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8.5(월) '표현의 부자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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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9)

2019. 8. 6.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선을 상징하는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은

한때 본래 자리에서 3.75도가량 비틀어져서 비뚜름히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본이 가장 먼저 손보고자 했던 장소.

그들은 경복궁 한복판에 총독부를 들여앉힌 뒤에 광화문마저 남산을 향하도록 뒤틀어 놓았는데,

바로 그 남산에는 일본을 받드는 신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했지만, 고민은 깊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너비 50m, 높이 20m짜리 대형 공사막을 흉측해서 어떻게 설치하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너비 50m, 높이 20m의 건축물을 가려야 하는 대공사

고민하던 당시 문화재청장은 거대한 벽을 떠올렸습니다.

 

광화에 뜬 달

-강익중 설치미술가

 

벽은 벽이되, 공사장을 가로막은 그 벽은 또 다른 예술작품으로 태어나서 시민과 마주 선 것이지요.

 

공사를 진행한 3년 동안 길을 지나다니는 이들은 비록 광화문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너머를 상상했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역사

시민은 거대한 벽 너머에 있는 광화문을 보지 않고도 보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그곳에도 단단한 가림막이 세워져있습니다.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 통을 들고 가겠다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일. 내 마음도 짓밟혔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

 

일본 정치권과 극우의 으름장으로 인해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 지키던 소녀상은 벽 뒤에 가려졌고

아예 경비인력까지 배치돼서 관람객 출입을 막고 있다 하니

소녀들은 가려진 벽 뒤에 숨어 또다시 긴 시간, 숨을 죽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사람들은 벽 너머에 있는 소녀상을 보지 않고도 이미 보고 있습니다.

견고하게 세워진 그 흰 벽과 보안요원이 배치된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서,

누군가 철저하게 가리고자 하는 죄의식을 오히려 세상에 내보이고 있으니까요.

 

역사적 폭거...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 3

협박이나 폭력을 긍정하는 일

-나카가키 가쓰히사 전시 참가 작가

 

단단한 벽 앞에 가로막힌 오늘의 역사를 또렷이 보여준 그 전시의 이름은

표현의 부자유, 그 후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