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세울림(케니지) 2020. 3. 25. 03:53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라인 강의 지류인 마인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정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이라고 합니다.

역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출한 도시이자,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의 고향으로 곳곳에 역사적인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도시입니다.



'루터와 바하'를 만나고 '아이제나흐' 역에서
기차를 이용해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역에서 바라보면 바로 앞에 커다랗게 '금호타이어'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 기업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보는 순간 애국심이 몰려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경제, 금융 중심지로 이미 오래전부터 발달하여
특히 금융가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인정하는 건축물이 즐비하게 들어 서 있습니다.



숙소 체크인후 곧 바로 시내 나들이에 나섭니다.



처음 와보는 이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려고 그냥 한없이 거리를 걸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유럽 여행중 독일에서 느끼는 평온함은 다른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이 온몸으로 바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될때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독일의 도시들을 하나씩 가보려고 합니다.



유명하고 맛있는 독일의 핫 도그가 이번에는 쓰레기통으로 변신하여 나타납니다.
그만큼 독일 핫 도그는 본인이 자신감 있다는 건방짐으로 알겠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랜드마크인 '뢰머 광장'으로 왔습니다.
'뢰머'는 독일어로 '로마인'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 로마인이 이 지역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관례적으로
아직도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광장 주변에는 역사 박물관, 니콜라이 교회, 대성당 등이 있고
광장 한가운데는 '정의의 분수'가 있습니다.



한손에는 칼, 다른 한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가 뢰머 시청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울은 법과 인권이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장 서쪽에는 삼각형 모양의 고딕식 목조 건물이 세동 나란히 서 있습니다.
1405년 프랑크푸르트 시의회가 귀족의 주택 3채를 사서 시청사로 개조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시는 '시청사'라는 이름 대신 '뢰머' 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시청사가 있는 광장의 정식 명칭은 '뢰머베르그'이지만 이 또한 줄여서 '뢰머'라고
그냥 부릅니다. 프랑크푸르트 에서 '뢰머'라고 하면 시청사이기도 하고 시청사 앞
광장이기도 합니다.



옆에 있는 대성당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끝나면
황제는 지금의 시청사 건물에서 축하연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9세기 초부터 여기 광장에서 박람회가 열리기 시작해서 오늘날의
국제전시장으로 발전하였고, 그후 2차 세계대전때 심하게 파괴된 것을 복원 공사를
통해서 14-15세기의 중세풍이 그대로 느껴지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뢰머 광장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성당을 먼저 가보려고 했지만 현재 공사중이라서 광장 바로 앞에 있는 현재 니콜라이
교회로 부르는 같은 두 이름을 가진 구 니콜라이(Alte Nikolaikirche)교회에 왔습니다.



니콜라이 교회는 1264년에 지어졌으며, 초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교회안에 들어와서 안내를 맡은 노신사 분을 만났습니다. 이 분은 이 교회에
관한 설명을 상세하게 나에게 들려주고 또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 주었습니다.



루터가 1521년에 프랑크푸르트에 방문한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1521년은 루터가 보룸스 국제의회에 카알 5세 황제의 호출을 받고 가던 때입니다.


교회 내부는 아주 소박하게 꾸며져있고 외벽에는 장식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개신교회이고 또한 공연장으로도 사용합니다.



내가 방문한때인 2019년 5월달 공연 안내가 보입니다.

오르간 콘서트로 한국 사람 연주자 이름이 있습니다.
만약 시간이 맞았다면 참관을 하였을텐데 연주회 스케줄이 나와 맞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교회에서 나와서 뢰머 광장을 한바퀴 더 돌아보고 점심 식사할 자리를 찾아서 갑니다.



시내 관광의 중심지답게 식당은 즐비하게 있습니다.



여지껏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았던 장소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시내를 좀 더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길 모퉁이에 기대어서서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는
내리는 비에도 개의치 않고 연주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잠시 비가 그치기가 무섭게 숨어있던 관광객들은 거리로 금새 쏟아져 나옵니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을 따라서 계속해서 갈어갑니다.



이번에는 자전거가 아닌 살아있는 오리 가족입니다.



현재 공사중인 대성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인 강을 따라서 걸으면서 보는 경관은 마치 한폭의 그림입니다.



연인들 사랑의 표시로 자물쇠를 걸어놓은 다리를 왕복으로 걸어 보았습니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보다 보면 시간은 금새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괴테의 생가를 찾아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괴테의 생가는 현재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괴테가 살던 집을 복원한 생가는 그의 유물을 전시하여
이름을 괴테 하우스 & 박물관으로 표기합니다.



괴테는 왕실 고문이었던 아버지와 시장 딸인 어머니 사이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명문가 출신이라서 어린시절과 청년시절 상당히 유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상류층 가정 생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 되었지만 괴테를 사랑하는
독일 시민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괴테는 1749년 8월 28일에 이곳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여동생 코넬리아와 함께 성장 하였습니다.



괴테는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 과 '파우스트' 등의
세계적인 걸작품을 여기서 집필하여 후대에 남겼습니다.



괴테의 집은 4층으로 되어있고 건물 내부에는 20개의 방이 있습니다.



상류층인 괴테의 삶을 알아볼수 있는 흔적들을 여기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천문시계도 여기에 있습니다.



화려하게 삶을 산 괴테의 그때 모습을 이것을 보면서 더 느낄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선 가끔씩 공연도 하나봅니다.



괴테의 생가를 다 둘러보고 그의 집에서 나옵니다.



다시 도시 귀퉁이를 돌아서 한 곳을 찾아서 갑니다.


그 곳은 구텐베르크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주위가 공사중이라 철조망을 원으로 처놓아서
근처에 갈수가 없어서 그냥 멀리서 사진만 한장 찍고 갑니다.

구텐베르그가 있어서 루터와 바하도 빛을 볼수 있었고 우리도
이렇게 책을 볼수 있다는 생각에 한없는 감사함을 그에게 가지게됩니다.



괴테 동상은 이미 라이프치히에서 보고 왔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금융가를 한바퀴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숙소에서 바로 볼수 있는 경치입니다.

이렇게해서 나의 프랑크푸르트 여행은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다시 만나는 반가운 얼굴입니다.

바하와,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비틀즈와 나를 좋아했던 그녀...)
갑자기 영화 '러브스토리' 장면이 생각납니다.




바하와 모차르트 생가를 이번 여행에서 직접 찾아갔지만 베토벤은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베토벤, 하이든, 슈베르트가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생뚱맞게 과학자가 한명 끼어 있네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의 물리학자입니다.
아마도 독일을 빛낸 사람이라서 같은 반열에 들어 있나 봅니다.
그러나 어떤면에서는 전세계 어느누구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랄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새겨져 있는 인물들을 보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나는 미국 시카고로 날라서 갑니다.