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프란치스코

1015 2011. 3. 11. 16:57

[종교학자 오강남의 인류의 스승]

 

 

성 프란체스코(1181-1226)

 
 
 
청빈·무소유로 ‘참된 자유’ 보여준 성자
 
 
기사등록일 [2008년 11월 24일 16:45 월요일]

 

 

기도 중 내면의 목소리 듣고 고행 선언

나병환자-거지 돌보며 부자 후원 거부

교황·가난한 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

자연 사랑…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 추앙

 
성 프란체스코 초상화.


“주여,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주시옵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뿌리게 하시고,
상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그리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거룩하신 주님, 제가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게 하시고,
이해되기보다는 이해하게 하시고,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가 줌으로 받게 되고,
용서함으로 용서 받고,
우리 스스로에게 죽음으로 영원한 삶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라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기도를 쓴 성 프란체스코는 본명이 지오반니 베르나도네(Giovanni Bernadone)로서, 1181년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포목상으로 자수성가한 부자 아버지의 덕택으로 어려서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걱정 없이 자랐다.

 

그 당시 유럽에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것은 기사(騎士)들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이상의 여인을 그리며 지어 부르던 낭만적인 음유(吟遊) 시들이었다. 어린 프란체스코도 프랑스 음유 시인들의 시를 좋아하여, 그들의 시도 열심히 읽고 또 부자 아버지의 돈으로 화려하고 멋있는 프랑스식 옷을 사 입고 다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어린 프랑스인’이라는 뜻의 ‘프란체스코’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것이 결국 그가 태어날 때 받은 본명보다 더 유명해진 이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프란치스코’라 표기하기도 하고, 영어로는 ‘프란시스(Francis)’라 한다.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도 이 성인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프란체스코도 기사가 되고 싶었다. 이웃 도시국가인 페루지아 원정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어 1년간을 감옥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나폴리를 침공하는 전투에 참여했다.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에서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자기가 할 일이 군인으로 사람을 죽이는 전장의 기사가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도와줄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는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아시시 외곽 언덕 위 다 허물어져 가는 성 다미아노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입상이 그에게 친히 “프란체스코야,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보수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프란체스코는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교회 건물을 보수하는 일에 착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보수 공사비를 마련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프란체스코는 아버지 몰래 아버지 포목점에서 포목을 잔뜩 내다 팔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대노하면서 부자간의 연을 끊고 유산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프란체스코는 주교가 관장하는 재판에서 아버지의 돈을 되돌려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명령대로 돈뭉치를 건네고, 그 위에 자기의 화려했던 옷도 벗어 던지면서, 이제 ‘가난 양(孃)’과 결혼하여 고행자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프란체스코와 같이 놀던 친구들 중 몇 명도 그에게 합류했다. 처음에는 이들이 ‘신의 광대(Jongleurs de Dieu)’로 알려졌다. 그들은 광대가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삶이 지금보다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모든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권리를 추구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지만, 청빈과 무소유의 삶에서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프란체스코는 이런 태도와 생활 방식을 채택하기로 한 자기나 자기 친구들이 많은 사람들 눈에는 바보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기왕이면 하느님을 위해 참된 바보가 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거지들과 나병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돈 많은 부자나 추종자들이 자기를 후원하겠다고 제안해 와도, 그는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나병환자 수용소 옆 오두막에서 살았다. 모두 그를 정말로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했다.

 

프란체스코가 출가하고 3년이 지난 1210년, 그는 11명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수도회 창설 승인을 받기 위해 교황 인노첸티우스 3세를 알현하러 갔다. 남루한 행색을 하고 나타난 이들을 보고 교황이 처음에는 청원을 거절했다. 그러나 그 날 밤 교황의 꿈에, 어느 촌사람이 교회를 떠받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남루한 갈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새끼 끈으로 허리를 동여매고 나타났던 프란체스코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교황은 프란체스코의 수도회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야 한다는 단서를 내걸고 순회 설교 수도회로서의 창설을 허가했다. 수도회 창설로부터 10년 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상징이 된 거친 갈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의 숫자는 1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갈색 제복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고, 한국에도 서울 중구 정동에 ‘프란치스코회’에 가면 이런 수도사들을 볼 수 있다.

