이 인간의 정체성과 직결된다는 브리야사마랭의 통찰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지난 날을 회상하는 전우용MC

배부르게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

그 시절 간식 라면땅, 짜장라면

간식 먹은 날은 일기에 적을 정도로 간식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

 

88올림픽 지날 무렵, 절대적 빈곤에서 해방됐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시기

()의 시대 -> ()의 시대 -> 맛의 시대

미식이 사회적 기호로 자리 잡게 된 오늘날

먹는 방송요리 방송이 안방의 새 트렌드로 자리 잡은 시대

TV에 나온 맛집을 검색하고

음식 프로그램을 보며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하는 시대

 

<먹방은 푸드 포르노>

먹방의 시작은 음식 방송이 아니다.

컬러TV 시대 도래와 함께 음식 방송본격화된 것

음식의 구별이 쉽지 않았던 흑백TV 속 음식

1981~1984 방영, 국내 최초의 요리 방송, ‘이종임의 오늘의 요리

 

먹방은 음식 방송이 아닌 음식을 먹는 사람의 방송

음식은 잠시 보여주고 음식을 먹는 사람에 주목하는 방송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1990년대 어색했던 일

음식 먹는 사람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금기시했던 때

간접적으로 멀리서 비춰줬던 모습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게 된 카메라

 

먹방은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쾌락을 과장해서 연기하는 방송이다.

먹방은 푸드 포르노이다.

 

배우가 쾌락을 연기하는 포르노

음식을 맛있게 먹는 화면 속의 출연자도 마찬가지!

과장된 표현들로 맛있음을 표현하는 먹방의 출연자

포르노의 자극처럼 시각적 자극을 통해 보는 이의 식욕을 자극하는 푸드 포르노

욕구를 채우는 일종의 대리만족 측면에서 포르노와 비슷하다는 생각

 

먹방은 음식의 맛 자체 영양가는 뒤로 한 채, 오직 식사 중에 쾌락만 보여준다.

기이한 먹방, 마치 고문처럼 보이는 먹방도 존재!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며 푸드 포르노라는 별칭이 붙게 된 먹방

식사로 인해 얻는 쾌락을 극단적으로 묘사하는 방송들이 잠식한 사회

 

 

<먹방시대 우리는 외롭다>

실생활에서 음식으로 제대로 된 쾌락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

화면 속의 연기된 쾌락을 나의 쾌락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음식의 쾌락은 음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무엇이든 먹음으로써 생할을 유지해야 했던 인류

때문에 음식에 쾌락을 접목하는 일을 생각했던 인간

누군가가 같이 먹으면서 상대방의 머릿속에 있는 쾌락을 나의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자극

 

“‘같이식사하는 사람이 사회적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

인간의 공감 능력은 예술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합주에서도 인간의 공감 능력을 연구한 사례까지 있을 정도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에서 정상 간 국빈 만찬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교류의식 함께 식사 하는 것

 

그러나 현재 음식을 먹으며 관계에 의한 쾌락을 의식하지 않게 된 상태

일반적인 생각, 음식자체가 쾌락을 주는 요소

최근 통계, 국내 전체 가구 4분의 1을 넘는 비율을 차지하는 ‘1인 가구

타인과 소통이 제거된 식사에서 내적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

음식을 같이 나눌 누군가가 있어야 음식의 쾌락도 증폭되는 법

음식의 쾌락 역시 잘 느끼기 어려운 1인 식사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들고 향하는 곳, TV

식탁 앞에 앉은 상대대신 TV 속에서 나와 교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

온라인의 인물을 식사메이트로 삼는 것이 편해진 시대

TV, 음악, .. 사람의 흔적을 곁에 두고 식사하는 사람들

혼밥하는 사람 중 식사 내내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은 풍경

먹방 속 가짜인간과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혼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

쾌락의 총량을 위한 먹방의 방식이 유행하는 사회

유튜브 먹방 인기 영상,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음식을 오직 먹기만 하는 모습

기괴한 먹방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다가도 어느새 군침이 솟게 되는 현상

먹방이 유행하는 이유

영상 속의 쾌락을 받아서 먹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처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공간, ‘1인 가구들이 소비하던 콘텐츠

 

 

<먹방시대, 무엇이 배를 불렸나?!>

먹방 규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

어쩌면 먹방은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할 수도 있다는 생각

먹방에 대한 공중파의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

이젠 흥행 보증수표가 된 먹방

기본적인 결핍이 먹방의 흥행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회

결핍도가 높은 것일수록 시청률은 올라가는 사회적 현상

연애 포기 선언하는 3포세대-가상 연애 프로그램의 전성시대

아이 낳지 않는 시대, 육가 프로그램의 전성시대

현실적인 결핍의 대리 충족,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시청자들

대리만족, 흥행보증수표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시청률 상승에 따른 자극적 콘텐츠 생산은 언론의 윤리 문제에 있는 것

