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8월 28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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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_죽음이야기

2012. 3. 4.

  출처: 유나방송

. 안녕하십니까? 최준식입니다. ~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지금까지 열한 번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시간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 시간은 지난 시간에 얘기한 데로 한국인들의 죽음관, 한국인들이 얼마나 현세적인 죽음관을 갖고 있는가를 한국인들이 행하는 종교의례에서 장례의례 이런 것들에서 알아보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장례식, 차례 의례죠. 그다음에 풍수지리. 또 제사. 여기에서 과연 한국인들은 어떤 현세관을 갖고 있는가? 이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 장례식 절차를 우리가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이게 사실 전통사회에서는 굉장히 복잡했었죠? . 지금은 뭐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는 거 같습니다마는. 그러나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이 장례, 옛 장례의례가 축약된 것이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장례의례를 알아보면 한국인들의 죽음관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한국인들은 그동안에 묘지에 매장하는 장지에 아주 강하게 집착을 했죠. 이게 최근에 와서 바뀌게 됩니다. 화장으로 말이죠.

 

부모님의 신체를 화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죠. 유교에서는 말이죠. 그러나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여의도에 진짜 그런지 안 그런지 제가 재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마는, 여의도 땅의 1.2배나 되는 땅이 장지로써 매년 말이죠, 장지로 쓰이고 있는 이런 현실. 그래서 한국은 사람이 사는 택지보다 묘지가 더 큰 나라가 됐다. 그러니까 그렇게 보면 한국은 죽은 자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이런 상태가 되니까 더 이상 매장하지 말고 화장을 하자. 이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났고, 또 이것이 효과가 있어서 지금은 다른 쪽은 모르겠습니다만 서울 같은 경우에는 50% 이상이 화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와 있죠. ~ 그러나 어떻든 장례절차. 옛 장례절차를 한번 좀 간단하게 봐야 됩니다. 워낙 복잡한데. 조금 간단하게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런 절차들을 간단하게 볼 수 있는 게 학생부군신위. 박철수 감독이죠? 학생부군신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전 요새 아이들 말로 강추입니다. 한번 보실 수 있으면 꼭 한번 보면 좋겠습니다.

 

이런 절차가 아주 잘 나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제일 처음에 사람이 죽으면 고복을 하죠. 이것은 무엇인고 하니 망자의 옷을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망자의 이름이나 관직명을 대면서 복, 이렇게 세 번 외치는 겁니다. 돌아오라 이거에요. 저승 가지 말고 이 승으로 돌아오라. 혹시 또 그 말 듣고 돌아올까 해서 세 번 그렇게 외치게 됩니다. ~ 다시 이승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아시겠죠. . 그 재미난 것은 바로 사잣상, 사잣밥. 저승사자를 위해서 사잣밥을 차리게 되죠. 사잣상을.

 

여기에는 삼인용의 밥, , , 짚신이 있게 됩니다. 일종의 뇌물 같은 거죠. 오셨는데, 저승사자가 오셨는데. 잘 대접해서 어떻게 해서든 좀 이 승에 있는 기간을 길게 만들고 이런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재미난 것은 여기에 간장을 놓는다는 거에요. 간장. 왜 간장을 놓느냐 보니까. 저승사자가 간장이 물인 줄 알고 먹게 하는 거에요. 그럼 이제 망자를 끌고 저승 가다가 목이 마를 거 아닙니까? 그럼 목이 말라서 다시 자꾸 현세로 돌아오게 만드는 거에요.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현세에 조금이나마 오래 있게 만드는 거에요. ~ 아시겠죠? 이게 무슨 얘기인지. 또 이 현세가 가장 중요시하게 됩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이 현세에 묶어 두려고 하려는 것, 다만 1분이라도 1초라도 더 묵게, 더 여기에 있게 하는 게, 이 세상 사람들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장례식 때 보면은 부모가 가지 싫은 저승길을 가게 하는 것도 자식의 죄고. 죄인 행세를 하죠. 죄수복을 입죠. 머리도 다 풀어헤치고, 굴건을 쓰고, 새끼줄로 만든 머리띠를 쓰고 말이죠. 단을 풀고 말이죠. 이런 식의 죄수복장을 합니다. 참 이런 것들은 저는 동의 못하겠어요. 아니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어느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과정 아닙니까? 그것을 왜 죄로 봐야 됩니까? 그리고 왜 그런 죄인 복장을 해야 됩니까? 전 이런 면은 일단은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많이 개명화됐기 때문에.

