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karllee 2019. 12. 4. 12:41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투쟁은 자본관계 그 자체와 함께 시작된다. 그것은 매뉴팩추어 시대를 걸쳐 계속해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기계가 채용되는 순간부터 비로서 노동자는 자본의 물적 존재양식인 노동수단 그 자체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물적 기초인 생산수단이 지니는 특정한 형태에 대해서 반역하는 것이다. 

...

매뉴팩추어 안에서 일어난 임금투쟁은 매뉴팩추어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지 결코 매뉴팩추어의 존재 자체를 향한 것은 아니다. 공격이 매뉴팩추어의 형성에로 향해졌다면, 그것은 동직조합장과 특권 도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 임금노동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뉴팩추어 시대의 저술가들이 볼 때, 분업은 주로 노동자를 대체하는 잠재적 수단으로 파악되었지 그것이 노동자를 구축하는 현실적인 수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

기계로서의 노동수단은 곧 노동자 자신의 경쟁상대가 된다. 기계를 통한 자본의 자기증식은 기계로 말미암아 생존조건을 박탈당한 노동자의 수에 정비례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체 체제는 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분업은 이 노동력을 일면화하고, 하나의 부분 도구를 다루는 매우 특수화된 기능으로 만든다. 도구를 다루는 일이 기계의 역할이 되면 노동력의 사용가치와 함께 그 교환가치도 소멸한다. 노동자는 통용되지 않는 지폐처럼 판매되지 못한다. 노동자계급 속에서 이같이 기계 때문에 과잉인구 [곧 더 이상 자본의 자기증식에 직접적으로 필요치 않는 인구]가 된 부분은 한편으로는 기계경영에 대항하는 낡은 수공업적 경영 및 매뉴팩추어적 경영의 상대도 되지 않는 투쟁 속에서 파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이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산업 부문에 넘칠 정도로 몰려듦으로써 노동시장을 범람케 하고 따라서 노동력의 가격을 그 가치 이하로 떨어뜨린다. 궁핍화된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계는 생산분야 전체를 아주 천천히 정복해갈 뿐이기 때문에 그 파괴작용의 규모와 강도가 완화되리라는 사실이다. 한편에서의 위안은 다른 한편에서의 안을 희생으로 한다. 기계가 하나의 생산부문을 점진적으로 장악해 가는 경우에 기계는 그 자체와 경쟁하는 노동자 속에서 만성적인 빈곤을 일으킨다. 이러한 추이가 급속히 이루어질 때에 기계는 대규적으로 급격히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