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TV 휴심정] 법륜스님_삶의 이유와 의미 '사는데 이유가 없다. 그냥 사는 것'의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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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TV(휴심정)

2020. 12. 3.

 

 

...

 

사람은 왜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원초적인 이 질문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방황을 합니다.

철두철미하게 원력과 서원으로 열심히 사는 법륜스님은 정작 사람들이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삶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찌보면 정반대 같은 이 말씀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요?//

 

 

왜 사느냐고 물으니까

사는 건 이유가 없어요.

태어나는 데도 이유가 없고, 사는데도 이유가 없고,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이미 던져진 존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존재가 우선이에요.

왜 사느냐는 것은 왜 존재하느냐 하는 얘기거든요.

존재는 이미 주어진 거라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이 되어야지

왜 사느냐는 답이 없는 거예요.

답이 없는 거는 답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왜 살기는...

 

그런데 왜 사느냐가 자꾸 탐구하면 자살로 가는 거요.

?

삶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유가 없네, 그럼 살 필요 없네.“

이렇게 되기가 쉽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는데, 어떻게 살래?

이게 중요하다는 거요.

어차피 사는데,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사는데 괴롭게 살래? 즐겁게 살래?

의미를 갖고 살래? 의미 없이 살래?

자기 선택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내가 뭘 하고, 내가 기독교를 믿고, 내가 불교를 믿고, 내가 수행을 하고 하는 거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없다는 거요.

내가 혼자 살고, 내가 승려가 되고도 그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고

내가 그렇게 선택한다는 거요.

나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살아간다는 거요.

 

나는 이 땅에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거요.

 

어떤 사람은 북한 사람 중에는 지금 전쟁이 확 났으면 좋겠다는 사람 굉장히 많습니다.

?

너무 답답하니까 전쟁이라도 터져야 뭐 어떻게 사람이 할 수 있지 않느냐.

 

만약에 어떤 계급 질서가 꽉 짜여진 사회는

사회가 혼란이 벗어나야 벗어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런 사람은 혼란이 오는 걸 좋아할 거 아니오.

그러니까 이건 사람마다 다 틀린다는 거요.

 

그래서 나는 적어도 한반도에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안 되겠다.

전쟁의 피해가, 대량살상 무기가 너무 많아서 피해가 너무 크다.

그런 입장에서 전쟁 반대인 평화를 하는 거고.

 

우리 국민들이 조금 열등의식이 너무 있어요.

고대 사회에 대해선 중국에 열등의식

근현대에서는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

그러면 일본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옛날에 혈서를 쓰는 이런 게 다 피해의식이란 말이오.

현대에 와서는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데

이런 개인의 열등의식뿐만 아니라 민족적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데

 

이걸 극복하려면 우리가 요새 와서 좀 찌그러져 이러지

우리 역사가 본래 세계 최고의 문명을 만든 사람이고, 그것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걸 뭐, 엉터리로 만든게 아니라 역사에 있었던 사실을 알자.

몰라서 생긴 문제니까.

 

이걸 알면 우리가 잘났다 우리가 최고다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살다보면 힘이 딸려서 식민지배를 당할 수도 있고

힘이 딸려서 나라를 뺏길 수도 있지만, 일부 땅을 잃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거요. 피해의식 같은 거를..

그런 측면에서 역사 바로 알기. 민족사를 바로 알고 하면

 

열등의식이 있으면 어떠냐 하면

상대를 욕하는 게 나오고, 상대에게 기죽는게 나와요.

겁을 낸다는 거요.

 

당당해라한다고 당당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요.

? 알고 봤더니 아니네. ? 내가 괜찮은 사람이네.“ 이렇게 알면

저절로 열등의식이 없어지는 거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제가 역사를 공부하자, 국수주의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봤을 때 한국 사람 입장에선 그렇다는 거지

 

내가 인도 가서 보면, 또 인도사람은 무슨 열등의식이 있을까 하는데

계급이 낮은 천민들은 천민의 열등의식이 있으면

사람 똑같다. 네가 노예라고 심어져서 네가 지금 있는 거지

네 존재는 아무 문제가 없다.

여성이라고 신체가 여자라는 게 무슨 문제가 있냐

오랫동안 그런 열등한 의식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등의식이 생기는거지

존재에는 문제가 없다.”

이런 걸 통해서 우리가 벗어나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런 의미부여를 하는 거죠.

나는 이런 것들에 의미부여를 하고 사는 것에요.

 

존재 자체에는 뭐,

털이 검은 개나 털이 흰개나 아무 색깔의 차이뿐이지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람은

흰 얼굴 가진 사람 우월하고, 검은 얼굴 가진 사람 열등하다고 그러면

이거는 개만도 못하다 이 말이오. 개만도 못하다.

 

개를 갖고 우리가 암캐 수캐를 또는 암소 수소를 차별 안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남녀를 차별한다 그러면 이거는 짐승만도 못하는 거라는 거요.

 

원래 실제 이거는

우리가 뭐, 인종 평등을 주장하자, 정의다 이게 아니라

이게 진실이라는 거요.

 

진실인데 우리가 이걸 착각을 해서 오류가 생겨서 차별을 하고 있으니까

이 오류, 잘못된 이 차별로부터 진실인 평등으로 가는 과정이 저는 정의라고 생각해요.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말이 있잖아요.

정의는 차별에서 평등으로 가는게 정의다.

그 차별은 오류고, 평등은 진실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오류에서 진실로 나아가는 것이 정의이지

정의가 뭐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그 길을 선택을 하는 거지

저는 그게 더 낫다는 거요.

남 두드려 패는 거 보다는 남 도와주는 게 내가 경험해본 것으로는 나은 거 같아요.

 

나무를 필요하면 베기도 하고 심기도 하지만

우리가 물고기를 잡아서 칼로 칠 때 더 좋은지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살려주는 게 더 좋은지

나는 이게 더 보람이 있더라

그래서 나는 그런 선택을 해서 사는 거고

 

우리가 그럼 어떠냐 하고 얘기하니까

거기 동조하는 사람이 있어서 지금 같이 살아가는 거지

 

이 길만 꼭 옳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죠.

사람은 다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