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언니의 따끈따끈독설 45화_ 내 것 아닌 책임으로 힘겨운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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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독설

2019. 12. 6.



매일 같이 여러분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내 인생의 정리가 되고

내 고민이 정리가 되는 느낌은 왜 일까요?ㅎㅎㅎ


왜나하면..

아, 그렇게 나랑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많이 사는구나.


한 어떤 젊은 여성은 아버지의 뒤를 다 책임지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도박꾼이에요.

그래서 빚을 지고 그랬나 봐요.

그걸 다 뒷감당을 하고 있느라고 애를 쓰고

어떤 여성은 남편이 술만 먹고 생계 부양을 안 해.

그래서 애들 셋에 남편을 책임지느라고 힘들고.


이런 거 있잖아요.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책임을 지고 있는 것.

나와 내 아이를 위해서 일하는 건 괜찮아.

그런데 그 넘어서의 그 범위를 내가 이 작은 한 사람이 다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힘겹고 가끔씩 눈물 나고, 또 억울하고 그러지 않겠어요.

그런 분들 보면 너무 가엽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제가 제일 먼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참... 그렇게 힘든데 어떻게 살았어요, 참 애썼다.”

정말 제가 하나하나 안아주고 싶거든요.


여러분들, 김미경은 아무 고민 없는 거 같죠.

“아이고, 저 여자는 나와서 뭐, 텔레비에서 강의하고, 돈 벌고, 아무 걱정 없을 거야.”

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 걱정이 없는 집은 존재하지 않아요.


아무 걱정이 없다는 건 

살고 있지 않다는 뜻이에요.

사람이 삶을 끌어간다는 건, 

끌어가는 데 어떤 힘을 가하게 되어 있고, 

힘이 들게 되어 있고 그렇다는 건 

다 힘이 든다는 얘기에요.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 돼요.


저는 형제가 다섯입니다, 남매가.

우리 언니, 나, 둘째 동생, 셋째도 딸, 넷째도 딸, 그리고 막내아들이 하나가 있어요.

저희 엄마는 이 아들 하나를 낳기 위해서 사실은 7년간 기도를 했어요.

우리 엄마는 굉장히 독실한 크리스천이란 말이에요.

저희 엄마가 딸만 쭈르륵 낳고 시어머니가 그렇게 구박을 해대니까, 교회 가서 그렇게 울면서 기도를 한 거야.

“하나님 아들 줘유~~ 아들 줘유~~” 그래서 아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가 기도를 특별하게 했죠.

“천재 아들 주세요. 공부 잘하는 거.

그래서 우리 시어머니 코를 납작하게 만들게 해주세요” 이렇게.

그런데 그런 독한 기도를 들었다는 게 이상해요, 나는. 정말 천재 아들이 나왔거든요.


정말 머리가 좋아요. 

저는 제 동생을 보고나서 정말 위안을 받은 게 하나 있어요.

공부를 진짜 잘하는 사람은 공부를 하게? 안 하게? 안 해요.

발로 긁어도 100점이에요. 긁어도...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우리는 토익 토플 같은 거 점수 좋게 나오려면 1년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해요.

진짜 천재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대충해요. 그래도 만점 나와요.

정말 내 동생 그랬거든요.


그래서 시골에서 우리 아빠는 평생 돈이 된 사람이 아니거든요.

평생 망하기만 하셨어요.

우리 아버지도 힘든 삶을 사셨어요.

여러분, 뭐든지 하면 망하는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뒤처리를 우리 엄마가 다 한 거예요.

우리 엄마도 평생 정말, 자기가 떠맡지 않은 걸 떠맡은 거요.

뭐냐 하면, 아빠 뒤치다꺼리해야지, 애들 다섯 명 건사해야지, 시댁 건사해야지, 친정 부모 건사해야지.

우리 엄마가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그걸 양장점 정말 조그마한 리리 양장점, 증평에서 그거 하나로 우리 엄마가 50년을 버티면서 양장점을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엄마의 모든 희망은 아들이었던 거예요.

얼마나 신나요.

“홍순이 아들이 서울대 갑니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재단을 했어요.

우리 엄마는 하버드가 뭔지도 모르고, 미국에 대해서 우리 엄마가 아는 건 하버드 하나밖에 없었어요.

“하버드 갑니다~~~” 이러고. 우리 막내를 키웠거든요.


