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 법문 - 인생이야기 마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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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2020. 11. 23.

 

 

 

안녕하세요.

오늘 법문은 인생이야기 마음이야기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새 100세 시대라고 해서 옛날에는 60 이후에 별로 많이 살지를 않았는데

요즘에는 60 이후에도 많이 살아요.

잘못했다가는 40년도 살고요, 조금 또 잘못되면 30년도 살고, 1020년은 보통 살거든요.

 

그러면 60 이후에 사는 인생이 뭐 하는 인생이냐.

병이 많은 인생이에요, 병이 많아요.

또 외로운 인생이에요, 고독.

또 잘못했다가는 가난한 인생이에요.

 

질병과 빈곤과 고독, 3가지를 다 가지고 산다고 할 때

10년 살기도 쉽지 않고, 2030, 40.

더군다나 더 잘못되면 50년도 살 수 있거든요, 110살정도 산다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런 인생을 살 때는 상당히 정신적인 준비가 필요해요.

정신적인 준비 없이 살다가는 굉장히 힘들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럼 정신적인 준비가 뭐냐?

 

젊어서 살 때는 뭘 하고 이루는 인생입니다.

뭘 하느냐? 뭘 이루었느냐?

사업과 성공.

 

직업이라든지 전부가 영업이라든지 사업인데

하는 거에다 평가를 하거든요. 뭐하냐.

 

옛날에도 그랬어요. 애들보고

아버지 뭐하시노?” 이래 물어요.

직업이나 사업이 일종의 신분과 같이

아버지 뭐하시냐?

 

인생은 사업이다. 사업 없는 인생은 없다.

그 사람이 뭘 하느냐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게

젊을 때 60 이전까지 일이죠.

 

그리고 성공에다가 가치를 두거든요.

성공을 했냐, 못했냐.

 

그런데 60 이후에는 사업과 성공으로 만족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60 이후에는 만날 젊을 때 생각하고 살아요.

나도 젊을 때 무슨 사업 했었다. 규모가 얼마였다.’

이렇게 총량이 얼마다, 이런 거...

그리고 뭐.. 성공을 얼마나 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늙음에 대한 허탈감, 불안감, 소외감.

늙음 자체가 허탈하고 불안하고 또 따돌리는 거를 느낀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정신적으로 상당한 수련이 있어야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아주 골똘히 했어요.

 

그 수련이 뭐냐하면

젊을 때는 사업과 성공으로 삶의 가치를 삼았지만

말년이 되고 후년이 되어서 60 이후의 인생은 그거로 안 된다.

 

자족!

스스로 만족함을 알 수 있는 노인이 행복하다 이거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노인.

 

그러면 스스로 만족할 줄 노인은 누구냐?

내가 사용하는 물질적인 현상적인 것에서만 어떤 의미를 느끼는 게 아니라

아주 근본적인 데서 의미를 느낄 때 만족할 수 있거든요.

 

그 법문이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에 태어나셔서 임진왜란 뒤에 돌아가신

서산스님보다 조금 뒤에 생존해 계셨던, 거의 같은 시대의 스님인데

전라북도 김제지역에 진묵큰스님이라고 있으세요. 진묵스님이.

(진묵대사 1563~1633: 본명은 일옥, 진묵은 그의 법호, 조선시대의 스님, 청허유정스님의 법사)

 

본명은 한 일, 구슬 옥, 일옥이거든요.

진묵스님이 게송을 하나 남긴 게 있는데 그 게송이 뭐냐하면

 

天衾(천금) 하늘 천, 이블 금,

내가 매일 덮고 자는 이불은 천금이다. 하늘 이불이요.

하늘을 이불로 삼고, 멋지잖아요.

나의 이불은 하늘이다.

 

그다음에 地席(지석) 내가 잠자는 침석은 참잘 침, 자리 석

침석은 땅이여, 땅이 내가 잠자는 방바닥이다.

