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81.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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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2019. 9. 30.



 

하루하루 이렇게 법문을 하다 보니 오늘 벌써 100번째가 됩니다.

오늘 법문을 마지막으로 이 아침 법문은 모두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부처님같이 닮아갈 것을

원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교도 수바다라를 마지막으로 교화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을 다 불러 모으셨습니다.

마치 꺼져가는 불이 다시 한 번 살아나서 그 마지막을 태우듯이 다시 원기를 회복하셔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계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정진했는데

여래가 없을 때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인 계를 스승으로 삼아라.

 

그 부처님의 가르침인 계를

수행자가 꼭 지키고 산다면

바로 부처님과 함께 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계를 스승으로 삼아라하는 말씀을 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는 부처님이 계실 때는 서로 수행자들끼리

그대여하고 서로 불렀습니다. “벗이여하고.

 

그런데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고 수행력이 깊은 장로는 젊은 수행자들을 보고 그대여하고 부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젊은 신참 수행자들은 선배인 장로들을 보고 그대여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대덕이시여’ ‘존자여’, 이렇게 불러야 한다.

 

부처님이 계실 때는 부처님이 스승이니까 스승의 아래에 모든 사람들은 평등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그대여’ ‘그대여하게 되면

바로 여기에 신참수행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죠.

 

그래서 부처님을 대신해서 바로 수행력이 높~~은 대덕들을 존경하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하는 것을 이르셨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처님도 교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부처님이 세속에 계실 때, 왕자로 계실 때, 늘 부처님을 시봉한 마부 찬다카에요.

 

이 마부 찬다카가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는데, 도무지 수행은 안하고 늘~~ 수행자들을 비난하는 거요.

내가 말이야, 부처님 태자 때 어떻게 어떻게 했다.’ 늘 과거 얘기하고

부처님 출가하셔서 숲속에서 혼자 그렇게 정진할 때 자기만이 옆에 없었다. 그때 아무도 없었다는 거요.

그런데 요즘 사리부트라나 목갈리라나 이런 사람들이 말이야

자기가 부처님 상수제자라고 큰 소리치는데 말이야.’

이러면서 늘 문제를 삼았어요.

 

그러니까 일종의 질투심이고 열등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부처님이 몇 번 불러서 수행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하고 타일렀지만, 이 찬다카는 그 버릇을, 불평하는 이 버릇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그때까지도 아직도 깨달음을 못 얻고, 승복은 입고, 절에서 비구 생활은 하면서도 이 마음을 못 깨친 거요.

아마 이것은 부처님께 큰 과제였을지도 모르죠.

 

그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대중들을 불러모아놓고, 앞으로 찬다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찬다카가 하는 말에는 아무도 대꾸하지 마라.

이걸 묵빈대처라고 그럽니다.

일체 말 상대를 하지 말라는 거요.

이런 지침을 내렸어요.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이 찬다카가 너무너무 슬퍼서, 주인 잃은 사람이 되어서, 그러니까 출가를 해도 완전히 아직 못 벗어난 거죠.

그렇게 슬퍼할 때, 바로 이 부처님의 마지막 유언을 전해줬어요.

 

그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 빠져서 오히려 부처님께 큰 부담을 줬느냐하는 것을 느끼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직전에 자기를 위해서 이런 유언까지 남겼다는 것을 알고는 땅에 3번을 기절을 하고 넘어졌다고 그래요.

그렇게 큰 충격을 받고는 열심히 정진을 해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수바다라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깨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교화가 되지 않던 그 찬다카를 아끼고 사랑해서

돌아가신 뒤에 깨달을 수 있는 지침까지 주셨다.

 

그리고 나서는 대중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뭔가 의문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라

지금 묻지 않고 있다가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

, 그때 물어볼 걸 그랬다.” 이렇게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니 지금 물어라.

마치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그렇게 편하게 얘기했는데도 대중이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또 말했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편안하게 물어라.”

의문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라.

또 대답이 없었어요.

 

부처님이 세 번째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도 대중이 대답이 없자 아난다가

부처님, 저희는 부처님 말씀에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자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만들어진 것은 모두 변해가는 것이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너희들의 수행을 완성하도록 하여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렇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이제는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쿠시나가라의 말라족들이 바로 자신들의 법도에 따라 부처님의 장례를 치르도록 그렇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논을 해서 자기 나라의 왕이 장례를 치를 때와 똑같은 법도로 부처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거요.

