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Jason Eco 2014. 9. 18. 01:18

평등, 형평, 공평, 공정 네 단어 간의 의미상의 지위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국어사전에서는 형평과 공평을 구분해서 확인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지만, 네 단어를 수평으로 늘어뜨려 놓으면 개념이 조금 더 분명해질 수 있다. 평등이 가장 왼쪽이며 그 다음이 형평, 공평, 공정의 순으로 생각해볼 수 있으며 평등에서 공정으로 가기까지는 격차의 불인정과 타당한 격차의 인정 또는 대우로 배열될 수 있다. 형평과 공평 그리고 공정에 관한 정의(definition)는 다음과 같다.

 

형평(equity)- 영어에서의 형평은 동등성· 일치성· 대칭성· 공정성을 의미하는 라틴어 ‘aequitas'에서 나온 것이다.” 영국의 법은 성문화된 규정이 없는 관습법이기 때문에, 정형화되지 않은 사건의 경우는 왕의 자비와 양심에 호소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평성은 보통법의 경직되게 공식화된 규칙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공정성에 따라 집행되는 정의‘(Black's Law Dictionary, 1957), '영국에서 보통법을 보완하기 위해 구성된 법체계, 형평 법원에서 발전된 원리’(Merriam-Webster's Dictionary of Law, 1996)와 같은 사전적 의미를 같게 된 것이다. (중략) 즉 형평성은 상황에 맞도록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할 것을 요청한다는의미로 해석된다.

 

공평(fairness)과 공정 - 영어와 국어에서의 사용법이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이 두 단어의 의미가 국어에서는 구분을 두고 있으며, 영어에서는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영어에서는 'fairness'공평또는 공정으로 둘 다 사용하고 있으며 국어에서는 공평(公平)과 공정(公正)에 사용에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공정은 출발선의 평등을 의미하며 또한 경쟁의 기회와 조건이 동일함을 강조하는 의미이며 이것은 경쟁의 입구를 관리하는 기준으로 고려된다. 또한 공정은 과정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며 공평은 주로 결과의 형평성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개념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의(justice)는 이 두 개념과 형평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한편 공평과 형평의 개념에 대한 한국어 사전적 정의(definition)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바르다 또는 고르다라는 의미이다. 이 두 개념은 대우에 대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원리로 작동하는데, 높은 내재적 덕을 요구하는 직업인의 경우, 일반법이 제시하는 법률적 해석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도덕성을 요구받기도 한다. 또한 높은 지위에 있을 수록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견지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될 수 있다. 또한 법학에서의 공평은 공적인(public)형평성을 의미하는 반면, 형평은 보다 일반화되고 넓은 의미로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공평과 형평은 상황에 종속적이며 감정에 근거하기도 한다.

 

정당화(justify, justification)와 공정한’(just)의 구별

사회를 분석하기 앞서 전제된 기본인식은 사적 소유권과 관련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의 기본 인식은, 사회 속에 개인으로서의 의미인 개인(individual) 과 원자론적인 개인(private)의 의미를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은 자연의 경우, 이미 우리가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적 소유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의 위임을 받은 위정자나 국가의 인증하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공유라고 하지만 이것은 다수의 주인이 있다는 의미이며 그것이 예전에는 처녀지(處女地)라 해도 실제로는 무주지(無主地)가 아니라 단지 이용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회구성체를 분석하는 방법론상에서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한다. 그들에게는 사회는 이미 존재해 있고 그 안에서 개인이 삶을 영위해 간다.

이와는 달리 자유지상주의자인 로스바드(Rothbard)의 입장에서, 주인이 없는 땅은 공유가 아니다. 그들은 개개인이 그 피조물에 대한 개발이나 점유를 통해 권리가 발생함으로써 개인의 사적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로스바드(Rothbard)는 인권과 사적 소유권을 동일시한다. 사적소유권의 행사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정당화 된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화한다고(justify) 모두 공정(just)한 것은 아니다.

