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따니빠따 21회. 날라까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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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대장경(숫따니빠따)

2020. 8. 13.

 

 

숫따니빠다 제 3<큰 장>

311. 날라까의 경

 

 

미래의 최상의 청정함을 본

그처럼 유익한 생각을 가진 분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날라까는 많은 공덕을 쌓으며, 감각기관을 지키고

승리자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살았다.

 

최상의 승리자가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소리를 듣고

아시따라고 불리는 선인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자

가서 인간 가운데 으뜸가는 성자를 보고 기뻐하며

가장 빼어난 성자에게 '성자의 최상의 삶'에 대하여 여쭈었다.

 

"아시따의 이 말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고따마시여, 모든 것의 피안에 도달하신 분께 여쭙니다.

집 없는 삶을 찾아 탁발의 삶을 추구하오니

성자시여, '성자의 최상의 삶'에 대하여 여쭈오니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성자의 삶'에 대하여 말하리라.

그것은 행하기 어렵고, 도달하기 어렵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설명할 것이다.

마음을 굳게 하라! 마음을 확고히 하라!

 

마을에서 욕설도 듣고, 공경도 받는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은 평정을 유지하여야 한다.

마음의 성냄으로부터 멀리하라.

교만이 없이 평온하게 유행하라.

 

숲에서 불의 화염처럼 여러 가지가 나타난다.

여인은 성자를 유혹한다. 그들이 그대를 유혹하게 하지 말라.

 

성행위를 삼가고, 온갖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식물이건 동물이건 살아 있는 존재에 집착하지도 말고, 적대하지도 말라.

 

'나는 그들과 같고, 그들은 나와 같다.'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여 죽이지도 말고, 죽이도록 하지도 말라.

 

일반 사람들이 거기에 집착하는 욕망과 탐욕을 버리고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성자의) 길을 가라.

그리고 이 지옥의 그 너머로 가라.

 

배를 비우고, 음식을 절제하고,

적게 원하고, 탐욕이 없어야 한다.

갈애에서 벗어나면 욕망이 없어 평온하게 된다.

 

성자는 탁발을 하고 나서 숲으로 가서

명상을 위해 나무 아래 앉아야 한다.

 

명상에 전념하는 지혜로운 성자는 숲에서 즐거워야 한다.

스스로 기뻐하며 나무 아래서 명상을 하여라.

 

밤이 지나면 새벽에 (탁발을 위해) 마을로 가야 한다.

마을에서의 초청이나 공양하는 것을 너무 반겨서는 안 된다.

 

성자는 마을에 가서는 이 집 저 집 서둘러 다녀서는 안 된다.

음식을 구한다는 말을 끊어야 하고, 암시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 얻었다. 좋은 일이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래도 좋은 일이다.

이 두 가지 경우를 그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평온하게 다시 그 나무로 돌아간다.

 

손에 발우를 들고 탁발하는 그는,

벙어리는 아니지만 벙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탁발 음식이 적다고 무시해서는 안 되며,

주는 사람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높고 낮은 여러 가지

성자의 길에 대하여 나는 말하였다.

거듭 피안에 이르지 못하며 단번에 이르지도 못한다.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버리고

윤회의 흐름을 끊어 버린 비구에게는 집착이 없다.

그에게는 번뇌가 없다.

 

그대에게 성자의 삶에 대하여 말하리라.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마음을 집중하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배의 (호흡의 일어나고 사라짐에 마음을 집중하여) 자신을 다스려라.

 

활기찬 마음을 지녀야 한다.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번뇌 없이, 집착 없이, 청정한 삶을 궁극의 목표로 삼아라.

홀로 있음과 사문의 삶을 배워라.

홀로 있음은 지혜라고 이야기된다.

홀로 있음은 기쁨이 되리라.

 

그렇게 하면 온 천지에 빛나리라.

감각적 쾌락을 버린, 명상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나의 제자는 더욱더 겸손과 믿음을 닦아야 한다.

 

골짜기와 개울을 흐르는 물과 강물에 대하여 알아라.

작은 개울은 소리 내어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고요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물이 반만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이 가득 찬 호수와 같다.

 

사문이 의미를 갖춘 많은 말을 할 때

그는 알고서 담마를 가르친다.

그는 알고서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알고서도 자제하고

알고서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성자는 성자의 삶을 누릴 만하고

그런 성자는 성자의 삶을 성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