왜냐하면 부처님도 왕족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왕이 왕관을 쓰는 대관식을 하는 자리, 거기에다가 그들은 부처님의 다비장을 마련을 했습니다.

소위 마코마반다라는 영지인데요, 거기다 다비장을 마련하고, 그다음에 부처님의 유해를 향과 꽃으로 장식을 해서 아주 정성스럽게 모셨던 겁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많은 곳에서 부처님의 요즘 말하면 장례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이 장례식을 다 준비해서 일주일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불이 붙지 않았다는 거요.

그런데 마하가섭 존자가 도착하자마자 불이 저절로 붙었다.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좀 더 사실적으로 해석을 하면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하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마하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그 마지막 안거, 바이샬리에서 안거를 할 때, 마하가섭 존자는 그곳에서 안거를 안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대중500명과 먼 다른 나라에서 안거를 했어요.

 

안거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들리는 소문이 부처님께서 많이 편찮으셨다.

이런 소문을 들은 거요.

그래서 안거가 끝나자 마하가섭 존자가 대중을 끌고 바이샬리까지 왔는데, 이미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를 떠나셨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뒤를 쫓아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북쪽으로 쿠시나가라를 향해 왔는데, 어떤 지나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전하는 말이 부처님은 이미 돌아가신 지가 일주일이 되었다 하는 얘기를 들은 거요.

그래서 마하가섭 존자는 급히 그 말탄 사람을 돌려보내서 장례식을 도착할 때까지 연기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거요.

그렇게 해서 마하가섭존자가 도착해서 마지막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보면 되겠죠.

 

그래서 마하가섭 존자는 먼저 부처님의 발아래 엎드려서 절을 하고, 관을 3바퀴 돌고 그 발아래 엎드려서 절을 하자, 저절로 불이 붙었다.

이 말은 그때 마지막 장례식을 치렀다.

 

우리 선에서는 그때 부처님께서 마하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발에 예를 갖출 때,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이셨다. 이것을 곽시쌍부라고 그러죠.

이것은 교외별전에 삼처전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인도에 상식적인 풍속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관이 없습니다.

이런 얘기는 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상상이라고 볼 수 있죠.

관에 넣어서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고대로 시신을 두 대나무에 걸친 데에 넣어서 들고 가서는, 장작을 쌓고 시신을 놓고, 위에도 장작을 쌓고, 머리부분하고 두 발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이렇게 장작을 쌓습니다.

 

그러니까 시신이 화장하려고 쌓아진 데를 보면 보이는 건 뭡니까?

머리끝하고 발바닥하고 그것만 보입니다. 나머지는 다 장작으로 쌓여져 있거든요.

그리고 입에는 쌀을 넣어 놓습니다.

그러면 상주가 인도풍속대로 하면 머리를 깎거든요.

 

여러분들이 인도 여행을 할 때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왠 사람인가 할 텐데 그게 아니고 그 분은 자기 가족 중에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머리꽁지를 요만큼 남겨놓지 않습니까.

그리고 상주가 흰옷을 입고 발의 예의를 갖추고 하면

그다음에 불을 지피는, 화장하는 천민이 있습니다.

천민이 불을 지피면 태워지거든요.

 

그러니까 마하가섭 존자가 도착해서 그 다음에 부처님의 유해를 3바퀴 돌고, 그리고 그 발아래 엎드려서 마지막 예를 취한 뒤에,

, 마하가섭 존자뿐만 아니라 500대중들이 다 예를 취한 뒤에 다비를 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좋은 향나무로 다비를 했기 때문에 아주 깨끗이 살점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연소가 되었다. 그럽니다.

인도에서는 이렇게 완전히 연소되기가 어렵습니다.

부자들은 완전하게 연소시키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좋은 나무, 그렇게 많은 나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대강 태워서 그냥 강에다 집어 넣어버리죠.

그러면 까마귀가 타다 남은 시신을 쪼아먹는 이런 모습을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데, 부처님은 완전하게 다비가 되어서, 화장을 해서 그 살점 같은 게 하나 없이 그을음 없이 다 타고, 하얀 뼛조각만 남았다.

