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31회 국토청정원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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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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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21쪽 불설아미타경을 여시면 아래에서부터 세 번째 줄에 보면은 汝等衆生여등중생 當信是稱讚당신시칭찬 不可思議功德불가사의공덕이다. 라고 나온 부분이 있으십니다. 부처님 말씀에는 마땅히 믿어라. 이렇게 설명이 되시거든요. 밥을 먹었기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있고, 또 심장이 뛰어줘야만 머리카락도 자라고 움직이고 그러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세상은 자세히 살펴보면은 무수히 많은 조화로 이루어져 있고 무수히 많은 합당함으로 가득 차있고 무수히 많은 균형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사바세계가 다 잘못된 거 같고, 다 불안한 거 같고, 다 세상이 끝날 거 같은데도, 실질적으로는 뭐에요? 그게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어요. 그런데 만일 이걸 깨우쳐야 되거든요. 균형 속에 있는 줄을 요게 깨우쳐야 두 번 다시 악한 짓을 안 하는 거에요. 훔치는 짓 아니하고, 공짜로 바라는 짓을 덜하게 되고, 안 하게 되고, 또 자기가 어리석게 취해가지고 그걸 자기가 받아들인 것이 그게 자기한테 이득이 된다는 어리석은 믿음이 자기를 훨씬 더 지배하는 어리석은 시간을 지내게 됩니다. 그래서 석가세존은 아미타경을 통해서 설명드리기를 뭐라고 설명드렸냐 하면 마땅히 믿어라. 이건 마땅히 믿어야 된다.

 

그런데 왜 믿어야 되느냐? 이것은 뭘 하기 위해서? 칭찬하는 것으로써, 찬탄하는 것으로서 정리가 딱 끝나요. 정말로 마땅히 마땅히 믿어야 되요. 이게 지금 재미있는 거거든요. 사람이 항상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마땅한 거에요. 자기에게 이게 뭐죠?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다른 말로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죠. 그죠. 마땅하다는 것은 합당하는 것이거든요. 그 얘기 무슨 얘기에요? 조화롭다. 이렇게 말해요. 조화롭다. 그런데 이게 마땅히 믿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믿음을 갖는 거에요. 아미타경에선 요걸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불설아미타경에서 석가세존께서 이렇게 경전을 통해서 저희에게 전해 주는 내용이 뭐냐 그러면 마땅한 것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여서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이간하고, 비난하고, 저 사람은 안과 밖이 다르다 이렇게 표현하고 다니는 사람은 다 자기가 안과 속이 다른 거에요. 다른 사람은 저 사람은 안과 밖이 달라.’ 이런 사람 지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안과 밖이 다른 거에요. 세상에 잘 아시죠? 그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나한테 속닥속닥하거든요. 속닥속닥은 어디서 배웠는지 하여튼 속닥속닥한답니다. 그렇게 하는 나팔은 자기랑 같이 있을 때는 다른데 나팔로 돼 있지만, 그 사람이 또 딴 사람 만나고 있을 때는 그 나팔이 내 쪽으로 와 있을 거에요.

 

절대 비난하지 마세요. 연세가 들었거든, 나이가 어렸거든 상관없이 남의 흉허물이 자꾸 눈에 띈다는 것은 아직도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고, 아직도 진짜 번영, 진짜 부자가 되기는 아직도

** 먼 거에요. 그러니까 정말로 행복하고 정말로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비난하지 말아야 되요. 부자 욕하지 말고. 그렇죠. 그죠. 더러운 사람 탁하다. 라고 이렇게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말하는 일을 그만 그치셔야 돼. 사람이 살면서 그러면 정말 우리가 다 청정하게 살 수 있습니까? 청정하게 다 예쁜 말을 하고 살 수 있어요? 그렇지 않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될 수 있으면은 안에서 자기가 이걸 소멸시켜야 되요.

 

 

그래서 그걸 업장소멸이라고 말하고 구업 소멸한다고 그러고 그렇죠? 그죠? 신업이라 그래요. 몸이 지은 업도 소멸해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것들을 소멸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마땅한 것을 믿어야 되요. 합당한 것을 믿으셔야 되요. 그렇죠. 그죠. 조화로운 것을 믿어야지. 합당한 것은 뭐죠? 이게 이게 뭐죠? 우리는 다 이게 부당 같은 거에요. 조화가 아니라 뭐죠? 부조화가 생기죠. 우리가 사는 속에서 부조화가 생기죠. 균형이 아니고 불균형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마땅하지 않은 것을 마땅하게 받아들이는데 요게 문제가 생겨요.