天衾地席(천금지석)

 

山爲枕(산위침)이라.

내가 베고자는 베개는 뭐냐?

높은 산, 높은 산이 나의 베개다 이거여.

멋있잖아요.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나의 만족으로 느끼는 정신수련.

天衾地席山爲枕(천금기석산위침)

하늘은 나의 이불, 땅은 나의 잠자리, 산은 나의 베개.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은 내 방을 비추는 촛불, 달 월, 촛불 촉

 

저 달빛이 나의 촛불이야.

그거야 뭐, 전깃불이 켜지든 안 켜지든, 상관이 없는 거죠.

스케일이 진짜 스스로 만족함을 느낄 자격이 있어요.

월촉이요, 월촉, 나의 촛불은 달이다.

 

운병, 구름 운, 병풍 병. 나의 병풍은 구름이다.

구름을 나의 병풍으로 하고

 

해작준이라. 바다 해, 지을 작, 술잔 준.

그 오대양 육대주 대서양, 태평양이나 그 많은 바닷물이 나의 술잔이야.

이 지구에 있는 바닷물이 나의 술잔이여.

해작준. 바다로 술잔을 짓는다. 짓는다는 건 삼는다는 거거든요.

바다는 나의 술잔.

이게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이에요.

 

그다음에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대취, 바다 술잔을 들이키고 달을 촛불로 하고, 구름울 병풍으로 하고

산을 베개로 하고, 하늘을 이불로 하고, 땅을 잠자리고 하고

 

그래서 거기에 그냥 푹~~ 취해요. 큰 대, 취할 취

대취라는 거는 그 술 속에 내가 푹 들어가서 다른 생각이 없는 걸 대취라고 그래요.

옛날에 많이 쓰던 말이에요.

대취했다 그러면 그냥 내가 술속에 푹 들어가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거예요.

 

대취거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거주한다는 거, 그러할 연

거연은 자연스럽게 대취해서 자연스럽게 그대로

그냥 한다는 그냥할 잉, 이에 잉, 그대로. 그대로 이에, 그대로 거기서

일어날 기, 춤출 무, 춤을 일으킨다는 거는 춤을 춘다는 뜻이에요.

그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그 자리에서 춤을 춰.

기무, 작무라고 그러는데 지을 작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어날 기를 쓴 거예요.

춤을 춰요 그냥 그대로.

 

그러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각혐, 도리어 갈, 싫어할 혐

싫어하는 게 있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

또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냐?

 

춤추는 그 긴 소매가 긴 장, 소매 소. 긴 소매가

괘곤륜이라. 걸릴 괘.

곤륜산이라는 거는 그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걸 곤륜산이라고 그랬어요.

그 전에는 히말라야산이니 이런 거 모르고

그냥 산지조중은 곤륜산이라. 산속에서 제일 높은 산은 곤륜이라고 그랬어요.

 

자연 속에서 취해서 춤을 추는데 자기 옷자락이 자꾸 저 곤륜산에 걸려.

그게 마음에 안 든다.

그러니까 춤을 제대로 못추고 그냥 살살 추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기의 만족한 마음을 마음껏 펼칠 수가 없고

그저 펼칠 수 있는 만큼만 펼치면서 살겠노라.

이런 게송이 그 진묵스님 게송이에요, 유명한 법문인데,

 

나에겐 하늘이 있다.

하늘이 내가 즐길 수 있는 만족한 재산이다 이거죠.

나는 하늘을 덮고,

땅 위에서 자는데, 높은 산으로 베개를 베고 잔다.

 

달빛은 나의 촛불이다.

달빛을 촛불로 해서, 구름을 병풍으로 해서

온 가득 찬 바닷말이 나의 술잔이다.

 

그리고 춤을 추는데

내 옷자락이 펼치는 거리가 끝도 한도 없어서

산중에서 제일 높은 곤륜산에 이 옷자락이 자꾸 걸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데

거기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이 말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춤을 추며 살겠다. 이런 거거든요.