 

프란체스코의 갸륵한 뜻과 정열에 감동을 받고 그에게로 몰려온 사람들 중에는 한 동네에 살던 클라라(1194-1253)라는 소녀가 있었다. 프란체스코처럼 부유한 가정의 딸이었지만, 프란체스코의 열정적인 외침을 듣고 자기도 청빈과 정절과 순복의 삶을 살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프란체스코는 클라라를 일단 분도 수녀원으로 보내 그녀를 보호했다.

 

1212년 클라라는 자기 여동생 아그네스, 그리고 다른 몇 명의 여자들과 함께 프란체스코가 그 전에 보수한 성 다미아노 교회에서 그의 지도를 받으며 ‘프란체스코 빈자 클라라(The Franciscan Poor Clares)’ 수녀회를 창립했다. 프란체스코가 죽기까지 클라라는 프란체스코 주변에서 그를 위해 지극정성을 다했다. 클라라는 1255년 성인으로 추대되어 ‘성 클라라’로 알려져 있다.

 

클라라와 프란체스코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사랑의 감정이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이었을까, 혹은 천상의 사랑이었을까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둘 사이의 이 지고지순한 사랑은 둘이 다 하느님께 대해 함께 가지고 있던 절대적 사랑을 매개로 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프란체스코가 1224년 라베르나 산 위에서 단식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의 몸에 성흔(聖痕, stigmata)이 나타났다.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 때 양 손, 양 발, 옆구리 등 다섯 군데에 찔림을 받아 피를 흘리셨는데, 프란체스코의 몸에서도 똑 같은 곳에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성흔은 아물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에게 계속 심한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1226년 10월 3일 해질 무렵에 프란체스코는 동료 수도자들에게 마지막 유훈을 남기고 45세의 나이로 ‘죽음 자매’를 맞았다. 죽은 지 2년 뒤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諡聖)되고, 성 조르지오 성당에 묻혔던 그의 유해는 1230년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

 

프란체스코가 청빈을 강조하고 스스로 실천했지만 결코 ‘음울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도 행복을 추구했다. 단 그 행복을 찾는데 보통 삶과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사물을 얻는 데서 즐거움을 얻으려 했지만 프란체스코는 우리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 자유로워져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모든 것을 다 즐길 수 있을 것임이라.” 하는 식이었다.

 

프란체스코는 한 때 불신자들을 개종시키겠다고 성지로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여행에서 이슬람교도에게 사로잡혀 술탄 앞에까지 끌려갔다. 프란체스코는 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려 했지만,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대신 프란체스코에게 후한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물론 그는 그 선물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프란체스코가 처형되지 않고 이렇게 대접까지 받으며 무사히 석방된 것은 그가 너무나 유쾌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프란체스코 평전을 쓴 체스터튼에 의하면 프란체스코의 특징은 ‘교황에서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자기 궁전에 좌정하고 있는 시리아의 술탄에서부터 숲에서 기어 나온 누더기 강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불타는 듯한 갈색 눈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그가 정말로 세상에서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라고 했다. 계급과 명예가 중시되던 중세 시대에 사람들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거나 가치 있다 없다로 차별하는 일이 없이 “보통 사람들을 모두 왕처럼 취급했다.”

 

프란체스코는 사실 사람들만 사랑한 것이 아니다. 자연도 함께 사랑했다. 막연히 자연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꽃 혹은 동물을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치 친동생을 대하듯 당나귀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여동생에게 말하듯 참새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그가 행한 기적들 중에는 새소리로 교향곡을 연주하게 했다든가 이리를 길들였다는 것 등이 있다.

