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과학] 무엇이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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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과학

2020. 1. 7.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의 군대가 집에 들이닥쳤다.

나와 나의 부인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그들에게 끌려갔다.

우리를 포함한 수천 명의 유대인은 전차에 몸을 실었고

어딘가에 도착해 줄을 서서 내렸다.

일렬로 선 줄 맨 앞에는 독일군 한 명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 왼쪽, 오른쪽 손짓을 했고

그 손가락의 방향대로 우리는 하나씩 왼쪽 오른쪽으로 갈라져

어떠한 방으로 들어갔다.

 

거의 90%의 사람들이 왼쪽 방으로 들어갔는데

대부분의 여성과 아이, 그리고 노인이 왼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속삭였다.

 

왼쪽으로 빠지면 쉬운 일을 시키는 건가 봐

나의 부인은 다행히 왼쪽으로 가게 됐지만 나는 오른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소식이 들려왔다.

... 왼쪽으로 간 사람... 다 죽었데

 

왼쪽 방은 바로 그 악명높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용 가스실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책을 쓴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다.

 

우리는 왜 살까??

나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을 하다 정말 안 좋은 일을 겪었고 마음이 엄청나게 슬펐다.

숨을 쉬는 것도 희망을 갖는 것도 좁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어려웠다.

 

나는 이 불안하고 슬픈 마음을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고

그 백인 의사는 동양에서 온 나에게 항우울제 약을 처방해줬다.

이 약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세로토닌이라는 화학 물질이 분비되는 약이었다.

 

감기약도 잘 먹지 않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약을 먹었다.

그러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건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가 그동안 가상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약은 진짜 같았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초록색 종이를 놓고 가치를 부여하면 초록색 종이를 좋아하게 되고

돌과 나무를 모아 놓고 숭례문이다하면 돌과 나무를 귀중하게 여기게 되고

지구의 표면에 선을 그어 놓고 나라다하면 그 표면에 애국심이 생기고

 

반대로 초록색 종이를 잃거나

돌과 나무가 불에 타거나

지구의 표면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실제로 고통받는 생물학적인 진짜 사람들...

 

내가

여태까지 느꼈던 희로애락이 모두 다 가상에서부터 왔는데!

이 약을 먹으니

그 어떤 가상에 이유도 없이 바로 행복해지는구나!

...

이건 진짜다!

아무런 가상의 이유 없이 행복해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 가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0년대 초 전 세계의 아이들은 모두 일을 하면서 자랐다.

아이가 일을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부모가 이상한 부모였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일을 하면서 세상에 대해 배우고, 크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아주 큰 죄로 여겨진다.

아동학대라고 부른다.

 

이런 도덕적 관념, 아니 그 어떠한 관념도

우리가 아무리 중요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어떠한 생각도

결국엔 우리 머릿속에 가상으로만 존재하고

그 가상은 시대가 변화하고 환경이 바뀌면 바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1900년대 초든, 지금이든, 천년 전이든, 천년 후든, 1억 년 전이든, 1억 년 후든

중력은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력은 진짜니까!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는 가상의 세계에 살던 나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 약을 먹고 가상의 세상에서 깨어나듯이 약을 먹고 깨어나게 되었다.

이건 진짜다!!

 

그래서 나는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네오와 같은 ‘the one’은 못되지만,

‘the one minute science’는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만들어낸 가상의 개념들이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가상의 것들이 우리, 진짜 생물학적인 우리를 도와야지

우리가 이 가상의 것들을 위해서 살면 안 되지 않나?

 

우리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그 가상의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심취해 영화를 본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볼 땐, 영화는 영화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 속 이야기가 끝나면 검은 화면과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는 가상의 세상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죽을 때까지

영화 속에서 가상의 스토리만 보다가

영화의 바깥은 보지 않은 채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영화 속에서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죽어서야

검은 화면을 보게 된다.

 

가상을 가상으로 즐길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지만

가상이 우리를 지배해버리면 꼭두각시가 돼서 살인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가짜 인생을 살다가 끝을 맺는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보며 영화 속 한 캐릭터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Why so serious?”
왜 그렇게 진지해?

 

그는 이 세상이 가상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게임에 심취해 사는 사람을 보면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게 말이다.

왜 그렇게 진지한가?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살아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의 끝을 듣기 위해 음악을 듣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가장 빠르게 연주하는 연주자만 필요했을 것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목적이 없다.

우주는 어떠한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완전히 다른 소리만 듣고 자란다.

대학가라, 취업해라. 돈 벌어라. 승진해라. 결혼해라.

가상의 목표를 위해 네 인생을 바쳐라!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까먹고 있는 게 있다.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걸.

우리는 춤을 추면 된다는 걸

 

그렇다면 가상의 세상에서 깨어나 진짜 세상으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힌트는 다 있다.

 

저 반짝이는 별에

죽은 물고기에

향기를 뿜는 꽃에

시들어버린 잎사귀에

그리고 폭발하는 태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