걸리니까 걸리지 않을 만큼만 추는 거예요.

이것이 자족 인생입니다. 자족해요.

 

요새는 사업과 성공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다 상처를 받고 있어요.

성공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성공은 상대적이라 내가 성공한 듯 한데 다른 사람을 보니까 나보다 더 했어. 성공을.

또 올라가 보니까 나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있어.

이래서 전부 실패한 사람만 우글우글하지 성공한 사람이 안 보여요.

이게 인생이에요.

 

항상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는 걸 느껴서

나의 성공기준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 거예요.

그러면 절대로 자족할 수가 없거든요.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자족이에요.

스스로 만족하는 거예요.

 

사업을 안 하면 어떠냐 이거요.

하늘을 이불 덮고, 구름을 병풍으로 온 바다를 술잔으로 삼고 살면 되지.

 

그러니까 사업은 열심히 하고 뭘 많이 이루기는 하는데

만족을 못 해요.

항상 부족하고, 항상 양이 안 차.

마음에 차지를 않아요.

 

그래서 만날 짜증난다고 그러고.

무슨 짜증이 그렇게 많은지.

, 짜증나그것도 모자라서 진짜를 붙이더라고.

아 짜증나네 진짜, 그거 붙여요.

짜증난다고 해도 알텐데, ‘짜증난다 진짜꼭 붙여. 이상하게.

 

그러면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삶의 지혜가 없는 거예요.

만족을 할 줄 알아야, 의미가 있는 거지. 성공하면 뭐해요?

맨날 성공하면 나보다 더 큰 사람보고

, 나는 모자라네.”

 

뭘 이루면 나보다 더 이룬 사람을 보고

나는 모자라네.”

나는 없는 거예요. 숨이 다 막히려고 그러네.

 

그래서 자족하는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

자족.

 

--

그다음에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는데

이 죽음이라는 건요, 삶하고 조금도 다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는 이 삶과 죽음을 여래장이라고 그러는데,

(여래장, 여래를 내장한다는 의미, 중생의 청정한 본마음)

 

여래는 진여법계 우주실상인데

진여법계우주실상이 창고와 같이

창고가 밖에 물건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안의 물건이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창고는 입고 출고,

입고는 창고 안에 들여놓는 거죠. 출고는 창고 밖에 나가는 거죠.

 

이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이 우주 법계의 입고와 출고와 같다.

우주 법계가 창고인데, 우주법계의 창고에

삶이라는 것은 물건이 창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죽음이라는 것은 창고 안의 물건이 밖으로 나가는 거다.

 

창고라는 게 갖다 쌓기만 하면 어떻게 해요?

나가고 들어가야지.

 

그래서 생사를 여래장이라고 그런 거예요. 승만경에서.

장은 창고다 이 말이에요. 감출 장, 저장고.

태어난다고 그러는 거는 창고 안으로 물건이 쑥 들어오는 거고

죽음이라는 거는 창고 밖으로 물건이 나아간다.

그게 일상하는 일이에요. 창고라는 게.

들어오고 나가고 들어오고 나가고.

그걸 생사라고 그래요.

 

그리고 태어나는 것은 하나로 뭉치는 건데,

다섯 가지가 뭉쳤다 해서 오온이라고 그러잖아요. 오온. 뭉치는 거.

 

죽음이라고 하는 건 돌아가는 거예요. 돌아가.

그래서 인생은 돌아가는 거다.

돌아간다고 생각을 해야 해요.

 

그럼 돌아간다고 보면 뭐냐?

여빙기원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을 여, 얼음 빙

여빙기수, 돌아갈 기, 물 수.

얼음이 물로 돌아가는 거와 같다.

 

얼음이 물이 뭉친 거 아니에요.

그럼 얼음이 돌아가면 물로 돌아가잖아요.