 

프란체스코의 사랑은 사람이나 동식물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말년에 눈이 멀 지경에 이르러 자원해서 자기 눈을 뜨거운 송곳으로 지지게 했는데, ‘불 형제’를 초청하여 그 일을 하게 했다고 한다. 달 자매, 해 형제, 물 자매 등을 노래했고, 그의 노래는 아직도 이탈리아 어린이들이 부르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자연계와의 완전한 동질성을 느꼈던 셈이다. 사사무애라고 할까. 아무튼 이런 사실들을 감안해서, 그는 1939년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것 이외에,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프란체스코는 ‘나의 집을 보수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그전까지 권력을 축적하고 지반을 굳히는 데 여념이 없던 교회를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세상에 사랑을 나누어주는 교회로 바꾸는 데 혼신을 다한 셈이다. 이런 혁명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미움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성자로 칭송받고 있는 그는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로부터도 모두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성자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975호 [2008년 11월 24일]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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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치스코

1015 2010. 11. 25. 20:03

* 가난의 영성 *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 때문에 분개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 아무 소유도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위에서 상처 받고 화를 내는 것은
좋은 대우와 특별한 배려와 인정, 존경과 주목 등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됩니다.

이 모두를 마치 자기 소유 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과 행동, 태도 등으로 나에게 존경을 표하고,
나의 내적 외적 능력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인격 침해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자기 가치를 몰라준다고 화를 내고 인격 손상이며 치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격적 모욕과 멸시를 잊어버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향해 공격적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상처 받은 감정은 진리를 바로 볼 수 없을 만큼 흥분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반응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 인 것을 잊어버리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모든 좋은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의 것은 악습과 죄악뿐이며,
또한 내 의지를 나의 것으로 하지않고 하느님의 것으로 즉,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먼저 찾으시어

세상에서 가장 큰 불의를 달게 받으시고 오해와 멸시를 받고
당신이 벗이라 부르며 사랑하신 제자로부터 배반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자아포기, 존경과 인정받을 권리의 포기 같은
영적가난(geistliche Armut)을 통하여 죄를 이기셨습니다.

순명이라는 가난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고 당신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죄만 못마땅해 하고 죄인을 사랑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폭 넓은 가난(alles umfassende Armut im Geiste)은

아무 소유 없이 사는 삶(das Leben ohne Eigentums)의
토양에서 솟아올라 활짝 피어납니다.



“물질에서의 가난”(Arm an Erdengut sein)은 가난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기도와 신심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빰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
어떻게든 극복하는 것이 과제가 아니라

오히려 부당한 그 일을 조용하고도 평온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 가난에서 우러나오는 힘입니다.

가난은 우리의 자애심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의,
소유욕과 권리 주장에서 파생되는 모든 영역에서의 포기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지향만이라도 인정받고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사랑받지 못하거나 다른 이들의 관심 밖에 있다고 느끼면

즉시 내적 고요와 영혼의 평화를 잃어버립니다.
그는 이렇게 철저한 내적 가난을 견디어 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의 빈손과 빈 마음을 자기변명과
자기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고발하는 일로 채우려 합니다.

그는 이웃과의 나눔을 거부하고 공동체에서 유리되어
혼자만의 고독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려 합니다.



자신의 어떤 구상과 계획을 꼭 움켜쥐고 포기하려 들지 않으며
선입견을 바꾸는 법이 없습니다.

그의 굳고 얼어붙은 마음은 처하는 상황마다 다를 수 있는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여

부자연스럽고 융통성이 없으며 모든 것이 자기 자신에게 국한 되어 있고
자기중심적 이어서 하느님께로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참으로 가난한 이는 어떤 일에도
즉시 발끈하는 반응을 보이거나 흥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가난한 이는 어떤 일이 계획과 다르게 풀려 가더라도
끝없이 불평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가지기 보다는 앞을 바라보며
다가올 것을 기다리고, 달라진 상황에 자신을 적응 시킬 줄 압니다.

참 가난을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뜻만 이루어지도록 자기의 뜻은 조용히 접어둡니다.

자기의 권리 주장이 하느님의 거룩한 활동에 방해되지 않게 합니다.



어떤 불행이 닥치거나 무거운 십자가가 주어지면
이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찬미하며

이를 통해 자기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믿습니다.

진정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온갖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몸과 마음에 평화를 간직하는 사람들입니다. 
 
