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삼촌BK

열정의 최강사 2020. 3. 3. 22:58

1.

꼰대라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부터 특별히 사용해 본 적은 없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학교 밖 생활에 더 집중하는 친구들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또는 그 나이 대의 남자 어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로 생각하고 있었다. 


은어로 시작된 만큼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으나, 주름이 많다는 의미에서 '번데기'의 경상, 전라 방언인 꼰데기/꼰디기에서 왔다는 설과, 나이 든 세대의 상징인 곰방대가 축약되어 생겨났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 출처 : 나무위키 "꼰대" 링크 -


2. 

요즘에 꼰대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예전에 꼰대는 누군가를 지정해서 부르는 대명사라고 한다면, 최근에 들리는 꼰대는 하나의 현상처럼 느껴진다. 


내가 어렸을 때,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에게 좋은 말을 하지만, 나의 현재의 즐거움을 알아주지 못하는 답답한 어른" 정도의 느낌이었다.

최근에 조카들과 얘기하거나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는 꼰대는 

"손아랫 사람을 포함해서 지인들과 말은 잘 통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주장만 강력하게 세우는 사람" 

정도의 느낌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거의 꼰대는 아버지, 선생님 정도를 낮춰 부르는 말이었지만, 

지금의 꼰대는 나이에 상관없이 싫은 데 말까지 안통하는 모든 사람이다. 

후배에게 역관광 당하는 선배들이 만든 "어린 꼰대"라는 말도 있겠는가. 


3.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은 각자가 소통에 달인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으니 영혼없는 대꾸에도 "영혼없는" 보다는 "대꾸"에 만족감을 갖는다. 

모르지 않을텐데 말이다. 


여러가지 진단 질문을 돌릴 것 없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반응이 늘 똑같다면 내가 꼰대는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실 꼰대는 똑같은 반응이 무엇인지도 모를 확률이 높다. 

꼰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꼰대의 패턴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답변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꼰대의 발언에 대한 답변에 변화를 주는 능력을 처세술, 사회생활이라고 한다. 


4. 

꼰대에게 영혼없는 리액션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꼰대의 뻔한 리액션과 기대감의 실종이다. 


뻔한 리액션이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라떼는 말이야"이다. 

꼰대들은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야, 나는 말이야~" 말로 배틀을 시작한다. 

누군가 힘든 얘기를 하면 내가 더 힘들고, 

누군가 좋은 걸 샀다고 하면, 나는 더 좋은 걸 알고 있고, 

누군가 성공했다고 하면, 운이 좋다고 한다. 


꼰대들은 모든 상황을 자기 중심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정작 말을 시작한 사람은 주도권을 넘기고 쩌리기 되기 십상이다. 

그들이 특별히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경험이 지금 저 사람의 경험보다는 더 강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꼰대의 경험은 직접한 것이고, 저 사람의 경험은 간접적이기 때문이다. 


5. 

꼰대와 소통을 할 때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 


소통할 때, 바탕에 깔려있는 정서는 상대방의 변화이다. 

열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바꾸는 그런 변화는 아니더라도 

내 말을 듣는 사람이 내게 일어난 소중한 경험을 기억하는 정도의 변화이다. 


꼰대에게는 그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미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에 그는 많은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히 유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런 꼰대의 생각은 강하고 완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꼰대다. 


6. 

꼰대의 뻔한 리액션과 사라진 기대감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은 영혼 없는 대꾸를 한다. 

심지어는 소통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꼰대는 어떻게 해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말 없이 자기만 행복하면 된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처럼 "네 말이 맞다. 네 말이 맞다. 그말도 맞구나." 정신이다. 


7. 

시대는 항상 변한다. 

내가 어렸을 때, 이상적으로 그렸던 사회에 지금 살고 있다면, 

지금 어린 시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가고 있다. 


자신들의 이상향을 그려온 사람들 중에 

나이가 가까운 사람들이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다른 이상 사회를 그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의 이상 사회에 동참을 권유한 들 쉽게 수용할 수 없다. 


나에게 아름다운 사회를 인정 못하는 사람들에게 동참을 강요하기 보다

그 시간에 나의 세계에서 그들이 부러워할 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 

이미 내가 즐겁고 행복하니 좋고 

함께 놀아주면 더 좋은 일이다. 


8. 

타인의 말에 대해서 

나의 상황으로 전환하고, 나의 생각만을 주장한다면 

적어도 소통에 있어서는 꼰대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방식의 소통이 전략적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추천할 수 없는 소통 방식이다. 


9. 

한 때, 아줌마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회자되었던 적이 있다. 

생활력에서 비롯된 아줌마의 거친 행동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줌마의 생활력이라는 것은 가정과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지만, 

그 상황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충돌이었다. 


꼰대도 마찬가지이다. 

10년 월급을 모아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있었던 세대와

20년 월급을 모아도 대출을 받아야 전세에 살 수 있는 세대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회적 상황과 성장기 경험이 다른 두 세대가 소통을 한다는 것은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름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야 공감과 소통이 가능하다. 


10. 

꼰대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꼰대로 보는 사람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 다음은 상황, 생활 방식, 사고 방식 등 많은 것들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진심에서 피어나는 소통의 단서가 나올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남은 삶에 나보다 어린 친구가 생긴다면 해볼만 하지 않은가? 

이미 충분히 삶의 한 바퀴를 돌아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