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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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선교역사 여행3 은혜의 정원 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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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

2019. 7. 10.

은혜 정원, 대구 청라언덕위에 외국인 선교사 묘지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릎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지금도 이 민족의 복음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리라

동산병원 내에 있으며, 넬리 딕 아담스(안의와 부인)선교사가 넷째 아이 유산 후 산후 후유증으로

1909년 10월31일 43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여 대구에 최초로 묻히게 되었다.

그 후로 16명의 선교사가 묻히는 선교사 묘역이 되었는데 이 묘역을 은혜정원이라 부른다

하워드 마펫(마포화열. 1917~2013), 마가렛 델 마펫(1915~2010)
하워드 마펫은 한국의 초대 선교사 사무엘 마펫(마포삼열)의 4남으로 1948년 한국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 후 45년간 동산병원장, 학교법인 계명기독대학 이사장,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협동의료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외 모금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60병상이던 동산병원을 1천여
병상의 대형 의료원으로 발전시켰다. 또 간호대학 설립, 한국 최초 병리기술학교와 무료
소아병원 설립, 전국 농어촌에 120여개의 교회설립, 800여회의 국내외 의료선교봉사활동을
펼치며 우리 민족의 고난과 함께하였다. 1980년에는 동산병원과 계명대학교를 병합하고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우수한 의학 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마펫은 일평생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명과 믿음의 길을 마치고 2013년 6월2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다.
마펫여사는 사무, 건축, 조경등에 탁월한 지식으로 의료원 소식지 발간, 해외모금편지,
어려운학생과 환우돕기 등 뛰어난 비서업무를 수행하며 마펫 선교사를 훌륭하게 내조하다
2010년1월20일 향년94세로 소천하였다.

넬리 딕 아담스(1866~1909)
넬리 딕 아담스는 대구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인 아담스(안의와)의 아내이다.
그녀는 1897년 11월 1일 장남 에드워드(안두화)를 데리고 내한하여 남편과 함께 선교사업에
이바지하였으며 남문안예배당(제일교회의 전신)의 유년 주일학교를 창립하였고 부인주일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전도부인을 보조했다. 1866년 9월 출생한 그녀는 넷째 아이의 유산 후 산후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09년 10월31일 43세의 일기로 소천 하였으며 대구에서 제일 먼저
사망한 부인 순교자가 되었다. 묘비에는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을 뿐이다

(She is not dead but sleepeth)"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체이스 크로포드 사우텔(사우대.1881~1909)
사우텔은 미국 네브라스카주 부르트 카운티 내 티케이마에서 태어났다.
1907년 10월16일 부부 선교사로 내한하여 대구 선교지부에 배치받고 안동선교지부 개설을
자원하여 갔다가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1909년 11월16일 28세 신혼의 젊은 나이에 소천하였다.
그의 묘비에는 “나는 그들을 사랑하겠노라(Im Going To Love Them)”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죽어서도 이 땅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을 사우텔 목사의 위대한 사랑을 전해준다.

안나 부르엔 클레러코퍼(1905~2004)& 해리엇 부르엔 데이비스(1910~2004)
마르타 스콧 부르엔의 두 딸이다. 엄마의 묘비 옆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으로 2007년10월21일
신명학교 개교 100주념 기념식 때 아들의 가족이 유품을 가져와 신명학교 관계자들과
묘비제막식을 가졌다.

마그다 엘리자베스 콜러(고월라,1887~1913) 
스웨덴 출구 구세군 선교사 마그다 엘리자베스 콜러는 1911년 12월24일에 여성사관(목사)
부위로 한국 구세군 초대 선교사인 허가두 사령관과 함께 선교사로 내한하여 1년5개월 동안
조선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녀는 “예수를 위한 고난을 감수할 것과 예수의 십자가를
나누어지고자 기꺼이 고난당하기를 원한다”며 경북 원당 영문 담임사관을 자청하였다.
그러나 경북 의성에서 장티푸스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된 콜러 선교사는 대구 동산기독병원(현
동산의료운)으로 옮겨져 진료를 받던 중 1913년 5얼 23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곳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구세군 새천년대회를 기념하여 구세군대한 본영의 요청에 의해 2000년9월
27일 서울 양화진 묘소로 이장되었다.

마르타 스위처(성마리다.1880~1929)
마르타 스의처는 18년간 미국 북장로교 대구 선교부에서 여자 독신 선교사로 사역하였으며
대구와 경북의 부인과 어린이 사역에 집중하였다.
그녀는 1911년 12월11일에 내한하였으며 대구 선교지부에 부임하여 대구여자성경학교 교사 및
교장을 역임하였고 농촌교회 부인 사경회 인도 맟 교회 여전도회조직에 정력을 쏟다 1929년
4월3일 49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

대구 최초의 처녀순교자가 된 그녀가 살았던 주택은 1989년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존 해밀톤 도슨(1926~2007)
존 해밀톤 도슨은 1963년부터 3년간 미국 북장로교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여 동산병원 일반외과
의사로 사역했다. 그는 1963년 6월 멀서 아일랜드 언약교회의 교단인 미국 복음주의 언약교회로부터

의료선교사로 임명받았으며 동산병원에서 2500건 이상의 수술을 주도하거나 감독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워싱턴 의과대학에서 20년간  외과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 2월 7일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멀서 아일랜드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닥터 도슨은 죽음 직전 가족들에게 ‘한국에서의 의료선교 봉사 기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기간이었다. 한국인을 사랑했다’고 하면서 동산의료원 은혜정원에 안장되기를 희망하였다.
2008년11월11일 닥터 도슨 가족과 동산의료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묘비를 제막했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닥터존H.도슨 1926.6.6-2007.2.7   의료선교사 외과과장 대구 장로교병원 1963-1966
당신의 신실함이 크도다(애가3:23)

존 로손 시블리(손요한.1926~2012)
존 로손 시블리 선교사는 미국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Dart mouth 대학병원에서 외과
전문의과정을 수료한 후 1960년 한국에 와서 이듬해부터 대구 동산병원 외과와 애락원에서
사역하였다. 마펫 원장의 안식년 동안 병원장 서리를 맡기도 하였다.