-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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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치스코

1015 2010. 11. 25. 19:30

 

5. 하느님의 집을 재건하기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로부터 어떤 확실한 응답을 희망하며 계속 반복해서 이런 기도를 하곤 했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람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기도)

 

이 기도는 아마도 그가 23세 때인 1205년과 1206년 사이의 것으로 성 프란치스코에 대하여 기술된 첫 번째 말들이다. 그것들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 하는 기도이며 그의 여생동안 내내 계속 쓰게 될 말이다. 그러한 그의 첫 말들은 앞으로 오게 될 모든 것에 대한 분위기와 방향을 잡아주는 기도인데, 항상 그의 첫 번째 관심은 기도의 정신, 기도의 신심이 될 것이며,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소멸시키는 어떤 인간의 행동도 나무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의 글에 나타난 “신심”이란 말은 오늘날 자주 연상되는 경건한 태도나 행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데서 오는 열심함과 명랑함을 의미한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그 말씀을 실천하기까진 쉴 수가 없다. 그의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는 빛; 믿음, 희망 사랑; 그가 기도하며 바라는 지각과 인식은 그가 항상 하느님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기도는 지고하신 분이 자신에 대해 주도권을 취하시기를 바라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도적이고 궁정식의 찬미가로 시작한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 프란치스코의 기도는 항상 찬미가로 시작되고 끝난다. 그의 기도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인정하는 찬양의 기도인데, 가장 높으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한다.

 

이런 보잘것없음이나 작음은 신학적인 진술이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 심리적인 진술이 아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경멸하거나 천하게 여기지 않으며 전혀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을 보고 있으며 그에게 사실인 것을 단순히 진술할 뿐이다: 즉,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되려하는 모든 것과 그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물들일 것이다.

 

필시 그가 위에 언급된 기도나 비슷한 어떤 기도를 하고 있었을 때 또 다른 전환이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일어났다. 그가 성 다이마노 성당에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상 앞에서 기도하는 동안에 한 부드럽고 연민에 가득 찬 음성이 그에게: “프란치스코야, 너도 나의 집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가서 나의 집을 수리해 다오.” 프란치스코는 경외심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응답하였다. “주님, 기꺼이 하오리다.”

 

“이 때부터 그의 마음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생각에 상처를 입어 녹아 내렸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늘 주 예수의 성흔을 마음에 지고 다녔다.”(세 동료 5, 13-14) 이러한 말들은 마치 성배 전설을 거꾸로 말하는 기사도와 사랑의 내용들이다. 성배를 찾으러 신나게 떠나가는 젊은 용사 대신에 거룩한 성배가 그에게로 오심으로 해서 남은 생애를 그는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데 써야 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것이 프란치스코 자신의 양심의 투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는데, 즉, 죄책감을 표현하고 아버지의 탐욕과 폭력에 대한 보상의 필요를 드러낸다고 해석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욕과 폭력이 자신 안에도 있음을 프란치스코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식의 설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설명이 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프란치스코에게서 정지하고 나머지 이야기를 듣는 것을 거절 하거나, 혹은 하느님께서 자아를 통하여 그리고 자아의 심연으로부터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성배가 어떤 사람에게 오거나, 하느님께서 진실로 말씀하실 때, 그것은 단지 자아가 자아자체에게 말하는 것만이 아니며,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말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 다미아노의 작은 성당에서 프란치스코에게 나타난 계시도 마찬가지이다. 프란치스코가 재건할 집은 처음에 프란치스코가 단순하게 믿듯이, 단지 그 허물어지는 경당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더 큰집, 즉 교회 자체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에게 나타난 가장 중요한 계시, 하느님의 집을 복원시키라는 “공현”은 바로 하느님이 인간이시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프란치스코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인간이며 고통당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와 첫 형제들이 교회에 보여주고 되살린 것은 바로 그 그리스도이시다.

