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인문학] 경敬 _홍익학당.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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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윤홍식_3분인문학(2019)

2019. 7. 15.



허령지각(虛靈知覺)이라는 텅 비어 있는데

신령하게 알아차리는 인간의 이 참나.

이 참나 안에 인의예지의 원리가 들어있는데.

 

우리가 처음에 참나 각성하면 어떻습니까?

진짜 텅 비어 있는데 알아차리는 고 참나 자리랑 하나가 되죠?

그게 뭐냐면 이게 경()이에요. .

 

경이 뭐냐면 경이라는 게 원래 유교에서는요.

그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념집중이죠. 몰입이죠. 몰입

몰입을 경이라 그래요. 몰입. 몰입 잘 하는 거.

 

어디에다가 몰입 하냐? 참나한테 몰입한 거!

허령지각과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경은

양심의 허령지각이 구현되는 게 경()이에요.

 

몰입을 통해 내 양심에, 텅 비어있는데

신령하게 알아차리는 허령지각의 모습이 확 드러나는 게 경()이죠.

그러니까 경 하나에 이미 여러분은 참나를 만난 겁니다. 그렇죠?

 

선정을 통해 참나를 만나잖아요, 불교 선정에 해당되는데.

선정을 잘 닦으시면 참나가

텅 비어 있는데 신령히 알아차리는 참나가 드러나 버려요.

 

공부 처음 딱 하면 경()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참나가 드러나 있으면 양심의 현존이 드러나면

기독교식으로 하나님의 현존과 만나면

그게 최고 아닙니까?

그래서 이 경()이 기독교에서는 믿음상태입니다. 믿음상태.

 

기도를 통해, 기도가 이제 경()의 방법론이라면

믿음이 경()이 이루어진 상태에요.

믿음. 하나님과 하나로 소통하고 있는 상태.

 

그래서 이 유교에서는 경()이라고 하고

()의 극치를 뭐라고 하냐면, 같은 건데, ‘()의 극치를 성()이라고 합니다.

정성스러워졌다. 이거는 에고가 작동을 안 한다.

()은 에고가 아직 작동을 하면서 몰입해 들어가는

(몰입해 들어가는) 상태를 말하고. 굳이 구분하자면.

 

근데 사실 여기 경()에서는

이 성(), () 의미를 지금 다 포괄해서 쓴 거예요.

 

이게 기독교에서는요, 묵상에 해당되고, 이게 관상에 해당됩니다.

묵상은 마음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있고요.

관상은 노력을 안 해도 하나님과 지금, 내가 하나님의 현존과 만나고 있는 상태.

 

()은 이 성()까지 포함한 거예요.

지금 여기서 경() 그러면, ‘하나님과 만나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과 일단 만나라.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과 만나라하는 게 경()입니다.

 

이 참나의 속성 중에 이 에고가 없는 하나님의 속성이 언제 드러나느냐?

이 경()을 통해서 드러나요.

에고를 초월해 버린다는 거예요. 이 경(). 에고를 초월한다.

참나가 온전히 드러난.

 

참나가 지금 몇 프로 드러나고 계십니까?

고거 조절하는 게 경()이죠.

여러분 경() 공부를 통해 즉 몰입 공부를 통해

참나를 더 구현해 내고 어떻게 보면 참나에 더 집중하고.

요 작업이 경()이죠.

 

그래서 모든 공부의 시작은 불교에서는 선정이듯이

유교는 경()입니다.

정신을 모아서 참나랑 접속하는 것.

 

참나랑 접속하면

참나가 여러분 안에서 드러납니다.

 

여기는 지금 이 참나 상태에서 말하면 성()이고.

사실은 이게 정성 성() 자랑 같습니다.

근데 에고 측면에서는 경().

참나 측면에서는 참나가 드러난다는 뜻에서는 성().

그러니까 에고를 초월해 버린다는 거예요.

 

학당에서 이 경법으로 지도하는 게 몰라.

에고를 빨리 초월하라고. “몰라해 버리면, 참나가 드러나잖아요? 그게 경() 상태고,

참나 입장에서 보면 성() 상태입니다.

참나가 드러나고 있어요.

 

유교식으로 한번 좀 얘기해봤어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뭐라고요?

선정, 선정을 통해서 참나 체험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