 

돈을 벌어들이는 것도 마땅하지 않은데 마땅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저 좀 보세요.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절대 마땅하지 않은 거에요. 이것은 살아있을 땐 잘 몰라요. 나중에 그거 다 짐을 지고 죽었을 때 그걸 알게 돼요. 현실에서도 나타나게 되고. 마땅한 거, 그거 다 착각이라고요. 일하지 않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다 뭐죠? 마땅하지 않은 거에요. 부적합한 거죠. 부당한 거죠. 이게. 그런데 우리는 대다수의 많은 사람이 그게 마땅하다고 받아들이는 거에요. 그래서 심지어는요, 자기가 병든 것도 마땅한 거에요. 자기가 실패한 것도 마땅하게 여기고, 자기가 가난한 것도 마땅하게 받아들여요.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은 뭐에요? 본질적으로 가난이 깃들어있는 인생이 따로 있는 건 없다는 거에요 석가세존께서 사성제(카스트caste제도)가 노예계급이라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게 본래 없다는 거에요. 그러면 뭐로 귀족이고 뭐로 노예가 되느냐?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고, 모든 것을 합당하게 하고, 모든 것을 균등있게 처리하고 생활하는 사람은 다 귀족이라는 거에요. 출신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이랬거든요. 사람의 결정은요, 사람의 가치는 출신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행하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가치를 갖는다. 석가세존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가치를 수준을 높이려면 마땅한 것을 믿으셔야 돼요. 마땅한 것을. 으음. 그러면 기도는 왜 해야 되느냐? 그 합당한 그릇을 점점 키워줘요. 이 내용을 잘 들으셔야 됩니다. 불설아미타경이 그냥 세상에 그냥 적당히 옛날 얘깃거리로 나온 게 아니거든요. 설법한 이유가 있고 중생에게 들어야 될 이유가 있고, 그것들이 살아있음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불설아미타경이 지금도 소멸되지 않고 이렇게 인쇄돼서 나오는 거고, 설법하는 사람이 있고, 들을 사람이 있는 거에요, 헛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균형을 잘 맞출 필요가 있죠. 그래서 이게 뭐냐 그러면은 마땅히 믿게 하되, 뭘 해야 되느냐 하면 칭찬하라. 언제? . 지금. 지금이거든요.

 

지금이고 이거는 뭐죠? 믿음이라 그랬죠. 요건 지금이에요. 지금 믿는 것이 마땅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요? 찬탄하라 그랬죠? 너무나 쉬워요. 찬탄하라. 그다음에 뭐죠? 不可思議불가사의에요. 알 수 없어요. 불가사의. 알 수 없는 거에요.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나타나는 공덕은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는 것을 설명하는 거에요. 그러면 얼굴 들어 눈뜨고 저 좀 봅시다. 그러면 이게 지금 마땅하다. 라고 말하는 지금 듣고 있는 사람이 누구예요? 내가 보죠. 내가 말하고 있죠. 내가 이해하고 내가 생각하죠. 그러면은 그게 마땅히 그 믿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은 뭘로 나타나요? 칭찬하고 찬탄할 만한 공덕이 어디에 나타나요? 마땅히 일어난다는 거에요. 어디에서? 지금. 지금.

 

그런데 이게 이제 접근이 잘 안 되시죠. 우리한테. 이 공덕이 모든 부처님이 이걸 다 가지고 계시다는 거에요. 一切諸佛일체제불. 글자 그대로 보면 일체제불이거든요. 그다음에 뭐죠? 누가 해야 돼요? 所護念經소호념경. 으음. 소호념경. 그러니까 이게 뭐죠? 보호하는 생각, 이 경전을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한테는 다 부처님의 지킴을 받는다. 이런 뜻입니다. 쉽게 의역하면. 그렇죠. 그죠. 고지한다. 가지고 있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넘겨 가면은 첫 번째 동서남북이 나오게 되거든요. 넘겨보시면 22쪽에 보시면 南方世界남방세계에. 있어요. 누가 있어요? 日月燈佛일월등불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일월등불이라 그러는 것은 일원을 뭐죠? 태양이죠. 이거는 태양이고 이거는 달빛과 같은 것이 일월이죠. 태양빛과 달빛을 얘기하는 이런 것을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광명세계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설명할 때 이걸 광명세계라고 그러거든요. 이 세계가 반드시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는 사람들이 몸이 부유해지면 정신이 가난해요. 그런데 정신은 고매한데 박복해가지고 가난한 짓으로 살아요. 그래서 균형을 맞춰줘요. 자연스럽게 맞춰줘요. 돈이 많으면 성질이 안 좋아.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가난한데도 성질을 부리는 사람이 있어.