 

이 부처님의 몸을 화장하고 남은 유해, 유골, 이걸 뭐라고 합니까?

사리라고 합니다. 원래 뜻은요,

오늘날은 영롱한 구슬 같은 것을 사리라고 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부처님의 유해,

, 다비를 하고 남은 그 유골을 사리라고 한다.

 

이렇게 다비가 끝나자, 각국에서 사람들이 파견해서 다 부처님을 존경하니까, 부처님의 사리를 가져가서 자기 나라에 탑을 세우겠다는 거요.

이것이 너무 험악하게 되었어요. 서로 가져가려고. 전쟁까지 일어날 판이 되었어요.

 

그때 현명한 도나바라문이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해하고 화합하고 평화를 가르쳤는데,

그 부처님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부처님의 유해를 서로 가려가려고 만약에 싸운다 그러면 이거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게 아니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느냐,

각각 다 서로 부처님의 유해를 모시겠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때 참가한 것이 8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공평하게 8몫으로 나누어서 가져가서 탑을 쌓도록 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 8개의 사리탑이 생겨나게 된 겁니다.

 

그때 이 도나바라문은 8몫으로 나누어진 뒤에 사리 담았던 항아리는 자기가 가져가서 탑을 세웠어요.

그리고 또 한 부족은 늦게 와서 왔는데 이미 사리 분배가 끝났어.

그래서 그 화장한 재를 가지고 가서 탑을 세웠다.

그래서 사리탑 8, 항아리탑 하나, 재탑 하나,

이것이 이 세상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보면요,

마가다국의 국왕인 아자타삿투는 부처님의 사리 일부를 가지고 가서 라자그라하, 즉 왕사성에다가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웠습니다.

바이샬리에 리차비족도 바이샬리에다가 사리탑을 세웠고

카필라바스투 석가족도 카필라바스투에 사리탑을 세웠고

알라카파의 부리족도 알라카파에 사리탑을 세웠고

라마마을의 콜리야 족도 라마마을에 사리탑을 세웠고

베타디파의 한 바라문도 베타디파에 세존의 사리탑을 세웠고,

파바의 말라족도 파바마을에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웠고

쿠시나가라의 말라족도 쿠시나가라에 사리탑을 세웠습니다.

도나바라문은 항아리탑을 세웠고,

핍팔리바나의 모리야족은 늦게 와서 세존의 유해를 다비한 재를 얻어서 재탑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는 도합 10개의 탑이 있게 된 겁니다.

이것을 시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덟 말의 부처님의 사리 가운데

일곱 말은 인도 각지에 모시고

남은 사리 한 말은 라마 마을 용왕이 마음을 모아 모시는구나.

 

네 개의 치아 가운데 하나는 도리천에 공양 올리고

간다라푸라에게 하나 있고, 카링가 왕도 하나를 얻으니

남은 하나는 용왕가 나누어 각각 모시는 구나.

 

사리와 치아 비할 바 없이 위광서리니

위없는 선물 그것으로 장엄한 이 대지

이와 같이 소중하리.

 

착한 사람에게 불사리 주어

공경하는 그 모습은

천제, 용왕, 제왕은

수승한 이에게도 공양하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공양하고

 

지심으로 합장 귀명하여라.

실로 백 겁의 시간이 지난다 해도

만나지 어려운 부처님이라면.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는 8개의 부처님 진신사리탑과 그리고 한 개의 항아리탑, 한 개의 재탑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존경했던 사람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바로 부처님의 사리탑을 친견하면서 부처님을 공경하듯이 했다.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200여년이 지난 뒤에 아쇼카왕이 이 세상에 출현했습니다.

아쇼카왕은 너무나 부처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그 발자취 발자취 마다 다니면서

그 곳에다가 다 기념탑을 세웠습니다.

 

얼마나 많이 세웠는지 팔만사천 개나 세웠다. 이렇게 말해요.

이때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고

인도 말에 팔만사천이라는 말은 한없이 많이 세웠다이런 얘기입니다.

 

이때 사리탑을 세우는 곳마다 이 8개의 사리탑을 허물어서 그 안에 사리를 꺼내서 각탑마다 다 사리 한 조각을 넣어서 사리탑을 세운 거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발자취, 여기서 수행하셨다, 여기서 설법하셨다. 여기서 공양 드셨다. 여기서 누구에게 공양 받았다.

