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_법륜스님***제77편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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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정토회)

2012. 8. 15.

  방송 보기: 정토TV

 

. ~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하는 거는 굳이 안 배워도 할 수가 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한테 잘 안 하려고 하는 것은 굳이 안 배워도 할 수가 있다. 이런 얘기요. 하고 싶은 거 하는 거는 안 배워도 하고, 하기 싫은 거 안 하는 거는 안 배워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거를 안 하는 거는 욕구를 따른다. 이러거든요. 욕구를 따른다. 욕구를 따르면 과보가 생겨요. 욕구를 따른다고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과보가 따른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 과보가 자기를 헤치는 과보가 따른다. 그러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하나의 원리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과보가 싫거들랑 어떻게 해라? 원인을 짓지 마라. 원인을 지었거들랑 과보를 받아라. 그런데 중생의 문제는 원인은 짓고 싶고 과보는 받기 싫고. 또 복이라는 과보는 받고 싶고 그 복이 오는 원인은 짓기 싫고. 그럼 경상도 말로 하면 디비쫀다. 이 말이오. 이래서 이게 인생이 안 풀리는 거요. 보살님 지금 얘기한대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보고, 그 안 드는 마음이 자기로부터 일어났다는 걸 알아가지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잘해라.

 

이 말이 안 드는 게 내 마음에서 일어났다. 그 사람에게서 일어난 게 아니고, 내 마음에서 일어난 거다. 그러니까 그 내 마음을 놔라. 이 말이오. 내가 지은 상을 버려라.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보고도, 내가 봐도 불쌍하게 보이는 거는 그거는 굳이 기도문 없어도 어때요? 하는 거요. 기도문이 뭐가 필요해요? 내가 봐서 불쌍하게 보이는 건 누구나 다, 이 세상 누구나 다 해요. 도둑놈도 자기 자식은 사랑하고 그래요. 그런 거는 굳이 안 배워도 하는 거요.

 

여기서 우리가 가르치는 거는 내 마음에 안 든다 하는 것은 중생심은 그 안 드는 게 니가 문제이기 때문에 내 맘에 안 든다고. 부처님 법은 그 사람은 그 사람뿐인데 내 보기에 안 드는 거거든. 내 마음에 안 드는 거거든요. 내 문제란 말이오. 그거를 내려놔라. 이거요. 그게 기도문의 내용이란 말이오. 그런데 지금 보살님 질문을 들어보면 그걸 움켜쥐고 지금 얘기를 하기 때문에 이것은 공부가 잘못됐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마음에 안 드는 거를 어떻게 좋게 봅니까? 이렇게 말해요. 맘에 안 드는 거는 안 드는 거지 그걸 어떻게 좋게 보느냐 이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거기에 조금 편견이 있어요. 손에 매니큐어를 왜 바릅니까? 손톱에. 손톱이 예뻐서 바릅니까? 손톱이 보기 싫기 때문에 감추려고 바릅니까? 보기 싫기 때문에 감추려고 바르는 데서 원래 다 생긴 거요. 그 화장은 원래 잘난 사람이 하는 거요? 못난 사람이 하는 거요? 잘 알으셔야 돼요. 화장은 못난 사람이 하는 거요. 그냥 생긴 대로는 도저히 좀 문제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그림을 좀 그려 붙여서 그걸 좀 카버하려고 하는 데서 화장술이라는 게 나온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젊은 사람은 화장을 할 필요가 없고, 화장은 원래 늙은 사람이 그 늙은 주름을 당당하게 못내 놓고 화장을 해서 좀 어때요? 감추고, 얼굴이 좀 탄 거를 좀 감추려고 화장이란 술이 나온 동기가 원래 그런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화장하는 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연세 드신 분이 화장하는 게 사실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가 없고, 당연한 거고, 젊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피부가 부드러워요? 안 부드러워요? 부드러워.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피부가 이게 노화가 돼서 자꾸 이게 거치르니까 가능하면 어때요? 비누도 좋은 거 쓰고, 뭐도 좋은 거를 써야 되는 거요.

 

그러니 당연히 지금 그 시어머니가 하는 거는 바람직하다. 오히려 원리대로 말하면 그게 불법으로 뭐 노인이 화장하는 게 좋다. 이런 뜻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 화장하는 거에 비해서는 늙은 사람이 화장하는 게 오히려 도리어 맞다. 이 말이오. 수행차원에서는 늙은 거를 싫어한다는 뜻 아니오. 늙은 거를 커버한다는 건 늙은 게 좋다는 거요? 싫다는 거요? 싫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 싫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수행이기 때문에 수행차원에서 보면야, 본인 입장에서는 그런 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주름은 주름일 뿐이고, 흰머리는 흰머리일 뿐이고, 늙음은 늙음일 뿐이지. 그게 좋다 나쁘다 이 생각이 우리가 이 분별이거든요. 이걸 버려버리는 거지만은 우리가 그냥 세상 적으로 통념으로 볼 때는 젊은 사람이 화장하는 거보다 연세 드신 분이 화장하는 게 어때요? 그게 진리에요.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고. 손이 부드러운 사람이 화장하는 거보다는 거치른 사람이 손 화장을 하는 게 옳다. 이렇게 봐야 된다 이거요.