 

~ 그다음 시신을 가지고 습을 하죠. 목욕하고 수의를 입히고, 飯含반함의례. 입에다가 물에 불린 쌀을 세 번 넣습니다. 그리고 거기다 동전을 넣는 경우도 있죠. 저승 가는 노잣돈이다. 글쎄. 노잣돈이 그거 가지고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렇게 넣습니다. 그 다음에 염을 해서 입관을 하고, 병풍 뒤에 놓고 영좌를 앞에 따로 모시게 됩니다. 그때부터 거기에 절을 하고 문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 전까지는 문상을 하는 게 아니고, 영좌를 모시고 뒤에 시신을 모셔야 문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그다음에 발인이 있죠. 발인. 세 번째 뭐 삼일장이면 세 번째 되는 날에 발인을 해서 무덤으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재미난 것은 그 상여소리입니다. 상여소리에 나타난 그 죽음관이 한국인들의 죽음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거 같습니다. 뭐라고 그러는고 하니 한번 죽으면 저승길이 분명하다. 대궐 같은 집 두고 내길 찾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한번 오기 어려워라. ~ 보십시오. 대궐 같은 집 두고 간답니다. 이전에 무슨 대궐 같은 집이 있습니까? 다 초가집이었겠죠. 대부분.

 

그래도 이승에 있기 때문에 대궐로 본 거에요. 여기 있다는 자체가 대궐인 겁니다. 그리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알지 못하는 길 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뭐 전설의 고향, 전설따라 삼천리 이런대서 보면 항상 어떻게 됩니까? 저승사자들이 나타나서 죽은 사람을 가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갑니다. 그렇죠? 여기에 상여 소리도 이렇게 나옵니다. 일직사자. 월직사자. 창검 들고 철봉 들고. 안가니까 자꾸 창검이나 철봉으로 내려쳐서 빨리 가게 만드는 겁니다. 이승이 좋은 거죠. 저승도착하면 우두나찰 마두나찰이 달려들어, 소머리 말머리를 한 나찰들이 달려들어서 또 저승으로 끌고 가는 거에요.

 

이러니 저승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싫겠습니까? . 사실 상여 놀이에 이런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 집안 걱정 말고 옥황님전 극락왕생하라. 이런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만, 이게 주종은 아니고, 가기 싫은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얘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 뭐 하관의식이 있겠고. 그다음에 굉장히 복잡합니다. 이것도. 반혼. 혼을 집으로 모셔오는 거에요. 이제 집에 있던 여성들이 이때 곡을 또 해야 되고 말이에요. 참 복잡합니다. 그리고 혼을 집으로 모셔온 혼을 집에 있던 영좌에 또 모시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상하죠. 혼을 인정하지 않는 게 유교 가르침인데, 어떻게 또 요번에는 영좌에 모셔가지고 3년 동안 탈상할 때까지 매일 밥상을 차리는 경우도 있고. 혹은 뭐 출필고 반필고 해서 나갈 때 그 영좌에 고하고, 들어와서 고하고. 거의 살아있는 사람대접을 하는 거에요. 어떻든 모순이죠. 영을 존재를 인정 안 했는데, 실제로는 관습적으로는 이렇게 모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탈상이 되면 시묘살이도 하는 경우도 있죠. 효자인 경우에. 움막살이. 움막살이도 공자가 말한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작들이 물어보거든요. 얼마큼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시면 되느냐? 했더니, 공자 얘기가 우리도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3년을 돌봐주지 않았느냐? 해서 그게 시묘살이 3년이 나온 겁니다. 그것 참~ 대단한 효라고 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사실은 이것은요, 양반들만 했던 겁니다. 농부들이라든가 하인 노비들이 이걸 어떻게 했겠어요? 농사지어야죠. 어떻게 시묘살이를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좌우간 그렇게 3년이 지나면 삼오제를 지내서 삼일동안 지내면서 탈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3년째에 상주의 제약에서 벗어나고 움막살이에서 벗어나고. 이때가 돼야 이제 장례가 끝난 거에요. 사실은.

