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세상보기] 과거사 쟁점을 넘어 미래로 가는 길!

댓글 0

법륜스님/즉문즉설(2020)

2020. 9. 7.

 

 

 

1. 상이한 두 가지 요소를 바라보는 관점

두 가지 서로 다른 요소가 결합이 되어 있을 때, 한 면만 보면 이런 상호적대관계가 형성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세상은 괴로움과 즐거움으로 분리해서

괴로움은 없고 즐거움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옥을 멀리하고 천당 가기를 추구한단 말이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아무리 천당을 추구한다해도

늘 지옥에 떨어지는 이런 괴로움을 맛본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것, 천당과 지옥이

별개의 두 개의 요소가 될 수 없고

그 뿌리에는 욕망이라는 것이 있다.

 

욕망의 뿌리를 두고 두 개가 자라고 있기 때문에

욕망을 제어해버리면, 이 괴로움도 즐거움도 다 사라져버린다.

, 천당도 지옥도 다 사라져버린다.

이것을 해탈 열반, 이렇게 부른단 말이오.

 

이것을 중도사상

또는 원효대사에 와서는 화쟁사상 이렇게 부르는데,

이것은 하나를 배격하고 하나를 서택하는 게 아니고

둘 다 그냥 비슷하게 같다는 얘기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내려보면

그냥 두 개의 성질이 있다, 이렇게 보는 거요.

그 두 개의 성질이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보는 거요.

 

 

2. 중도사상의 관점에서 현실문제 바라보기

그러면 우리의 현실문제로 돌아가서 본다면

우리나라 대한 민국은 언제부터 대한민국인가.

 

여기에도 견해가 두 가지가 있는 거요.

19194, 3.1운동을 기반으로 해서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이게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는 망명정부이기 때문에 실제로 영토와 국민을 갖는 그런 정부는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945년에 해방이 되고 1948년에 3.8선을 그어서 남쪽만 가지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했다. 이런 얘기요.

 

소위 말하면 민족주의자들은

19194월을 상해임시정부, 대한임시정부가

우리 지금의 대한민국의 건국 시작된 해다. 이렇게 보는 거고

 

그러면 보수적인 사람은 그것은 이름만 있었고, 실제로는 어떠냐?

영토와 국민을 가진 것은 1948815일부터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언제 건국했다고 보는 거요.

건국의 시점이 서로 다르다.

 

그러면 1919년도부터 건국을 했다 이러면

19년부터 45년 사이에는 대한민국의 최대의 과제가 뭐요?

일제로부터 독립한 거란 말이오.

그러면 독립운동 한 것이 대한민국 건국의 최고 공로자가 된다.

 

그런데 1948년을 기준으로 해서 건국을 보면

건국에서의 최대의 장애가 뭐였냐?

바로 38선 이북의 북한이었다, 이 말이오.

그럼 북한의 공격과 방해를 이겨내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켰느냐?

이게 최고의 건국 공로가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우리 역사 속에 같이 있는데,

이것을 한쪽은 19년 건국설을

한쪽은 48년 건국설을 갖고 보니까

 

48년 건국설을 갖고 보면

우리 전체 민족사는 단군이래로 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의 건국을 48년으로 보면

48년 이전의 독립운동 한 것은 건국 공로자의 핵심이 될 수가 없다.

이런 얘기에요.

 

그럼 48년 이후에 건국을 하는데 공로가 있었던 사람,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의 공로가 있었던 사람은 그전의 친일을 했다 하더라고

, 일제 시대에 친일을 했더라도

일본 군인출신이 대한민국 군대를 만들 때 혁혁한 공로가 있다.

일본 친일세력인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을 만드는데 참여해서 공로가 있다.

경찰시스템을 만드는 게 참여해서 공로가 있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거요.

 

그때 일세시대 때 배웠던 그런 노하우, 재능을 가지고

이 정부의 참여를 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데 공로가 있다.

 

그럼 백선엽 장군 같으면 1919년을 기준으로 해서 어떠냐?

1937년도 이후에 만주에 있는 우리 조선족 독립운동가나 중국사람 독립운동가, 항일연군인데 힘을 합해서 일본군에 저항했는데

이 사람들을 수색해서, 잡기 위해서 일종의 독립군들이 게릴라 조직이니까 이 사람들도 조선청년을 뽑아서 게릴라 조직을 만들어서 그 사람들을 탐색하고 공격하는 이런 부대를 만들었다. 이런 얘기에요.

거기에 참여하신 분이다.

그러니까 독립운동사에서 보때 이것은 친일, 반민족 친일세력이다 이렇게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해방이 되었다. 이거야. 45년에.

그리고 한국군을 건국할 때, 이 사람이 군대에 가서 한국군의 초기의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1950년도에 남북간에 뭐가 있었다? 6.25전쟁이 있었잖아.

전쟁에서 이 사람이 그때 받은 훈련과 그런 재능을 가지고

북한군을 또는 중공군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6.25전쟁으로 보면 이 사람은 전쟁 영웅이 되는 거고

일제 강점기를 보면 젊은 시절을 보면 반민족 행위자가 된다.

 

그러니 광복회 입장에서는 광복회라는 게 뭐요?

독립운동한 유족자들 모임이잖아요.

그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은 이런 반민족 행위자이기 때문에 국립묘지에 묻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보는 거고.

 

그 다음에 6.25전쟁에서 공산침략군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다.

이것은 미국도 이해가 같잖아요.

미국사람이 보거나 이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국립묘지에 안 뭍히면 누가 뭍히노?