 

그런 거 다 쓸데가 없어요. 계속 박복한 짓이 반복적으로 생겨요. 가난하면 육체가 가난하면 행복지수라도 높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가진 게 없는데도 행복지수가 점점 낮아지는 사람이 있거든요. 요게 문제가 돼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균형을 제대로 만들어져야 되는데 그 만들어주는 과정이 뭐라고요? 마땅히 믿어야 되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마땅히 믿어야 되는데 어떻게 믿어야 되요? 자기 자신을 찬탄해야 돼. 자기 자신이거든요. 나라는 게 자불성이다. 이렇게 표현하거든요. 자기 스스로 불성이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일어나는 불성인데, 이걸 스스로 찬탄해야 돼. 자기 자신을.

 

그러니까 좀 더 쉽게 표현 하면은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몸을 참으로 귀한 존재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셔야 돼. 귀한 존재라고요. 정말로. 이걸 느끼셔야 돼. 가슴으로, 아예. 우리가 정말로 귀한 존재라고 자기가 가슴에서 파도쳐서 느낄 수가 있으셔야 돼. 이렇게 하나둘씩 자기가 귀한 존재고, 그다음에 뭐죠? 자기 정신도 이게 정신도 엄청나게 귀한 거죠. 그죠. 육체는 허우대 같은데 허는 짓은 저~ ~ 어디 망나니 같은 짓을 하면은 어따 갔다. 써요. 그래서 자기 안에 귀한 존재가 있고, 귀한 정신이 있고, 귀한 생각이 사람한테 깃들어지거든요. 정말로 자기가 괜찮은 생각이 깃들어 와요. 그렇죠. 그죠. 이것도 귀하게 생각하셔야 돼.

 

그러면 칭찬 불가사의가 스스로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땅히 부자가 됩니다. 마땅히 몸이 좋아지고, 마땅히 저 우리가 말하는 저 먹고사는 일이 저절로 저절로 좋아지게 돼 있어요. 이렇게 내가 지금 벌써 일 년 가까이 악을 쓰는데도. 좋아지셔야 돼. 한번 법당에 오면 한번 좋아지시는 것이 요게 마땅한 거거든요. 요게 합당한 거라고요. 요게 조화로운 거에요. 마땅히 조화롭고 마땅히 뭐죠? 균등이 맞는 거에요. 사리불이여. 동방세계에 있어. 뭐가 있어요? 언제든지 밝은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긍정의 세계가 있는 거에요. 그걸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그걸 뭐라고요?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 밝은 세계가 있고요. 밝은 세계가 있어요.

 

그다음에 대 긍정의 세계가 있습니다. 크게 밝고 크게 긍정세계가 있습니다. 이걸 이르러서 삶이라고 말하고 지금을 현실을 말하고 있고. 이것을 마땅히 받아들이는 거에요. 어두운 것을 들여다보지 말고 밝은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땅한 거에요. 내가 나아지고 좋아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거에요. 그걸 믿어야지. 안 되는 것을 좋아지게 하려는 생각 자체를 버리세요. 안 좋아질 근간이 본래 없다는 거에요. 다만 지금 조화를 만들어지고 있고, 균등을 만들어 주고 있는 과정이에요. 이걸 퍼뜩 깨닫는 거에요. 이걸 퍼뜩 이해하시는 거에요. 그래야 비로소 정말로 저 균등세계에서 기회균등이라 그래요. 명문 이렇게 읽잖아요. 名聞光佛명문광불이라고 부처님 명호거든요.

 

동쪽 세계에 이런 명호가 있다. 이런 뜻이잖아요. 그 이름을 듣는데 어떻게 들어요? ~ 세상이 다 어둡고, 이게 그냥 무너지고, 불행하고, 금방 지금 죽을지라도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당신은 거기 광명 속에 있는 거와 똑같다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 안이비설신의가, 자기 오관이, 눈귀코입 자기 현실에만 그게 어둡다라고 자꾸 자기가 그게 마땅하게 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는 마땅히 가난함이 깃드는 거에요. 마땅히 병고 액란에서 못 벗어나는 거에요. 왜 그러냐 하면, 스스로 만든 그림자고, 스스로 만든 그물 속에 자기가 앉아있으니까. 놓아버리는 거에요. 그걸 없애는 방법이 뭐라고 설명했느냐 하면 광불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大焰肩佛대염견불. 크게 크게 불길이 일어나는 거 같아.

