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성고량주 동정

수성고량주 2013. 7. 13. 10:08

 

[y피플] 이승로 수성고량주 사장

 

  • 노인호기자 이현덕기자
  • 2013-07-13 08:04:02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수성 고량주의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그 술, 지키고 싶었다

대학때 한 켠의 추억이었던 술 중국 저가酒 공세로 잊어

3년전 ‘억대 연봉’ 자리 박차고 수성고량주 부활 위해 나섰다

향만 맡아보십시오

저가 수입술에 맞서 주질 향상 포장도 디자인도 새롭게 바꿔

고량주에 고개 젓던 바이어들도 향과 맛본 후 호의적 반응

중국인들도 "띵호와"

수정방 겨냥해 만든 '백주43' 한류바람 타고 중국서 큰 관심

중국으로 넘어가 있는 공장 반드시 국내로 옮겨오고 싶어

한 때 전국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던 ‘메이드 인 대구’ 고량주 ‘수성고량주’의 이승로 사장이 최근 출시한 신제품과 사업 초기 제품, 그리고 수십년전 수성고량주를 소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1979년 1월, ‘정부는 동해양조와 수성양조, 고량주 독과점 품목 해제’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7년 뒤인 86년 10월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게재됐다. ‘지난해 동해양조가 도산한 이후 수성고량주가 독점해온 이 시장에서 풍원양조가 신규 진출. (중략) 한편 풍원양조의 신규진출에 따라 기존 메이커인 수성고량주(대구 소재)는 주질 고급화를 추진.’

다음 해 10월 ‘관련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연간 100억원 규모의 고량주 시장을 수성 55.5%, 풍원 44.5%로 철저히 양분. (중략) 그러나 진로(眞露)그룹이 풍원양조를 인수, 본격적으로 고량주 시장에 뛰어들면서 수성 고량주의 판매량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뉴스가 지면을 장식했다.

이후 92년 8월27일자 신문에는 ‘중국산 고량주 내수 잠식 심각. 저가 공세로 국산 출고량의 6배 수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4건의 신문기사로 유추해보면 1970년대 국내 고량주 시장은 동해양조와 수성양조(수성고량주)가 양분했다. 그러다 85년 동해양조가 문을 닫으면서 연간 100억원 규모의 국내 고량주시장을 수성고량주가 독점한다. 그러자 대기업인 진로가 풍원양조를 인수해 다시 고량주 시장 공략에 나선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92년 중국산 저가 고량주가 밀려들어 오면서 두 회사 모두 위기를 맞는다.

신문내용은 여기까지다. 이후 독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탓인지 두 회사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에 관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후 진로의 고량주는 시장에서 사라졌고, 수성고량주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도 처음 시작한 대구에서.

대구브랜드로 국내 1위 ‘고량주’ 자리를 차지했던 수성고량주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이가 이승로 사장(50)이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세 차례나 거절했다. 인터뷰에 응할 정도의 사람이 못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세 차례 거절한 이유를 종합해보면 “이뤄야 할 것이 이뤄놓은 것보다 훨씬 적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에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좀 더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며 설득했고, 결국 이 사장은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열어줬다.

◆OB맥주 간부에서 쇠락한 수성고량주 사장으로

두산그룹의 OB맥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 경남지점장 자리에 오른 이 사장은 2010년 수성고량주 대표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억대에 가까운 연봉의 안정된 직장인이던 그에게 수입도 ‘확실치 않은 자리’의 제안이 들어온 것.

“다른 것보다 안타깝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대구의 역사성과 브랜드를 갖춘 수성고량주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많이 힘들 것이란 현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그렇게 바닥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경북대 82학번인 그에게 수성고량주는 대학시절 신입생 환영회 마지막을 장식했던 추억의 술이다. 북구 산격동 수성고량주 공장 인근을 지나가면 술찌는 달큼한 향에 대한 추억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에게 내놓을 수 있는 대구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수성고량주는 1960년대 초반 중구 수창동에서 시작해 70년대에 수성구로 옮겨 ‘수성’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후 1982년 권순갑 사장이 인수해 전국을 휩쓸었다.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대구 술’이 전국구가 된 것. 하지만 당시 주류업계에 막강한 힘을 가진 진로가 고량주 시장에 진출해 ‘갑의 횡포’를 부리는 통에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그러다 진로는 문을 닫았고, 진로의 ‘풍원양조’도 함께 사라졌다. 그 속에서 ‘수성고량주’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92년 이후 중국 저가 고량주의 공격이 시작됐다.