그 장소마다 다 탑을 세운 거요.

 

만약에 아쇼카왕이 이런 일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부처님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아쇼카왕은 8대 성지마다 아쇼카석주를 세워서

여기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여기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곳이다.

여기는 처음으로 설법한 곳이다.

여기는 부처님이 도를 이루신 곳이다.

이렇게 다 표시를 했기 때문에, 인도에 불교가 없어지면서 이것이 다 묻혀버렸다가

다시 유적들이 발견될 때, 그런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하나하나 복원을 해 가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은 유실된 상태에 있습니다.

 

8개의 사리탑가운데 3개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5개는 아직은 위치를 알 수가 없습니다.

 

8개 중에 발견된 3개 중 첫째가 바이샬리입니다.

이 바이샬리에 진신사리탑을 여러분들은 순례하면 친견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리탑을 세웠던 기단, 그 위치, 그것만 있지, 거기에 무슨 사리를 발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 허물어지고, 사리탑을 세웠던 기단만 있다.

 

두 번째는 석가족들이 세웠던 삐부라하와의 사리탑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사리가 발견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사리는 지금 인도에 델리 박물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의 유해가 2600년 전 부처님의 그 유골이 그대로 몇 조각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리라고 그러면 자꾸 구슬 같은 것만 생각하니까, 어떤 분들은 그것을 보고 가짜네, 이런 사람도 있어요.

진짜를 보고 가짜라고 그러고, 가짜를 보고 진짜라고 그러고,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 다음에 하나는 부처님의 그 어머니 야쇼다라 공주의 종족인 꼴리족이에요.

이 꼴리족들이 세운 라마의 사리탑은 한 번도 개봉이 안 되고 그냥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쇼카 왕이 이것을 개봉을 못했습니다.

큰 용왕이 나타나서 나보다도 더 사리공양을 잘하려면 헐고, 그렇지 않으면 손대지 마라해서 아쇼카왕도 손을 못 댔다고 하는 이 곳은 네팔에 있습니다.

랑그람이라는 유적이에요.

 

우리나라에도 5대 적멸보궁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신성시 하는데

하물며 인도에 가서, 그것도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처음으로 세웠던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3군데는 꼭 순례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묘하게도 가장 부처님을 존경하고 신심이 있었던 그 지역 3군데가 지금 남아 있는 거에요.

부처님 출신인 석가족, 그 어머니 출신인 꼴리족, 그리고 부처님을 가장 존경하고 부처님도 좋아하셨던 바이샬리, 3군데의 진신사리탑이 남아 있다.

 

 

, 이렇게 우리가 부처님의 일생을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께 우리 부처님에 대한, 제가 쓴 시를 마지막으로 읽어드리면서 이 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우리 부처님

진리로 오고 진리로 가신 분

응당히 공양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

일체 법을 두루 아시는 분

지혜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

여실이 저 언덕을 건너가신 분

세상의 온갖 일을 다 아시는 분

세상에서 제일 뛰어나신 분

일체 중생을 두루 제어하시는 분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신 분

일체 법을 깨달으신 분

세상에서 가장 존중받으시는 분

 

석가족 출신의 성자

그 분을 찬탄하고 공경하며

그분께 공양하고 예배하오며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오며

목숨 바쳐 돌아가 의지하나이다.

 

일찍이 연등부처님으로부터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리라는 수기를 받으시고

뭇 중생을 위해

희생과 봉사와 인욕의 보살행을 하셨더라.

 

그 공덕이 한량없어

하늘 중의 하늘, 도솔천에 이르시어

하느님 중의 하느님인 도솔천주가 되셨으니

그 높은 이름, 호명 보살

 

부러울 것 없는 생활 속에서도

뭇 중생의 고통을 보시고

큰 아픔 느끼시어

천주의 자리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더라.

 

그 이름도 거룩한 싯다르타

총명함은 샛별도 시기하고

인자함은 달빛도 질투하고

당당함은 사자도 미치지 못 하더라.

 

세간의 모든 학문에 정통하고

갖가지 무술을 통달하니

스승은 가르칠 것이 없고

세상에는 겨룰 자가 없더라.