 

우리가 저~ 부처님 光背광배, 뒤에 보면 그려놓은 거 있죠? 그게 염불이에요. 견염불, 광배. 광배라고 부처님 후륜 보이는 거 있으시죠? 그런 것이 우리한테 있다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은 우리한테 지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기의 청정하고 공부하고 수행 많이 하고 수승한 공덕을 가지면 자기도 가만히 있으면 오로라가 나타나서 자기를 휩싸여주는 느낌까지도 얻게 된답니다. 공부를 깊이 하시게 되면 느껴집니다. 어제 그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축서사에 무여스님이라고 계세요. 큰 스님이십니다. 그냥 청정 그 자체에 있어요. 큰 보살과 마찬가지고요.

 

그분 대담에 잠깐 봤는데, 참으로 숙연하고 평생 살면서 자기가 공부하고 수행하시면서 그냥 그대로 자기 임종할 때는 이렇게 간화선, 선을 잘 집중해가지고 당신 표현이 그래요. 그렇게 하다가 요렇게 있다가 죽을 때 이러고 가고 싶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분은 그러실 거 같애. 앉아서 가시는 위신력을 보여주실 거 같애. 그다음에 뭐죠? 須彌燈佛수미등불. 수미등불은 반드시 미래세에도 내 앞날 세계까지도 전부 뭐죠? 밝으므로 가득해진다는 뜻입니다. 그게 뭐죠? 수미등불.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뭐죠? 無量精進佛무량정진불이다. 끝없이 정진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깨우치고 난 사람도 정진하셔야 되요.

 

안 자도, 초견, 깨우침을 얻으신 분도 계속 정진을 하셔야 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렇게 균형적으로 평균적으로 그게 자기한테 있어야 되요. 그리고 如是等여시등. 여기까지. 여시등하면 이와 같이 무수히 많은 부처님이 계시다. 이렇게 설명하고 계신 거거든요. 그래서 그 뒤에 보면 恒河沙數諸佛항하사수제불. 이렇게 말해요. 그저 저저저 한강의 모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런 부처님이 있다고 그렇게 말해요. 그다음에 그것은 각기 인연 따라 그 국토에 출현하신다는 거에요. 나타난다는 거에요. 어디서든지 다 뭐죠?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도 공부하고, 우리도 기도하고, 우리도 수행하고, 우리도 공덕을 짓고 삶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그래서 균등하다는 말을 내가 찾아보니까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연속균형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이 연속균형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계속 균형을 누리가 있어야 되요. 그래서 이걸 균형의 세계라고 이렇게 표현하거든요. 그래서 여기 설명을 드린 게 뭐냐 하면 廣長舌相광장설상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디서든지 그 법을 설해주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깨우치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다 부처님의 법음이 베풀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 법당에서뿐만 아니라 저 시장이라든가, 저 노동현장이라든가. 이런 모든 세계, 지식인의 세계라든가, 또 기술의 세계, 이런 과학적인 세계, 이런 모든 세계가 다 부처님이 아닌 사람이 없고, 부처님의 잠재가 다 들어있는, 불성이 다 깃들어있는 존재입니다. 모양이 표현되고 드러나는 것이 좀 달라진다는 거에요. 이게 出廣長舌相출광장설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모양이 드러난다는 뜻이거든요. 저 좀 보세요. 오늘부터 이 불설아미타경을 공부하시고 이 인연 지은 모든 분들은 다 부처님의 상이 드러나야 되요. 자기 혀가 무엇을 말하고 살아야 되느냐하면 아까 말씀했죠? 뭐든지 합당한 걸 얘기해야 되요. 진리적인 거, 부처님의 진리 있는 것을 말해야 돼요. 입이 자기 혀가 있다면 부처님의 법을 설해야 되요. 조화로워져야 돼. 균형적인 것을 설명하셔야 돼. 그리고 번영하는 걸 생각하고 말해야 돼요.

 

그러면 이게 廣長舌相광장설상이라고 딱 나옵니다. 되시죠? 그죠? 이 얘기는 본인 우리 자체가 부처님의 설한 내용도 곧 받아들이는 우리도 그와 같이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중생이라고 하는 허물을 드리고 있는 이 어리석은 착각 속에서는 언제든지 자기 상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때때로 한 번 제가 말씀을 드리잖아요. ‘이 세상에서 부처님 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나는 잘생겼습니다.’ 이런 걸 하잖아요. 집에 가서 허기는 허고 계세요? 거울 보면 좀 예뻐 보여요? 遍覆三千大千世界변부삼천대천세계에 다 부처님의 불성이 아닌 곳이 없고, 부처님의 진리가 아닌 곳이 없고, 그 법을 전해주는 스님이 없는 데가 없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