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픽 22화 - 방한과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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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2019. 7. 9.



안녕하십니까.

전우용의 픽입니다.

 

이제 곧 본격적인 무더위기 시작될 겁니다.

올여름도 어떻게 이 더위와의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이 더운 날을 견뎌야 하는지 벌써부터 걱정이 많으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옛날에는 더위와 추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또 국가는 각 개인들의 더위와 추위 대처법을 어떻게 지원했는지, 혹은 무시했는지

이에 관해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제목은 방한과 피서입니다.

 

옛날 한자 입문서였던 천자문,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지 않겠습니다마는,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열장

앞에 4구절이 하늘과 땅, 우주 해와 달, 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오는 구절이 한래서왕입니다.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간다.

하늘의 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추위와 더위였습니다.

 

사람이 한 곳에 정착해 살게 된 이후로 추위와 더위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을 가장 고달프게 만드는 그런 요소였던 것이죠.

그 때문에 천자문에서도 이렇게 앞 대목에 배치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추위와 더위가 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데,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도 달랐고 그에 대한 대처 방식도 달랐습니다.

기온은 본래 무차별적이지만, 추위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서 대처법이 다를 수 있었습니다.

 

추위는 따듯한 옷, 난방이 잘 되는 집, 이런 것들로 어느 정도 막을 수가 있었죠.

그래서 방한_추위를 막는다 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전기제품, 전기 문명시대가 오기 전에는 더위는 부자든 가난하든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피해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피서라는 말을 쓰게 된 겁니다.

 

우선 방한에 대해서 말씀 드려볼까요.

시골에서는 그 집 남자가 부지런하기만 하면, 약간 어패가 있을까요?

게으르지 않다면 나무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겨울철 내내 불을 떼고 살 수 있었죠.

그러나 주변 산에서 나무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도시에서는 나무를 사서 떼야 했습니다.

그러니 서울과 같은 경우에는 추운날도 밥 짓고 남은 잔열로 겨우겨우 추위를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우리 옛말에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라고 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는 가난은 춥고 배고픈 삶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안데르센의 그 유명한 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묘사한 것도 추위와 배고픔이었죠.

그래서 추위에 대한 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국가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 중에 하나였습니다.

 

조선시대 영조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서울에 거지들이 꽤 많았는데, 하루는 날이 매우 추웠습니다.

왕이 노숙하는 거지들이 얼어 죽을까 염려되어서 각 관청과 한성부에 지시합니다.

관서에 보관하고 있는 시효가 지난 폐지들을 거지들이 옷 안에 넣거나 덮고 잘 수 있게 나누어주어라.

 

아시다시피 조선왕조 실록은 세계 기록유산입니다.

그밖에 일성록, 승정원일기, 각서등록 등 굉장히 많은 정보문서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의 나라였던 우리 실정에 비교하면, 현재 남아있는 중세 문서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한 2가지 이유로 추정합니다.

첫째는 한지의 속성상 다 쓴 문서를 다시 빨아서 재생해서 장판지나 도배지로 썼기 때문이라고 보고요,

또 하나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조선후기에 집중적으로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분제 시대였지만,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방한에 대해서도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을 썼던 거지요.

일제감정기에 이런 전통은 사라졌습니다.

 

 

이번에는 피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본래는 한 20만 명 정도 살고 있던 서울에 러일전쟁 이후에 수만 명의 일본인들이 몰려들어옵니다.

집은 그대로인데, 그리고 짓는다 하더라도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한집에 여러 식구가 모여 사는 셋집살이라고 하는 것이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거죠.

 

여름철 무척 더운 날에는 밥짓는 과정에서 뜨겁게 달궈졌던 구들이 잘 식지 않아서 밤에도 뜨거운 방에서 자야했습니다.

그러니 방밖으로 나와서 더위를 피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러면 집주인이 먼저 자기 집 마당에 넓지도 않은 마당에 돗자리나 멍석을 깔고 식구들과 함께 드러눕습니다.

그 집에 세 사는 사람들은 마당을 사용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돗자리를 챙겨 대문 밖으로 나가 길에다가 돗자리나 멍석을 깔고 드러눕습니다.

더운 여름날에는 그래서 골목길이 잠자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순사가 밤중에 순찰을 돌다가 그런 장면을 보면 자는 사람을 발로 차서 깨우고는 어서 들어가라고 그렇게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주섬주섬 다시 멍석이나 돗자리를 깔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순사가 사라지는 걸 보면 다시 펴고, 또 눕는 것이 여름철에는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서 일본순사들은 또 비웃었죠.

조선인들은 역시 비위생적이고 수치를 모르는 민족이다라고.

 

가난 때문에 만들어진 생활 습관을

가난의 고유속성, 또는 가난한 사람의 성격 때문으로 돌리는 것은

굉장히 역사가 긴 권력자들의 편견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신분차별이 없어진 시대였지만,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권력의 마음자세가

왕조시대보다 식민지시대가 훨씬 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한 장면일 겁니다.

 

20세기 전기문명 시대가 도래 하면서 사실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피할 수 없었던 더위가 일부계층에게 쫓아낼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근대 이전에는 귀족이나 부자일수록 더위에 더 취약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체면 때문에 아무리 더워도 의관을 갖추어 입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선풍기, 냉장고,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이 만들어지고, 이런 것들이 부잣집에 먼저 자리 잡으면서 더위에도 사람에 따른 빈부에 따른 차별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게 있잖아요.

실내의 기온을 낮추면 대신 이 에어컨은 실외의 기온을 높여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에어컨은

돈 내고 더위를 쫓을 있는 사람과

돈 안냈기 때문에 더위를 더 느껴야 하는 사람으로

세상을 나누는 그런 물건이 되기도 하는 셈이죠.

 

 

지구 온난화, 또는 기후변화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한반도는 작년 여름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인이 체감하는 여름철 기온은 빈부에 따라서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특히, 한낮,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밤에 에어컨도 없이 반지하 방이나 옥탑방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조선시대 왕조차도 가난한 사람들의 방한에 마음을 썼습니다.

하늘은 본래 기온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포용국가를 지향하는 오늘날

빈부에 따른 체감 온도의 차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복지 정책의 하나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전우용의 픽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