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도시

달빛 2009. 9. 8. 15:12

 

나는 사실 2PM이 누군지 제대로 모른다. 단지 또 다시 인터넷이라는 처절한 전쟁터에서 쫓기듯 물러서야 하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읽고 내 경우를 비추어 생각을 할 뿐이다.

 

적지않은(아니 남들은 다 늦었다는) 나이에 미국에 오고 1년간은 폐쇠된 곳에서 한정된 인원들을 만나면서 공부라는 매개체로 그저 버티기식의 생활을 했었다. 일년이 지나고 바로 LA로 내려와서 함께 공부하던 인원들은 각자 낯선곳에서 낯선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느낀것은 이때부터였다. 내가 너무 오래 한국에서 살아온 탓인지 아니면 내가 하려던 일이 잘 안풀려서인지 나는 이곳 생활이 너무너무 싫었다. 뭐든 한번에 되는 것이 없고, 딱이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도 없고, 불편하기 짝이없고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한번 싫다고 생각하니, 거리도 건물도 사람들도 싫었다.

 

한번은 옷가게에서 옷을 보다가 몇십불이 아까워 안사고 돌아서려니 한국인 아주머니가 쫓아나오면서 안 살거면 빨리가라고, 우리가게에서 옷살 사람이 못된다고 내 등을 떠밀고는 문을 닫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 무슨 70년대 80년대에나 있을만한 일인가. 어떻게 손심이 옷을 안산다고 이런 처사를 할 수 있나...한동안 어이없어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한국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또 내가 가만히 있을정도의 성미도 못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곳 생활 차체가 다 거지같다고 생각하고 전투력을 상실한 나는 10불 20불도 아까워서 제대로 못쓰는 내 모습에 연민을 섞을뿐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그냥 자리를 떴다. 유학생활이란 좀처럼 돈쓰는 일에 인색해지기 마련이다.

 

그때 나도 이 친구처럼 말한것 같다. 미국이 싫다.  LA가 싫다. 사람들도 이상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  낮선곳에 적응이 안된 나는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몰랐고 심지어는 여기사는 사람들이 괴물처럼 보였다. 그래서 몇번의 나쁜 경험에 전부를 싸잡아 말하게 되고, 편견을 배재한 판단같은 것은 이미 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서른을 훨씬 넘었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면서 한국아닌 여러 도시들을 업무차 여행차 이미 십여차례 이상 다녀본 사람이었다. 이런 경험과 아무 상관없이 새로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정신적으로 한없이 피폐해하고 황폐해지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이 모든게 심리적인 요인에서 기인했음을 그때도 알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 친구가 얼마나 한국을 비하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친구 또한 그의 친구에게는 격해진 마음 모두를 털어놨을 것이다. 하물며 말하다보면 내 감정을 넘어서서 표현을 해대기 마련이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답답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면서는 더 독한 더 나쁜 표현이 있는지 기어이 찾아서 뱉어내고는 어쩐지 개운한 느낌을 받는때가 누구에게나 있지않나?....뭔지 다 안다고 할수는 없으나 그런거 아니었을까?....어린 나이에 살던 곳이 아닌 낯선곳에서 적응해가는 그런 일편이 아니었을까? 나만 외계인같고 섞이지 못하는 물위의 기름같은 심정...친구에게 그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털어놓는단 말인가....사람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 상태에서 치우침 없이 사물을 바라다볼 수 있을 때까지는 사뭇 시간이 걸리고, 그 위에 다시 내 삶의 흔적으로 거리 구석구석을 매울때 쯤에야 소위말하는 "정"이 쌓이는 법이다. 그가 내 뱉은 말들은 한국에 대해 이 정이 쌓이기 전에 친구에게 말한 칼날 같은 외침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너무 힘들다"라는...

 

나는 이 젊은 친구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그 힘든 상황을 분명 그 누군가도 겪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누군가 크나큰 인생의 괘도수정까지 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 한켠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