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마을 연수

티처빌 2015. 11. 3. 08:00

 

 

 

 

 

역사 속 라이벌 이야기로 배우는 한국사 연수, 티처빌 한국사 맞수열전

 

 

 

"역사 속 라이벌"하면 어떤 위인들께서 생각나세요?

 

저는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떠오르네요.

 

조선을 건국 이념이 달랐던 정도전과 이방원

'명과 전쟁! 시기상조다!' 대립하다 '위화도회군'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일으킨 이성계와 최영

당대 대표 성리학자였지만 서로 다른 이론으로 팽팽하게 대립했던 이황과 이이

 

이렇게 한국사에도 역사 속 라이벌들이 존재합니다.

 

역사 속 라이벌 이야기를 역사교육에 접목하면, 학생들이 더욱 기억하기 쉽고, 토론 수업 등을 진행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는데요. 한국사에 관심이 있다면 배워 보는 게 좋겠죠?

 

그래서 오늘은 역사 속 라이벌의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한국사, "장콩 선생이 들려주는 한국사 맞수열전"을 만나보겠습니다.

 

 

 

 

 

2학점 30시간 직무연수 "장콩 선생님 들려주는 한국사 맞수열전"

 

 

역사 속 라이벌 유리(고구려왕) 대 온조(백제왕)

 

유리와 온조는 모두 고구려의 왕 주몽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유리는 주몽의 왕위를 물려받아 고구려의 2대왕이 되었고, 온조는 백제 왕이 되었는데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유리왕(고구려왕)은 주몽과 예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주몽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부여의 왕자들을 피해 다급히 부여 땅을 탈출해서 어머니(예씨부인)와 함께 부여에 남게 됩니다. 훗날 유리는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숨겨놓은 증표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고구려로 가는데요. 그리고 주몽을 만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구려 제2대 임금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온조왕(백제왕)은 주몽이 부여 왕자들로부터 도망쳐 졸본 지역 족장 딸 소서노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비류, 온조) 중 한 명입니다.

유리가 왕위를 계승하자, 비류와 온조, 그리고 주몽의 부인 소서노는 남쪽으로 내려가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기로 함께 뜻을 모으고, 오간, 마려 등 10명의 신하들과 의기투합 후 남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비류와 온조 일행은 한강 근처에서 거처를 정하다가, 바닷가를 원하는 비류는 떠나고 온조는 남아 하남 지역에 성을 쌓고 기원전 18년에 십제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그리고 비류가 돌아온 후 온조는 "모든 백성들이 자신을 따른다"라고 하여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바꾸었죠.

 

 

 

 

주몽이 왕위를 유리왕에게 넘겨준 순간부터 유리와 온조의 관계는 좋을 수가 없었겠죠?

 

기존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고구려의 2대 임금이 된 유리왕의 입장에서는 소수의 인원들을 이끌고 새 나라를 건국한 온조에게 열등감 또는 비교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싫었을테고, 온조는 자신의 인생을 변하게 만든 유리의 존재 자체가 싫었을텐데요.

 

이후 고구려와 백제는 발전과 쇠퇴를 거듭하며 신라와 더불어 고대 국가를 형성해 삼국시대를 만듭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말죠. 멸망 할 때까지도 고구려와 백제의 사이는 좋지 않았답니다.

 

 

 

 

 

학생들을 교육 할 때 위의 내용을 참고하고,'유리와 온조 중 어떤 위인이 더 바람직한 삶을 살았는지' 등을 토의해보면 더욱 효과있는 교육이 되겠죠?

 

 

 

 

조선왕실을 위한 싸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즉위로 조정에 등장했습니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서 국정을 이끌었으며, 안동김씨 세력 척결 및 당파를 초월한 인재를 등용했죠. 그리고 서원 철폐 및 비변사 폐지, 호포제 실시 등을 하며 양반들과 부딪혔는데요.

그러다 혈족 세력이 미미한 민자영을 고종의 비로 간택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국모가 된 민자영(명성왕후)가 국정에 관여 한 것인데요. 명성왕후가 국정을 관여한 후 조선의 대외정책은 개방정책으로 전환됩니다.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은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겠죠?

 

이들의 대립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더욱 심해집니다.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만든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의 차별로 인해 반란(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 기회를 활용해 대원군은 명성왕후를 국정에서 배제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이에 명성왕후는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하죠.

이후 명성왕후는 정권을 다시 잡았으며,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의 주동자로 몰려 청나라 땅으로 끌려가게 되는데요.

 

시간이 흘러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의 간섭을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명성왕후를 1895년 경복궁 건청궁 옥호루에서 일본 낭인이 시해(을미사변)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도 흥선대원군이 개입되어 있었죠.

 

 

 

 

이렇게 흥선대원군과 명성왕후는 조선 말기 국정운영을 주도하며 서로 권력을 쥐고 대립했습니다. 둘 다 자신의 입장에서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는데요.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자마자 세도 가문인 안동 김씨 세력을 축출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했지만 훗날 그 모습은 변질되어 자기 야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으며, 명성왕후는 고종의 국정 파트너로서 정세판단에 능했으며 위기가 닥쳐도 그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했지만, 나라 밖을 나가보지 못한 시대적 한계 때문에 세계 정세를 넓게 살피는 안목이 부족했다는 장,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로 인해 흥선대원군은 '개혁 정치가 또는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로, 명성왕후는 '망국의 왕비로서 나라를 망치게 한 장본인 또는 구국을 위해 몸을 바친 시대의 여걸'이라는 엇갈린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데요.

 

흥선대원군과 명성왕후에 대해 배운 후 학생들과 명성왕후와 흥선대원군의 평가에 대해 찬성, 반대로 편을 나누어 토론수업을 진행해도 좋겠죠?

 

 

 

 

이렇게 티처빌 한국사 연수 "장콩 선생과 함께하는 한국사 맞수열전"은 역사 속 맞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를 배우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도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 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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