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를 찾아서

여행고수 2019. 1. 7. 21:39




꿈같은 그림이 있는 모래섬-사도

 2007.07


    

화양면 장등해수욕장 위로 난 해안도로를 가로지르는 언덕 밭에는 양파를 수확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탐스럽게 모아놓은 하얀 양파더미와 빨간 망사에 담긴 양파포대가 멀리서 보기에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색감있는 그림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좋은 자료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 양해를 구하고 부지런히 양파를 거두어들이는 할머니들의 사진을 찍다보니, 점심인지 세참인지 머리에 음식을 잔뜩 지고 온 아낙들이 일꾼들을 불러 모은다.

 

다시 차를 달려 공정리에 닿으니 멀리 우리를 싣고 갈 배가 하얀 물살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바다는 잔뜩 안개가 끼어 멀리 있는 작은 섬은 분간조차 안 되었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화창한 봄날이 아니라도 좋다. 안개 낀 바다는 또 그만한 운치가 있지 않은가? 배가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물위로 막 상쾡이가 보이는가 싶더니 영영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상쾡이가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기쁜 일이다. 10년 전의 큰 재앙을 맞은 해양생태계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반증인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배는 추도에 먼저 닿았다. 추도에는 현재 4가구 5명의 주민이 살고있다. 추도는 공룡발자국과 퇴적단층의 보고이자, 남방문화의 상징인 초분이 아직도 있는 곳이다. 초분이란 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을 짚을 덮어 가묘를 쓰는 남방문화권의 독특한 장묘방식이라 한다. 안도의 선사유적에서 발굴된 동일한 유물이 중국의 해안지역과 일본의 큐슈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보면 오래전 여수에 정착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남방계 사람들이었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여수는 신석기청동기시대부터 강력한 권력을 가진 독자적인 해양세력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수에서 발견된 세계최대의 고인돌(870)은 물론 권력을 나타내는 비파형청동검, 경제력을 상징하는 옥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여수는 2,000년 전부터 고대해상교통의 요지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주요 교역로였다. 거문도 이금포 해수욕장에서 중국 한나라화폐인 오수전이 대량발견된 것과 일본 엔닌스님의 대륙기행문에 수록된 안도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견훤의 후백제 초기세력이 여수의 김총, 순천의 박영규였으며, 소호동 장도의 고려가요 동동에서도 여수가 해양문화의 거점이라는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가묘풍습은 화양면 일부지역에도 아직 남아있다. 실제로 돌아가신 나의 장모님도 몇 년을 가묘를 썼다가 매장을 했다.

 

 

추도의 또 하나의 매력은 납작한 돌로 쌓아올린 돌담이다.

납작한 돌을 층층이 쌓아올려서 어떤 큰바람이나 파도에도 어지간해서는 쓸릴 일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 돌담들은 오랜 세월을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왔다. 마을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으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좌측은 용궁가는 길이라고 불리는데, 고대유적처럼 밖으로 노출된 퇴적층이 웅장하다. 바닷가 퇴적층 돌에서 공룡의 발자국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퇴적층은 6~7천만년 전의 것부터 지구의 마지막 폭발이 멈춘 3~4천만년 전의 응고된 퇴적층까지를 교과서적으로 잘 보여준다. 발이 닿지 않는 뒤편은 소형 배로 돌면서 관찰하면 더욱 생생한 퇴적층을 만날 수 있다.

    


 

 

섬의 우측 입구에는 야외공룡회의장으로 불리는 큰 계단식 암석층이 펼쳐진다. 두께 약20-30되는 암석 한층 당 약 10만년의 세월을 담겨져 있다니 참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공룡회의장은 사람에 따라 공룡결혼식장, 공룡극장등 다양하게 이름을 지어볼 수 있다. 공룡극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공룡들이 서열에 따라 이곳에 층층이 앉아서 건너편 산의 화산폭발을 감상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했다. 시루떡 같은 구조의 단층 곳곳에는 특이한 황색(호박시루떡), 백색(백설기)퇴적층도 볼 수 있다. 바닷가 암벽언덕에는 다년초인 야생국화가 자생하고 있고, 육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자생식물들이 많이 자란다. 단층을 돌아서 가는 길에 작은 굴처럼 파인 암벽 속에는 무속인들이나 어부들이 기도처로 이용한 듯, 타다가 만 양초들이 녹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뱃사람들의 안전을 비는 토속의식이 치러졌던 흔적임이 분명해 보였다.