 

망자는 죽은 자의 질서에 편입이 되고, 살아있는 자는, 자식들은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게 바로 장례식의 끝이 되죠. ~. 여기 장례식을 굉장히 간단하게 봤습니다만 아주 현세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이렇게 묘지를 정할 때 항상 나오는 게 풍수지리죠. 풍수지리 참 재밌고 좋습니다. 그런데 풍수에는 양택풍수와 음택풍수. 그러니까 사람이 사는 집을 집 자리를 고를 때 하는 풍수와 그다음에 죽은 사람의 집 자리. 묘지죠. 이를 정할 때 하는 풍수가 있는데. 요새는 양택풍수는 아니고 음택풍수만 얘기를 하게 됩니다.

 

양택풍수는 저는 굉장히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택풍수는 조금 고개가 좀 갸웃 둥 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어떻든 그 중요한 것은요, 생기를 잃는 겁니다. 이 전통한국인 혹은 중국인, 동북 아시아인에게 땅은 살아있는 것이란 말이죠. 땅에는 일정한 기가 흐르고 있는 거에요. 그 기가 모인 혈에다가 조상의 묘를 쓰면, 그 기가 조상의 뼈를 통해서 자손의 뼈로 오는 거에요. 그게 동기감응이라고 그러거든요. 조상과 우리는 같은 기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감응할 수가 있다. 그래서 발복을 하게 되는 거에요. 복을 발하는 거에요.

 

이런 면이 저는 이제 좀 받아들일 수 없는 겁니다. . 어떻든 가만 보세요. 명당을 찾아서 하는 이유가 뭡니까? 물론 조상에 대한 생각도 있지만, 뭡니까? 조상 덕을 보려는 거죠. 살아있는 사람의 위주가 되는 거에요. 역시 현세적입니다. 이게 물론 풍수에 본령은 아니라 그래요. 풍수하는 사람들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덕 보려고, 자기가 돈 많이 벌고, 높은 관직에 올라가고 이러기 위해서 조상의 묘를 이용하는 거 아니겠느냐? 말이에요. 여기서 재미난 거는 제가 직접 들은 얘기인데 어떤 친구가 자꾸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더라 이거에요. 나와서 춥다춥다.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누구한테 물어보니까, 그것은 할아버지 묘를 잘못 쓴 거다. 파보고 이장을 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대요.

 

실제로 파보니까 할아버지 묘가 수맥에 걸려서 관이 떠서 있더란 말이죠. 그래서 이장을 하니까 다음부터 꿈에 안 나타났다. 이런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듣거든요? 이게 뭡니까? 아니 한국 사람들은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않고 자기 몸을 바로 보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이 무덤 속에 갇힌 몸을 자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바로 이게 뭡니까? 지극히 현실 중심적인 사고죠. 현세 중심적인 사고. 죽어도 저승으로 가지 않고, 그 땅속에 묻힌 몸을 자기로 생각하는, 얼마나 현세적입니까? 이런 것들을 미신이다. 이래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믿지를 않는 거 같습니다만, 제가 서울대학교 있던 최창조 교수한테 풍수전문가죠? 그이한테 직접들은 얘깁니다 만은 풍수를 미신이라고 공박하는 친구와 한참 토론을 벌였데요. 한참 토론을, 상대는 풍수는 미신적이고 전근대적인고 뭐 계속 비판했던 거에요.

