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새벽

열정의 최강사 2016. 2. 14. 21:58

누구에게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들은 우리들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에겐 벗어난 것 처럼 덮을 수 있지만, 각자의 안에서 평생동안 남겨진 문신같은 경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제주도에게는 4.3사건 바로 그런 일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조금 더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찾다가 독서 모임의 리더분의 추천으로 소설 "불타는 섬"을 만났습니다. 




"불타는 섬" 링크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6608051



때는 1980년대 초반, 주인공 강철승은 아버지가 해방직후 공산당원에 의해 순직 경찰관의 아들입니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진행되는 국가 유공자들을 위한 추념식에 방문하러 왔다가 어머님으로 올해 벌촛날은 꼭 오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마지못해 벌촛날 다시 찾은 날, 어머니는 아버지 묘의 벌초가 끝나자 다른 묘 하나를 더 다듬자고 말씀하십니다. 별말 없이 벌초를 마치고 내려와 어머니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술취한 옛날 학교 선배와 가벼운 말다툼 중에 이상한 얘기를 듣습니다. 


"... 남의 집 묘 벌초해주며 누구 묘인지는 알고 해주냐?" p 38


알만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 묘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공산당원의 형님의 묘라는 것을 알고는 혼란에 빠지고 결국 어머니에게 그 사연을 묻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어머니는 생부에 관한 비밀을 편지로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즉 자신은 순직 경찰관이 아니라 공산당원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혼란스럽기는 해도 어머니께서 그것을 이제사 말씀하시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학업을 잠시 중단한 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을 사지로 몰아넣은 4.3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재향경우회 회장, 마을 훈장님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친구들을 통해서 주인공은 4.3 사건에 대해서 점점 다양한 시각을 갖고 나름의 정리를 이어나갑니다.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제주도 4.3 사건은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당시 미군정에서 진행하는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여 시작된 사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장봉기가 이어지고 산사람이라 불리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장기간에 걸친 대치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상황속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은 수탈과 학살이라는 방법으로 불안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제주 4.3 사건은 짧은 필력으로 언급하기는 너무나 어렵고 오래된 상처라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는 그 시대를 살아 냈거나 어렸을 때 경험한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그 여파가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작가님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역사적 시각을 서술한다는 점입니다. 재향경우회 회장의 입을 빌어 공식적인 기록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면, 마을 훈장님을 통해서는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다른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입장을 전해들은 주인공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그 사건의 영향을 받고 있고 좀 더 심정적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과거 신문들의 기사 내용을 정리해준 부분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했던 시대가 있었음을 알게 해주어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둘째는 작가님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통해서 전달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가져야할 태도라던가 아직 그 영향이 잔존하는 상태의 삶이 어떤가를 보여주는 부분들이 구체적인 설명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들이 겪는 생활을 통해서도 보여지는 것입니다. 


철승은 자기모멸과 고독감의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무는 고심을 거듭했다. 과거사에 얽혀드는 무력한 허탈감에서 벗어나 마음을 추스르고 하루 빨리 새로운 출발을 도모해야만 했다. 비운의 과거를 두고 절망하지 않으려면 미래의 새로운 삶을 열어가야 한다는 결심을 다지는 것이었다. p 49


한 마을 안에서 자자분한 석공 일을 하던 자기가 어쩌다가 실수하여 다친 다리라서 어디 가서 보상받을 수도 없고 언제 이것이 나아서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들의 장래 문제는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p 110


철승의 상황은 마주한 사건을 어떻게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고, 학원생 황대청 부친의 상황은 폭력을 사용해서 결과적으로 나타난 상황의 절박감을 빗대어 말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결국은 적극적으로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아버지가 서청단 출신의 경찰이었음을 밝히지는 않지만 그 굴레를 자신과 같이 그 사건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소설의 마지막에 함께 근무하던 학창시절 동기의 죽음을 자신의 무리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고 느끼면 자책하는 장면은 납득이 되면서 무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현재의 제주도민들이 현재 제주도에 토박이로 자라고 있는 세대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빚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4.3사건에 대해 알기위해 작품내내 보여주었던 적극성과는 달리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수렴하려는 태도는 일관성이 어긋나는 전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 "불타는 섬"은 제주도에 대해서 4.3사건에 대해서 알게하고,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상처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물 것입니다. 그러나 상처가 있던 자리가 이전과 같지는 않습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덮어질 것이고 그 위에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지겠지만 가끔씩 마음이 동요할 때 삐죽거리며 나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주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마치 상처가 아물기 전에 움직여서 계속 벌어지는 것 처럼, 지속적으로 급변하는 사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수세기동안 토론하고 투쟁하며 얻은 자유와 경제 체제를 우리는 6~70년만에 따라잡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상처의 가해자들이 공생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아프다고 병원에 누워있을 수만 없다면 나을 때까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덧. 한국 현대사 정리 링크

더덧. 책 속에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제주어로 나와서 현장감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