 

그런 데서 제가 질문하는 보살님하고 시어머니를 견주어볼 때, 시어머니가 보고 며느리가 화장한다고 젊은 게 뭣 때문에 화장하느냐? 생긴 대로 그대로 다 얼굴도 예쁘고 좋은데 뭣 때문에 화장하느냐? 이렇게 말하면 되지. 며느리가 시어머니보고 늙었는데 뭣 때문에 화장하느냐? 이건 좀 앞뒤 말이 내가 들어보니까 좀 안 맞는 거 같아. 나는 화장을 원래 좋아 안 하지마는 말이 안 맞는 거 같아. 말이.

 

젊은 것은 그대로 있어도 자연 상태에서 그냥 세수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마는, 연세가 들고 피부가 거치르니까 뜨거운 물에 또 피부가 부드러워질 수 있는 어떤 세제를 넣어가지고 또 좋은 비누로 이렇게 해야 그나마 어때요? 조금 부드러워지고, 또 화장을 해야 그나마 조금 더 커버가 되고. 그래서 연세 드신 분이 화장하는 게 너무너무 당연하다. 오히려 이렇게 보시는 게 좋겠다. 그러니까 그거를 이상하게 보는 거 자체가 본인이 너무 아직 젊으니까 젊은이 중심으로, ~ 이게 자기 중심성의 일부 표현입니다.

 

여자임은 여자중심으로 보고, 여자중심으로 보고, 남자들이 화장한다고 뭐라고 그러죠. 그건 여자 생각이죠. 저그는 화장해도 되고 왜 남자는 화장하면 안 되느냐? 이런 얘기와 같은 거다 이거요. 여자들이 요즘 남녀평등사상을 가만 보면, 남자 좋은 건 저그도 다하고, 저그 좋은 거는 남자가 하면 안 되고, 그래서 어떤 땐 내가 가만히 들으면 이상한 논리 같아. 남자가 돈 벌어오고 여자가 집에 노는 거는 그대로 다 하고, 아시겠어요? 그다음 설거지도 반반씩하고. 밥도 반반씩하고, 애도 반반씩 보고. 이런 식으로 재산도 반반씩 등재하고.

 

이런 식은 좀 문제가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것에 대한, 다시 말하면 권한을 행사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뭐가 따른다?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함께 해줘야 되거든요. 그런 것처럼 젊은 사람들이 연세 드신 분을 볼 때도 그것을 자기 유리한 관점에서 보고 문제 제기를 하면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이미 벌써 이렇게 생각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이 문제가 극복이 안 된다. 그래서 오늘부터 예를 들어서 화장 문제 같으면 아~ 화장은 어머니가 하는 게 정상이다. 오히려. 내가 하는 게 정상이 아니고.

 

연세 드신 분이 하면 오히려 가만히 생각해봐. 남을 위해서 하잖아. 그죠? 젊은 여자가 하면 남편한테 잘 보이면 되지 화장해서 밖에 나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화장해 돌아다녀. 어이 생각해 보면 끼가 있는 여자다. 이렇게 생각될 수 있잖아. 그런데 뭐 늙은 할머니가 80 몇 살 된 할머니가 화장한다고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겠어? 또 영감이 생기면 좋은 일이가? 나쁜 일이가? 연세 드셔서는 같이 지내는 게 소일거리 있는 게 좋은 일이잖아.

 

그러니까 여러 측면에서 봐도 거기는 화장의 부작용이 없다. 이 말이오. 그런데 젊은 사람이 화장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있죠. 피부에 화장을 지나치게 많이 해도 나쁜 요소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것은 생각이 오히려 잘못됐다. 제가 생각할 땐 이래요. 나쁘다기보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조금 삐뚤어졌다. 그래서 그거를 자기가 뉘우치고 고치면, 저절로 해결이 된다. 그런 지금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보는 관점이 이렇게 늘 이렇게 사물을 자기중심적으로 보기 때문에 기도문이 내 맘에 안 든다 하는 거는 내 관점에 잘못됐다는 걸 말해요.

 

내 맘에 안 드는 거를 놔 버려라. 그걸 버려라. 안 되는 거를 빨리 그걸 붙들고 있지 말고 놔야 된다. 이런 기도문이에요. 그게 다른 기도문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내 눈은 믿을게 못됩니다. 이런 기도문도 있거든요. 내가 보고 옳으니 그르니 하는 이 눈을 내가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 관점이 너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다 아상을 버려라든지, 아집을 버려라든지. 자기 생각을 버려라든지 이런 말과 내용적으로 일맥상통하는 같은 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