 


    


 

바닷가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퇴적층위로는 넓은 마당들이 펼쳐진다. 용암이 흘러 반죽상태일 때 그 위로 이물질이 떨어져 동그란 구멍을 송송 만들어 놓은 결핵체와 층리(수중에서 퇴적되어 형성되는 퇴적암), 철광석의 슬러지를 모아놓은 듯한 퇴적층, 용암이 굳은 자리에 다른 용암이 흘러가면서 형성한 계곡 안쪽으로 석회암 질이 물에 녹고 있는 현상등 다양한 모양이 지각변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퇴적층박물관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바닷가가 암벽이 끝나는 곳에 유명한 84m짜리 공룡보행렬이 있다. 보행렬을 밟으며 달리듯이 걸어보면 나도 금방 공룡이 된 듯한 기분이 된다. 매년 영등시가 되면 보행렬이 끝나는 그 곳에서부터 사도까지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일컫는 물 갈라짐 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는 많은 사람들이 사도에 들어와서 사도와추도로 이어지는 갈라진 바다길에서 갯것을 한다. 한 양동이씩 잡은 해삼으로 물 회를 만들어 먹으면 그 순간만은 뭍으로 나갈 생각은 온데 간데 없어지기 마련이다.

   

 

다시 배를 타고 사도에 도착하면 섬 입구에 큰 공룡 두 마리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티라노 사우르스라고 하는 육식공룡의 모형이 이 곳이 공룡섬 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육식공룡 중에 가장 사나웠다는 공룡의 왕 티라노 사우르스 사이를 통과해야 비로소 사도에 입도를 할 수 있다. 마을 뒤편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언덕을 돌아 섬 뒤편의 암석층을 찾았다. 항상 물이 차있기 때문에 평소 때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 곳이 오늘만은 우리에게 길을 열러주었다. 화산 폭발 시 날아 온 화산석으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돌들이 밭을 이루는 암전(돌밭)의 바위들은 어지간한 소형자동차만한 크기들이 즐비하다. 태풍이 불면 가까운 인가에는 이 큰 바위들이 큰물에 휩쓸려 위치를 바꾸는 돌 구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한다.

 

 

암전을 지나 미끄러운 바위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니 추도에서 본 쇳물 슬러지 같은 모양의 결핵체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5천만년 전의 바닷가의 물결상태가 바위에 그려진 희귀한 연흔(물결무늬화석)도 발견할 수 있다. 매우 귀중한 화석으로 보물 중에 보물의 하나다.

 

 

갯바위 가로는 물이 나자 미역, , 우뭇가사리등은 물론 금보, 부채손, 성게 고둥 등이 지천으로 널린다. 갯가의 황금어장이다. 사도에는 임진왜란 당시 처음으로 사람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해조류 등 먹거리가 풍부한 사도가 전란을 피해 유랑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안식처가 되었던 것이다.

    


 

 

깍아지른 절벽의 아래에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바로 탄생굴이다. 공룡이 탄생하는 굴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진 이 굴은 여성의 성기와 같다고 하여 음굴이라고도 한다. 굴속에는 작고 둥그런 하얀바위가 음핵처럼 박혀있는데, 이 돌이 물이 들고 남에 따라 안팎으로 움직인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어떤 이는 약간 거리를 두고 탄생굴(음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왠지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보통 남근석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성을 상징하는 굴은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사도의 탄생굴(음굴)은 변변한 논밭조차 없는 작은 모래섬 사도에 얼마 전까지도 80가구가 살게 한 다산과 풍요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억만년세월 동안 생명탄생의 신비를 간직한 듯한 탄생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탄생굴 근처에는 외부사람은 물론 여성이 가까이 가는 것은 금기시 한다고 한다.

 

 