 

한참 비판을 하더니 마지막에 야~ 그거는 다 그렇고, 너 우리 아버지 산소자리 잡아줄 수 있겠니? 이러더라는 거에요. 이게 뭡니까? 머리로는 거부하는데 몸은 한국인으로서 자기 몸속에 들어가 있는 정신 속에 들어와 있는 DNA에는 풍수를 인정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전통의 무서운 거에요. 전통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 ~ 그다음에 마지막이 제사입니다. 장례라는 것은 한 번에 끝나지만 제사는 일 년에 몇 차례 하게 되니까, 여기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생사관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제사도 요즘은 제대로 지내는 집안은 거의 못 본 거 같아요. 네 단계로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몸과 마음을 재계하고 재물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래서 술이나 마늘을 먹지 않고, 또 부인과 동침을 하지 않고, 또 문상을 가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고 약 일주일 동안 오직 그 조상, 신령들만 생각하는 겁니다. 참 오직 조상 신령들만 생각하는 그런 마음. 높은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하는 분이 있을까요? 제사지낼 때? 사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제사라는 게 그게 아마 진정한 제사가 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는 신령을 맞이하는 거죠. 정식 제사가 들어오게 됩니다. 요 부분이 제사에요. 그 신령을 맞이할 때는요, 가장 먼저 향을 피워서 혼을 모십니다.

 

지금 조상의 혼백은 따로 나눠져 있다. 그랬죠? 혼은 하늘에 가서 없어져 있고 백은 땅에 가 있고. 그래서 향을 피워서 향의 연기가 위로 가지 않습니까? 고하는 거에요. 혼을 불러오고. 그다음에 옆에 있는 조그만 종지에 모래를 담고 흙을 담고 담아 놓은 거기다 술을 붓습니다. 이건 백을 불러오는 거라 그래요. 혼과 백을 불러서 결합시키므로 해서 다시 조상들을 전체를 이루게 만드는 겁니다. 사실 이게 제사두요, 굉장히 상징성이 많은, 또 높은 수준의 그런 종교의례입니다. 지금 이걸 모르고 지내기 때문에 전부 대충대충 하고 말이에요. 이렇게 하는데,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온전한 조상이 나타나게 되면 술을 세 번씩 올리게 되죠. 몇 사람들이 초혼 아혼 종혼 올리고, 축문을 읽고, 그다음에 차려놓은 음식을 들라는 흠향을 간청합니다. 이때 문을 닫고 나가기도 하고, 병풍을 치기도 하고, 엎드려있기도 하죠. 이렇게 되면 시간을 드리는 거에요. 조상들 한테. 사실 여기도 재밌죠. 아니 조상이 혼령이 어떻게 왔다 치더라도 음식을 어떻게 먹습니까? 몸이 없는데. 그런데도 그냥 하는 거에요. 여기도 또 높은 상징성이 있습니다. 사실은. 일견 보기에는 미신적인 것처럼 보이죠. 무슨 조상의 혼령이 와서 어떻게 먹느냐? 그러나 여기 또 유교에서 제시하는 어떤 높은 상징이 있습니다.

 

~ 여기 이렇게 해서 두 번째 단계가 끝나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는 축관이 원래는요, 다 축관이 있었습니다. 양반집에선 특히. 뭐해라, 이거 해라 이런 식으로. 진행가죠. 축관이 조상을 대신해서 조상의 복을 내리게 됩니다. 주로 농사 잘 짓고 장수하라는 덕담 같은 겁니다. 그러면 제관 혼자서 감사의 뜻으로 그 조상에게서 받은 올렸다가 다시 받은 술을 음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축문을 태우면서 조상 신령들과 작별을 합니다. 이게 세 번째 단계고요. 네 번째 단계는 이번에는 모든 참석자들이 같이 음복하는 순서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 나와 있는 가족들만 음복하는 게 아니고요, 원래는 그 음식이나 이 술을 주변의 이웃에 사는 친구나 이웃들에게도 전달해서 그 복을 나눠야 됩니다. 사실은 여기까지 해야 유교의 제사가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렇게 하는 집이 제가 태어나서 지금 오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요.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 그런데 이 제사의 순서를 보십시오. 여기서는 조상령의 실제를 확신을 하죠. 그런데 기존유교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전해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선비가 양민집에 가서 제사를 참관하고 탄복을 했던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조상의 혼령이 오니까, 대문을 열어놓기도 하고, 또 오다가 걸린다고 빨랫줄을 치워버리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제사를 지내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이 우리 손자들을 못 봤기 때문에 부모님이 보게 하려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부부 관계하는 흉내까지 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양반이 아~ 저거야말로 진정한 조상을 위하는 제사다 해서 뉘우치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문제는 아까도 얘기했습니다만 이 조상영이 어디서 오느냐?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사도 그렇고, 장례도 그렇고, 어떤 때는 조상영이 무덤 앞에 있다고 그랬다가, 거기서 제사를 지내죠. 어떤 때는 신주 앞에 있다. 그러고 일관성이 없어요. 그리고 사대까지는 우리가 다 모시지 않습니까? 각각 각자 이렇게 모시다가. 오대 이후에는 전체조상이 같이 있다가, 제사 때가 되면 혼령이 나타나거든요. 어디서 오느냐 말이죠. 이게. 그들의 공동 합숙소가 있냐 말이에요. 여기에 대한 설명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것은 해석을 하면 항상 유교 제사는 산자가 중심이 돼서 하는 제사에요.