그냥 돌아가는 거예요,

얼음이 안 보일 뿐이지 그 물로 돌아가면 넓어지는 거거든요.

엄청나게 넓어지는 거잖아요. 물이 되면.

 

얼음으로 얼면 요만큼 뭉쳐있지만, 이게 녹아봐요.

어마한 물이, 태평양이, 얼음덩어리가 태평양이 되는 거고

뭉쳐있으면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한데

녹으면 온 하늘에 꽉 찰 수 있고, 온 바다에 꽉 찰 수 있고.

굉장히 넓어지는 거거든요.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가는 인생이다.

이 몸은 돌아갈 곳이 있어요.

 

그래서 제사 지낼 때, 무상계이라고 하는 법문이 있거든요.

무상계보면 몸에 있는 모발이라고 그러는데, 털이나 몸이나 땅으로 돌아가요.

그러니 이 몸이 땅으로 돌아가면 온 땅이 이 몸이 되는 거예요.

요거 있을 때 요것뿐이지만 땅으로 돌아가면 온 땅이 내가 되는 건데요.

얼음덩어리 하나가 전체 바다가 될 수 있듯이

그거 얼마나 좋아.

 

그래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죽을 때 다 춤추고 노래하고 그랬어요.

돌아가는 게 인생이다.

다 돌아갈 데가 있어요.

 

이 몸의 수분은 물로 돌아갈 데가 있고

이 몸의 이 덩어리는 흙으로 돌아갈 데가 있고.

 

그리고 난기는 기화라.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죠.

온 우주의 불이 내 몸이 되는 거예요, 여기서 돌아가면.

..은 기풍이라. 내가 숨 쉬는 공기는 바람으로 돌아가는데, 온 우주의 공기가 내가 되는 거죠.

 

그리되면 자신이 .. 몸 뒤에 뭐가 있냐?

이 몸덩어리는 하나도 없는데 전체가 내 몸이 된 거거든요.

이 세계에 있는 흙덩어리가 바로 전체가 내 몸이고

세계에 있는 물이 전체가 내 몸이고

이 따뜻한 기운이 전체가 내 몸이고

공기가 전체가 내 몸이다.

그런 거예요.

 

그런 인식을 가지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 때,

그 사업과 성공에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누리다가

스스로 즐거운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또, 생각을 가지고 살잖아요. 생각.

그러면 생각을 마음이라고도 하는데, 생각에는

생각하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 또 신령스러운 마음,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서 가르쳐요, 마음을.

 

생각하는 마음을 요 감정이라는 정, 의식이라는 식, 정식심이라고 그래요.

요게 중생의 기본적인 마음이에요.

 

정이라는 것은

눈은 눈대로 보는 감정이 있어요.

귀는 귀대로 듣는 감정이 있고 거기서 인식을 한다고 그래서 정식심인데

이거를 크게 4가지로 나누는데

 

現量識현량식

안이비설신의 5가지인데 요걸 前五識전오식이라고 그러거든요.

눈에는 눈에 정식이 있고, 귀에는 귀에 감정의식이 있단 말이에요.

코에는 코대로 감정의식이 있고, 이래서 5정식인데

 

5정식을 뭐라고 그러냐하면 유식학에서 현량이라고 그래요. 현량.

현대라는 현, 수량이라는 량, 헤아릴 량, 현량이라고 그러는데

현량이라는 건 뭐냐하면 현현..

나타나고 나타난 거를 헤아리고 헤아린다 해서 현량이라고 그래요.

 

눈은 나타는 걸 보고요, 귀는 나타난 거 듣고, 손도 나타난 거 보지 다른 거 없어요.

요거를 현량식이라고 그러거든요

안이비설신.

몸도 뭔가 부딪혀야 느껴요. 나타나야 느껴요.

나타난 걸 헤아린다 해서 나타날 현, 헤아릴 량, 현량이라 그래요.