 

부러울 것 없는 생활 속에서도

농부의 고통과 뭇 짐승과 벌레의 비참함을 보시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왕 중의 왕, 전륜성왕의 자리도 버리셨더라.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그 분의 가시는 길을 도우니

사자처럼 당당히 출가하시어

고행의 길에 인욕선인으로 나섰더라.

 

반석 같은 믿음 위에

정진의 기름에 불을 당기니

그 열기가 마왕의 궁전을 태우고

다생의 업장을 녹이어

보살의 발원을 성취하셨더라.

 

동방의 샛별을 보시고

본래 마음 청정이 빛나니

뭇 별은 사라지고

오직 태양만 빛나더라.

 

사람 중의 사람

신들의 스승

장부 중의 장부

부처님이 되셨더라.

 

우주의 성주괴공보다 더 귀한

위없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이름도 거룩한

석가족 출신의 성자 석가모니불이시더라.

 

감로의 법을 연설하시니

불빛에 어둠이 물러나듯

중생의 무지가 사라지니

억겁의 윤회 속에서 해탈을 얻었더라.

 

세계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

참 자유인

중생이 곧 부처이더라.

 

척박한 땅 쿠시나가라에서

그 거룩한 몸 열반에 드시니

사라수는 학처럼 희어지고

쿠시나가라는 성스러움을 얻었더라.

온 누리의 스승이시고

뭇 중생의 어버이이신

우리의 본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심귀명례 하나이다.

 

그분의 제자가 됨으로써

당당함이 태산 같고

견고함이 강철 같고

지혜로움이 광명 같고

청정함이 수정 같고

부드러움이 솜털 같고

겸손함이 그림자 같고

아량이 허공 같고

따뜻함이 어머니 품 같이 되어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한 점 부끄러움 없고

죽음 앞에서도

지옥 속에서도

한 점 두려움이 없이

 

고통 받는 중생이 있는 곳에는

시위를 떠나 화살이 되어

오직 정진 하겠습니다.

 

시절 인연이 어려워

찬 서리 북풍이 휘몰아칠 때도

믿음의 대지에 뿌리를 굳건히 박고 나서

새싹을 창조하는 큰 나무가 되겠습니다.

 

이 몸이 모든 것을 베푼들

그 분의 출가에 비길 수 없으며

이 몸이 가루가 된들

그 분의 인욕행에 비기겠습니까?

 

그 분을 뵈올 수 있다면

지옥 속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으며

그 분을 뵈올 수 없다면

천상의 기쁨도 원치 않겠습니다.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이신 청정한 공동체에

귀의할 뿐입니다.

 

한 마음 맑아지니 나날이 새날이 되고

한 행이 보살도 행하면 연년이 새해가 되니

부처님 광명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 광명 속에 놀아보세.

 

머무르는 곳마다 부처님이 계시고

하는 일마다 부처님 일이 되니

극락세계 이 아니며, 용화세계 이 아닌가.

 

한 마음 오롯하니

천지가 내 것이라

우리 세존 부처님께 머리 숙여 귀의하며

엎드려 절하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이렇게 해서 부족한 제가 100일 동안 여러분께 부처님 교화사례를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제 수준에서는 잘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마 많은 부족함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전의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인용구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든지, 조금 여러분이 듣기 쉽게 쉬운 표현을 했다든지, 이런 문제로 인해서 혹시 경전을 왜곡한 게 아닌가, 이런 오해가 있으신 분도 있다면

여러분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부처님의 법을 대중들이 좀 더 쉽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저의 뜻에서 일어난 일이지, 경전 자체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방송국의 문제도 아니고요.

 

어쨌든 100일 동안에 여러분께서 이렇게 청취해주셔서 깊이 감사 말씀을 드리고요

이 좋은 부처님을 여러분들이 받아 지니셔서 부지런히 정진하실 것을 한 번 더 말씀을 드리고 싶고,

불법에 대해서 불자가 된 것이 좀 더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

 

지난 불행한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교가 너무 극심한 탄압을 받다보니까, 우리가 너무 위축이 되어서 알게 모르게 좀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런 것을 떨쳐버리고 정말 내가 부처님 법 만난 것이 기쁘고

부처님 제자 됨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내 자신의 해탈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해야 되겠다.

이런 발원까지도 여러분께서 함께 하신다면

100일 동안의 법문이 헛되지 않지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동안 청취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