 

먹방 등의 프로그램이 공익성에 위배되는 부분은?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인구절벽 현상, 청년 취업난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에 관한 원인 분석대안을 고민해보아야 할 때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인 영상을 규제하는 일은 한계가 존재

적어도 공중파에서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을 자제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먹방 영상을 통해 자신이 평생 가져갈 미각을 결정하게 되는 것

먹방에 의해서 식습관이 형성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

슬로푸드 운동: 향토적인 맛과 그 속에 있는 것을 재발견하고, 패스트푸드 물결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미각 교육을 중요시함

1980년대 이후 일어난 유럽 슬로푸드 운동은 청소년의 미각 교육에 집중

미각 교육에 포함된 일본의 식육기본법

(*식육기본법: 먹거리를 두고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 국민운동으로서 식교육을 추진하기 위한 법률)

 

한국사회, 유년기 청소년기 입맛을 결정짓는 요소 중에 하나라고 보는 음식 관련 방송

유익한 콘텐츠를 위해 스스로 자제해야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

 

치유와 대안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는 언론

오히려 편승하여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고 언론의 책임은 방기하는 상황

1960년대 불량식품 추방운동은 학교, 정부, 민간이 결합한 운동

 

 

<먹방시대,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불량식품을 나누는 기준, 영양 불균형 + 과식을 부추기는 요소

불량식품을 불량식품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

불향식품의 대표적인 예, ‘떡볶이

떡볶이 맛없다떡볶이에 관한 의견으로 곤란함을 겪었던 황교익

자극적인 맛, 영양 불균형, 과다한 설탕으로 중독성이 강한 떡볶이

불량식품을 맛있다라고 할 수 없는 것

불량식품에 대한 견제의 말을 삼가게 되는 사회

음식의 맛 보다는 과장된 분위기를 연출하여 식욕을 자극하는 방송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과 반하는 말을 대중을 부추겨 금기시한다는 생각

 

현재 한국인의 식습관교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

대중의 비난을 상징처럼 만드는 언론

 

민주주의 시대 대중의 욕망은 ()’

다수가 원해도 ()’이 아닐 수 있다.

제동의 역할로서 필요한 시스템, 학문·언론

하지만 현상을 외면하는 학문과 현상에 편승하는 언론

열풍에 편승하려는 대표적 사례가 먹방이 아닐까

 

영화 디워, 작품성과 흥행 성적을 두고 뚜렷한 호불호를 보였던 논쟁

긴 싸움으로 이어진 심형래 지지자들과 진중권의 논쟁

 

먹방의 방송 콘텐츠 문제성을 발언하는 이가 거의 없는 현실

 

비판적 발언은 방송이 갖게 되는 이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우리 사회가 당연히 비판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현실

스스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빠져나오기 어려워지게 될지도

 

기본적으로 먹방시대를 열게 한 식구의 해체

식탁 앞에 사람 대신 TV 속 사람과 같이 밥을 먹게 된 사회

먹방의 시대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식사가 주는 행복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정책 과제로 삼자는 것

혼밥 문화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시선

함께 먹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는 일

음식을 함께 먹으며 느끼는 쾌락까지 무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

마을회관, 노인회관 등 함께 모여 삼시 세끼 해결하는 공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행복도가 올라가게 되는 것

마을 복합 공간 등 도시 지역에선 다소 어려운 일

도시에선 공간의 구상부터 생각해야 하는 문제

음식보다는 공간 마련이 중요한 사안

 

쾌락 자체가 괴로워지는 상황이 올 거라 예측하는 전우용 MC

다투지 않고 같이 식사함으로 즐거운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

화면 속 사람이 아닌 내 옆의 사람

힘께 식사하는 회복된 문화를 기대해보는 전우용 MC

 

내면에 갇힌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변화된 시대 속의 성찰과 반성

쾌락을 대리만족해야 하는 사회인 동시에 성찰이 사라진 사회

먹방의 풍조는 성찰이 부족한 사회 분위기와 관련 있다는 생각

성찰하는 사람이 되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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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그림이 있죠. ‘최후의 만찬

만찬, 또는 함께 식사한다는 것, 서로 교감하는 행위였습니다.

인간은 구석기시대부터 함께 사냥하는 동물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식사를 통해 교감하는 습성을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그 오랜 습성이 이제 깨져나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먹는 행위보다는 함께 먹는 사람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인간의 미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우용의 사담,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