퇴적층을 돌아 나와서 마을을 두르고 있는 얕은 뒷산에 올랐다. 깍아지는 벼랑위로 조그만 오솔길 같은 산책로로 올라서자 그림 같은 주변의 바다와 다도해의 풍광이 한 눈에 펼쳐진다. 머리를 스치고 가슴을 돌아나가는 맑은 바람이 감미로운 음악처럼 좋다. 해송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의 운치에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산책로다. 돌을 깔아 인공적으로 만든 길이라 외딴섬의 오솔길 같은 자연미는 없지만, 제법 여러 가지 풀이 자라고 군데군데 야생화도 보인다. 뿌리가 토란 같아서 수분을 머금는 기능이 뛰어나며 겨울에 꽃을 피우는 털모이라는 섬의 자생식물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해안절벽 능선을 따라 기왕 길을 낸 바에야 산책로를 자생야생화 꽃길로 가꾸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로의 벤치에서 건너편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이 우주발사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고흥 외나라도다. 이 곳에서 약10거리로 우주선 발사 시에 가장 좋은 전망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다. 몇 년 후면 현실로 나타나는 과거와 미래의 역사적인 조우, 태고의 신비가 존재하는 공룡과 첨단과학의 총아 우주선과의 만남, 사도의 공룡 허리에 올라앉아 나로도의 우주선발사 현장을 바라보는 그 때의 감동을 상상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될 것 같다.

 

 

 

사도와 중도를 잇는 교각을 지나면 여기에 꼭 콘크리트 교각을 놓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하는 불만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자연과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성급한 개발심리와 공사를 위한 공사를 추진한 욕심이 낳은 사도의 흉물 중에 흉물이다. 안타까운 생각을 뒤로 하고 좀 더 걸어 들어가면 전국 유일의 양면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조개가 부서진 조개모래로도 유명한 양면해수욕장은 한 여름 사도를 찾는 해수욕객들에게 최고의 인기다. 해수욕장 주변의 갯바위에서는 물이 나면 해삼, 전복 등 자연산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근거리에 장사도가 보이는 마지막 섬이 시루섬(증도)이다. 시루섬은 하나의 큰 암벽으로 이루어진 섬으로 다양한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멀리서 보면 두개의 얼굴바위가 보이다가 가까이가면 큰 얼굴 하나로 줄어든다. 거북바위 옆을 올라 시루섬 암벽허리를 오르면 파도가 하얗게 일어나는 넓은 바다가 한 눈에 펼쳐지며, 야외음악당 같은 동굴바위(높이 20m), 이순신 장군이 앉아 쉬었다는 장군바위, 어미고래와 새끼고래 모양을 한 고래바위 등의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의 용두암과 연결된다는 거대한 용미암도 있다.

 

 

시루섬의 중턱에는 항상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젖샘바위가 있어서 옛날부터 사도의 여인들이 출산 후 젖이 부족하면 젖샘의 물을 먹고 모유를 생산했다는 전설이 있다. 사도에는 또 유방바위가 있다고 전하는데, 10년전 한 사진작가에 의해 촬영되었다는 유방바위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도 아는 사람이 없다. 유방바위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사도는 젖샘과 유방과 음굴이 존재하는 여성의 섬, 바로 생산과 다산의 원천인 어머니의 섬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이다. 공룡발자국 외에 발달된 퇴적 단층과 생흔화석, 암맥 등을 볼 때 사도는 과거에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는 건조한 기후로 거대한 호수의 가장자리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유력하다.

 


    

 

현재는 약 20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서면 손보기도 어려운 폐가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오래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평균나이 70이 훨씬 넘는 이 마을에서 나이 60이면 젊은 편에 속한다. 얼마 전에 45살 먹은 청년이 들어왔는데 최연소 주민이란다. 사도는 농토랄 것도 없는 작은 섬이지만 유난히 마늘밭이 많은데 육지에서도 특히 이 섬의 마늘을 알아준다고 한다. 사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마을에 가축이 없다는 것이다. 연로하신 노인들만 사시다보니 가축을 먹이기도 벅찼을 것이기도 하지만, 좁은 섬을 둘러 지천으로 나는 해조류들이 가축의 배설물 등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길들까지 어울리지도 않는 보도블럭을 깔아놓은 것만 제외한다면, 사도는 태고의 역사와 섬마을 돌담의 정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사도는 여느 섬들과 달리 가장 높은 곳이 해발 40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표고가 낮고 모래가 많다. 야자수 나무도 잘 자란다. 그래서 마치 태평양의 어떤 산호섬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휴양지로서 이 만한 조건을 갖춘 곳이 있을까? 최근에 마을에 전통한옥이 두 채가 지어졌다. 외부는 전통한옥이고 내부는 펜션형으로 설계되어 방마다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 시원한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낮잠이라도 한 숨 푹 자고 싶어진다. 억만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상상하고, 돌담길을 걸으며 외딴섬의 한가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섬-사도, 사도는 자녀들과 부모가 함께 꿈을 꾸고 휴식을 즐기는 가족휴양지로서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