 

학술 용어에요. 그렇게 가르쳐요.

유식공부나 교리공부하려면 이렇게 특수 용어 술어 익히다가 세월 다 가요. 그래서 하다 그만두는 사람 많아요.

현량, 현량식이요. 현량식.

 

2. 조업식

그런데 제육식이 있는데 안이비설신의 의식이 있는데

이 의식이라는 놈은 아주 활발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데

요걸 뭐라고 그러냐하면 지을 조, 선업 악업 하는 업,

이걸 조업식이라고 그래요. 업을 짓는 식이다.

 

우리가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는 건

순전히 제육, 의식이 하는 거에요. 눈이 하는 게 아니에요.

눈은 그냥 볼 뿐이에요.

그런데 이 제육식이 어떤 때는 좋은 일 하고, 어떤 때는 나쁜 일 하고

선악업을 막 짓는 게 제육식, 조업식이라고 그러거든요.

 

누가 때린다 그러면요,

왜 때렸냐 그러면

내가 안 때리고 손이 때렸다, 이러거든. ㅎㅎ

잘못된 거예요.

 

이 손은 그냥 현량이고,

그 때린다, 안 때린다 이거는 조업인데

이건 제육식이라는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손이 때렸다 그러면 아주 잘못한 거예요.

 

그러니까 현량식, 보고 바로 느끼는 식이죠. 현량이라는 것은.

조업식이 있어요. 공부를 내가 해야 하겠다, 안 해야 하겠다.

이거는 눈이 바라본다고 눈이 공부하는 거 아니에요.

그 안에 여러 가지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고 업을 짓는 의식이 있는데

그걸 제육식이라고 그런다.

 

3. 思量識사량식, 집착식

그다음에 제칠식이 있어요.

제칠식은 무슨 식이냐 하면 생각할 사, 헤아릴 량, 사량식이라고 그래요.

만날 생각만 하는 게 제칠식이에요.

만날 생각만 해요. 그냥 업짓고 활동하고 하는 거는 말하고 듣고 뭐 가고 오고 하는 건 전부가 조업식, 제육식인데요

 

지금까지 했던 거, 자기가 한 건 다 옳고, 다른 사람이 한 건 다 글러요.

그게 제칠식이 하는 일이에요.

사량식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자기가 보고듣고 한거는 항상 옳다는 집착을 가지고 있는 게 제칠식이에요.

사량식.

항심사량이라고 항상해요.

낮이나 밤이나 오나가나 자기가 한 건 다 옳아.

다른 사람이 한 건 다 글러요.

이게 중생이에요.

 

그리고 자기한테 고마웠던 건 다 잊어버려요.

또 자기한테 잘못한 건 다 가지고 있어요.

제칠식이 하는 일이에요. 전부 다.

 

그러니까 이걸 집착이라고 그러는데, 집착식이라고 그러는데

일단 한 거는 제칠식이 집착을 해요.

그래서 자기가 한 거는 아무리 사고를 쳤어도 그건 잘한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한 거는 잘했어도 그건 잘못한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

내가 하면 로멘스인데 뭐. 다른 사람이 하면 아니다.

인간이 하면 본래 그런 거예요.

자기가 한 거는 무슨 일을 했어도 다 옳은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한 건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그건 좋은 게 아니에요.

이게 제칠식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게 생각이거든요.

 

4. 종자식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종자식이라는 게 있어요.

종자식이라고 하는 건 자기가 한번 본 거는 종자가 되어 그게 저장이 돼요.

그래서 꼭 다음에 어떤 환경이 되면 그게 튀어나와요 다시.

 

내가 어디에 갔었다 그러면 그거 비슷한 걸 보면

그 과거에 봤던 방식으로 지금걸 보게 되요.

그게 종자식이에요.

 

그게 없으면 볼 수가 없어요.