1969년부터 거제지역사회개발보건원 원장으로서 1977년까지 거제도에서 사역하여

한국 지역사회보건의료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태국에서 Ban Vinai피난민 캠프의 원장으로 네팔 United mission 병원의 부원장및 Jumia
Nephal 대학교수로 사역하였으며 미국 Dart mouth 의대의 지역사회 보건학 교수겸 DHMC의 심장내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72세의 노령으로 온두라스 허리케인 피해 현장에 달려가 구호활동을 펼치는 등

일생동안 선교와 봉사의 삶을 이어온 시블리 선교사는 2012년 6월24일 향년86세로 소천하였다.

헨더슨 버디(1920~1921)
헤롤드 헨더슨선교사(현거선)의 장남인 버디로 불렸던 헤롤드 H. 헨더슨 주니어가 1920년
6월5일 서울에서 출생하였지만 1921년 9월17일로 단명하는 슬픔을 맞았다.
헨더슨 버디의 아버지 헤롤드 헨더슨 선교사는 1918년에 내한하여 1941년까지 23년간 대구
계성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지도자 세우기에 힘썼으며 남동생 로이드 헨더슨과 여동생
로이스 헨더슨까지 그의 모든 형제 자매가 조선 선교사가 되어 ‘온 가정이 내한 선교사’라는
명예까지 안았다.

루스 번스턴(1918~1919)
루스 번스턴은 1917년 구세군 대구지방관 아놀드 번스턴(변세돈)의 딸로 스웨덴 사람이다.
그녀는 1918년 10월7일 출생하여 1919년 1월28일 사망했으며 묘비에는

 “Our Darling Rut 10.7.1918./1.28.1919/E&A Bernsten" 이라고 새겨져 있다.
아놀드 번스턴은 6.25 동란 후 중립국 감시위원단 스웨덴 대표로 내한한 바 있다.

대구 묘지 가운데 가장 작은 비석으로 되어 있다.

헬렌 맥기 윈(1913)
헬런 맥기 윈은 1913년 11월10일 출생하여 열흘 후인 1913년11월20일 사망하였다. 그녀는
북장로교 선교사 로저 얼 윈(인노절) 부부의 갓난 딸이다. 로저 얼 윈은 안동에서 경안노회 창설
안동성경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역임했다.

바바라 챔니스(1927)
바바라 챔니스는 1927년 3월3일 태어나 1927년 6월4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은혜정원에
안장되었다. 챔니스 선교사 부부는 딸의 묘비에 이름과 사망 연도를 새겼으며 그들이 추방되던
1941년까지 무려 14년간 아끼며 쓰다듬던 묘비다. 아버지 본 챔니스(차미수)는 1925년 내한하여
미국 북장로교 대구 선교부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일본의 강제 출국에 의해 1941년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16년간 사역했다. 그는 애락원에서 농사와 축산을 지도했으며 부원장을 역임했다.
그가 살았던 주택은 1989년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동산의료원 의료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조엘 로버트 헨더슨(1964)
조엘 로버트 헨더슨은 동산병원 의사였던 존 해밀톤 도슨박사의 도움으로 1964년 6월 2일
출생하였지만 몇 시간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마도 심장이 문제가 된 것 같았다고 그의
어머니 애나 로이스 로버슨 선교사는 회고했다.
이름 조엘은 성경에 소개된 요엘 선지자의 이름이다. 그의 이름 로버트는 어머니 로버슨에
따왔다. 묘비에는 그의 이름과 1964년 6월 2일 이라고만 적혀있다. 6월2일에 태어나 6월2일에
사망했다는 뜻이다.
조엘 로버트 헨더슨의 아버지 윌리 가이 헨더슨선교사는 부인 애나 로이스 로버슨과 함께
1958년 미국 남침례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1971년까지 약 13년간 사역했다.

마르타 스콧 부르엔(부마르다 또는 부마태.1875~1930)
마르타는 부르엔(부해리)목사의 아내이다.

그녀는 1875년 4월10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화이트하벤에서 출생했으며 1902년5월10일

대구에 내한하여 남문안 예배당(제일교회의전신)구내 초가에 신명여자소학교를 설립하였고

1907년 동산 위에 있던 부인용 사랑채에 신명학교를 설립하여 대구 여성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녀는 남문안 예배당 부인주일학교 교사와 농촌교회 여전도회조직 부인사경회를 인도했으며

1930년10월20일 55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다.

한 세기이전에 내가 사랑하는 조국 한반도인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선교사님들이 이곳에 잠들어 계신다.

고맙게도 그 후손들이 가끔씩 이곳을 방문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혼으로 돌아가신 분은

후손이 없어서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나도 대구에 7년이나 살았지만 처음으로 방문해 보는 곳이였고 이곳 경상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하보다 귀한 숭고한 생명을 바쳐  주신 그 사랑을 생각할 때에 예수님의 그 사랑이 오버랩 된다.

이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열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놈입니다.

나도 생명의 복음 전하며 살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