그렇게 됐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사람 인생 뜻한 대로 안 풀리죠. 내 동생이 매우 아팠어요. 고등학교 때.

정말 큰 병에 걸려서 내 동생은 대학을 못 갔어요.

우리 엄마의 모든 희망이 무너졌죠.

정말 눈물로 살았어요.

그냥 울어요?

새벽 기도 나가서 울지.

“하나님 아들 살려 줘유~~~~~” 


그게 안 통하니까 우리 엄마는 21식 금식기도를 들어가요.

물 하나 갖고 하루 버티면서 금식기도를 해서 사람이 요만큼 대꼬챙이처럼 말라서 나오는 거예요.

그때 우리 집 가세가 기울었고, 저는 그때 대학을 다녔을 때라서 정말 힘들게 학교생활을 했단 말이에요.

우리 엄마가 못 벌면 우리 집은 끝장이거든요.


결국은 그래서 엄마는 기도원으로 다니면서 양장점을 접었어요.

아들 밥해주려고. 아들 따라 다니느라고.

참, 머리가 좋긴 좋죠. 딱 6개월 공부했는데, 서울대 가더라고요. 얘가.

그런데 가면 뭘 해요. 7년을 다녔어요. 다니다 관두다, 다니다 관두다.

그때 우리 엄마의 기도는 딱 하나였어요.

“서울대 갑니다~~ 하버드 갑니다~” 이 노래는 쏙 들어갔고, 노래가 하나로 바뀌었어요.

“엄마보다 먼저 가면 안 도ㅑ~~~ 숨만 쉬어, 숨만 쉬어도 우리 엄마 옆에 있어.”

눈이 짓무를 정도로 살았어요.

우리 엄마는 24시간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울었거든요.

정말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숨만 쉬어, 숨만 쉬어’ 그랬는데, 진짜 내 동생이 숨만 쉬었어요.

밥 먹고 잠자고, 


여러분 그거 아시죠.

사람이 아~~~~무 것도 안 해도, 아무것도 안 해도, 숨만 쉬어도 좋은 일이 생기는 거 아세요?

여자가 생겼어요.

기가 막히죠. 숨만 쉬었는데 여자가 생기네.


여자애가 우리 막내를 너무 좋아한 거예요.

우리 여자애가 엄마한테 우리 며느리가 됐죠. 이제는. 딜을 했어요.

“어머니 이 사람 공부 좋아하죠. 미국 보내주세요. 우리 미국 가서 공부하게 해주세요.

이 사람 좋아하는 공부 실컷 하다 보면 정말 병도 낫고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 엄마가 64이었습니다.

양장점 접은 지 오래되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양장점을 다시 차렸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7~8년을 고생하면서 미국으로 돈 보낸 거요.

아들 병원비에, 공부 학비에, 거기다 손자 손녀도 생겼어요.


자신은 너무 고통스럽죠. 

돈 버느냐고 너무 몸도 아프고, 밤새도록 바느질하느라고 힘들지만, 내 아들이 살고 있다. 살아갈 힘을 내가 주고 있다는 것 때문에 엄마는 힘있게 그 일을 해나간 거예요.

결국 우리 엄마는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2년 동안 대 수술을 3번을 했어요. 뼈가 다 무너졌거든요.

정말 잘못하면 하반신을 절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어요.

의사가 그랬어요.

“이번에 한 번 더 허리 수술을 하면 평생 누워 사십니다.

양장점 하면 안 되세요. 그러면 돌아가세요.”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미경아, 엄마 이제는 한두 달이라도 양장점 더 해서 미국으로 우리 막내 돈 부치고 죽을랴~” 끝까지 돈 부치고 죽는다는 거예요. 

말이 돼요? 수술 안 받겠다는 거예요.


“엄마 수술받아, 큰일 나. 누워서라도 살라고 엄마. 수술 받아.” 

그랬더니 저희 엄마가 수술 들어가기 직전에 내 손을 붙잡고 막 울면서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미경아 나는, 너를 장남으로 생각햐~~ 미경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왜 나를 장남으로 왜 생각하냐고.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 엄마가 날 장남으로 생각한대요. 상황이 급박했잖아요. 알았어. 내가 장남 할게

엄마 내가 미국에 있는 내 동생 다 책임지고 내가 어떻게 해서든 알아서 할게.

엄마, 빨리 수술 들어가.


우리 엄마는 수술을 받았고, 결국 못 일어나고 계속 누워 계신단 말이에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모든 책임을 내가 맡았어요.