과거에 뭔가가 기억이 저장이 되어야 그 기억에 의해서 현재를 살필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과거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거는 현재 나타나도 몰라요.

종자가 안 심어져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게 한번 경험했던 게 어째서 안 없어지냐?

그건 제팔아뢰야식이라는 종자식이 있어서 안 없어진다.

종자.

 

 

그래서 4가지로 식을 가르친단 말이죠.

1. 현량식, 현재를 헤아리고 인식하는 거.

2. 조업식, 좋은 업도 짓고 나쁜 업도 짓는, 막 업을 짓는 조업식

3. 사량식, 지가 한 거는 다 좋다고 생각하고 항상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건 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4. 종자식, 한번 경험했던 건 이게 종자가 되어서 다시 튀어나온다.

어릴 때 수영을 배워서 수영 안하고 한 50년 지나도 물에 들어가면 바로 수영해요.

그건 종자식 때문에 그런 거예요.

 

어릴 때 붓글씨를 좀 배우면 나이 많아서 붓만 딱 잡으면 어릴 때 그 수준이 바로 나와요.

그런데 전혀 안 해본 사람은 안 돼요, 소용없어.

그러니까 이 종사식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없어지는 게 아니고 종자가 되어 저장된다.

 

 

그래서 이 생각의 종자가 성불하기 직전에 가야 완전히 없어져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뭐가 있냐?

그냥 지혜가 남는 거예요.

 

대원경지라고 그러는데요, 큰 거울과 같은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다. 대원경지.

큰 대, 둥글 원, 거울경.

조진찰, 온 세계를 환희 비추는 지혜만 있다.

 

그래서 요걸 정식심에서 부처님이 된 그 부처님 지혜의 마음을 지혜 지, 깨달을 각, 마음 심, 지각심이라고 그래요. 지각심.

 

중생은 정식심으로 사는 거예요.

감정의 인식으로 살아요.

종자가 되어서 또 나타나고 종자가 되어서 또 나타나고.

 

 

그러면 생각은 어디로 돌아가느냐?

지혜로 돌아가는 거죠. 생각은 지혜로 돌아가고 우리 몸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다 돌아갈 데가 있는 거예요. 이게.

 

그러면 그 부처님의 마음은 지각심이고 중생의 마음은 정식심인데

그 마음의 근본은 뭐냐? 그걸 영명심, 신령 령, 밝을 명,

그냥 신령스럽게 밝아서

그 영명심에는 과거심도 없고 현재심도 없고 미래심도 없고 중생심도 없고 제불심도 없고, 그냥 신령스럽고 밝을 뿐이에요.

신령스럽고 밝다.

 

그래서 이거를 전체로 보면

상응과 불공으로 가르치거든요.

 

상응심이 있어요. 서로 상, 응할 응.

중생의 인연을 만나면 중생도 되고, 제불의 인연을 만나면 제불도 되고 그러는데

이걸 상응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근본 바탕은 불공이라, 부처라고 해도 그 마음에는 부처도 아니다.

중생이라고 해도 그 마음에는 중생도 아니다.

같지 않다.

그냥 신령스럽게 밝을 뿐이고,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느껴서 과거현재미래와 상응을 하지만

이 신령스럽게 밝은 마음은

과거도 아니다. 과거심도 불가득이다.

현재도 아니다. 현재심도 불가득이다.

미래도 아니도 미래심도 불가득이다.

 

이걸 영명심이라고 그래요.

그게 나의 본래면목이에요. 영명심.

 

그러니까 이게

울고불고, 좋다 나쁘다하는 것은 다 꿈같이 그런 거지

나의 본래 면목이 아니에요.

정식심으로 그러는 거예요. 생각으로.

 

그래서 나의 본래 면목 그 영명심은

슬픔 불가득, 슬픔이라는 게 없어요.

이게 다 인연에서 온 거지, 그 자성에는 슬픔이 없어.

