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

t_arirang 2012. 10. 19. 10:37

부산을 잘 아시는 분의 안내로 

영도(절영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봉래산(395m)"에 올랐다.

"봉래산(蓬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지만,

"봉래"는 도교(道教)의 이상향(utopia)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본에도 봉래산은 여기저기 있습니다.



(부산 수정동에서 바라본 영도와 봉래산 ↓)





산 정상에는 "봉래산"이라는 표석과

바로 앞에  "+(plus)" 표시의 돌이 묻혀지고 있었다(↓).

지도를 작성하는 기준이 될 "삼각점(三角點)"이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설명판이 설치되고 있었다.


”이 삼각점은 1910년 6월 한국의 대삼각 본점(本點)

'절영도(봉래산)와 거제도(옥녀봉)를 구점(求點)으로 

대마도 1등 삼각점 "유명산(有明山)과 어악(御嶽)"을 여점(與點)으로 

삼각망을 구성하여 관측・계산하였다.

이 두 삼각점은 모체로 전국에 대삼각본점 400점을 설치하여 

토치조사를 시행한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삼각점이며…  


2002년 10월23일 영도구장  "



삼각형의 밑변의 길이를  알고 있는 경우,

정점으로 향하는 두 내각(角)이 밝혀지면

정점까지의 두 변의 길이등을 알 수 있다.


정점(구점 求點)의 위치가 밝혀지면 

다음에 그 곳을 여점(與點)으로서 해서

새로운 구점을 구할 수 있다.

그런 삼각측량을 반복하면서 정확한 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


일본 구(𦾔)육군이 진행시킨 사각층량은 

1882년에 사가미하라(相模原,神奈川県)를 기선(基線)으로 시작되어

1907년에는 쓰시마(대마도)까지 도달되었다.



일본 삼각망도(三角網図 ↓)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는 직전,

1910년 6월에 이 삼각망은 바다를 넘어

한국의 지도 작성작업과 연결되었다.

영도와 거제도의 삼각점은 한국 지도를 만들기 위한

최초의 "밑변의 2점", 즉 기선(基線)이 되었다.


과학의 힘은 정치적인 지배의 힘이기도 한다.

그 작은 돌에는 큰 정치적인 의사(意思)가 담아져 있었던 것이다.



근데 일본 에도시대(江戸時代)에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라는 측량가(測量家)가 있고

정확한 전국 해안선 지도를 1820년경 완성시켰다.

그 지도에 대마도에서 바라본 한국의 산이 그려 지고 있다(↓).






대마도 지도 위에 한국의 산이 그려지고 있다.

바로 앞의 오른 쪽에 영도("牧嶋(마키노시마)"라고 쓰여진다)와 

본래산이 보인다.

왼 쪽에는 거제도와 옥녀봉("玉浦山(옥포산)"라고 쓰여진다)이 그려지고 있다.


육군이 근대적인 지도를 만들었을 때,

"이노도(伊能図)"를 참조했다고 한다.

한국 토치조사국(총독부 임시토치조사국의 전신)이 

봉래산과 옥녀봉을 최초의 구점으로서 고르는 것에는

이노도가 관계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노 자신에는 한국을 침략하려고 한 의도는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영도를 landmark로서 보고 있었는데

산의 이름도 모르고,

또 삼각점의 존재도 몰랐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항상 많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참고문헌

1 本元博『伊能にみる朝鮮の山」(2006년)

2 海野福寿「朝鮮測事業と朝鮮民衆」(1997년)





일본에도 봉래산이라는 이름이 있군요.
강원도 금강산도 여름엔 봉래산이라고 부릅니다.

이 산의 이름은 원래 다른 것이었을 텐데
19세기 말, 절영진(絶影鎭)의 첨사(僉使, 무관벼슬)였던
임익준(任翊準)이라는 사람이
봉래산이란 명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적에는 흔히들 '고갈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만 해도 봉래산으로 부르는 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고갈산이란 어감이 참 싫었지만 그렇게 많이 불렀습니다.
고갈은 '枯渴(혹은 沽渴)'이라는 한자인 것 같은데
한자의 뜻 그대로 말라서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표현한 것이 굳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는 산이 고깔 모양이어서
'고깔산'이라고 불렀던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무속이 강한 곳이어서
굿을 할 때 무당이 머리에 쓰는
고깔과의 연관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봉래산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특색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익준이라는 첨사는 절영도에 와서
산의 이름과 동네의 이름 등을 붙였고
그것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숲이 우거진 멋진 곳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蓬萊,瀛仙,新仙, 靑鶴 등
도교적인 이름들을 붙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갈산이란 이름이
한국을 낮춰 불렀던 일제의 나쁜 잔재이라서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한국의 중요한 산 정상에는
한국의 맥(脈)을 끊겠다는 의도로
일본인들이 박아놓은 쇠 말뚝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일제 이후에 (주로) 쓰여진
고갈산이란 이름을 버리는 것이 맞겠지만
저는 그 봉래산이란 이름이 익숙치가 않습니다.

+ 표식이 새겨진 삼각점을 볼 때,
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봉래산에 관한 이야기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봉래산은 원래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군요.
봉래산을 멀리서 보면
확실히 "고깔"모양처럼 보입니다.

지식인이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이후에도,
서민층은 "고깔산"이라고 계속해 부르고 있었던 것이네요.
사회 속에 여러 문화층이 있다는 이야기로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근데 해방전부터 한국인은 영도다리를
일본인이 붙였던 "부산대교(후산 오오하시)"라고 부르지 않고,
"영도다리"라고 불러 온 것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