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목탁소리] 괴로움을 허용할 때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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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2020. 12. 1.

 

 

삶은 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사람 때문에 괴롭고 미움 때문에도 괴롭습니다.

미래의 불안감 때문에도 괴롭고요

사랑받지 못할까봐, 인정받지 못할까봐도 괴롭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괴로움, 바로 그 속에 답은 있습니다.

 

煩惱卽菩提번뇌즉보리라는 말이 있듯이

괴로움의 자리, 바로 거기에 깨달음과 완전한 행복도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괴로움이 생기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죠.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나를 찾아온 괴로움, 외로움, 불안과 미움, 번뇌를 버리고

새롭게 행복과 충만 사랑, 평안, 고요와 용서 등을 찾고자 한다면

오히려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둘로 나눠놓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분별이기 때문입니다.

둘로 나누면 그 중에 하나는 선택받고, 하나는 선택받지 못합니다.

둘이 서로 싸워야 하죠.

 

번뇌가 온 이유는

번뇌즉보리를 깨닫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길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고 괴로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괴로움과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충분히 괴로움이 마음껏 나래를 펴고 괴로움으로 발산될 때

오히려 괴로움은 머지않아 사라져 가기 시작할 겁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은 피죠.

괴로움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괴로움으로 발산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목적은 괴로움에 있는데

내가 그 괴로움을 거부하려고 하거나 없애려고 애쓴다면

그 괴로움을 상대로 싸우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괴로움과 나는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하고요

그 싸움에 우리는 언제나 백전백패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것은 곧 삶 자체와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괴로움의 본래 목적인

괴로움이 나를 통해 자유자재하게 발산되기를 허용해 주어 보세요.

괴로움을 환영하고 받아들여서

괴로워해 주기를 허용해 주는 겁니다.

 

한 생각 돌이켜 괴로움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괴로움이라는 가면 뒤에 있던 진짜의 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괴로움이 수용되는 순간

곧장,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깨달음과 성장이 등장하는 것이죠.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겁니다.

 

괴로움과 외로움, 불안과 미움, 아픔과 초조, 이러한 번뇌를 버리고

행복과 충만, 사랑, 평화, 고요와 기쁨 등을 따로 찾으려 애쓰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괴로움과 외로움, 불안과 고통, 번뇌와 아픔 속에

내가 그토록 찾던 모든 아름다운 것, 지혜로운 것들이

삶의 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아이러니인데요

극과 극은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입니다.

 

생사 속에 열반은 피어 있고

중생 속에 부처는 있다고 말합니다.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라는 말도 있죠.

이것이 바로 그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 따로 따로 나뉘어진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둘이 아닌 한 몸이죠.

미워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은 극단의 둘이 아닙니다.

그 둘은 연결되어 있는 하나입니다.

 

극단적으로 미워하거나

극단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가지지 말아 보세요.

 

어느 한쪽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서

그것만을 선택하려 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선택과 분별과 차별 속에는 지혜가 없습니다.

이것 속에 저것이 있고

행복 속에 불행이 있죠.

 

삶은 이토록 아름답고도 장엄한 반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