나쁜 거 없어요. 인연에서 나쁜 게 왔지 자성에는 나쁜 게 없는 거예요.

 

거울에 비유하잖아요.

거울이 있으면 거울에 뭘 갖다 비추면 다 비추잖아요, 그게 상응이에요.

그런데 거울 안 더듬어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 본래면목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걸 영명심이라고 그래요.

영명자성 본래면목

 

그리 돌아가면 생각은 그 영명자성 본래면목으로 돌아가면

천하 대해탈이 되는 거죠.

천하 대해탈.

 

그게 불교에서 가르치는 거예요.

마음이라는게.

이 몸은 다 돌아갈 데가 있고, 물로 돌아가고, 불로 돌아가고.

 

생각은 그 본래면목으로 돌아가.

그러면 본래면목에 딱 돌아가서 보면

하늘을 봐도 그게 본래면목이에요. 하늘이.

땅을 봐도 그게 본래면목이고.

 

그걸 대해탈이라고 그래요.

허공을 봐도 본래면목에 허공불가득이에요. 허공 없어요.

땅을 봐도 대지불가득이라. 대지가 그게 우리 본래면목이거든.

 

그걸 가르치는 게 불교에요.

산을 봐도 그게 나의 본래면목이에요.

선천불가득, 내 본래면목 신령스러운 본마음에는 산천이 없어요.

그 산천하고 상응할 뿐이지 자성에는 그걸 얻을 수가 없다.

 

상응물이요, 불가득이다.

뭔가 비출게 있어야 비출게 아니에요.

비추는 건 상응인데, 서로 응하는 건데.

 

明珠在掌명주재장이라.

밝은 구슬이 손에 있다. 이걸 명주재장이라고 그러거든요.

명주가 손바닥에 있다고.

명주가 딱 있으면 이 밝은 구슬에는 투명체에요, 이게.

검은 것도 아니고 붉은 것도 아니고 고대로 있어요.

 

그런데 나타나는 대로 다 여기 비춰지거든요.

비춰지는 건 상응이고,

어떤 색깔도 아닌 건 불공이거든요. 같지 않은 거.

 

그래서 그거를 확실히 증득한 것을

국영각을 얻었다, 대각을 이루었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국영각에 올라가면

우리가 살고 죽는 게 다 나의 본래면목의 현현이다.

죽는 것도 나의 본래면목이 나타난 것이고

사는 것도 나의 본래면목이 나타난 것.

 

하늘도 하늘이 있으면 뭔가 하늘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을 알아보는 뭐가 있어야 있는 건데

그걸 놓치는 거예요.

 

하늘을 알아보는 놈이 있단 말이에요.

그걸 까맣게 놓친다고 그래서 그걸 미혹이라고 그래요.

밥 맛이 있다그러면 밥맛 아는 뭐가 혀가 있어야 밥맛을 알지.

그런데 이거 맛있네이럴 줄만 알지, 그 맛을 느끼는 놈은 까맣게 잊어버리거든요.

 

저거 좋은네그러면

좋은 저건 아는데 저걸 좋다고 알아보는 자기 눈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거예요.

 

눈이 볼 수 있는 거는 본래면목의 현현이다. 본래면목이 나타난 거다.

죽음을 아는 것도 나의 본래면목이 현현한 것이고

나타날 현, 두 번 쓰면 현현이라고 그래요. 나타난 것이다.

 

무섭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나의 본래면목이 현현한 것에요.

무서운 거는 대상이 있어야 무서운데 그 대상만 있다고 무서운 게 아니라

무섭다고 느끼는 존재가 있단 말이오.

 

아이고 열라네 자꾸... ㅎㅎㅎ

열이 나요.

 

그러니까 우리 생각은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고

우리 몸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언제나 만족하고

언제나 자유롭고

그걸 하라고 불교에서 설법을 하는 거거든요.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스스로 지혜로울 줄 알 때

그게 참다운 행복이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