 

그러니까 조상들을 위하기보다는 조상들을 산자의 질서, 산자의 공동체 속으로 끌어들여서 자식들, 그러니까 아들의 머리에서 되살려가지고 다시 살아나게 하는 거에요. 따라서 이 조상들이 어디가 있다? 무엇을 한다?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살아있는 아들, 종손. 이게 가장 중요하게 되는 거예요. . 저승에 대한 그런 생각이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제사라는 것은 제가 얘기를 했죠. 간접적인 영생법이다. 물론 아들의 뇌리 속에서 되살아나면서 영생하는 것도 있지만, 또 무엇이 있는고 하니, 아까 음식을 차려놓고 먹잖아요. 술을 같이 먹고. 이게 뭔고 하면 말이죠. 조상이 먹은 음식이죠? 그것을 내가 먹는 거에요. 이건 뭡니까? 이거는. 조상과 하나가 되는 거죠.

 

그런데 조상은 누굽니까? 수천 수백 생 이전부터 있었던 생명의 근원이죠. 내가 지금 이생에 가능했던 것이 모두 조상들에서 나왔던 거죠. 물질적인 거, 육체, 정신, 문화, 전부 이게 조상들로부터 전수되어 나온 겁니다. 그래서 이 조상이라는 건 바로 영생의 상징을 말합니다. 음복을 하는 것은 바로 영생의 상징과 하나 됨을 의미하는 거죠. 그러니까 나는 이생에서 태어나서 찰나적인 삶을 살고 가서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고, 내 생명의 근원인 조상과 하나 됨을 확인하는 의식이 바로 유교의 제사입니다. 이게 바로 종교학적인 해석이고 의미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바로 이점까지 생각을 하고 좀 더 깊게 해야 되는데, 이런 제사는 제가 본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제가 시제도 참여를 많이 해왔습니다만, 이 문중에 이렇게 깊은 의미를 깨닫고 하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사대가 되든, 오대 칠대가 되든, 제사라는 것은 이 산 자들의 중심이 된 종교의례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다시 현세가 강조되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샤머니즘에서 현세를 강조하는 것을 각인시켰고, 그다음에 조선 육백 년 동안 다시금 내세를 부정하고 현세만 강조하는 그런 가치관을 부여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병원에서 보는 그런 모습, 무작정 생명을 연명하면서 삶에 집착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가치관에서 나왔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 물론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다만 변화하는 속도가 좀 느려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죽음관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이런 것들을 창출해내서 가치 있게 살고, 또 가치 있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야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 이렇게 해서 한 열두 번에 강좌 동안 죽음학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 얼마나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는데요, 다만 여러분들이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기회, 그런 기회가 됐으면 하는 그런 작은 바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시면서 물론 웰빙도 해야겠죠.

 

그러나 웰빙과 함께 더불어서 웰다잉도 잊지 마시고,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되고, 따라서 삶을 정비하면서,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내가 누구이고, 깨달음이 무엇이고, 불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고,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고, 이런 걸 생각하시면서 천천히 죽음 준비를 하시는 게 그런 기회를, 그런 기회가 마련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말씀드리면서 제 열두 번의 강의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또 장기간 동안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