그러니까 대전가서 묻히는 것도 안되고 서울 동작동에 묻혀야 한다.

이렇게 견해가 갈라지는 거다.

 

그 사람의 행위가

어느 역사를 기준으로 해서 보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다르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도 상해임시정부에서 초대대통령을 했잖아요.

이분은 독립운동가 맞아요.

그러나 독재정부를 했다. 이런 문제,

그리고 또 대한민국 정부를 만들 때 단독정부, 남북이 통합해서 정부를 안 이루고 단독정부를 했다.

이런 민족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또 1948년 이후에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이고

그러니까 이 대한민국의 건국의 아버지다. 또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는 거요.

박정희 대통령 같으면 쿠데타를 일으켜서 군사독재를 했으니까 민주주의 입장에서는 어때요?

굉장한 나쁜 사람이겠죠.

헌정질서를 중단시킨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 분이 그렇게 쿠데타를 일으켜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착실하게 진행해서 현재의 대한민국의 경제가 이 정도로 선진국이 되는데 기초를 닦았다.

이렇게 평가한단 말이오.

그분이 있어서 경제개발을 했다, 이렇게 보기 때문에

 

그런데 인권위나 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는 독재자로 비판을 받는 거고,

경제라는 관점에서 볼때는 경제의 성장의 기초를 마련을 했다. 또 이렇게 볼 수 있는 연이 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을 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왜 이게 논쟁이 되느냐?

우리는 그냥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됩니다.

 

이 분이 민족적인 반민족 행위를 한 것, 젊은 시절에 한 것도 인정하고

이 분이 또 한국전쟁 때 전쟁의 영웅으로 활동을 한 것도 인정을 하고

 

그러면 무덤도 나누면 되겠죠.

국립묘지를 독립운동가들 모신 묘지가 있다면 이 사람은 거기 묻힐 자격이 없고

그러나 6.28전쟁 때 공이 있는 사람을 모시는 묘지가 있다면 거기는 묻힐 수가 있겠죠.

 

그런데 이 2개가 같은 묘지로 사용하니까

이 관점에서 볼 때는 묻힐 자격이 없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묻힐 자격이 있다.

이런 게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얘기에요.

 

통합적으로 내려다본다면

우리는 사실에 근거해서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자.

공과 과가 있다면

공과를 공이 인정을 하는 게 좋지않느냐.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 것은

오늘날 현재의 정치, 현재의 정치 세력이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요.

 

현재의 소위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해야 자기들의 흠결을 없앨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 안했다든지, 반민족 행위를 했다든지 이런 거,

문제 안 삼을 수 있다.

 

그다음에 소위 민주세력이라고 하는 민주 하는 사람들은 1919년부터 잡아서

자기들의 역사의 뿌리, 정당성을 더 위에 설 수가 있다.

이런 현재의 정치가 과거를 가지고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3. 미래를 향해 역사 바라보기

여기서 우리가 좀 더 미래를 보면

남북한도 손을 잡고 통일로 가야 뭐다?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데

 

하물며 남한 안에 이런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죠.

그러니까 이것을 서로 다른 성격을 우리가 공히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또 더 크게는 세계적 경쟁을 하려면 일본하고도 일정한 협력을 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적절히 정리하고.

일본은 나쁜놈이니까 죽어도 된다. 이래도 안 되고

옛것을 다 무시하고 지금 이익이 되니까 하자, 이래도 안 돼요.

 

과거를 밝혀서 어느 정도 서로 반성할 건 반성하되

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향해 가면서 너무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을 갖고 화해위원회 같은게 될 수 있겠죠.

화해위원회를 구성해서 이 문제를 통합해 가는 그런 역사적 기구가 있어야 하는데

뭐 여러 번 설치가 된 적도 있는데 잘 안 되는 이유는

 

현재의 정치적 쟁점, 누가 주도권을 잡을 거냐,

남북 간에도 누가 더 역사적 정통성이 있었느냐 하는 주도권을 잡으려고

남한 안에서도 어떤 주장을 해야 자기들 정당에 정통성을 잡을 수 있느냐

이런 문제로 제기가 된다.

 

그러면 광복회 회장님은 광복회 회장으로서는 할 말을 했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민족적 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파묘를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민국이 절대 과반수가 1919년 임시정부를 기반으로 하는 이런 쪽으로 취지를 하는 게 국민의 절대다 라면 이게 가능한데

현재는 국민 여론상 보면 반반쯤 돼요.

우리나라의 이 역사적인 논쟁에 있어서는 찬반이 반반쯤 되다보니까

어느 쪽도 해결이 안되고 앞으로도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를 보면

과를 비판을 하되 공을 인정을 하고

과를 너무 극단적으로 제기해서 공도 무시하는

이런 식의 관점을 조금 지양을 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화합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한일도 협력하는 게 유리하지만

과거 때문에 안 되고,

남북도 미래를 생각하면 협력하는 게 좋은데

과거의 문제 때문에 안 되고

 

지금 우리의 진보보수도 미래를 생각하면 협력하면 좋은데

과거 때문에 안되는 거요.

 

부부간에도 자식키우고 이러는데 미래를 생각하면 해야하는데

과거의 상처를 계속 끄집어 내서 문제 삼으면 문제 풀이가 굉장히 어렵다.

한 사람이 지고 한 사람이 이겨야 하는 그런 문제라서.

 

그래서 우리가 이 문제를 풀려면

지나친 논쟁보다는 다른 미래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서로 다른 것들을 어느 정도 융화해 나가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게 원효의 화쟁사상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