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야기/고량주의기원

수성고량주 2011. 2. 21. 18:40

고구려 술이 어떻게 중국 내륙으로 전파되었을까?

 

 

고구려는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한 후 당시 당나라 장수 이적에 의해 강제로 이주 당하게 된다. 669년 20만 명에 이르는 고구려 유민이 중국내륙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강제 이주당한 고구려유민의 발자취를 찾아 10년넘게 중국을 뒤진 김인희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1,300년전에 사라진 고구려 유민의 유랑사를 찾아내고 있다. 놀랍게도 중국남방의 먀오족의 중심세력이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것을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유민(푸른역사 간)에서 밝히고 있다.

고구려 유민의 이동경로는 두 갈래가 있다. 평양지역의 고구려유민은 후난 서부와 구이저우 동남지역으로 만주에서 이동한 고구려유민의 이동경로는 차오양을 출발하여 베이징을 거쳐 후베이성남부와 후난서부지역으로 이동했다. 이지역에서 다시 쓰촨 남부를 거쳐 구이저우 서북에 도착하였고 이후 구이저우 각지와 원난 일대로 이동하였다. 이 책에서는 고구려유민의 험난한

중국내륙으로의 이동경로가 상세히 나온다.

 

 

 

그림1) 평양에서 이주한 고구려유민 이동경로 그림2) 만주에서 이주한 고구려유민 이동경로

 

 

 

 

고구려시대 술은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여흥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신을 숭배하기 위하여 빚은 매우 귀한 음식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고대 제사장은 술을 빚는 우두머리라는 해석이 있다. 술을 뜻하는 한자 酒(주)는 酉(유)라는 글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酉는 밑이 뾰족하고 목이 긴 항아리의 겉모양에서 따온 상형문자이며 이 항아리에 물을 뜻하는 삼 수(水)변이 붙어 오늘의 酒자를 이루게 되었으니 술을 담는 항아리라는 뜻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그럴싸하다고 여겨진다.

추장(酋長)이라 하면 어떤 부족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이다. 추장의 酋자는 항아리의 주둥아리 위로 향기가 나오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술을 담그는 사람이다. 유대인의 제사장이 그렇고, 중국의 고대 임금들이 그러하며 우리의 단군이 그렇다. 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고대시대로 올라 갈수록 그 가치는 더 올라 갈 수 밖에 없다.

고구려 유민은 어려운 유랑의 역사 속에서도 술 빚는 일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을 것이다. 부족의 행사와 조상의 제례를 위하여 필수품인 고구려 술은 떠돌아다니는 시절에도 지켜졌을 것이고 고구려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올곧게 지키며 후대에 전해졌을 것이다. 고구려 유민은 남방으로 유배를 당한 후에도 독자적인 영역과 자치권을 가지고 천년동안 유지되어왔다. 따라서 현재의 중국내륙의 윈난, 구이저우의 유명한 중국술의 뿌리를 유추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