 

프란치스코가 그의 눈으로 본 그 시대에 하느님은 백성들로부터 비잔틴식 모자이크의 황금빛 내세 속으로 격리되었다. 엄격하고 규격화되고 먼 곳에 계신 분으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다시 육화하신다. 프란치스코는 주님과 주님의 힘을 구하고 항상 주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기도를 시편작가와 함께 기도한다. 그리고 그에게 보여진 얼굴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얼굴이다. 그분은 온화하고 부서지기 쉬운 분이시다. 그분은 그레치오 산 암자에게 거행된 성탄 미사 때에 프란치스코에게 아기 예수로 나타나신다. 그분은 입술이 부드러워져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하는 비잔틴양식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이시다. 그분은 그분 자신의 상처로 프란치스코의 육신을 관통하신 연인이다. 그 분은 프란치스코에게 인간적인 응답을 불러일으키시는 인간적인 구세주이시며, 프란치스코는 고통받고 살과 피가 되신 하느님께 자신의 육신의 상처로, 그의 주님과 일치되는 부분인 육체적 고행으로 응답한다. 견습기사나 종처럼 프란치스코는 그의 스승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응답은 마음 전체와 종교의 양상을 변화시키는데, 그것은 프란치스코 운동에 따른 예술 분야에서 반영된다. 하느님은 더 이상 이콘의 엄격한 그리스도가 아니다. 이제 그분은 인간의 모형들로부터 그려진 육체의 색깔로 그려지며, 그래서 르네상스가 가능하다.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집을 재건한 길은 하느님께서 신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는 육화되신 하느님의 말씀에 전적인 응답을 하며 살아감으로써 이러한 일을 수행한다.

이리하여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다시 지상으로 하느님을 데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다음과 같이 일어났다: 아시시의 주교 앞에서 프란치스코는 피에뜨로 베르나르도네에게 그의 모든 소유물을 되돌려주고 모여든 아시시의 시민들 앞에서 다음처럼 선언함으로써 지상의 아버지를 하늘의 아버지와 바꾼다. 지금부터 나는 “베드로 베르나르도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는 계속 되는데, “프란치스코는 기쁨의 열정에 휩싸인 채 성 다미아노 성당으로 돌아와서, 은수자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다시 시내로 들어가, 그는 시내 한 복판과 마음을 누비고 다니며 하느님을 흔연한 마음으로 높이 찬미하였다. 이렇게 주님의 찬미를 마치고 난 다음, 그는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기 위하여 구걸을 시작하였다: ‘제게 돌 하나를 주는 사람은 그 만큼의 갚음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돌 둘을 주는 사람은 두 배의 갚음을 받을 것이며, 돌 셋은 또 그 만큼의 갚음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무수한 말들이 그의 뜨거워진 전신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하느님께서 배움이 부족한 단순한 사람이라서 그를 뽑으셨다. 그는 모든 일에서 인간의 지혜로부터 나오는 유식한 말을 쓰지 않았고, 오히려 단순하게 자신을 나타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기며 업신여겼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를 보며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세 동료 7, 21)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응답은 그런 식이었으며, 그는 다른 시대 다른 때에 살았던 사람이다.

 

우리가 성 프란치스코를 기본적으로 중세 지향적인 마음 자세로 따른다면, 우리는 그가 그의 삶에서 했던 것을 우리의 삶 안에서 실행하지 못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공의회 이후의 사람이었으며, 제 4차 라테란 공의회의 교령을 실천에 옮겼고 구체화 시켰는데, 그 공의회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개혁 공의회들 중 하나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복음이 진실하다는 소리를 냈는데, 바로 그 점이 교회 안의 모든 쇄신이 기본적으로 의미하는 바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하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현재적인 육화를 재발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 속으로 고통스러운 여행을 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그의 시대에 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의 시대 속에서 주님께 귀 기울이는 것보다 프란치스코를 그대로 모방하려고만 한다면 이것은 시대를 멈추게 하는 것이고 다시한번 폐허가 되어가는 하느님의 집을 재건하는 작업으로부터 우리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 된다.

 

하느님의 집을 재건할 돌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귀 기울이고 구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하느님의 집은 무엇일까? 우리가 단지 과거만을 보고 있지 않고 우리 주위와 우리 속을 바라봄으로써 이 질문들에 답하려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와 자리에서 살기 시작하는 것이며, 지금 이곳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한다. 그것은 명확하고 틀림이 없다. 그것은 우리 세계 속에서 살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인 것이다. 

 

출처 : 평화의 사도들
글쓴이 : stellak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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