미국에 있는 동생도 보살펴 주고, 또 증평에 있는 엄마·아빠 다 병자시거든요.

매달 정말 많은 돈이 들어요. 다 책임지고.

아하~~~~~ 제가 이렇게 한 달에 돈을 벌어서 반드시 월급형태로 다 나눠줘야 하는 숫자는 19명이에요.

나는 그렇게 꽤 오랜 세월 살았어요.


여러분, 제가 강의하는 게 되게 꿈을 이루려고 막~ ... 

아니요. 내 생계에요. 나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

가끔씩 내가 얼마나 슬픈지 아세요?

이거 내 몫이 아닌 거 같은 거예요.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해?

나 하나에 그냥 우리 집 식구만 같이, 그냥 살면 안 돼?

나 너무너무 많은 사람을 책임져.


가끔씩 제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나 운전하고 임진강 가요. 

빠져 죽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드라이브한다고요.

왠지 아세요?

가장 나한테 울기 적합한 공간이 차 안이니까요.

얼마 전에도 갔다 왔어요.

차 안에서 소리소리 지르고 울고 나면 훨씬 편해요.

그러다가 제가 얼마 전에 깨달은 게 하나 있잖아요.뭔지 아십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

생각해 봤더니, 나는 뭔가 한 가지 일을 25년씩 오래 할 사람이 아니에요.

내 별명이 들락날락이유 원래가.


그런데 어떤지 아세요? 

19명을 책임지고, 열심히 살려고 나는 이 일을 꽤 오래 했어요.

저는 25년 강의했고, 단 하루도 강의 안 한 날이 없고, 죽어라~~~ 하고 일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지 아십니까?


열심히 나한테 온, 모든 책임을 다하려고 열심히 살다 보니까, 신기하게도 그게 나를 완성하는 방법,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된 거예요.

나 주위 사람들이 내 운명이 나를 딱 잡아 주지 않았으면 나 원래 3년에 한 번씩 직업 바꿔야 하는 사람이에요. 원래 싫증을 많이 내거든요.

분명히 나 직업 객사해야 돼.


여러분, 직업 객사가 뭔지 알아요? 3년에 한 번씩 직업 계속 바꾸고. 

“제 꿈은 이거에요. 나 이거 하고 싪어요.”

그렇게 원하는 대로 살다가 결국 아는 언니 가게 가서 일 보는 거.

나 그렇게 될 뻔했어요.


그런데 내 주위에 있는 내 책임, 내 운명이 

나를 책임지게 하고 

내 주위를 책임지다 보니까 

내가 완성되고 나를 사랑하게 됐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이런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그래도 내가 이런 저런 일 겪으면서도 이렇게 건강하게 건재하고 강사로서 잘살고 있는 건, 내 덕분이 아니라 내 돈 필요로 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완성이 되었구나.


역설적이게도 그 임진강 갔다 오는 날, 자유로 끝까지 운전하고 갔다 오는 날, 

차 안에서 그런 깨달음이 오면서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이 방식이, 지금 살아가는 이 방식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이 방식 때문에 내가 완성되었구나. 

이 방식 때문에 내가 많이 울었지만, 이 방식 때문에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었구나.

어쩌면 나에게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다가온 내 방식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도 내가 사는 방법 중에 하나구나. 

라고 내 현재를 해석해 가게 되었고, 

내 과거도 그렇게,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과거도 해석이 되더라고요.


--

여러분, 힘들죠.

알아요.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봐서 알아요.

그래서 많이 안아주고 싶고, 같이 울어주고 싶어요.

그런데 울 때 한판 우세요. 괜찮아. 울어...

저기 어디 가서 울어. 괜찮아.


울고 해석하세요.

인생은 사건 중심이 아니고 해석 중심인데

나를 사랑하는 해석을 하는 게 참 중요해요.


내 현재 다가온 내 운명적으로 살아야 하는,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을 

우울하게 해석해서 더 우울하게 살면 안 돼요.

현실도 슬픈데, 우울한 감정까지 더해지면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나를 사랑하는 방식은 

현재는 가끔씩 힘들고 슬플지라도 

해석만은 건강하게 하자.

그래서 내일 살아갈 힘을 나에게 주자.

라는 게 내 해석법이거든요.


어때요?

말이 돼요?

위로가 돼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좋은 해석 하시면서 사십시오.

사랑하고, 애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