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중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안동 하회마을에서 800년 동안 전승되어 온 '별신굿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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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2019. 10. 20.

기획:문화재방송 / 취재. 촬영. 편집. 내레이션:문화재사랑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금상 수상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특징

     1) 경상북도 안동 하회 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에 의해 연행되어 온 농촌형 탈춤의 대표작

     2) 탈놀이의 의미

       ① 제의적 의미 : 마을의 안녕, 풍농을 기원하는 별신굿을 할 때 성황신을 즐겁게 하기 위함

       ② 그 이외의 의미 : 지배층에 대한 비판, 서민들의 삶의 애환 등

   (3) 양반 마을인 하회에서 양반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탈놀이가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

      지배층에 대한 하층민의 불만을 수용하여 계급 간의 모순과 문제점을 완충

         → 기존의 공동체의 체계를 더욱 공고하게 함 양반들이 탈놀이를 묵인한 이유

   (4)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 사용되는 성적 표현의 의미

     1) 양반의 도덕적 문란과 위선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활용

     2)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내포

구분

내용

강신(降神)

음력 정월 초이튿날 아침 성황당에 올라가 성황신이 내린 서낭대를 가지고 마을로 내려온다.

무동 마당

성황신의 대역인 각시 광대는 무동을 타고 구경꾼들 앞을 돌면서 걸립(乞粒 : 동네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패를 짜 돌아다니며 풍악을 울리는 일)을 한다.

1과장

주지는 곧 사자를 뜻하며, 벽사(闢邪)의 의식무(儀式舞)를 통해 잡귀와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탈판을 정화한다.

2과장

(백정 마당)

백정이 춤을 추다가 사람이 멍석을 뒤집어써서 만든 소를 죽여 우랑을 꺼내어 구경꾼을 희롱하고 이를 구경꾼들에게 판다.

3과장

(할미 마당)

15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한평생 궁핍한 생활을 한 할미가 신세 타령을 베틀가로 읊고는 쪽박을 들고 걸립한다.

4과장

(파계승 마당)

부네가 치마를 들고 소변을 보고 있는 것을 본 중이 욕정을 참지 못하고 부네를 옆구리에 차고 도망간다.

5과장

(양반 선비 마당)

양반과 선비가 부네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백정이 내보인 우랑이 양기에 좋다고 하자 양반과 선비가 서로 사려고 다툰다.

혼례 마당

성황당에서 하산한 후 날이 어두워진 마을 입구 밭에 자리와 멍석을 깔고 혼례식을 올린 다음, 신방의 초야 과정을 보여준다.

신방 마당

총각과 각시가 초야를 치른다. 신방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삼경(11~새벽 1)에 행한다.


블로그 대문/국립공원 내장산의 단풍 터널 



우리나라는 4계절이 있고 위에서 아래로 긴 나라입니다. 그래서 각각 단풍 절정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시기를 잘 알고 가셔야 조금이라 더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내장산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순창군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호남 지방의 5대 명산 중 하나이며 한국 팔경의 하나로 500여 년 전부터 단풍 명소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내장사가 있지요.

1969년 1월 21일 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1971년 11월 17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이안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무렵 경기전 참봉 오희길이 나라의 명을 받아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피난시키게 한다. 이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나선 이로는 손홍록(태인 고현내현 삼리 출생.

동학삼걸의 하나인 손화중이 후손)과 안의(태산선비문화관 안성렬관장이 후손), 참봉 손승경 그리고

가동 30명이다.

 

이들은 경기전에서 어용과 실록 등을 챙겨 6월에 정읍 내장산 용굴로 피난길을 떠났다.

용굴에 이들을 안치한 다음에는 정재인 100여명이 밤낮으로 지켰다. 안의는 실록 피난기인

[난중일기초]를 남겼으니 실록은 6월 22일 은봉암(금선암으로 추측 1920년대 폐찰), 태조 영정은 

7월 1일 용굴암에 각각 피난시킨 것으로 돼있다.

 

이듬해 왜군이 서울에서 철수하자 7월 영정과 실록을 충청도 아산으로 이안시키라는 왕명이 내렸다.

그리하여 영정과 실록은 370일여 만에 정읍현에서 하루, 태인현에서 또 하루를 묵은 다음에 지금의

정읍땅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동안 손홍록 안의 두 선비가 수직한 일수는 53일, 안의가 혼자 수직한 일수는 174일,

손홍록이 수직한 일수는 143일이다. 이들을 배향하는 남천사가 칠보면 삼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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