이 사장은 “당시 ‘고량주=중국 술’이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 저가 수입 고량주가 이익구조가 좋다 보니 식당에서 너도나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사람도 먹지 않을 정도로 품질이 떨어지는 술이었다. 거기다 수성고량주를 찾는 사람이 있어도 망했다는 악성루머를 퍼트려 회사를 더 어렵게 했다”고 전했다.



 

이승로 수성고량주 사장은 고량주가 중국 음식뿐 아니라 회, 삼겹살과도 잘 어울리는 최고의 술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부활의 날갯짓은 시작됐다

중국 고량주의 저가 공세에 떠밀려 수성고량주는97년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13년 뒤 이 사장이 ‘젊은 피’로 영입된다. 그는 저가의 중국 수입 고량주에 맞서는 방법은 술의 질을 높이는 것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3대 명주로 불리는 마오타이, 수정방, 우량예 진품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호텔에서조차 ‘진품이라고 보증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기다 식당 등은 값싸고 이익이 많이 남는 저가 중국산 고량주를 내놓고, 그러다 보니 고량주시장 자체가 저평가돼 있습니다.”

그는 사장이 되자마자 주질향상을 위해 경북대 발효생물공학연구소를 찾아가 산학협력을 맺었다. 주질과 술 개발에 조예가 깊은 박동희 소장(교수)에게 이 사장은 ‘살려달라’고 했고, 박 소장은 ‘살려보자’라며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수성고량주 후레쉬 40’이다. 이후 간편하게 야외활동할 때 먹을 수 있는 ‘수성빼갈36’, 중국의 수정방을 겨냥해 만든 프리미엄 고량주인 ‘수성 백주 43’, 중국음식점 등 식당 전용인 ‘수성스페셜 34’, 지난 6월에는 ‘밤이 즐거운 수성 효’를 잇따라 내놨다. 주질뿐만 아니라 그가 준비한 것은 포장과 디자인의 변화. 민속주들이 좋은 품질에도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포장과 디자인 때문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옛 영광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고 했다. 전국 200여개 정도의 슈퍼체인, 도매장, 대구백화점 프라가점을 비롯해 현대백화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등에서 수성고량주를 만나볼 수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날도 제주도 등에서 독점판매를 하고 싶다는 도매상의 문의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

지금 정도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다. 사장이 직접 술을 들고 찾아다녀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나이가 좀 있는 주류 바이어에게 수성고량주는 잊힌 술이고, 젊은 바이어는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술이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많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열 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도끼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노력이 이제 조금씩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그는 대형마트 등의 주류 바이어를 만나면 묻지도 않고 곧바로 뚜껑을 따서 향만 맡아보라고 권한다. 향을 맡아본 바이어 대부분은 술을 입에 대어 본다. 수성고량주가 좀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고량주 시장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향을 맡고 맛을 본 바이어 상당수는 호의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만큼 지금 판매되는 수입 고량주와 품질면에서 비교가 된 것이죠. 여전히 중국산 수입제품과 비교하면 2~3배 정도 비싸지만, 분명히 가치를 인정해줄 날이 온다고 확신합니다.”



◆수성고량주, 반도의 전통으로 대륙을 마신다

이런 노력 덕에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 선양박람회에 참가해 ‘수성고량주’를 알렸고, 본격적인 중국판매를 위해 작년 12월11일 한글로 만든 ‘수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상표국 인가도 받았다.

“한류분위기를 타고 수성고량주의 고급술인 ‘백주43’에 대해 중국인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입니다. 특히 중국측에서 기존 제품에 있는 영어와 한자를 다 빼고 한글로만 바꿔달라고 해서 현재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K-pop처럼 대구의 술인 ‘수성고량주’로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지역민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대구에 태어나 힘들게 혼자 살아가는 ‘수성고량주’의 친구가 되어 달라는 것. 무조건 받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못 본 척 무시하지 말고 맛이라도, 그것도 안 되면 향이라도 맡아 주는 관심만이라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장기 목표는 현재 중국으로 넘어가 있는 공장을 국내로 옮겨오는 것. 중국 저가 제품과 상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마음 한 켠이 늘 무겁다고 했다.

이 사장은 “공장을 대구로 옮기면 정말 지역민과 함께 성장하는 수성고량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