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25(목) 'Discover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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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9)

2019. 7. 26.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단지 마당을 빌려준 것뿐이었다.”

-윤고은 소설 <해적판을 타고>

 

윤고은의 소설 해적판을 타고는 어느 가족의 마당에 정체 모를 폐기물이 묻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다는 회사의 사람들이 정체 모를 무언가를 마당에 파묻게 되는데

그날 이후에 까닭 모르게 시들어가는 꽃들과 흉흉한 이웃들의 시선

가족들은 발밑에 묻힌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과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두려운 마음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알고 보니까 그것은 동물실험 회사에서 은폐하고자 했던 중금속에 오염된 토끼의 사체였다고 하니

지극히 소설적인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작가 윤고은은 그것이 소설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유해 폐기물을 내 집 마당에 묻은 건, 소설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이미 선점한 장면이다.”

-윤고은 작가

 

그는 몇 년 전 후쿠시마 사고 이후를 다룬 뉴스에서 방사능 폐기물을 묻은 어느 집 마당을 보게 되었는데

마당을 잠시 빌리는 줄 알았지만, 시처에서 돌아온 답변은 언제 가져갈지 모른다는 말 뿐...”

-201934<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끝나지 않은 재앙, 후쿠시마 5년 현장을 가다

 

태연한 듯, 무심한 듯한 그 묘한 표정을 바라보다가 바로 소설의 첫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마당을 빌려준 것뿐이었다

-윤고은 <해적판을 타고>

 

일본은 이른바 재건 올림픽을 내세웠지만 사람들의 불안감을 가시지 않습니다.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정부가 수거하지 않은 오염된 토양을 집 앞마당에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었고

발밑에 묻힌 것이 무엇인지 알고도 모른 척해야,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정대로라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후쿠시마 인근에 모여서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물과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데

안전은 재건 올림픽이라는 정치적 구호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찝찝함을 내내 묻어두어야 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축제는 이미 축제가 아니지 않은가

 

나쁜 것을 우리에게 테스트하는 기분...” -김예라 역도 국가대표

공원의 한쪽에는 수백 개의 큰 폐기물 봉투가 눈높이 위로 쌓여 있었다” -뉴욕타임스

“(휴쿠시마의) 방사선 수치는 여전히 매우 높다” -줄스 보이코스 올림픽 칼럼니스크

 

우리는

각자 마음에 구멍 하나를 뚫고 저장고를 만들었다.

끌어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그 안에 넣고 자물쇠를 걸었다.”

-윤고은 소설 <해적판을 타고>

 

애써 태연하고 싶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을 묻어둔 사람들...

공교롭게도 내년도 도쿄 올림픽의 표어는 ‘Discover Tomorrow’

, ‘내일을 발견하자라는 데

 

내일을 발견하자?”

마당 한구석에 내일로 이어지는 재앙을 묻어둔 채 그들이 발견하고자 하는 내일은 무엇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