롤즈의 논의 역시 정당과 정의를 같은 각기 다른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점은 그가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그의 이론에 담겨져 있다. 이 의미는 공정한 절차로서의 정의를 정당화시켜야 된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정의를 정당화시키지 않는 경우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정당함이나 옳음을 해석하는 신학적 해석은 본 논의에서는 굳이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다. 다만, 로마서 320-31에는 어느 누구도 그 ()법을 지킴에 따라 그의 시각에서 옮음(의로움)이라 선언하지 않게 될 것이다.”(No one will be declared righteous in his sight by observing the law )는 내용으로 보아 우리 인간이 아무리 그 ()법을 지키려고 해도 우리가 행하는 일들은 신의 존재에서 볼 때 죄가 없다고 선언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321절과 28절 사이의 옳음/정당화는 그 ()법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분리된 또는 그 ()법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라 전한다. 이 구절은 율법에 따른 행위를 한다 해도 율법을 통해서 죄를 알게 할 따름이지 신(하느님)앞에서는 의롭지(옳음) 못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학의 정당화는 옳음이라 선언하는 것이며(칭의(稱義)), 일반사회의 정당화는 법적으로 올바르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도덕적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신이 무죄라고 선언하는 신성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죄가 없다고 선언할 뿐이다.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근대 이후의 서구 사상가들은 아마도 정당화라는 개념 속에 성경에서의 정당화를 채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물론 인간이 태생적으로 (도덕적)죄를 가진 채(원죄)로 태어난다는 기본적 전제로 인해 이러한 추론이 가능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당화와 정의를 동일한 것으로 다룰 수 는 없다. 롤즈의 정의론은 공정한 것으로 정의를 규정하고 이 규정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미 그도 인지한 것이 정당화되는 것이 모두 공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어떠한 사실로부터 도덕정리가 아닌 도덕 공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말하자면 정당화되었다고(사실) 해서 도덕공리인 정의가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공정은 지금까지 평등주의자들이 언급한 평등의 대상목록의 동등화 내지는 차등화를 의미한다. 기회나 자원 잠재력과 소득 등의 대상목록들을 차등의 원리에 입각해서 분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응분과 능력에 따라서 분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불공정한 대우는 불평등한 대우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공정한이라는 단어는 똑 같은 기회와 여건 (신체조건, 자원 등)을 제공하고 난 뒤 개개인의 능력에 의해 결과되어지는 것을 공정하게 진행된 상태로 본다. 그러나 평등주의자들이 고려하는 공정은 개개인의 능력조차도 경제적 상황에 의해서 달라지기 때문에 개개인의 잠재능력 내지 우위적 상태에 접근 가능한 능력의 동등화내지 다원적 평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평한 것과 옳은 것 중에서 둘 다 좋은 것이지만 근원적으로는 공평한 것을 더 뛰어난 것으로 보았다. “공평한 것이 옳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법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고 법적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옳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서의 옳음은 각자의 능력을 실행에 옮기고 난 후, 결과물의 차이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옳은 것이다. 또한 그것이 공평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물은 시장의 원리안에서만 그리고 사회속에 개인이 아닌 사적 소유물로서 공평하고 옳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도 간파했듯이 어느 한 사회구성체가 가지고 있는 법 안에 정의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정의는 준법적인 것과 공정한 것을 포함한다.

토마스 네이겔(Nagel)가장 효과적인 사회체계라는 것이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삶을 위한 전망을 부숴버리는 거친 상실감의 조건으로 태어나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그리고 단순히 적절함의 조건을 넘어선 거대한 우위를 자유롭게 즐기는 것을(중략) 허용하도록 고안해 온 것이 끔찍하다.”고 언급했다.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 혹독한 불일치의 모습들은 부정의(injustice)의 감각을 자극시키는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을 치료하는 것은 바로 평등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공정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이스 로마시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조금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현재의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즉 능력(merit), 장점 내지는 공적에 따라 포상과 형벌을 가하는 비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이 당시의 학자들은 계급과 신분에 따른 당연한 차등을 공정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대 그리이스 로마시대의 공정개념은 당시의 정의(justice) 개념과 거의 동일시 된다. 이와는 달리 현대적 의미의 공정은 전술한 바와 같다.

주1) 김대호(2009), 김도균(2012)

 김대호, 노무현 이후: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한걸음더

김도균, "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 서울대학교 법학, 제53권, 1호 3월, 323-413

출처:공정성과 평등론의 쟁점, 이승은,P5-9.Pubple.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