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문명이야기

여행고수 2019. 1. 12. 12:13

대마도 아리랑 마쯔리(축제)








 

대마도, 에도를 향한 조선통신사의 첫 관문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추진

 

대마도 아리랑축제는 에도시대때 약 200년간(1607~1811) 12회에 걸쳐 대마도에서 에도까지 조선통신사행렬을 재현한 대마도 최대축제입니다.

 

아리랑축제는 1978년부터 이즈하라항 축제의 프로그램에 포함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매년 8월 첫째주 토~일요일 이틀에 걸쳐서 진행됩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전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몇 번 왕래했다가 왜란직후 외교관계가 단절되며 끊겼습니다. 10년후 160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국교재개를 수차례 요구해오자, 조선은 포로교환 및 정보수집을 명분으로 사명당을 비롯한 사절단을 3회에 걸쳐 다시 파견합니다. 181112번의 통신사를 마지막으로 파견이 막을 내립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하여 일본의 수도 에도(江戸)까지 왕복으로 약 3,000km를 이동하는 장도였습니다. 한양에서 부산까지 육로로,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뱃길로, 대마도에 도착하면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로 에도(지금의 도쿄)까지 이동합니다. 조선 통신사의 방문은 한양에서 에도까지 대략 8개월에서 1년가량 걸렸는데, 바닷길일 험하고, 태풍 때문에 전멸한 과거 여-몽 연합군의 2차례 대원정의 기억으로 통신사로 파견되는 것을 꺼렸다고 합니다.

 

육로로 부산에 도착한 통신사 일행은 모든 준비를 갖춘 뒤 바다의 물길이 좋은 날을 선택하기 몇 달씩 부산에 머물기도 했으며, 바다를 향해하는데 필요한 각 물건 및 물자와 배를 마련하면, 통신사를 위로하는 전별연이 영천처럼 열렸고, 통신사들이 현해탄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바다의 신에게 해신제를 올려 안녕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선 조선 통신사가 지나갈 때마다 지역 전체가 들썩이고 유행이 바뀐다 할 정도로 파장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통신사의 서예작품을 얻는 것이 매우 영광이며, 통신사가 준 선물이 일본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 때문에 오히려 이전의 센코쿠 시대보다 외국과의 교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큰 규모의 외국사신단이 들어오는 일이 볼만한 화제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성기 때는 조선통신사의 방문과 접대가 양국의 자존심 대결의 성격도 띄고 있었던 탓에 투입된 예산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경상도 지방의 예산을 몽땅 투입해야 했고, 일본에서도 조선 통신사 접대비용 예산문제로 민란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당시 쌀 수확량의 12%가 소요되었다고 하며(옥스퍼드 대학 제임스 루이스 교수의 추산), 한때는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이 100만냥(대략 670)에 달했다하며, 일본 내에선 이에 반발하는 '국학파'라는 세력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산을 줄이기 위해 통신사를 맞이하는 장소를 에도에서 쓰시마로 옮기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